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014 China / Beijing ③ - 첸먼다제(前門大街)에 있는 골목길 이야기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7. 17. 13:29


자금성이라 불리는 고궁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정양문(正阳门) 아래로

약 1km 정도 쭉 뻗어있는 첸먼다제(前門大街)는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014 China ③ - 첸먼다제(前門大街)와 유명한 음식점들 < 자세한 내용은 지난 포스팅을 참조


지난 번에는 거기에 있는 오래된 음식점들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첸먼다제에 있는 유명한 골목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할 구경거리는 총 5곳인데,

사실상 타이완거리는 유명무실해졌기에 4곳정도가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첸먼다제의 입구에서 두블럭 정도 내려오면,

왼쪽에 280년 전통의 두이추(都一处/도일처)가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다자란제(大栅栏街)라는 이름의 상업거리가 등장을 한다.


첸먼다제의 메인스트리트가 글로벌 기업들의 상점들로 도배가 되어있다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전통의 상점들은 이 거리에 몰려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베이징에서도 내로라하는 부자 상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던 이 거리는

강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길 입구에 거대한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쌓아두었다고 한다.

(거리의 입구는 표시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 울타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서태후의 척신이였던 샤오더장이 개업한 비단가게 의성후

중국 영화의 요람으로 최초의 중국 영화가 상영되었던 대관루

중국 제일의 한약방으로 그 역사가 340여년이 된다는 동인당

1091년 개업한 중국차의 명가로 아직도 잘나간다는 장일원차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칼집이라는 상하이장소천도전총점


이 밖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은데,

가게 앞에 무슨 동상이 있으면 한 번 의심해볼만하며, 이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자신들의 가게에 걸쳐있는 스토리를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동상이나 기념비 등을 세워놓고 우리는 100년 정도는 된 가게라고 열심히 자랑하고 있다.


유명한 곳들은 건물 외관부터 화려해서 여기 뭔가 있나보다 싶을 정도이지만,

막상 가게 안에 들어가보면 굉장히 평범한 가게에 불과해서 살것도 없고 그냥 실망하기 쉽상이다.


저녁 8시만 되면 모두 닫아버려서 첫 날 허탕을 친 곳이 많아,

다음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못가본 곳을 들려보았으나...


한약, 차, 비단, 칼을 살 것이 아니라면 그냥 들어가자마자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좀 뭔가 볼꺼리가 있었던 곳은

중국 전통 신발을 판매하는 신발가게와 중국영화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영화관 대관루 정도?

(솔직히 대관루도 중국 영화의 역사를 잘 모르고 모르는 배우들 이야기만 있어서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다.)



중국 전통 신발가게에서는 역대 주석들이 신은 신발을

그대로 재현해서 가게 한편에 전시해두었는데, 이 동네에서는 최고의 마케팅 기법인듯하다.

(물론 젊은층에게는 연예인이 더 홍보효과가 크겠지만 관광지인 이곳에서는 마오쩌둥하나면 천하무적인 듯 하)


+



다자란제(大栅栏街)로 들어가는 입구의 맞은 편에는

먹자골목이 잘 형성되어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헤드셋으로 무장한 삐끼들이 열이나게 가게를 홍보하고 있다.


전통의상을 입은 삐끼들이 열심히 말로 꼬신다면,

가게 입구 옆에서는 요리사들이 열심히 요리를 하는 모습을 눈으로 꼬시고 있으며,

한 발 나가서 아예 거리에다가 음식을 차려놓고 판매하는 요리사들도 눈에 많이 보인다.



음식도 아주 다양한데,

꼬치구이에서 시작해, 빠오즈, 취두부, 면요리는 물론 심지어는 베이징 카오야까지 등장한다.


너도 나도 개나 소나 모든 음식점에는

라오베이징(老北京)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한국말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뜻으로,

너도 나도 붙이는 원조집 경쟁하고는 약간은 다른 의미라는데,

너무 모든 음식점이 다붙여놓고 있으니까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이곳의 매력은 첸먼다제에 있는 음식점들과는 다르게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볼꺼리가 풍성하다.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동물모양의 사탕을 직접 같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상인이였다.

(동영상으로 제조과정을 찍어둔 것이 있는데, 업로드에서 자꾸 오류가 나길래 스틸샷으로 대체함)


+


먹자골목에서 한 블록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타이완 거리가 등장한다.

타이완의 풍물을 느낄 수 있는 복합 쇼핑, 레저거리로 구상했다고 하는데 완전 망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문 닫은지 꽤 오래됐다는 표시를 확실히 내고 있었다.


골목 입구쪽에 있는 상점 몇군데만 문을 열어두었고,

심지어는 길가에 있는 조명들마져 대부분 꺼진 체 방치되어 있었다.



