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 cast/[Bunker1] 강헌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Jazz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2. 18. 23:29

나름 음악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다고...

흑인 음악의 역사에 대한 책도 읽어봤지만...

나의 지식은 살아있지 않는 그냥 머리로 이해한 음악이였다.


강헌...

그의 강의를 듣는 순간...

Jazz와 Rock'n'Roll 이라는 악이 나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우선, 책으로만 읽었던 흑인 음악의 역사를 대충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노동요 > 흑인 영가 > 블루스 > 랙타임 > 재즈 > 가스펠 > 리듬앤블루스 > 소울 > 모타운 > 펑크 > 디스코 > 힙합 > POP(장르 융합)


당연히 정확히 이런 순으로 발전한 것은 절대 아니며,

그냥 시대의 순서대로 유행한 음악을 정리해 놓은 것 뿐이다.

(특히나, POP같은 경우는 80년대 이후의 온갖 장르들이 융합되면서 대중화된 음악을 통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흑인음악의 흐름에 대해서

강헌 선생의 강의는 뭔가 그 맥락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냥 시대별로 딱딱 끊어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왜 그런 음악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명쾌하고 실질적으로 설명해주니까,

마음으로써 그 음악을 이해하고 그 음악적인 흐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강헌 선생의 강의는 리듬앤블루스에 대한 설명해서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대중화시킨 로큰롤로 넘어가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소울이라는 장르(?)부터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울이란 단어를 하나의 장르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60년대 인권운동과 함께한 흑인음악을 일컬어 소울이라 부른다.)


60년대 이후 흑인 음악의 흐름에 대해서도 강헌의 강의가 있는지 좀 찾아봐야겠다.


+


벙커1특강 -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 EP.01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 1 (Jazz)


16세기부터 흑인이 노예로 미국에 끌려오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아메리칸들의 황야에 외치는 소리(field the holler)는 시작된다.


초창기의 농장 노동요(Plantation Chaint)는 사실상 음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절규였다.


소수의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스페인 노예상에 납치되어 
미시시피주의 대농장에 팔려온 다수의 흑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가혹한 탄압을 한다.

서로 대화도 못하게 하였고,
그들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소리를 부르짓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농장에서 부른 노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절망의 소리였던 것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교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블루스(Blues)와 흑인 영가(Negro Spirituals) 중 어느 것이 먼저 시작됐냐는 논란이 좀 있는데,
사실 둘을 들어보면 기본적인 리듬이나 분위기는 너무나 유사하다.
가사의 내용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세속적인 욕망을 다루냐의 차이정도?

물론 다루는 악기에서는 차이가 확인히 드러난다.
특히나 초기의 블루스(Blues)는 변변찮은 악기 하나 없이 하모니카나 목소리만으로 짜여졌다고 한다.

교회의 찬송가에 흑인 특유의 리듬감을 감미한 흑인 영가는 
개인적이고 세속적이던 블루스와 서로 영향을 주었고, 본격적으로 흑인 음악은 발전해나가기 시작한다.

출발부터 한이 셔려있어서 그런지 블루스의 soul이라 하면,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살짝 숨겨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흑인 영가에서도 대상만 다를뿐 기본적인 느낌은 비슷한 듯하다.

+


재즈(Jazz)의 시작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뒤로 한다.

프랑스령의 뉴올리언즈는
미국 내에서도 앵글로색슨족에 소외된 백인을 비롯한 온갖 인종이 모여들면서
한마디로 인종의 용광로와 같은 지역이였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인들이 흑인들과도 많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계 흑인인 크레올이라는 새로운 인종이 탄생하면서 렉타임(Ragtime)이라는 음악이 탄생한다.


백인들에게 악기 연주를 배운 이들은

처음에는 악보를 보고 그대로 연주하는 Classic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자유로운 연주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영화 The sting의 OST "The entertainer"를 만든 Scott Joplin이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군수물자들이 뉴올리언스에서 폐기되면서,

야전에서 활용도가 높고 내구성이 강했던 군악대의 관악기들이 이 동네에 흘러들어오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오래됐지만 소리가 거칠고 정확한 음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현악기에 비해서 오케스트라에서 천시를 받았던 관악기들은

흑인들의 두꺼운 입술과 뛰어난 폐활량을 만나서 새로운 빛을 밝휘하게 된다.


뉴올리언스에 유입된 관악기들은

공공연한 매춘의 장소였던 바에서 호객행위를 위한 악기로 활용된다.


Jazz라는 어원은 섹스, 창녀, 삐끼에서 유래되었다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뭐가 정확한지는 몰라도 그 맥락을 보면 굉장히 일관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동네 최고 인기를 누리던  '스토리 빌' 같은 재즈바에서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항구에서부터 삐기들이 즉흥적인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입된 손님이 매춘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술과 음악으로 계속해서 매장에 잡아두었다.


매춘을 위한 술집의 영업 전략이 오늘날의 재즈를 탄생시킨 것이다.


+


19세기까지만 해도 동네 음악이였던 재즈는

뉴올리언스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흑인들이 강을 타고 북쪽 도시로 진출하면서 점차 확산된다.


특히 이 때, 시카고 흑인 할렘가로 들어간 루이 암스트롱은

30년만에 재즈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된다.


루이 암스트롱은 놀라운 태크닉의 트럼펫리스트였지만,
여기에 놀라운 보컬 능력과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갖추었기에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26년 "히비 지비, 두비 두비, 지비 지비"의 경우에는
악보가 바닦에 떨어져 그냥 막 연주했는데, 그냥 녹음을 계속 진행해서 그게 대박이 났고,

그의 스캣 창법은 당시 인기를 끌던 다른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생애를 아주 잘 설명해주는 블로그 글


강헌 선생은 <St Louis Blues> 공연 영상을 통해서 당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교향곡은 현악기가 주도하지만

재즈는 소속된 모든 악기에 평등성을 부여하면서 보컬만 돗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계속 이어지는 경제적 공항(1907 / 1912 / 1929)과 전쟁으로 시대적인 암흑기였다.

거대한 댄스홀(클럽)들이 도시에 나타났고, 
17-23인조의 빅 밴드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 이후 재즈의 흐름은 스윙이라 불린다.

스윙은 듣는 사람이 플로우로 나가서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느낌을 의미하지만,
빅밴드로 넘어가면서 백인들이 재즈 시장을 점령하게 되고 스윙은 하나의 장르와 되어버린다.

흑인이 만들고, 백인이 돈을 버는 미국음악 산업의 구조가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사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진보적인 백인들이 흑인 아티스트를 키워냈다는 점이다.

강헌 선생은 '트로이의 목마'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강남좌파였던 존 하몬드가 뉴욕 사교계에 루이 암스트롱을 등장시킨다.

카운터 베이시, 브루스 스트링스 뿐만 아니라,
유태인 출신의 밥 딜런 역시 존 하몬드의 작품이였다고 하니 진짜 천재 프로듀서였던 것 같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문화산업 증흥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루이 암스트롱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재즈를 세계에 전파하게 된다.

그러면서 재즈는 오늘날 모든 대중음악의 출발점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이후의 Rock'n'Roll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 대한 다음 포스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