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2 -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2014.04.14 01:24

강헌 선생은...

참 음악을 쉽고 감질맛나게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시대상과 맞춰서 설명을 해준다.

지난 강의에서 미국 음악에서 마이너리티였던 Jazz와 락앤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야기했다면,


[Jazz] 강헌의 마이너리티의 예술선언 1부 < 지난 강의 내용 확인하기


이 번 강의에서는 한국의 10대 청년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일단 미국의 상황부터 설명을 하면,

1964년 비틀즈가 등장하고 락앤롤의 열풍이 불때,

다른 한 편에서는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모던 포크가 새로운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모던 포크는 민중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리듬보다는 가사가 중요했고 체제 저항적인 경향을 많이 보였는데,

밥 딜런의 노래의 경우에는 가사가 문학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쿠스틱한 악기들을 많이 사용했고 

전통 민요를 리메이크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굉장히 지적인 음악이면서 음악적으로는 너무 단조로웠기에

비틀즈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해서, 밥 딜런도 한번도 빌보드 1위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에, 락앤롤의 경우에는

가사보다는 그냥 리듬을 느끼는게 중요해서

롤링스톤즈의 경우에는 일부러 가사를 못알아듣게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Rock'n'Roll] 강헌의 마이너리티의 예술선언 2부 < 비틀즈와 락앤롤 관련 내용은 지난 강의에서 이미 언급함


하지만, 비틀즈는 이런 밥 딜런을 동경했고,

밥 딜런도 비틀즈의 인기를 부러워했기에


1965년 이후에는 

비틀즈에서 밥 딜런의 흔적을

밥 딜런에서 비틀즈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비틀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단발로 데뷔했던 모습을 버리고 점차 장발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밥 딜런은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기타를 들고 컨서트에 등장하기도 한다.


당시, 장발은 자본주의적인 삶인

9 - 5 (9시 출근해서 5시 퇴근하는) 직장인의 스탠다드를 벗어나는 표현이였다고 한다.

미국 락앤롤은 이후 히피문화와 결합하여 펑키와 메탈등으로 넘어가면서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이 띠게 된다.


암튼 이렇게 비틀즈가 데뷔했던 1964년에 대한민국에서는

FM라디오가 처음 등장했고, 경제개발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였다.


락앤롤과 모던 포크가 경쟁하던 미국의 60년대와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트로트의 대명사 이미자가 시장시장의 70%를 점령하고 있었고,

1969부터 본격적인 청년문화가 시작되게 된다.


이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포크음악의 통기타 전성시대와 그룹사운드의 등장이다.


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 2 < 강의 내용 원문 듣기


+


청년문화를 이끌어간 세대는

45년 이후 출생했고, 10대에 이승만을 몰아냈던 4.19세대이다.


4.19는 중고등학생들이 시작한 시위였다. 

일제시대의 교육을 받지 않았던 당시 10대들은

불합리한 현실을 참지 못하고 교실을 박차고 나갔고,

봉건주의 군주였던 이승만을 몰아냈던 경험을 가진 세대였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느새 20대가 되었고,

그들은 이번에는 청년문화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 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포크음악을 전면에 끌어 올린 것은 

전설적인 듀오,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였다.



라디오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들은

감미롭고 싱그러운 목소리에 통기타를 들고 안경을 쓴 대학생 엘리트 이미지로 데뷔한다.


실제 연대 의대생이였고 부잣집 도련님이였던 윤형주와 달리

가난한 집 출신의 송창식은 서울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한 생계형 가수였지만,

60년대에만 해도 대학생은 동경의 대상이였기에 대학가와 10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송창식은 배경, 목소리,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윤형주에게 항상 컴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결정적으로 취미로 음악을 하던 윤형주가

경희 의대로 본과를 진학하게 되면서 트윈폴리오는 해체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생계형 가수였던 송창식은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윤형주가 다시 돌아와서 솔로로 데뷔하면서 한동안 둘 사이는 매우 나빴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앨범의 전곡이 번악곡이였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저작권의 개념도 별로 없었기에 작곡의 필요성을 못 느끼던 시절이였다.


노래는 그냥 잘부르면 되는 것에 머물던 시기였기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단 한장의 앨범을 내고 1969년 12월 해체한 이들에게는 작곡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헌 선생은 청년문화의 시작을

1969년 9월 19일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열린 한 듣보잡 청년의 공연에서 찾는다.


