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Innovation/Social Economy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조형근(2014)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8. 22. 10:25

경제가 효율성의 논리일뿐이라는 생각에 

전면으로 맞선 위대한 사상가들의 위대한 생각!!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국내도서
저자 : 김종배,조형근
출판 : 반비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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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방송된 팟캐스트에 나왔던 내용을

다시 책으로 엮어서 출간되었기에 굉장히 쉽게 읽힌다.


대부분의 내용이 구어체로 쓰여있고 

단지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론만 소개할뿐 아니라

2014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현실에 빗대애서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출연진의 라인업은 굉장히 화려하다.


애덤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즈, 슘페터, 막스 베버, 칼 폴라니, 베블린, 마르셀 모스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만한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보다는 오히려 사회학에서 굉장한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들까지...

진짜 이러한 사람들이 나선다면 사회를 구할 수 있을 듯한 쟁쟁한 라인업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주류 경제학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과 수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제학계에서 아직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4명의 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자나 지지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상당히 왜곡되어있으며,


나머지 4명(막스 베버, 칼 폴라니, 소스타인 베블린, 마르셀 모스)의 경우는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보다는 사회학분야에서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


누가 뭐라해도 가장 왜곡된 사람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의 초상화를 넥타이에 집어넣으면서 본격적으로 왜곡이 시작되었으며,

<국부론>에 단 한 차례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경제학의 절대 진리로 신봉되고 있다.


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게 되었고,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핵심 내용은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일단 애덤 스미스가 주로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양되던 시기 아직도 경제권은 군주들이 확고히 잡고 있었다.


중세 봉건 사회에서만 해도 가난한 사람이 빈곤한 것은 부가 편중되었다는 사고가 강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나 가진자들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빈곤이 사라진다는 견해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현재 시장은 절대 왕정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장을 맘대로 조절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자유로운 시장 거래와 생산 활동을 통해서 생산량을 증대시킨다면 다같이 부유해지는 국가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는 분업과 전문성을 강조했고,

이렇게 증대시킨 생산량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길 주장했다.


자유로운 상품 생산과 유통을 허용하되,

이 과정에서 불의가 나타나면 반드시 법으로 응징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근대적 사고를 제시했다.


윤리학자 출신의 애덤 스미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절대 왕정에 맞서서 법치주의와 합리주의를 주장하는 전형적인 진보적 사상가였다.


"임금을 많이줘라"

"일주일에 나흘 일하면 사흘은 쉬어야 한다"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자만 처벌하지 말고 자본가도 처벌하라" 등


오늘날 애덤 스미스를 추종하는 신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주장을 했을뿐만 아니라,

초등 의무교육, 누진세 추진 등의 굉장히 급진 좌파적 정책도 제안했다고 한다.


+


이에 못지 않게 왜곡되고 있는 학자가 바로 막스 베버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는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논리로 활용되며, 

개신교인들의 이윤 추구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막스 베버의 연구 내용을 자세히 보면

뭔가 중간에 논리적 왜곡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16~17세기의 서유럽 일부 지역(제노바, 플랑드르, 스코틀랜드 등)을 분석했고,

개신교들의 전형적인 특징과 당대 경제 상황의 상관관계를 추적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막스 베버는 칼뱅파의 세속적인 금욕주의가 천직에 전념하도록 요구하게 되면서,

소비가 아닌 축적을 향유하는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자신의 천직에 전념하라는 칼뱅파의 금욕주의로 인해 

생산은 증가하는데 소비는 발생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이 축적되고

이는 끊임없이 자본이 확대재생산되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보았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된 삶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해서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맞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해버린다.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된 삶이라는 부분은 사라지고, 이윤 획득은 어느 새 일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막스 베버의 문제는 항상 너무 똑똑해서

모순된 현상을 함께 분석했기에 오해의 소지를 항상 남겨두었다.


