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소설/시/문학

미생(未牲) - 2013, 윤태호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19. 08:32
미생 1~9 완결세트
국내도서
저자 : 윤태호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3.09.26
상세보기


미생(未牲)은

2012년~2013년간 다음에 연재되었던 웹툰이다.


일단 시즌 1이 끝나고 총 8권의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다른 웹툰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직장인을 다룬 웹툰 중에는 당연 최고이다.


원래 웹툰이라는 장르를 잘 안보지만,

미생(未牲)은 워낙 인구에 회자되기에, 추석 맞이 휴식의 개념으로 정주행했다.


내년 가을쯤 시즌2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굉장히 기대를 하면서 기다려 봐야할 듯하다.


바둑을 통해서 직장생활을 꽤 뚤어보는 인사이트가 아주 훌륭하다~~


특히, 인턴십이라든지 신입사원의 생활이라든지,

사회 초년생이라면 꼭 알아두면 좋을 인사이트를 너무 많이 전달해주고 있다.


종합무역상사가 배경이기는 하지만,

직장 내 정치, 상사와의 관계, 워킹 맘, 비정규직, 정년 퇴직 등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가지는 다양한 고민들을 열심히 풀어내고 있다.



+


바둑의 대국과 같은 직장인의 인생살이...

늘 일에 쫒겨 사는 샐러리맨들의 삶의 끝은 어디인가?


취업이 되면 모든 것이 다 될듯한 인턴 시절...

계약직이라도 되었다면 정규직이 되야만 살아남는 현실...

정규직이 되는 순간부터는 샐러리맨의 꽃이라는 임원을 향해 달려야만 하고,

임원이 되었다고 해도 내 잘못이든 부하직원의 잘못이든 한 번에 날라가버리는 현실...


그들의 쓸쓸함을 체험하고는 

오히려 천천히 오래까지 실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오팀장의 고도의 전략...

하지만, 그런 오팀장 역시 사내 정치의 세계에서 발을 뺄 수 없는 현실....


과연 이렇게 많은 에피소드들이

이렇게 짧은 2년이라는 기간동안에 발생할 수 있을까?


역시나 극화된 것도 많이 있지만,

인턴십과 신입사원의 세월을 보낸 나로써는

그리고, 인턴 포함해서 4개의 회사를 다녀본 나로써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었다.


대학생 때 인턴을 했던 신규 인터넷 쇼핑몰은 불과 6개월만에

새롭게 새팅해서 런칭하고 서서히 몰락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고,

(물론 내가 입사하기 전 6개월 간 준비과정이 있었고, 내가 나온 후  6개월간은 버티기는 했었다.)


정규직 생활을 했던 두 개의 회사는 

내가 근무하던 불과 3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올리며 축배를 들었었지만,

똑같이 1년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었다.


사회생활 몇 년 하지도 않았는데...

3개 회사가 모두 성장했다 몰락하면서,

공동체가 해체되고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미생에 나온 이야기들은...

생존문제가 아닌 대기업의 안정된 시스템에서나 나오는

여유로운 회사들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내가 정규직으로 다닌 두 회사도

세계적인 규모의 외국계 회사와 건실한 중견기업이였기에 절대로 망하진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도 사실은 미생처럼 대기업에 다닌 편이 맞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였고, 

나의 짧았지만 다이나믹했던 옛날을 회상해볼 수 있는 좋을 기회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꼬마 연구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나에게

새로운 출발에 선 사람의 자세에 대한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


내가 종합상사에 근무해 본 적은 없지만,

광고회사도 많은 구조상 종합상사와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합상사가 끝없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경쟁을 하거나 개발해 낸다면,

광고회사는 끝없이 새로운 광고주를 찾아내고 경쟁피티에 참여해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


종합상사에 비하면 광고회사의 규모나 사업 성격은 매우 조촐하고 단순하지만,

기본적으로 팀 위주의 조직 구조라든지, 끝없이 경쟁하고 개발해야한다는 생존 원리와 방식에서는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상사맨들이 보기에는 광고회사는 그 규모면이나 사업 성격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일 수도 있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서 경험했던 인턴십 과정도

미생에서 묘사된 인턴쉽과 매우 유사한 프로세스와 형태로 진행되었다.

(놀랄정도로 인턴들끼리 몰래 회동한다든지, 경쟁PT, 팀 내 소속 등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아주 잘 살렸다.)


마지막 경쟁PT가 있었고, 

기간 종료 후 집으로 돌아가 1주일 후에 결과를 통보받았다.


장그래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난 인턴십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피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턴십과정이 종료된 후에 정직원 채용에 실패하게 되었다.


가장 완성도 높았다는 평가는 심사위원이였던 팀장님이 코멘트 해준 것도 있지만,

공개 피티이기에 다른 인턴들의 피티를 모두 지켜봤기에, 나머지 인턴들이 진짜진짜 너무나도 못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이 나중에 알려준 나의 불합격 이유는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이기에 술을 안먹었다는 점과 누추한 평소의 복장의 문제였다.