한대수

그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아버지가 실종되는 바람에 어렵게 자랐고,

60년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코리안헤럴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한대수는 400명이 안되는 작은 공연장에서 자작곡을 발표하는데,

1974년 첫 앨범 발표 전에 이미 한대수의 음악은 암암리에 청년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고 한다.


본격적인 자작곡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반면 한편에서는 그룹사운드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1960년대의 경제 상황에서는 

사실 개발도상국에서는 록앤롤은 너무나 고급스러운 음악이였다.


악기와 음향 시스템에서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락밴드가 생길 수 있는 곳은 바로 미8군 근처 술집이였다.


미군 장교들이 가서 맥주먹는 고급 술집에서는

락밴드가 생겨나가 시작했고 1962년 최초의 락밴드 키보이즈가 생겨난다.


초창기 비틀즈의 노래를 번안해서 부르던 이들은

계속해서 맴버구성을 바꿔나가다가 3기였던 1969년 '해변으로 가요'를 대성공시키게 된다.



하지만, '해변으로가요' 역시 일본 노래를 카피한 노래였기에,

키보이즈도 자작곡으로 성공한 그룹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8군을 주름잡던 기타리스트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국 락음악의 대부라고 불리는 중졸 출신의 신중현이였다.


1964년 애드훠 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했고,

빗속의 연인 + 내 속을 태우는구려(커피한잔)라는 노래를 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는 이미자의 시대였기에 그냥 나오자마자 망했다고 한다.

(빗속의 연인과 커피한잔은 이후 리메이크되어서 대히트를 하게 된다.)


미8군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신중현은 어쩔 수 없이 월남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미8군에서 같이 활동했던 후배들에게 준 곡이 대박을 내면서 그는 월남행을 포기한다.


그들이 바로 펄시스터즈였고,

이후 김추자-장현-김정미-바니걸스-임성훈-박인수로 이어지며

연속해서 대히트를 치면서 이른바 신중현사단이 만들어지게 된다.


특이한 한점은 솔로로 데뷔한 이들은

사실상 락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소울 음악을 했다는 점이다.


미8군에서 활동했던 신중현은

흑인음악이였던 소울과 락앤롤을 동시에 경험했었고,

소울 음악을 기반으로 솔로 가수들을 데뷔시켰던 것이다.


1968년 - 1973년

프로듀서로써 신중현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지만,

자신이 참가한 락밴드는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락음악을 할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했고,

교육시설이나 음향시설도 없었고 나이트클럽에서 공연만 가능했던 시절이다.


+


암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미자가 점령하던 트로트 전성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포크 음악이 새로운 대세로 떠올랐고 패티김 같은 가수가 등장하면서 트렌드를 또 바뀌게 된다.

여기에 한대수, 신중현 등의 영향으로 자작곡이 터져나오던 시점에 역사적인 포크 음악이 등장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1971년 6월 30일 발매된 

3000장도 팔리지 않은 양희은의 음반 <아침이슬> 이다.


이 노래에 담긴 스토리는 너무나 재미있다.

1971년 10월 21일 발매된 김민기의 앨범에도 실려있는 이 곡은 너무나 느낌이 다르다.



당시 서울대 미대생이였던 김민기는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고학생이였고,

사는게 너무 괴로워서 술먹다가 통금에 걸려 그냥 구석에 짱박혀서 잤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곳이 바로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이미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고 한낮의 찌는 더위 속에서 그는 다시 일하러 갔다고 한다.


작사한 김민기의 사연을 듣고나면

참으로 고달푼 눈물나는 슬픈 노래이다.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노래가 아니라, 21세기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노래인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서강대 사학과 1학년생이였던 양희은을 만나면서 완전 새로운 노래가 되어버린다.


여성보컬 특유의 비브라토도 없고,

감성적이면서도 투쟁적인 목소리를 만나면서 민주항쟁의 상징적인 노래가 된다.



하지만, 강헌선생은 원래 사연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침이슬>이 가진 음악적인 상징은 대단하다고 설명한다.


음악적인 아마추어였던 미대생 김민기는

굉장히 한국적인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는 것이다.


통기타와 클래식기타만으로 연주한 이 노래는


분명히 C장조임에도 불구하고 

묵가적이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시작해서,

갑자기 남성조의 선동적인 분위기로 바뀌어버린다.


당시에 유행하던 A-B-A 정형적인 환전문법을 벗어나서
A-B-C로 점점 고조되는 새로운 문법으로 노래가 구성되면서 
아름다운 A테마가 다시 나와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면서 노래가 끝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낭만주의적인 노래,

여기에 한문과 외래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가사

당시 저항 시인이였던 김지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한다.