특히나, 막스 베버는 사회 현상들을 이해하는데 주목했으며 섣부른 일반화를 경계했는데,

'이해의 사회학'이라고도 불리는 이 관점은 막스 베버만의 독특한 학문적 특성이지만, 왜곡된 해석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막스 베버는 현상을 굉장히 세밀하게 분석했기에,

관료제, 직업 정치인, 카리스마적 리더십, 자본주의 정신 등의 엄청난 키워드를 뽑아내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각자 자신들이 사용하기 편한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합리적인 관료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관료제라는 새장 안에 합리성이 갇혀버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직업 정치인은 반드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권력을 쟁취해야하지만,

반드시 불변의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신념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스 베버의 이러한 주장들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합리적 관료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도가 가지는 함정에 대한 경계는 무시해버렸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 투쟁을 정당화하면서, 신념 윤리에 대한 강조는 뒤전으로 밀어버렸으며,

자신의 이윤 추구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주의에 대한 부분은 살짝 숨겨버렸다.


막스 베버는 항상 현실로 드러나는 부분을 지적한 후 이에 대한 이상적인 요소를 제시하였지만,

사람들은 현실을 설명한 막스 베버의 주장만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또 한명 대표적으로 왜곡된 학자는 바로 조셉 슘페터이다.


혁신이 사회적인 키워드로 급부상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슘페터는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와서 경영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슘페터가 주장한 기업가 정신은

경영혁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막대한 초과 이윤을 얻게 된다는 부분이다. 


혁신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균형을 강조하던 정태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역동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경영전략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슘페터는 혁신하는 기업가들이 처음에는 막대한 보상을 가지지만

점차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게 되면서 혁신의 성과가 골고루 퍼지게 되고 모두에게 혜택이 된다고 보았다.


슘페터에게 혁신하는 기업가는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아니며,

혁신이 좋아서 창조와 성취를 기뻐하는 일종의 엘리트로써 막대한 이윤 획득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심지어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성장할수록 미디어의 발전과 교육의 확산으로 인해 비판정신이 강해져서,

결국은 자본주의의 성공의 결과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견하며 마르크스를 칭송하였다.


하지만, 슘페터의 이러한 주장들은 싹~ 무시되고~


혁신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이윤을 벌기 위해서 혁신을 해야만 하며

이러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혁신하는 기업가에게는 막대한 보상을 해줘야만 한다는 주장만 남게 된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은 창조를 즐기는 전형적인 혁신하는 기업가였지만,

사람들은 애플의 주가와 스티브 잡스가 받은 연봉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가장 흥미롭게 읽은 3명의 이야기만 정리했지만,

케인즈와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는 책의 내용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칼 폴라니, 소스타인 베블린, 마르셀 모스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칼 폴라니와 마르셀 모스는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영역에서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이 쪽 바닥에서는 필독서이며,

마르셀 모스는 아직까지 책이 별로 번역이 안된 기대되는 거물이다.


이 번 기회를 통해서 <거대한 전환>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칼 폴라니가 이야기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대전제와

그가 제시했던 사회적 경제와 민주주의의 원리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왜곡된 주장들과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던 주장들을 잘 섞어서 정리해 구성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그렇다보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칼 폴라니와 마르셀 모스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 인물들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고 마르셀 모스가 대미를 장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의 탄탄한 논리를 깨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상황을 단순화하고 명확하게 가정했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급성장 할 수는 있었으나,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에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정은 한계에 붙이치고 있다.


정치경제학으로 시작해서 수리경제학으로 학문의 영역을 좁혀갔던 경제학은

이제 다시 경제학이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소스타인 베블린으로 시작된 제도주의 경제학이 주목을 받고,

인간의 행동 패턴을 고려한 행동 경제학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사람'이라는 파악하기 어려운 변수를 제외했기에

경제학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서 논리적 계산을 하는 경제학이 아닌

사람과 함께 숨쉬며 실질적으로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경제학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