Movie

잡스(Jobs) - 2013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13. 21:02



잡스 (2013)

Jobs 
6.6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출연
애쉬튼 커쳐, 더모트 멀로니, 조시 게드, 매튜 모딘, 제임스 우즈
정보
드라마 | 미국 | 127 분 | 2013-08-29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Steve Jobs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미 책과 기사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이라서,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인생의 정점을 찍고,

홀연듯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신화로 남겨져 버렸다.



이 영화는 철저히 경영자로써의 Jobs 의 삶을

시간의 순서대로 별다른 드라마틱한 장치 없이 그냥 설명해주고 있다.

(잡스의 인생이 뭐나 드라마틱하기에 별다른 장치가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영화 속 잡스의 이야기는

초반의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항상 애플과 함께하는 에피소드로만 구성되었다.


인간으로써의 잡스의 특성들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스토리와 핵심 내용들은 경영자로써의 성공과 실패, 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너무 경영자로써의 잡스에 집중하기에,

좀 더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줄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좀 더 사적인 이야기라든지, 실패 후의 애플로 돌아오는 중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애플 매니아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려주며,

잡스를 대충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아는 좀 시시할 수 있으며,

잡스나 경영에 별다른 관심을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경영을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꺼리를 굉장히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



영화적 측면에서

은근히 음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활용한 측면이 옅보인다.


중간중간 시간의 흐름을

70-80년대의 대표적인 음악들로 표현해주는 센스 역시 돗보였다.


비틀즈를 좋아한 위즈니악와 밥 딜런을 좋아한 잡스를 부각한 것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 만큼이나 다른 그들의 성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천재지만 평범한 삶을 추구한 워즈니악과

언제나 혁신적인 삶을 추구하며 꿈을 쫓은 잡스

(실제 워즈니악은 애플에서 개발팀의 팀원으로 지냈으며, 사직 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


영상적인 테크닉이나 인설트로 들었갔던 편집 기술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맞춰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돗보이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재미요소는

애쉬튼 커쳐의 싱크로 100%의 잡스 연기



첫 장면이 최고의 싱크로률을 보여주지만,

젊은 시절의 잡스 역시 굉장한 싱크로율를 보여주고,

그의 걸음걸이와 말투까지 최대한 재현하려는 배우의 노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풋내기 청년 시절의 잡스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반면,

10년만에 재기에 성공한 잡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다.


풋내기 청년 시절과 좀 더 다른 매력을

잘 표현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경같은 소품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쳥년 잡스의 분위기와 크게 차별화된 느낌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아쉬운 것은 스토리의 전개이다.

핵심적인 경영 이슈를 나열하는 것만해도 벅차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너무 경영 이슈만 쭉~ 따라가다가 영화가 끝난듯하여 영화적 재미는 좀 많이 아쉽다.


중간에 워즈니악이나 창립 맴버들과의 인간적인 갈등,

딸 리사의 이야기 등이 어설프게 들어가면서 긴장감도 없고 감동도 없는...

참 영화적으로는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그냥 스티브 잡스의 영화같은 삶을 따라가야만 했다.

(중간 중간 영화적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 연출한 컷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다지 티도 안나고 임펙트도 없다.)


+


역시 이 영화를 즐기는 백미는

내가 애플같은 회사에 다녔을 때와 잡스같은 상사를 만났을 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잡스의 애플

잡스가 없는 애플

그리고 잡스가 돌아온 애플



잡스는 철저히 자기 몫을 못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프로젝트에서 배제시키거나 짤라버렸다.


그리고, 방향을 정한 후에는

절대 중간에서 타협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고,

특히나 작업을 방해하는 듯한 모든 것을 거부해버렸다.


일반 회사에는 이런 괴짜들이 없을까?

아니, 많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나의 케리어가 광고회사와 게임회사라는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회사들을 다녔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힘들긴 하지만,

내가 다닌 회사들에는 물론 잡스와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 괴짜들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잡스와 같은 사명감이나 통찰력이 아닌

자신의 승진이나 성공을 위해서 괴짜같이 밑에 사람을 부린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든 사람이든

비전과 철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잡스가 있을 때도,

잡스가 없을 때도 애플을 지탱해주었던 것은

잡스가 창립 시에 가졌던 애플만의 혁신에 대한 철학이였다.


그리고, 일반 못된 상사와 잡스라는 인물을 구분해주는 것도

그 사람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철학의 부재...


그 것이 같은 현상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평가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의 짧은 사회 경험에서도

잡스와는 다르지만,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사람이 있다.


+


나의 첫 회사 Lee&DDB의 이용찬 사장님~


90년대 한국 광고계를 주름잡던 스타였으며,

Lee&DDB의 창립 초창기에는 애플같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온갖 경쟁PT와 시상을 휩쓸면서

규모로는 업계 10위권이였지만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닌 회사였다.


독립광고회사 웰콤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이며,

제일기회시절에는 임원이 아닌 최초로 억대 연봉 팀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웰콤 창립자 박우덕 사장과 함께

광고계 최고의 괴짜 경영인으로 알려지면서

MBC '성공시대'같은 TV프로그램에도 출현하였다.


