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KBS 대하사극] 정도전 (2014)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8. 8. 14:10

어렸을 때는 TV를 참 열심히 봤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TV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일이 거의 없어진 듯하다.


그나마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으면 가끔 챙겨보는 정도?

그런데 그것도 요즘은 시간맞춰서 보는 것이 아니라 몰아서 인터넷으로 본다.


심지어 광고회사다닐 때도 내가 만든 광고가 TV에 나올 때 아니면,

시간맞춰서 TV를 본적인 거의 없을 지경이니 스포츠 중계말고는 볼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워낙 취향이 잡식성이라서 드라마는 참 다양하게 본다.

트랜디 드라마에서부터 특별 기획이나 대하사극까지 그냥 꽂히면 보는데,

사실 그래봤자 1년에 많아야 2~3편 정도이고 그것도 진짜 사회적으로 회자될 정도로 히트친 드라마 정도이다.


정도전 VOL.1 (9disc) - DVD
배급 : / 임호,박영규,유동근,조재현역
출시 : 2014.06.19
상세보기


2014년 상반기에도 많은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으나

나의 관심을 가장 끈 드라마는 JTBC의 '밀회'와 KBS의 '정도전'이였다.


개인적으로 역사극을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퓨전 사극보다는 역시 전통 사극이 더 흥미진지한 듯하다.


논픽션이라는 매력도 있지만, 스토리 전개가 확실히 무게감이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감성 묘사보다는 치밀한 두뇌싸움이 더 내 취향에 맞는 듯~ ^^


<용의눈물> <대조영> <태조왕건> <대왕세종> <불멸의 이순신> 같은

전통사극들은 아마도 다시봐도 감동적일 정도로 그 스토리 전개가 아주 훌륭했다.


특히 이번 <정도전>의 경우에는 

<용의 눈물>과 <대왕세종>과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겹치면서 비교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특히 <대왕세종>에서 여우같이 나오는 하륜은 <정도전>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시청률이 떨어졌지만 

심리묘사나 두뇌 싸움이 치열했던 최고의 드라마는 <대왕세종>인 듯하다.


작가가 너무 드라마에 심취하여 대중성은 고려하지 않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심오해서 두번씩 세번씩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니 당연히 시청자들은 외면할 수 밖에 없고 최고의 퀄리티에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에 비해서 이번 <정도전>은 굉장히 심리 묘사가 훌륭하지만,

<대왕세종>에 비해서는 굉장히 대중적인 면모를 잘 갖춘 괜찮은 드라마인 듯하다.


픽션보다 더 흥미진지한 역사적 이야기를

진보당과 보수당에서 모두 보좌관을 역임한 작가는 아주 훌륭한 정치드라마로 만들어버렸다.

(양쪽 진영의 성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역량이 확실히 빛을 밝휘하는 드라마이다.)


왜 진보가 실패하는지, 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지를

아주 냉정할 정도로 신랄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진보에게 더 큰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



정도전에는 아주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보수주의자에서도 최영, 이색, 이인임, 정몽주는 서로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진보주의자에서도 정도전, 이성계, 조준은 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듯한

이방원과 하륜도 사실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또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에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의와 명분이 있더라도 권력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도 실랄하게 보여주었다.


막스베버가 정치인에게는

신념윤리뿐만 아니라 책임윤리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대목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도전에게 신념윤리는 처음부터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는 이인임에게 밀리면서 권력을 손에 넣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힘이 있을 때 신념도 지킬 수 있으며,

능력이 있어야지 개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꿈만 가지고, 열정을 무기로 싸워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10년의 귀향살이를 통해서 절실히 깨닫는 것이다.


정도전은 괴물이 되기로 결심했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는 스승도 버렸고, 반대 세력인 최영 장군도 밀어냈다.


기존 것을 혁신하기보다는 때려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이

확실히 더 튼튼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친인 정몽주와 갈라서면서까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절실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고자 했다.


총명하지 못하던 정도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권력을 손에 쥔 후이다.

권력을 획득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정도전은 이를 위해서 무리수를 많이 던졌다.


그러면서도 철저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나, 

결국은 마음이 약해져서 알면서도 이방원에게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참 치열한 권력 다툼의 긴박한 순간이 너무나 생생히 잘 묘사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많은 현실정치에 대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기에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드라마의 백미는 역시나 정몽주와 정도전의 갈등이였다.

단순한 권력의 암투가 아닌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나라와 신념을 사랑했던 정몽주와

진보주의자이지만 친구만은 지켜주려던 사람과 현실을 사랑했던 정도전의 갈등은 흥미진지하면서도 서글펐다.


결국 권력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가진 이방원이 상황을 해결해버리지만,

어짜피 이 둘의 싸움은 결국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날 수 있는 싸움이였다.


이 둘의 논쟁이 권력 다툼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정책으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정도전이 나라를 뒤집어 엎지 않고 고려내에서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정도전이 하고 싶었던 개혁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선에서 만들어냈던 업적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확률이 높다.

그것을 잘 알기에 정도전은 정몽주를 버리면서까지도 고려가 아닌 조선을 세우려 한 것이다.


만약 이성계가 정도전을 그렇게 까지 믿어주고 밀어주지 않았다면,

정도전이 남긴 업적들은 사실상 현실에서 이루어내기 힘든 업적들이다.


당시로써는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민본과 재상정치라는 엄청난 상상을 해냈기에,

아마도 고려 내에서 개혁을 하고자 했다면 정몽주와 시시건건 싸우다가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정도전이 위대한 이유이고,

이러한 정도전을 끝까지 믿고 밀어주었던 이성계가 위대한 이유이다.


아쉽게도 정도전의 개혁은 이방원에 의해서 저지되어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방원은 사실상 재상정치라는 부분을 재외하고는 정도전의 계획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조선이라는 국가는 임진왜란 이후 왕창 무너져서 그렇지 전반기에만 해도 굉장히 훌륭한 나라였다.


+


권력, 개혁, 정쟁, 민생 등

굉장히 많은 키워드를 던지면서 보는 내내 생각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신념이라는 것을 지키는 것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그 어디에도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 나름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한 편의 드라마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담아냈다는 것이 대단하며,

권력을 만들고 이를 수행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특히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 정도전이 일을 진행한 방식은

세종대왕이 국가를 개혁해나간 방식과는 굉장히 대조되기 때문에 이 부분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세종대왕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태종을 상왕으로 모셔야만 했고 심지어 자신의 장인마져 죽여야만 했다.


그는 때를 기다렸고 자신이 정권을 획득했을 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신하들을 중용하면서까지 당쟁을 통해서 개혁을 해나갔다.


불도져처럼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정도전과 달리

세종은 끝없이 설득하고 안되면 참고 기다리면서 신하들과 함께 새로운 조선을 만들었다.


세종 역시 끝없는 정쟁과 암투에 휘말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이러한 것들을 잘 관리하면서 갈등 속에서 혁신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인가?


끓어오르는 열정과 출충한 역량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새롭게 만들기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실 진보 세력만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세종이 귀찮게하는 반대세력을 배척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끌고나간 것도 그들의 견제와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정도전이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공할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은

너무 불도저쳐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밀어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불운의 명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대왕 세종>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