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 cast/[생각통] 김시천

[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③ -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5. 14. 01:51

피로사회
국내도서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 김태환역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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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교수의 강의의 소재는 참 참신하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잘 골라와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근데, 결론 부분에 있어서 말은 되기는 하는데~

확~~ 잘 엮어서 마무리한다는 느낌이 좀 약하다는 인상이 든다...

(되씹어보면 좋은 이야기인데, 막상 듣고 있을 때는 명확하게 마무리가 잘 안된다.)


아직 3회니까~~ 뒤의 강의에서는 좀 더 좋아지겠지?

암튼~~ 지적 호기심은 완전 만빵으로 채워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2012년 화제의 책이였던 <피로사회>와 장자, 노자를 엮다니...

일단 소재 선택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인정해줄 수 밖에 없을 듯하다~~ ^^


[03/13pm]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 [시사통] 원문자료보기 & 방송듣기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피로사회>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모더니즘 시대는 규율과 법칙, 원리에 의해서 관리를 받았고,

개인을 구속하고 일하게 만들고 압박을 받았기에 피아구분이 명확한 면역학적 사회였다.

계급투쟁이 화두였고, 면역력(자기방어력)를 키워서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서 살아남으면 되었다.


근데, 현대 사회에서로 넘어와 다양성의 사회가 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서 보다 유연한 접근을 요구받게 되었고,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정보를 흡수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서, 끝없이 자기 개발을 해야하는 시대인 것이다.


긍정의 힘, 바로 "Yes We can"의 마법이 시작되었고,

무한한 소통과 협럭, 그리고 자기 긍정과 자신의 능력 과잉을 고양할 것을 요청받는다.


무한 경쟁시대가 되면서, 글로벌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

오히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착취하면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성과 사회가 도래하고 말았다.


이제는 전염성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경색성 질병에 걸리고 있다.


타자의 부정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아의 긍정성 과잉으로 병이 생기는 것이다.

무한 경쟁 속의 끝없는 자기 긍정이 오히려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시간은 부족하고, 일은 항상 많으며,

정보의 과잉으로 스스로 마음의 중심잡기조차 힘든 사회에 빠져드는 것이다.


진짜 말그래도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깊은 사색에 빠져보는 것이 최고의 사치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


<피로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장자와 노자의 이야기와 연결이 될까?


김시천 교수는 

장자의 '용(用)'의 개념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장자는 사람들이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 없음의 쓸모는 모른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릇이 비어있기에 쓰일 수 있는 것이고,

방도 비어있을 때만이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아무리 매력이 넘쳐나도 결혼 상대로는 쓸모가 없으며,

만약 내가 취업을 했다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채용 상대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뺏어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고 있지만,

정작 내 능력이 쓰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해줘야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암튼,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해도

내 능력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어찌보면, 제후들의 제대로된 초청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사실상 공자보다도 더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던 장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장자는 쓰임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묵상을 했고,

진짜 스스로 나 자신을 크게 쓰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유용하다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고,

내 삶을 좋게 바꿔줄 것만 같지만 사실은 나의 생명을 돌봐주지는 않는다.


무용하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직에 올라 출세를 하면 부귀영화를 잘 누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정신상태는 달갑지 않으며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닌 상태가 된다.


어쩔 때는 쓸모 있는 것이 가치가 있고,

어쩔 때는 쓸모 없는 것이 가치가 있기에,


장자는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사이에 처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

(참~ 애매모호하면서 뭔가 맞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서 바로 <피로사회>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능력을 개발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도 사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쓰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과로사의 문제,

일과 삶의 균형 문제, 가정파탄 등이 바로 사실은 여기와 이어지는 것이다.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면서 사는 것이 생명에는 더 좋을 수 있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와 

장자의 '용(用)'의 개념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면, 

이는 모더니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무위도식을 이야기했던 장자의 '도' 사상과 기본적으로 맞지가 않는다.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주길 기대했다면

이는 아마도 아직 이 두 사람의 성향을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




하지만, 김시천 교수는 

한스 게오르그 뮐러의 <노자>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제시한다.


서양에서 욕망은 신체에서 오고 악한 것이라고 보았다.

동양에서 욕망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냥 절제만 필요한 대상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욕망을 없애려고 했지만,

노자는 욕망이 없어지지 않기에 오히려 욕망을 채워줌으로써 욕망 자체가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욕망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만족을 주면서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용(無用)이 구속 당해있지 않은 상태라면

무욕(欲)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과잉 경쟁만 발생하고, 과잉 결핍만 누적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서 욕구가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욕망의 층위를 조절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가 해주어야 하는 역할인 것이다.


노자는 만족의 극대화 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욕망 성취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피로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욕망 해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만족하게 만들 것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욕망을 점점 키워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옥망을 계속 채워서 만족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거대한 욕망을 위한 끝없는 결핍이 아닌,

사소한 욕망을 위한 소소한 만족이 있는 삶...


장자가 이야기한 처럼 

자기 스스로를 가장 크게 사용하는 방법은


남의 마음에 들고자 큰 욕망을 마음에 품고 정신없이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큰 욕심부리지 말고 하루하루 소소한 만족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잘 다스려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 번뿐인 내 인생...

나 스스로를 가장 크게 사용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