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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der' - 베른하르트 슐링크 (2004)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28. 22:10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국내도서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 김재혁역
출판 : 이레 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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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차 여행의 동반자로 아화씨가 추천해 준 소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왜 이렇게 야한 소설을 추천해줬지?' 의문이 들었지만...

 

읽다보니 잔잔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참 좋았고,

생각의 깊이나 감성적인 표현이 너무 맘에 들었다.

 

서울에 올라와 동명영화를 찾아 보았으나...

소설이 주었던 그 깊이감을 느낄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영화라는 특성에 맞게 참 각색을 잘했다는 느낌을 들었지만,

 

배우의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깊이있는 사고를 살리기에는 다소 한계가 느껴졌다~

 

+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특히나 마지막 한나의 선택은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미하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떠한 것도 포기할 수 있어야하는데...

 

과연 그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떠나보낸 첫 사랑을 가슴에 응어리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막상 첫 사랑을 다시 찾으려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

 

법정에서 그녀가 종신형에 처해질 때도,

감옥에서 그녀가 편지를 보내왔을 때도,

 

미하엘은 나름 자신으로써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태도는 한나에게 희망적인 고문을 자행하고 있었다~

 

법정에 계속 출도하면서 그녀를 지켜보지만

절대 면회조차 하지 않는,

 

감옥에 계속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주면서도

절대 편지는 남기지 않는,

 

출소를 앞둔 그녀를 위해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해주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애정보다는 과거의 연인에 대한 동정에 가까웠다...

 

미하엘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법정에 출도하면서, 녹음 테이프를 보내면서, 그녀의 출소를 준비하면서...

 

하지만, 한나가 원한 것이 과연 그것이였을까?

그녀가 미하엘을 떠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표면적으로는 전차회사에서 도망친 것이지만,

다시 미하엘을 찾아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부담이나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 말없이 떠난 것은 아닐까?

 

그 앞에서 글을 못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 앞에서 당당하고 싶어서 종신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출소 이후 그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고 모두 나의 추측뿐이지만,

미하엘이 이런 한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그리고, 그의 행동들이 진정한 사랑이였다면...

그는 한나의 입장에서 조금은 더 배려를 했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부끄러웠기에 밝히기 싫었고,

범죄자인 한나와 교감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다~

 

결국 애매한 그의 태도는

한나를 떠나보내야만 하게 만들었다~

 

난 미하엘과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아직도 여자를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너무 미하엘과 닮았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욱 충실하고 싶고,

'사랑'해야할 대상에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

 

+

 

<1부 9장 p.43>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

 

<1부 10장 p.57>

 

나는 싸움에서 진 것만이 아니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가 내게 돌아가라고 하면서

보기 싫다고 화를 내자 나는 금방 항복해버린 것이다.

 

그 후 몇 주 동안 나는 그녀하고 싸우지 않았다.

그녀가 위협을 해오면 나는 지체 없이 무조건 항복했다.

 

나는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맡았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실수들을 시인했고,

내가 결코 품지도 않은 의도들을 고백했다.

 

그녀가 냉정하고 뻣뻣하게 나오면,

나는 어서 다시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해달라고 애원했다.

 

때때로 나는 그녀 자신의 차갑고 딱딱한 태도 때문에

그녀 스스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변명과 맹세,

애원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나는 그녀가 내게서 너무 쉽게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싸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싸움을 불러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번인가 두 번 나는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어보았을 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되물었다.

 

"너 또 시작하는 거니?"

 

+

 

<1부 17장>

 

왜 나는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을 때

당장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그 짧은 순간 속에 지난 몇 달 동안의 그녀를 향한

내키지 않는 마음이 뭉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나는 그녀를 부인하고 배반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벌로 그녀는 가버린 것이다.

 

몇 번이고 나는 내가 본 것은 그녀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시켜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녀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

 

<3부 6장 p.199>

 

나는 한나의 글씨체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쓰느라고 그녀가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하였으며

또 얼마나 투쟁을 해야 했을지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그녀가 불쌍했다.

 

너무나 지연되고 실패한 그녀의 인생이 불쌍했고,

그녀 인생 전체의 지연과 실패가 가엾게 여겨졌다.

 

어느 누가 제때를 놓쳤을 경우,

어느 누가 무엇을 너무 오랫동안 거부했을 경우,

또 어느 누구에게 무엇이 너무나 오랫동안 거부되었을 경우,

 

그것이 나중에 가서 설사 힘차게 시작되고 또 환희에 찬 환영을 받는다 해도,

나는 그것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늦은'이라는 것은 없고 '늦은'이라는 것만 있는 것인가,

'늦은'것이 '결코 없는'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

 

<3부 7장 p.202>

 

나는 그 당시 한나가 어느 날 석방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안부 펴닞와 나의 카세트테이프 교환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이루어졌고

또 한나가 내게 전혀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게끔 가깝고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 편의주즤적이고 이기적인 것임을 나는 안다.

그러던 중 교도소의 여서장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