김민기의 새로운 시도는 뒤늦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가사라고 상까지 받았지만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진취적인 노래가 되어버린다.


이 노래는 시위대가 자주부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신시대를 거쳐서 아무런 사유도 없이 금지곡이 되어버렸고,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머물다가 1987년 6월항쟁에서 상징적으로 터져나오게 된다.


+


1973년에 들어서는

대학 캠퍼스별 스타(김세환, 이수만, 이장희, 양희은 등)가 등장했고,

얼굴까지 잘생겼던 김세환은 대중 가요계를 완벽하게 점령해버린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이 등장하면서 청년문화는 주류가 되어버린다.


196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던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이장호 감독은

당시 20대였던 최인호 작가의 원작 소설을 가지고 홍익대 대학생 이장희의 OST로 대히트를 거두게 된다.


<별들의 고향>은 대중문화에 새로운 시대를 확정짓는 신호탄이였고,

이어서 1975년 <바보들의 행진> 역시 송창식의 OST로 대세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여기서 그룹사운드의 대표주자였던 신중현이 가세한다.


이미 수많은 밴드를 말아먹었던 신중현은

진짜 마지막이라면서 처음으로 밴드이름을 한글로 짓는다.


근데 밴드이름이 심상치 않다.

한국민족을 비하해서 부르던 말인 '엽전들'

진짜 마지막이라고 작정이라고 한듯 노래들도 굉장히 실험적이다.


그리고 항상 풀 밴드를 구성하던 신중현은

기타/베이스/드럼의 3인조로 최소 규모로 밴드를 구성했고,

항상 당대 최고의 보컬을 영입해서 기타만 연주하던 자신이 이번에는 직접 보컬을 맏는다.



1974년 발표된 <미인>은

삼천만의 애청곡이 되어버리고,

신중현은 이 앨범으로 한국 락음악의 대부의 칭호를 받게 된다.

그동안 비틀즈를 따라만하던 그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강헌 선생의 곡 해석은 진짜 대박이다.


서울대 미대생이였던 김민기가

아마추어적으로 시대에 저항하는 노래를 만들어냈다면,


중학교 중퇴자인 신중현은

프로패셔널하게 일본음악과 미국음악이 아닌 한국적인 음악으로 시대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강헌 선생은 이 곡에서 주안점을 두어야하는 것을 3가지로 정리한다.


1) 리프
- 괭과리 같은 느낌
- 단조 5음계 사용 (트로트와 동일)
- 하지만 전통적 계면조적인 단조5음계

2) 4박자 8비트
- 미국 락밴드와는 다름
- 타악기 중에 금속 세트를 주로 활용
- 강약에서 강조점을 없애버림

3) 간주에 등장하는 기타솔로
- 일렉 기타를 개조해서 가야금 느낌을 살림



+


하지만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신중현은

박정희라는 최고의 적수를 만나면서 전성기를 그대로 마무리하게 된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박정희 정권을 지탱하던 경제성장이라는 기반이 흔들리면서,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발휘하면서 철군 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1975년 4월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었고,

박정희는 자신이 작사/작곡한 국민가요들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잘살아보세>, <나의 조국> 등

일본군가에서 기본 리듬을 따온 이 노래들은

일제시대 사이토 총독이 사용한 국민가요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다가

뒤늦게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변경해서 대중들에게 전파된다.


진짜 박정희가 작사/작곡 한 것 맞냐는 논란이 있기는 한데,

강헌 선생은 철저히 일본군가의 느낌이 스며있는 것을 보면 100% 박정희가 만든 노래가 맞다고 이야기한다.


암튼, 이러한 국가의 움직임에 협조하지 않았던 신중현은

완전 활동이 통제되어버리고 1975년 12월에는 대마초 파동으로 잡혀들어가게 된다.


당시 법률상 대마초는 불법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일단 구속하고 관련 법률을 만드는 형태로 비협조적인 가수들을 잡아들인 것이다.

(강헌 선생 설명에 의하면 대부분 다음해에 활동제한을 풀어줬는데, 신중현만은 계속 금지였다고 한다.)


암튼, 이를 계기로 락밴드는 다시금 사라지게 되고,

락밴드 출신의 트로트 가수들이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조용필, 윤수일 등)


하지만, 대학가요제가 생기면서

대학가 락밴드가 대중으로 다시금 나오는 계기가 되는데, 대표주자가 바로 <산울림>이였다.


신중현 이후 처음으로 전곡이 자작곡인 앨범을 냈고,

이후 3개 앨범을 한 번에 쏟아내면서 락밴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버린다.

