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014 China / Beijing ⑪ - 다산쯔(大山子)798 과 중앙미술학원(中央美术学院)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7. 21. 09:19

나름 베이징 여행에 있어서 

방문하는 장소들에 대해서 테마를 정해서 골고루 방문했다.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 (고궁, 천단공원, 이화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 (만리장성, 용경협, 스차하이)

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 (후통, 왕푸징, 난루오구시앙, 싼리툰)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 (다산쯔798, 중앙미술학원, 금일미술관)


베이징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싶었고,

이 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코스는 바로 마지막 문화 테마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관계상 중앙미술학원은 생략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다산쯔를 찾아가는 것이 어려웠고, 너무 넓어서 체력이 고갈되어 버렸다)


만약 나에게 베이징에 다시 방문할 기회를 준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바로 다산쯔(大山子)798과 중앙미술학원(中央美术学院)이다.


시간 배분을 잘못하여 다산쯔(大山子)798의 경우에는 

너무나 더운 날씨에 3시간만에 급하게 돌아봐서 아쉬움이 남았고,


금일미술관(今日美术馆)까지 가봤더니

더욱더 중앙미술학원(中央美术学院)에 못 가본 것이 너무 아쉬웠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교육기관으로는

흔히 '8대 미술학원'이 존재하는데 이는 이제 완전 고유명사화 되어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미술학원이 미술 전문 고등 교육기관을 의미하며 정책적으로 전국으로 넓게 퍼져있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와 전통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중에서도 중앙미술학원(베이징), 중국미술학원(항저우), 쓰촨미술학원(충칭)을 3대 미술학원으로 뽑는다.

(최근에서는 종합대학교의 미술대학이 디자인학과를 중심으로 뜨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칭화대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역시나 최고로 뽑는 것이 중앙미술학원이며,

현대 미술의 거장들과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은 막강하다.

(8대 미술학원 중 중앙미술학원만 국립이고, 나머지는 모두 해당 성에서 운영하는 곳들이다)


재학생 졸업전시회가 열리는 6월 중순에는

화랑 관계자들이 찾아와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2~3학년 때 이미 유망주들을 발굴해 전속계약을 맺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1918년 중국 최초의 국립미술교육기관인 북평예술전문학원으로 시작해서,

1950년 화북대학교 미술학과와 합병하면서 마오쩌둥이 직접 중앙미술학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미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의 미술대학에서는 중국화라는 분야가 당연히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화 관련 학과들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여전히 전통 중국화 기법을 중시하면서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의 미술시장에도 이어져서,

전통미술과 중국화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한국화가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현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는 너무 전문적인 미술계에 대한 이야기였고,

일방인들에게 중앙미술학원이 친근한 것은 바로 중앙미술학원의 미술관 때문이다. 



건물 모양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미술관은

예상과는 다르게 일본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가 디자인했다.

(당연히 중국애들, 그것도 미술대학의 건물이기에 모교 출신의 중국인이 디자인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유명작가에서 졸업생들까지 폭넓은 전시로 미술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학기말에 벌어지는 재학생들의 전시회라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기성작가와는 또 다른 특유의 개성과 발랄함 때문에

중국 미술계의 거상들이 반드시 방문하여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려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앙미술학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바로 다산쯔798이 위치하고 있다.



1957년 대약진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공장지대로 개발된 이 곳은

무기를 만들던 군수공장 지대였으나, 중국의 개방과 함께 20여년간 페허나 다름없이 버려져 있었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개발이 시작되어 

구동독 건축가들이 전형적인 바우하우스 양식의 건축물로 지어놓았는데,

이러한 독특한 건축양식의 공간들을 주목한 것은 바로 중앙미술대학의 학생들이였다.



1996년부터 버려져 있던 이 싸고 넓은 공간은

중앙미술대학의 조소과 작업실로 쓰이기 시작했고,

가난한 예술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집단 창작단지로 변신하게 된다.


2001년 중국 화가 황루이는 재생프로젝트 '베이징 798 예술구'라는 전시를 개최하는데,

이 기획이 해외 언론의 폭발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베이징 현대 예술의 메카로써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중국 정부는 원래 이곳을 아파트촌으로 만들려고 했었으나,

예술인들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문화창의산업특구'로 지정하게 된다.



이 곳은 분위기가 매우 오묘하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일단 아직도 군수공장 특유의 삭막함이 상당부분 남아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대로 남겨둔 듯 보인다.

