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Innovation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고마운 이유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16. 12:55


고려대 경영대 학생이 붙인 이 대자보...


'이게 뭐 대단하다고들 이 난리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난 그들의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솔직히 그 내용만 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대자보라는 방식도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SNS를 넘어서,

온갖 매체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광풍처럼 퍼지는 것일까?


이는 소통을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빨간색 글씨에 자극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쓴 대자보가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대자보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대자보였다.


+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 대해서 맘에 안드는 사람이

어디 정치인이나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랴...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준 것도 사실이다.


행동하는 양심은 어디갔느냐...

깨어있는 시민은 이제 죽었는가...


실천하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니, 생계도 바쁜데 시간을 내어서 노력을 하는 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 역시 촛불집회에 가본 적이 없고,

그 흔한 SNS에 글을 남긴 적이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 해야할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불법 사찰같은 위협에 대한 자기 검열도 있었겠고,

개인적으로는 현 정권이 성공하길 바라며 최소 1년 간은 조용히 죽이되든 밥이되든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년간의 시간들은 많이 답답한 심정였다.


또한, 언론이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들도

뭔가 있는 것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고 참여하기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이 매우 만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시끄러운 이러한 사회가 너무나 불만일 수도 있었을 것인다.


하지만,

현실은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안부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과연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현실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찌보면,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현상인데,

잘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 먼저 말을 건내며 생각을 묻지 않았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기에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현실의 삶에 갇혀서 생각해볼 기회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짧은 지식으로 어설프게 이야기했다가,

반대 의견을 지닌 고수한테 두들겨 맞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안녕한지, 안녕하지 못한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는 대자보에 내용이 없는 일방적인 선동이라고 비난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신나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깊게 반성해만 한다.


사실 대자보의 내용보다는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것이 이 대자보의 핵심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에게 

평범한 그들의 언어로 질문을 던졌다.


정치 현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도 솔직히 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철도 민영화를 몰라도,

국정원 사건에 대해, 밀양 송전탑에 대해 잘 몰라도

그냥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인 것이다.


'안녕한지, 아니면 안녕하지 못한지....'


이 정도 수준의 답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질문이 너무나 소중히 여겨지게 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하나 둘 씩 솔직한 답변을 하게 되면서,

그 동안 침묵하던 외면하던 사람들도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준 것이다.


대자보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100% 그런 의도만은 아니였던 것같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 내용보다는 질문을 해주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소중했다.


+


정치인이나 활동가들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심정은 별로 이해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열정이 너무 앞서서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서 나가서 온 몸으로 화살을 맞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야기를 하고 싶고,

평범한 사람들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사회는 바뀔 수 있다.


하지만, SNS와 오프라인 공간은 잘난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었고,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응징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먼저 물어보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고려대 한 학생이 쓴 대자보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만에 나도 침묵을 깰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