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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 관상가는 있지만, 관상은 없었다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9. 7. 14:46

추석특선영화로 2013년 흥행작 <관상>을 보았다.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 나름 재미있었지만,

여러면에서 좋은 영화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정통사극과 트렌디한 사극의 중간 지점을 잘 파고 들었지만,

상업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앞에서 완성도를 포기한 듯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자체가 워낙 흥미로웠고,

철저히 상업적 성공법칙을 잘 따랐기 때문에 충분히 흥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관상 (2013)

The Face Reader 
7.6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정보
시대극 | 한국 | 139 분 | 2013-09-11
글쓴이 평점  


일단, 관객 900만이라는 가장 큰 성공요인은 캐스팅이라 볼 수 있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이종석, 백윤식, 조정석...


이 정도면 전지현 급의 젊은 여배우만 빠졌지,

2012년 대박을 냈던 도둑들의 캐스팅에 절대 밀리지 않을 구성이다.

그리고 배우들을 자신의 배역을 완벽히 소화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드러내주었다.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도 여김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을 마음껏 폼내고 있다.


소시민적인 모습이지만 순간적으로 영웅적인 카리스마를 폭발해버리는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과 감정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웃고 울리며 관객을 몰입시켰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변호인...


굉장히 다른 듯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는 뭔가 비슷한 면모가 보인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찌질이로 끝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서는 결국 그는 천재성을 발휘하면서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관상>에서도 송강호는 어설픈 찌질이지만 순간적인 카리스마를 폭발하는 주연을 담당하며,

송강호 식의 흥행 방정식에 딱 맞는 배역을 만나서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이런 남성들의 이야기에서 감초 역할로

김혜수는 이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듯하다.


<타짜>, <도둑들>에서 폭발한 농염한 매력은

관상에서도 이어지면서 마담(기생)을 과연 김혜수보다 잘 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김혜수의 경우에는 워낙 개인적인 매력이 강해서 관객이 공감하기 쉽지 않지만,

오히려 이런 카리스마적 존재로써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녀의 역할로는 최고인 듯 하다.


김혜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스토리 전개 상 주연은 아니지만 영화 포스터에서도 가장 상단에 배치되며 흥행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김혜수보다 더 물을 만난 물고기는 바로 이정재이다.



수양대군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그냥 TV-CM을 방불케하는 이정재의, 이정재에 의한, 이정재를 위한 장면이였다.


여심을 완벽하게 휘두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남자가 봐서 너무나 멋있는 매력적인 장면이였다.


항상 멋은 있지만 뭔가 어설퍼 보였던 그의 연기력은

<도둑들>을 통해서 빛을 보기 시작하더니 <관상>에서 최고의 매력이 터져버렸다.


<도둑들(2012)> 이후에 개봉했던 <신세계(2012)>에서는

아직까지 매우 미묘한 심리 변화와 감정선을 살리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단면적인 캐릭터, 특히 매력적인 건달의 모습은 그 누구도 그를 따라올 수 없는 존재감이 형성되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이정재의 매력 덕분에,

오히려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단순화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관상>이라는 주제과 스토리의 전개 상

수양대군이 가지는 캐릭터가 좀 더 복합적인 면모를 가졌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영화는 철저히 이정재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그 덕에 이정재는 더 빛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만 이야기하면, 흥행에는 확실히 성공적인 접근이였을 것이다.)



여기에 나머지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명불허전 백윤식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과하지 않는 조연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젊은 여심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종석은

본의 아니게 스토리의 중심에 서는 풋내기 역할을 풋내기스러운 연기로 잘 소화해주었다.


영화 초반부 송강호와 함께 코믹을 담당한

조정석도 자신만의 코믹 연기로 영화에 활력소를 넣어주는 감초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마치 배우를 미리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듯한

완벽한 싱크로률을 보여주면서 캐릭터 구성만으로 이미 흥행의 절반은 보장된 영화이다.


+


하지만, 우수시나리오 당선작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소재인 <관상>이 전혀 부각되지 못하고,

관상가라는 직업만 존재할 뿐이지 관상이라는 소재는 스토리 전개상의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전문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적절한 전문적 지식과 함께 그 것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는 것이 정석이며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관상에 매력을 느낄 여지를 별로 주지 않는다.


마지막 엔딩 씬에서 관상과 운명에 대한 나름 철학적 화두를 던지기는 하지만,

글쎄 영화에서는 그런 철학적 고찰이 별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그냥 너무 쌩뚱맞아 보이기만 한다.


한재림 감독의 전작이였던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에서도

뭔가 철학적인 고민과 메세지가 있는 듯해보이지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던...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고, 아니 오히려 메세지 전달력은 더 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관상이라는 것이 무슨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있다는 것인지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틀 조차 주지도 않는다.

(숨가쁘게 달려와놓고, 결승점 앞에서 자~ 이제 좀 생각해보시게나~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중간 중간 장면이 어색하게 넘어가는 부분들을 보면

후반 편집 과정에서 굉장히 손을 많이 댄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139분이라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처음 기획했던 것보다 상업성을 위해서 상당부분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요인때문에 메세지의 전달력이 굉장히 흐려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대장금>, <허준>같이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할 수 있는

TV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면 훨씬 더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쉽다.


초반에는 코믹적 요소를 많이 넣어서 다양한 잔 재미를 주는 듯했으나,

뒤로 갈수록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숨막히게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몰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139분이라는 것은 아무리봐도 기획의 실수인 듯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미스테리적 요소를 부각시키면서

한명회라는 인물설정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암살이라는 긴장감,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라는 후반부의 주요 요소들과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김혜수의 섹시코드, 조연들의 코믹연기라는 초반부의 주요 요소들이 뭔가 따로 노는 듯하다.


모두 영화에 흥행에 필수적인 흥행 공식에 해당하는 요소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적절하게 잘 섞이지 못하고 너무 남발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

<광해>나 <왕의 남자>보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