또한, 높은 굴뚝과 파이프관 등 아직도 산업시설도 눈에 띄는데,
그러한 와중에서도 높게 자란 나무들과 독특한 조형물들이 공장지대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콘트리트 구조물들과 시멘트 바닥들은 싸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공장 특유의 높은 천장을 유지하고 있는 갤러리는 또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삭막함 가운데에서도 노천 카페가 종종 눈에 띄고,
가장 큰 번화가에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다국적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독특한 매력때문인지 베이징의 관광명소가 되면서 TV에도 많이 소개되었고,
한국에서도 VJ특공대나 다큐멘터리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다싼즈798을 소개한 적이 있다.


어떤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래피티가 세겨져 있고,
어떤 벽에는 마오쩌둥과 붉은 별 등 정치적 그림과 상징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술적 자유로움이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역시나 여기는 중국이라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독특한 공간이다.


아무래도 정부 차원에서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서
사전 검열이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밖에 없기에 그러한 면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보다는
순수예술의 맑고 투명함만을 강조하다보니 무미건조하다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여기를 방문했을 때 흥미로웠던 점은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하다는 점이다.
굉장히 중국스러운 작품에서부터 굉장히 중국스럽지 않은 스타일까지...

때로는 일본에 와 있는 것같기도 하고,
때로는 미국에 와 있는 것같기도 하다가도,
역시나 여기는 중국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국제적인 갤러리들도 이곳에 많이 진출해있는데,
남한의 갤러리도 한참 열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북한도 갤러리를 운영중이였다.
(북한의 갤러리를 굉장한 호기심에 들어가봤으나, 자연풍경 아니면 공산당에 대한 작품만 있었다.)

이외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국제적 갤러리가 여기로 몰려들어서 굉장히 글로벌한 공간이 되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에 잘 드러오는 것은

건물 앞에 하나 씩 만들어놓은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거대한 조형물들이였다.


뭐라 정의할 수 없지만 중국이 아니면 보기 힘들듯한

매우 독특한 형태의 조형물들이 존재했으며 하나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갤러리와 사람들을 피해서 골목에 들어서면

수 많은 나무들과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터들이 발견되는데,

이곳에서는 걸레마져도 빨간 벽과 센스있게 깔맞춤함으로써 스스로 예술품이 되고 있었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햇빛으로 인해서

이 동네를 모두 걸어서 구경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였고,

겨우 3시간 남짓 최대한 힘을 내어서 빨빨거리고 구경하느냐 완전 녹초가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미술공간이다보니 여타 미술관보다는 월등히 넓은 공간을 자랑했고

하루 코스로 이곳만 제대로 돌아다녀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넓게 다양한 공간이 분포하고 있었다.


근데 최근에 이 공간도 부동산 과열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불과 20년 사이에 임대료는 5배이상 폭증했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다시 길가로 내몰리고 말았다

(홍대에 몰렸던 예술가들이 이태원으로 밀려나고, 또 다시 더 싼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


다싼즈798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은 환티에, 쒀자춘, 차오창디, 지우창 등으로

새로운 예술구를 찾아서 개척해서 나갔지만, 최근에는 이곳들 조차도 돈 있는 사람들이 밀고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비단 한국과 중국만의 상황은 아니며,

뉴욕의 예술가인 알렉산드라 에스포지토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예술가들은 미생물처럼 가장 더럽고 후미진 곳에 들어가 땅값을 올리고 다시 더러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배고픈 예술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끝없이 후미진 곳을 찾아 떠나야하고,

그 공간을 채워줄 예술가들을 찾기 위해 갤러리들과 기획자들은 다시 그들의 뒤를 쫓는 현상...


그리고 그 공간이 돈이 되기 시작하면 젊고 배고픈 예술가들은 또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떠나고,

돈 좀 있는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참신함을  얻기위해서 그들의 공간을 다시금 파고드는 순환적 현상...


물론 이런 식의 순환으로 끝임없이 예술공간들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예술공간 확장에는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홍대앞 예술거리 - 청담동 미술거리 - 신사동 가로수길 - 이태원 도깨비 시장 등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핫플레이스들은 일반인들이 예술을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준 기능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부동산 거품이 계속된다면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단적인 예로 중앙미술학원과 홍익대 앞에는 이제 더 이상 파고들어간 공간이 없어 보인다.


돈이 없어서 너무 가난해서 예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이미 순수 미술쪽은 인재난에 허덕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쪽에 유난히 예술가들이 생존을 위해서 뛰어는 경향도 많이 보인다)


중국이 짧은 시간만에 세계 3대 미술시장으로 성장하는데는

다산쯔798같은 인프라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새 여기도 상업주의가 스며들면서

예술가 지역에 예술가가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과연 이곳이 예술지구로 얼마나 순수성을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단지 상징성만 남고 빛좋은 개살구로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