나름 타이완의 유명 관광지인

아리산(阿里山)을 본따서 아리산 광장이라는 것도 조성해두었지만,

어딜가나 사람이 넘쳐나는 베이징답지 않게 매우 한산한 유령도시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첸먼다제를 다시 개발하면서 의욕적으로 개발한 것같기는 한데,

글쎄... 어설프게 꾸며놓은 것들이 관광객들의 발을 잡지는 못한 듯해서 안타까워 보였다.


+


타이완 거리로 들어가는 따장후통의 맞은 편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보면,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골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연히 이과두주의 전시관을 만났다.


확실히 이 동네는 무슨 동상이나 기념물이 있으면

한 번쯤 의심해볼만한 가치가 있으며 무료입장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바로 들어가 보았다.



중국의 대표 서민술인 이과두주(二鍋頭酒)

우리나라로 치면 소주같은 술로써 중국집에서 흔히 먹는 빼갈이 바로 이과두주이다.



물론 이과두주 중에서도 1병에 300~400위안씩 하는 비싼 것도 있지만,

중국 정부 차원에서 서민들을 위한 술을 공급하기 위해서 공장을 지어서 보급할 만큼

대부분인 10위안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먹는 대표적인 서민술이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마오쩌둥은 여지없이 등장하신다.


서민들이 이과두주를 마음껏 마실수 있는 것은 마오쩌둥이 

1949년 북경홍성주식회사를 지어서 대량생산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아직도 가격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다.

(굉장히 무식한 방법같지만,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인민들이 괜히 마오쩌둥, 마오쩌둥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서민술이라고 해도 여기는 역시나 중국이였다.

역사와 전통이 없으면 어디에서 명함 하나 제대로 내밀기 힘든 동네인가보다.


기록물들을 대충보고 있으면 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술임을 알 수 있으며,

이런 술을 서민들도 하나쯤은 즐길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물론 서민술이 되어버리면서 고위관료들이야

마오타주니 펀주니, 우량예주니 하는 8대명주를 즐기고 있겠지만,


서민들을 위한 것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효과적인 통치법을 제대로 아는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오히려 너무 싸서 모조품도 없기에 8대명주를 먹는 것보다 위생상 안전할 수도 있다.)



촌스러운 녹색병에 빨간 라벨만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전시관의 마지막 섹션에 전시된 스페셜 에디션들은 매우 흥미로운 상품들이였다.



심지어 월드컵 기간을 맞이하여 월드컵 스페셜 에디션을 내놓는 센스는

서민술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라인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연인을 위한 버전, 선물용 12간지 버전 등

싸구려 술인줄만 알았는데 대한민국의 소주회사들보다 훨씬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이과두주 전시관의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서민들의 식당가가 나온다.

외식을 주로한다는 중국인들 답게 저녁식사를 즐기는 서민들도 가게는 붐비고 있었다.



남방에 주로 살았던 누나는 북방에 오면서 재밌는 것이

노천에 좌석을 쫙 깔아놓고 식사를 즐기는 문화가 매우 보편화되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남방에서도 노천에 나오는 것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북방은 보행자의 통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어딜가든 노천으로 기어나온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문화라고 볼 수는 없지만,

칭다오에서도 매우 심했는데 베이징도 보행자 통로의 절반이상을 좌석이 점령하고 있었다.



베이징 시내를 돌면서 항상 보았던 저 요쿠르트를

처음 본 것도 바로 첸먼다제에 있는 후통에서 였다.


한 병에 3~4위안을 하는 라오베이징 솬나이(老北京酸奶)는

동일한 디자인을 하고 베이징 시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제품이다.


그 뒤에는 나이라오(奶酪)라고 다른 종류의 요구르트도 같이 팔고 있었고,

이 녀석도 난루오구시앙(南锣鼓巷)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으며 가격은 10위안정도로 좀 더 비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길래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더운 여름 날씨에 냉장보관을 하지 않는 제품을 먹기에는 부담되어서 그냥 패스했다~

(중국에서는 음료를 차갑게 잘 마시지 않아서, 냉장고에서 꺼내준 음료도 사실 별로 안 차갑다)


다들 맛있다고 워낙 호평이 나있는 음식이기에

담에 여름이 아닌 시즌에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음료이다.


+


나름 번화가를 지나서 더 깊숙히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누가 봐서 진짜 동네 식당이라고 알수 있는 곳들이 하나둘 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면류는 10위안정도, 덮밥은 15위안정도 하는 이런 곳들은

한국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파는 동네 구석에 위치한 백반집이라 할 수 있다.


숙소 근처의 밥집들도 대부분 요리위주이기에

요리 하나당 15~30위안 정도 하는 것에 비하면 진짜 서민들의 음식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도시 농민공의 한달 수익이 2000~3000위안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3인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면 100위안씩 나오는 번화가의 음식점들은 솔직히 부담될 수 밖에 없다.

