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Innovation/Social Economy

돈의 인문학 - 김찬호 (2011)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7. 23. 14:20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와 금융 시스템에 대해서 다룬 책이 많이 나왔는데,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던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강신주 박사가 <다상담-소비편>에서 

자본주의와 소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아주 깊이 들어갔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그 와중에,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가 쓴 이 책은

돈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여 아주 재미있게 읽어 볼 수 있었다.

(세바시에도 몇 차례 출연하셨고, '모멸감'이라는 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다)


돈의 인문학
국내도서
저자 : 김찬호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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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통찰과 인용들은 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우리가 무엇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이야기해주지만,


아쉽게도 결론 부분으로 갈수록 메세지의 힘빨이 다소 딸리는 느낌이 든다.

역시 무엇이든 대안을 제시한다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


'돈은 물질이 아니다'


굉장히 단순한 명제이지만, 아주 명확한 메세지이다.

특히 지폐의 경우에는 금화나 은화와는 다르게 교환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돈은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돈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속물취급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진수성찬이여도 배부르면 안땡기기 마련이지만,

돈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계속해서 욕망하게 되는 굉장히 요물같은 존재이다.


인간이 처음 존재할 때만 해도 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물물교환을 통해서 나눠서 사용했고 교환의 범위가 커지고 넓어지면서 돈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조개껍질을 돈으로 쓰기고 하였지만,

소금이나, 비단, 쌀 등의 실물들이 주로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조개껍질같은 것은 자체로는 활용가치가 없기에 아무래도 당장 쓸 수 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금이나 은같은 귀금속이 화폐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고,

교환 단위가 점차 통일되고 규칙이 마련되기 시작하면서 휴대성이 편한 지폐까지 등장하게 된다.


최초의 지폐는 약속 어음의 형태로 도장이 찍혀있었고, 

이게 점점 보편화되고 규격화되고 통제 가능해지면서 오늘날의 지폐처럼 유통될 수 있었다.


이렇게 화폐의 발전 역사만 봐도 돈의 근본적인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며, 교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지갑 속에 두고 썩고 있는 상태에서 지폐는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 조각이다)


종이 쪼가리가 힘을 밝휘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종이 쪼가리에는 교환 가치에 대한 사람들 간의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근데, 최근에는 이 종이 쪼가리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카드라는 형태로 들고 다니고, 계좌이체라는 방법으로 숫자만 오고갈 뿐이다.

(직장인의 월급 통장에는 사이버 머니가 월급날에만 스쳐지나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숫자만 돌아다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규칙과 약속이 깨지지 않고 지켜지기 때문이다.


돈이 물질의 영역을 넘어서서 숫자로만 존재하더라도,

돈이 가지는 교환가치와 그 숫자에 대한 사람들의 약속과 신뢰가 존재하는 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


김찬호 교수의 책에서

가장 인사이트가 있다고 느낀 부분은

현대사회에 특히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왜 돈이라는 것에 매달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돈은 단순한 물건이나 수단이 아니라 고도의 의미가 농축된 상징이다" (토인비)

"돈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적 불멸을 제공한다" (프로이트)

"돈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 가지 축이다" (케인즈)


돈에 대한 인간의 집착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현대사회를

변화가 심한 '액체 근대'라고 설명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발상은

왜 현대사회에서 더욱더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불안정성이 커지고,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포는 더욱더 커지게 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해 공동체는 파괴되어가고,

사회적 신뢰는 점차적으로 무너져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믿을 놈이 없으니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집착하게 되고 모든 가치를 표현해주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정치도 법도 언론도 심지어는 가족들도 못믿게 되면서

당장 숫자로라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돈말고 정직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돈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보상해주는 것같고,

운이 좋으면 일확천금도 노릴 수 있고, 어디에 가나 통하는 것같다.

심지어 최근에 들어서는 돈이 돈을 벌게 만드는 자기증식까지 가능하다.