항상 야근은 당연한거였고,

PT 전날, 시안이 맘에 안든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수 많은 직원들은 힘들어서 그리고 다른 이유로 회사를 떠났고,

잘나가던 Lee&DDB도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



내가 Lee&DDB에 입사한 것은

2006년 대규모 구조조정이 끝난 직후였다.


사내 분위기는 굉장히 가라앉아있었고, 

이용찬은 악덕 사장에서 이제는 한물 간 광고인으로...

Lee&DDB는 이제 곧 문을 닫을꺼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냥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Lee&DDB를 바라보는 다른 회사 사람들의 바램이였던 것 같다.


사원출신에 맨 땅에 헤딩했던 이용찬의 성공신화가 끝났고,

그냥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합리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그 험한 곳에서 고생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빨리 경력쌓아서 더 큰 곳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충고해주었다.


솔직히 신입사원 시절 나에게 그럼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기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고 

마지막까지 Lee&DDB에 남아있던 것은

소중했던 우리 팀 사람들과 이용찬 사장님이 보여준 열정 때문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한 동안 이용찬 사장님은 실무에서 손을 땟었다.


기존 클라이언트들을 팀장급에서 알아서 잘 처리했고,

우리팀에서는 사장님의 도움없이도 경쟁PT에서 새로운 광고주를 영입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는 광고 시안을

사장님 안보여드리고 그냥 광고주한테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오리온을 담당하고 있던 우리팀은

사장님을 절대 피할 수 없었고, 사장님도 오리온에 한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사장님과의 첫 회의를 해본 후

왜 사장님을 피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고,

왜 사장님이 사장님인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호랑이 같은 불호령과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상황...

실무진 입장에서는 시간은 언제나 부족한데 이런 사장님이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사장님 리뷰가 끝나면 언제나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고, 그 날은 당연히 야근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장님의 날카로운 지적들은

어디로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이 없었고 언제나 바른 말을 하는 사장님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마 잡스를 대했던 애플 직원들의 감정이 이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항상 사장님이 강조했던,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보고 끝까지 고민을 해보면 방향이 보인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공자님 말씀만 같았던

그 이야기들이 어느 새 나의 좌우명처럼 되어버렸다.


+


그렇게 무섭기만 했던 사장님도...

회사가 점점 다시 안정화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항상 미래만 생각하고 도전만 외치던 사장님이

갑자기 '행복한 회사'를 모토로 내세우더니 사내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사장인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된다는 것을 벗어나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면 좋은 성과가 나온다는 Fun 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회사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고,

아직도 일은 많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즐거운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쌍용자동차의 경쟁 PT를 통해서

이용찬 사장님은 화려하게 부활했고, 

Lee&DDB는 창립 10년만에 최고의 실적을 거두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것이 독으로 돌아와

2009년 쌍용자동차의 부도로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이용찬 사장님은 이에 모든 책임을 지고 지분을 DDB본사에 모두 넘기고 떠나기로 하셨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우리팀은 해체되었고,

이용찬 사장님도 우리팀도 없어진 DDB에 더 이상 내가 남을 이유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내년도 연봉 인상을 약속해줬지만,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던 나는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DDB는 이제 일반 외국계 기업이 되었고, 나에게 열정과 행복을 주던 그런 곳이 아니였다.)


+

DDB를 떠나신 이용찬 사장님은

독립 회사를 설립하셨고 난 사장님의 사무실 이전을 도와드렸다.


이미 상당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난 상황이였고,

남아있는 직원들도 눈치가 보여서인지 떠나시는 장소에 함께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후배 두 명을 불러모아서,

사장님 이사를 도와드렸고 새로운 사무실을 같이 정리했다.

(그 후배 녀석들은 그 인연으로 사장님 회사에서 인턴으로 몇 개월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화려했던 이용찬 사장님의 마지막 모습으로는

너무나 쓸쓸한 퇴장이였고, 인생의 쓴 맛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난 사장님이 성공적으로 재기하시길 간절히 바랬고,

기회가 되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사장님과 일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용찬 사장님이 보여주었던 그 열정과

광고인으로써의 자세, 마케터로써의 능력은 진짜 마력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오리온 담철곤 회장님의 부르심을 받고 오리온 마케팅 총괄 사장으로 가시게 되었다.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이용찬 사장님은 쉽고 편하기 때문에 선택할 사람은 아니였다.


무섭지만 워낙 정이 많으시 분이기에,

20년간 한결같이 믿고 불러주었던 담철곤 회장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리온으로 돌아가신 이후에는

이용찬 사장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이용찬 사장님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용찬 사장님에 대해서는

나와 정반대의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내가 너무 보기 좋은 측면만 본 것일 수도 있다.

(외부에 좋은 소문보다는 안 좋은 소문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짧은 기간동안 DDB와 이용찬 사장님을 통해서 얻은 경험은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회사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나에게 너무나 큰 경험이 될 것이다.


철학과 사명감...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자세...


내가 새로운 회사를 꿈꾸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가장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