광고 기획도 엄연한 영업직이기에 비즈니스 스킬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난 어찌보면 순진했고 남들이 나의 그런 모습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도 않았다.


술을 안먹는다는 것은 광고 영업에서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는 요소였고,

광고 기획팀 사람들이 그렇게 복장을 중요시하는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체 아무 생각없이 다녔다.

(그 때는 진짜 너무너무 억울했는데, 지금 생각하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난 이미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전부터 떨어진 것이였다.

결국 여러 면에서 가장 무난한 모습을 보인 두 명이 채용되었고, 난 진짜 개념 없는 바보였다.


하지만, 그 인생의 쓴 맛은 나의 직장생활에 가장 큰 경험이었고,

그 경험이 선물해준 치열함과 간절함이 새로운 회사에서 정직원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


인턴십에서 탈락한 후 놀고 있던 나에게 

대학동기는 자기 내 회사에서 급하게 1개월짜리 알바를 구한다고 연락주었다.

어짜피 공채시즌이 다 끝났기에 경험삼아서 1개월 알바라도 해보려고 들어간 회사.


미생에 등장하는 영업 3팀 같은 팀에서

엄무 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급하게 임시로 뽑은 알바였기에,

난 매우 흥미진지하게 광고주 개발 작업에 참여해볼 수 있었고~~

어짜피 1개월 알바이기에 잘 보일 생각따위는 하지 않고 내 맘대로 지껄여봤다~~

 

하지만, 내 맘대로 한 번 써본 기획서가 채택되고,

부사장님이 그 내용을 수정해서 광고주 피티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일이 일어났고,

난 1개월 알바가 끝나는 동시에 3개월 계약직 인턴을 제안 받게 되었다.


물론 채용과 상관없는 인턴직이였고, 이런 식으로 정규직 전환 사례도 없었다.

어짜피 공채시즌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3개월 인턴도 편한 마음으로 질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뭘 안다고... 아주 건방지고 우수웠던 것 같은데, 그래도 용감했다.)


인턴이 끝날 때 신규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팀장님은 새로 생긴 경력직 TO를 과감히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채용시켜주셨다.


그리고 시작된 나의 신입 사원 생활은

버디에게 교육받는 장그래의 모습을 상당히 연상시킨다.

(물론 난 전공이 광고홍보학이라서 업계 분위기나 용어에는 매우 익숙한 케이스였다.)


물론 장그래처럼 놀라운 인사이트로 사고를 치지는 못했고,

나의 계약직 기간은 3개월로 장그래에 비하면 매우 짧고 즐거웠던 것같다.


작은 기업에서는 사장님 또는 인사권자의 눈에 들면...

나처럼 바로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지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면에서는 미생 시즌1의 결말이 냉혹한 것같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나와 장그래와 가장 유사한 점은

너무나 좋은 팀을 만나서 너무나 행복한 첫 직장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


더욱 웃긴 것은 경력직으로 이직을 한 게임회사에서도

다시 한 번 신입 사원같은 경우을 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때는 업계 용어도 모르고, 프로세스도 너무나 생소해서,

진짜 새로 입사한 마음으로 업무를 배웠고, 게임을 하기위해서 매일매일 야근을 해야만 했다.

(어찌보면 미생에 나온 신입사원의 생활을 난 직장인 4년차에 경험했던 것만 같다.)


팀장님이 일일히 용어를 첨삭해주었고,

업계의 생리라든지 다른 부서와 대화하는 법들을 가르쳐주었다.

(심지어는 광고 회사 스타일의 기획서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마케팅 기획서 쓰는 법도 알려주셨다)


두 개의 회사에서 내가 만난 팀장님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들은 아니였지만 진짜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이였고,

또한 언제나 진심으로 나를 마음으로 품어주었던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였다.


두 회사 모두 미생처럼 팀 간의 경쟁, 유관 부서와의 마찰, 사내 정치 모두 있었고,

심지어는 팀이 해체되는 것도 경험해보았고, 나의 두 팀장님 모두 오팀장처럼 결국은 독립을 하셨다.

(재미있는 건 첫 번째 팀장님은 사업 접고, 다시 외국계 회사의 임원급으로 복귀하셨다.)


+


직장생활이 참~~~


유사하면서도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미생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단지 직장의 이야기만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에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일반 회사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흥미진지한 에피소드들도 포함해서)


그리고 미생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 속 깊이 느낀 점은


바둑도, 회사도, 사회도 

모두 사람 사는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신기한 점은

윤태호라는 작가는 회사생활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6회까지 연재하고 나서야 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는 직급체계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단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던 작가가...

인터뷰만으로 이 정도의 인사이트를 뽑아낼 수 있다니...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약간 어설픈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어찌보면

근본 원리는 진짜, 비슷비슷한 것 같다...


윤태호 작가가 새롭게 연재할

미생 시즌2에서는 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지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