돈은 어느새 기쁨의 원천이자 고통의 뿌리가 되었고,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고 빚어내는 블랙박스가 된 것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돈돈돈 하는 것이 당연하며,

교환가치만 가지고 있던 돈이 어느새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


저자는 돈이 가지는 근본 가치인 신뢰에 주목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물질에 대한 신뢰가 돈에 대한 신뢰로 나타나고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사람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여러 관계나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이 정확하고 정직하는 환상에 빠져있지만,

사실 돈이라는 것도 매우 주관적으로 책정되는 것이며 액면가 이외에 언제나 숨겨진 비용이 존재한다.


언제나 합리적인 소비와 효율적인 자금 운영을 하려고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충동적 구매를 하고 있고 투기자본에 휘둘려서 홀딱 날려먹기 십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이러한 숫자에 대한 약속과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거대한 사건이였다.


전쟁이나 재해 상황에 닥치게 되면 사실 숫자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통장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오늘 밤에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지폐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빵 한조각을 사기 위해서 수레로 지폐를 나르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웃기는 것은 돈보다 수레가 더 비싸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금융 전산 시스템이 오류가 생기거나 전쟁으로 날라가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저축 은행 사태 때 평생 모은 돈이 순십간에 날아가버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제 은행도 못 믿게 되었다.


평생 직장도 날라가고, 마을 공동체도 파괴되어서 믿는 것은 돈 밖에 없었는데,

부동산 불패 신화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이고,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손해보기 마련이다.

금융 상품(주식, 펀드)도 날려먹을 수 있어서, 그냥 은행에 넣어두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거기도 마냥 안전하지는 않다.


+


결국은 다시 돌고 돌아서 믿을 것은 다시 사람이다.


내가 위기에 닥쳤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숫자가 아니였다.

숫자와 상관없이 움직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돈에 대한 직찹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위에서 만들어진 경제 활동들은

지속적인 만남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계가 단골이며,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 관계였다.

(조금 더 가격이 비싸더라도 동네에 있는 구멍가게와 슈퍼가 생존해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회적 기반이 깨져나가면서 장삿속만 챙기는 것이 가능해졌기에

뜨내기들이 많아지고 눈앞에 사리사욕만 채우는 상행위가 만연할 수 있다.


오히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이러한 부분들을 감시 감독해야만 하고,

막대한 공공 재정을 투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더 들어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뢰, 감정, 의미 등의 사회 문화적 바탕이 기본이 되야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이야기 외에도 대안 경제의 영역으로 부각되는

마이크로크레딧, 지역화폐, 얼굴이 있는 금융 등의 이야기도 언급하는데...


지역 화폐에 대한 이야기말고는 논의의 수준이 다소 아쉬움이 많아 보인다.

저자가 아무래도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해보인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이야기는 돈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자녀 교육의 문제와 남녀간의 문제 등 실질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이에 대한 극복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상 분석에 비해서 대안 제시는 많이 약하다...


결국은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주는 것" 이라는 자크 라캉의 이야기나

"스스로 품위를 갖추고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위세는 돈으로 부리는 허세와는 다르다" 같은

조금은 원론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가치이며, 부의 원천은 자연과 사람이다."

"화폐는 나의 필요와 타인의 능력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돈이 아니라 가치를 중요시 여겨야 하며, 가치의 근원인 사람을 소중히 여기자.

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이며, 개인과 세계를 묶어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맹신하던 시스템을 의심하고 불신하던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돈으로 매개되지 않고도 이어지는 관계가 열리게 된다.


참 뻔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렇게 돌고돌아서 고민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라는 것이 한 편으로는 너무나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구나...

나의 고민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고 이미 정답은 내 마음 속에 있었구나...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답을 몰라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나 진리는 뻔한 것이고 가까운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맹신하지 않고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만,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믿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하다.


실질적인 현황과 정보 전달 위주의 책만 읽다가,

가끔씩 읽는 이런 책들은 한 여름에 소나기를 만난 듯 신선한 자극을 줘서 너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