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Innovation

정봉주, 곽노현, 그리고 노회찬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2. 17. 06:46

노회찬 의원의 유죄 판결 이전에,

최근 1년간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대법원 판결 2건이 있었다.


3개의 판결을 모두 정치적 판결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엄연히 이야기하면 3개의 판결은 모두 성격이 매우 다르다.



2011년 12월 22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슈 자체도 선거 관련 이슈였고, 

여러가지 면에서 정치성이 매우 강한 판결이었다.


맨 처음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되었을 때만 해도 세상은 뒤질어 질 듯했다.

사법부가 새누리당에 빅 엿을 날렸다며, 선거로 되갚아줘야한다고 열을 냈다.


하지만, 김용민의 막말파문과 함께 나꼼수의 저력은 한 풀 꺾였고,

결과로만 이야기하면 대선까지 새누리당은 모두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적으로 김용민의 막말파문이 총선 결과의 향배를 좌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정봉주 전 의원은 사면없이 만기 출소했다.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겼고,

나꼼수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기에 정치적 생명이 끝난 듯하지만,


출소 후 그의 성숙한 모습은

선거 패배 후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타는 목에 한 모금의 샘물같은 느낌이었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후 화려한 부활을 꿈꿨을텐데...

지금 같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나름 조용하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


2012년 9월 27일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010년 6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중도 사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혐의(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27일 확정했다.



정봉주 전 의원 때와는 이슈가 좀 많이 달랐지만,

정치성이 전혀 없는 재판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좀 어려웠다.


하지만, 이 번 사안에 대해서는 사후 매수죄라는 법리적 해석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무조건 정치적 판결이라 이야기할 수만은 없었다.


대법원에서도 곽노현 전 교육감의 선의는 인정하지만

법리상으로는 유죄라는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고, 헌재의 판결에 의해서 유죄 여부는 결정되게 되었다.)


하지만, 최종 판결이 나기도 전에 구속했던 부분이라든지,

보궐선거를 위해서 판결 날짜를 맞춘 등 절차에 있어서는 매우 정치적인 재판이었다.


진보진영으로써는 뼈아픈 유죄 판결이지만

헌재의 판단도 남아 있었고, 대선을 앞둔 시기였기에 신중히 대처하는 분위기였다.


뜨거웠던 정봉주 전 의원 때와 분위기는 많이 달랐지만,

이 때 역시도 선거로 갚아주자는 것이 대세적인 여론이었다.


결국 대선이 끝난 1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5:3으로 합헌 판정을 내렸으며, 

결국 곽노현 전 교육감은 8개월 추가 복역에, 선거자금 35억을 지불해야만 한다.

(대선 패배 분위기와 맞물려, 헌재에 결정에 대해서는 그냥 당연한 결과라는 분위기가 되었다.)


출소 후 곽노현은 정봉주 전 의원처럼 주목도 받지 못할 것이다.

진보 세력 내에서도 그의 선택에 대해선는 호불호가 갈리는 분위기이다.

(불의에 대항해 싸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만들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파탄 지경에 빠졌기에

너무나 외로운 행보를 할 것이 분명해 보여서 참으로 안타깝다.


+


2013년 2월 15일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노회찬 의원이 '떡값 검사'의 실명이 담긴 삼성 X파일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를, 이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해서는 현재 국회에서 개정안이 진행 중인 상황이며, 

판결을 개정 이후로 미루어달라는 탄원서까지 국회의원 159명이 제출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를 무시한 체 유죄 판결을 내려버렸다.


노회찬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고,

잊혀져있던 삼성 떡값 검사 사건은 다시 세간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봉주와 곽노현 때만해도

선거로 세상을 바꿔서 멋지게 복수하자는 분위기였다.


근데, 이번에는 선거라는 이슈도 없기에,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서 더욱더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이다.


또한, 삼성과 명단이 공개된 검사들은 모두 무협의 처리가 되었기에,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판결문에는 수 많은 내용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은 결과만 보니까~)


안그래도  '법 위에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삼성을 건드리면 모두 죽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강해지게 생겼다.


노회찬이라는 인물 자체가

정봉주와 곽노현보다 정치적 상징성도 매우 큰데다가,


황교안 법무부장관 내정자와 운명이 엇갈리면서

더욱더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번 판결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이 제출한 탄원서를 무시한 것은 자존심의 문제도 걸려있다.)

박근혜 당선자에게도 이 번 판결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질 듯하다.)

+

이 번 사건은 어찌보면 정봉주, 곽노현 판결과는

유사해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기존의 2개의 판결의 결과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사법부를 향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최종 타겟은 정치권이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했기에,

오히려 사법부는 여론의 비난에 대해서 쉽게 피해갈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정권에는 큰 이익이 없는 사건이다.

최종 비난의 대상은 사법부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찌보면 사법부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주어진 내용에 대해서 법리적 해석을 한 것 뿐인데,

왜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난을 사법부가 모두 뒤집어 써야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심판관의 운명이고,
모순된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를 해야하는 것이 책임있는 역할이다.

어찌보면, 사법부에서는
이러한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미 삼성에 대해서 무협의 처리를 해놓고,

굳이 노회찬 의원에게 유죄를 내려서 의원직을 상실하게 만들었어야 하는가?


법안 개정안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피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정면돌파를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판결이 나온 시점 역시 장관 후보 내정 직후라는 점에서

박근혜 정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역시 너무나 비정치적이다.

(물론, 정치적 이유로 정권 출범 전에 판결을 서두른 것일 수도 있기도 하지만...)


이 번 판결은 정치적 성격이 강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법부 개혁에 대한 불씨를 지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판결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서 여론은 이제 

그 동안 이슈가 되어왔던 사법부와 삼성이라는 재벌의 유착관계에 대해서 집중될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후 삼성 장학생의 존재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어찌보면 엉뚱한 부분에서 사법 개혁의 신호탄이 발사된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 당선자에게는 만약 의지가 명확하다면,

사법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어 버렸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에는 사법 개혁 의지가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폭탄을 맞았듯이,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사법부가 폭탄을 맞을지 궁금하다.


+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노회찬 의원은

다음 총선에는 다시 출마할 수 있는 듯하다.

(선관위의 판단이 필요는 하지만, 집행유예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리고 이 번 유죄 판결로 의원직은 상실하지만,

정치적 인지도와 이미지에서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였기에,

노회찬 의원의 다음 행보가 굉장히 기대된다.


다만,

10사람 몫은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잃었다는 것과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는 듯해서 너무나 안타깝다.


혹자들은 이 번 사건으로

노회찬 의원이 차기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는 농담도 하지만,

이 사건이 진짜로 사법 개혁의 불씨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제발 이 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