(상당수의 농민공들의 경우에는 아침을 그냥 굶꺼나 1~2위안짜리 빵이나 죽으로 때우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골목의 뒷길로 더 들어오면 전형적인 중국인들의 거주지역에 들어올 수 있다.

어느 새 후통이 베이징의 주요 관광코스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 후통은 뒷골목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냥 동네 뒷골목을 후통이라고 하기에, 어딜가나 후통이 넘쳐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치하이의 후통은 명,청때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잘 보전되어있어서 대표적인 후통 관광지로 유명한 것일 뿐이다)


중국의 집들은 인민혁명 이후 모두 정부에서 몰수해서 가구별로 나눠주다보니,

한 집에 여러 가구들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모습은 공산국가인 쿠바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집이 크고 부자였던 집은 방별로 여러 가구에게 할당되기 때문에,

한 집에 몇 가구씩 모여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돈이 많으면 따로 집을 사서 독립하면 되지만,

대부분은 그냥 집이 없던 사람들이기에 이것마져도 당시에는 감지덕지했을 것이다.

(문제는 식구가 늘어나면서 예전에는 그냥 살만한 집도 이제는 상대적으로 매우 작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날씨도 덥다보니 모두들 의자 하나 들고 거리로 나와있게 되면서,

후통도 저녁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넘쳐나는 뒷골목으로 변화하게 된다.



골목길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장기, 카드놀이, 마작 등의 보드 게임을 즐긴다.


한국의 시골 아줌마 아저씨들이 화투놀이는 하는 것과 비슷한데,

이들이 내기를 얼마나 즐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 당연히 마작이 대세일줄만 알았는데,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이 대세라서 놀랬다.

(서양식 카드가 대세인 것은 휴대성이 뛰어나기 때문인 듯한데, 전통도 좋지만 역시 실용성을 못이기는 듯하다.)


TV나 컴퓨터도 없고 마땅히 놀 것이 없기에

옹기종기 모여서 카드놀이나 장기를 즐기고 있는 것같기는 한데,


아이들은 그냥 뛰어놀고 어른들은 면대면으로 게임을 즐기는 풍경이

왠지 그래도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것같아서 괜히 친근감도 가고 여유로워보여서 좋았다.

(한국에서는 시골에 가도 더 이상 이런 풍경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일으켜주었다.)


+


첸먼다제(前門大街)에서 마지막 구경한 뒷골목은 유리창(琉璃厂) 골목이다.



과거에 유리 기와를 구워내는 공방이 몰려있었기에,

유리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 골목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골목이다.


유리 기와라는 것은 자금성의 지붕을 덮고 있는 금색 기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당시에만 해도 황제의 전유물에나 쓰이는 귀한 물건이였기에 호황을 누리던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청나라 시절 궁전 증축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불황을 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서점과 문방사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 하게 된다.


중국 각지에서 온갖 서적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매년 중국을 방문하는 사신들은 제일 먼저 유리창으로 달려갔다고 할 정도로 문화교류의 중심지가 된다.



확실히 첸먼다제에서 다소 외각에 벗어나 있어서 그런지,

다자란제(大栅栏街)에 비하면 굉장히 한적하게 구경할 수 있는 골목이다.


골목의 중심 거리에는 대부분 서예용품들을 판매하고 있으며,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룽바오자이(荣宝斋)같은 유명한 문방구에 들어가면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있을 듯한 물품들이 

수천위안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붙인 체로 천연덕스럽게 놓여져 있다.

(내눈을 의심케하는 가격표때문에 대충 지나가던 물품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붓같은 소모품의 경우에는 평생 A/S정책을 펴고 있어서,

오래된 붓을 들고와 수리를 맡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갔을 때 그런 아저씨를 본적은 없고 환타 아저씨 책에서 그렇게 설명해주고 있다.)


골목 안쪽이나 뒷편으로 돌아들어가봤더니,

종이작업을 하거나 소모품을 제조하는 전문가들이 조그만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납품한 물품들을 큰 길가에 있는 상인들이 판매하는 구조인듯하다.)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동네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공방이 모두 사라지고 상징성만 남은 인사동에 비하면 아직도 생기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그냥 골동품이나 서예공구만 취급하는 상업거리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아직까지도 뒷편에서는 이런 문화적 유산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


쓰다보니 굉장히 길어졌는데,

글로벌 기업들이 점령한 메인 스트리트를 제외한 총 5곳의 스팟을 살펴보았다.


사방으로 흩어져있는 곳들을 둘러보았더니 이곳에서만도

너무나 다양한 중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고 관광지와 일상이 묘하게 겹쳐있는 공간들...


이번 중국여행의 기본 테마에 매우 적절한 구성인 듯하며,

숙소를 이곳으로 정하면서 여유 있을 때마다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공간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표적인 관광지를 중심으로 베이징 여행을 정리해보도록 해야겠다.

(글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언제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