1978년 산울림의 등장 이후 송골매 등의 락밴드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


강헌 선생은 마지막 시간에 쫒기듯

80년대 이후 10대문화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강의를 마친다.


80년대로 넘어와서 경제발전으로 용돈도 생기고,

워크맨의 등장으로 음악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가부장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순정만화의 전성시대에 맞춰서 감미로운 발라드 전성시대가 된다고 한다.


근데, 가장 큰 특징은 

조용필 - 이문세 - 변진섭으로 이어지는

노래는 잘하는데, 잘생기지 않은 가수가 부르는

비련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대세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사도 이해하기 힘든 아주 심오하고 어려운 표현들이 넘쳐난다.)


아직까지 대놓고 잘생긴 가수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인 시각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기에 생긴 현상이였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로 설명하는 부분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하지만, 1988년 이후 X세대로 넘어가게 되면서 

그 흐름을 바뀌게 되고 1989년의 <희망사항>이라는 노래는

그 흐름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노래라는 것이다.



운문에서 산문으로 가사가 바뀌었고,

관념적인 표현에서 사실적인 표현으로

TV시대에 맞춰서 비주얼적인 표현들이 등장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노래가 등장하게 된것이다.


1990년대부터는 10대 문화가 드디어 완성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K-pop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본 내용은 강의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으로 

  강헌 선생의 맛갈나는 강연 내용은 반드시 직접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강추!!)


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 2 < 강의 내용 원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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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Rock'n'Roll

2014.02.19 00:58

1부에서 강헌 선생은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던 재즈라는 흑인 음악이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강헌의 마이너리티의 예술선언 1부 (Jazz) < 관련 포스트 보기


그러면서 2부에서는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던 10대가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번 포스팅 역시 강의 내용이 너무나 주옥같아서,
강헌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미약하나마 가지고 있던 지식을 첨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다시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진짜 강헌 선생님의 강의 내용은 대박인 듯 ~~


Blues에 Soul이 있고,
Jazz에 Swing이 있고,
Hiphop에 Groove가 있다면,

Rock에는 바로 Spirit이 있다.


왜 Rock'n'Roll Revolution이라는 표현이 나왔는지,
강헌 선생의 강의를 듣게 되면 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는 1부에 이어서 다시 재즈에서부터 시작된다.

+

불과 30년만에 세계를 정복한 재즈는
흑인들이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게되면서 점차 복잡한 음악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즉흥적인 댄스 음악이 아니라 모던 재즈의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재즈 음악의 천재들이 등장하면서,
Bebob, Cool Jazz, West Coast Jazz, Hard Bop, Free Jazz등으로 발전해나가지만,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재즈에 대해서 대중들은 점차 외면하기 시작한다.

흑인들 사이에서도 엘리트의 음악이 되어버린 Jazz
그리고 흑인영가에 경쾌한 재즈 리듬을 활용했지만 너무나 전도의 목적이 강한 Gospel 

이들은 일반 흑인들이 가볍게 즐기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따분했던 것이다.

마침 엠프의 개발로 기타/베이스/드럼으로 단순한 연주가 가능해지자
재즈적인 리듬과 블루스적인 감각과 창법이 어울어진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유행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갑자기 많은 돈을 가지고 돌아온 흑인들은
그 돈을 음반을 사는데 쓰기 시작했고 갑자기 흑인 음반 시장은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음반 판매 집계를 담당하던 빌보드는 판매가 급증한 흑인 양아치들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주면서 리듬앤블루스(Rhythm & Blues)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1940년대 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던 이 새로운 흑인 음악의 흐름은
Little Richard 같은 스타들을 거치면서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가게 된다.

+

강헌 선생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흑인 음악이였던 리듬앤블루스가 장사가 되니까,
백인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빼끼면서 로큰롤로 넘어갔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틀린 설명은 아니며, 재즈에서 스윙으로 넘어간 것과 유사한 패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모르면 왜 리듬앤블루스가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가 없다.

강헌 선생은 로큰롤은 하나의 혁명이였다고 이야기한다.

1955년 영화 <Blackboard Jungle>의 엔딩곡

Bill Haley & His Comets 의 Rock Around The Clock 은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음악이 워낙 경쾌하고 좋기도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 부터 느껴지듯이 그 당시 10대의 저항의식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 것처럼

미국에서도 10대들의 첫 번째 저항의 장소는 바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학교였던 것이다.


20세기초 두 차례의 세계적인 전쟁과 세 차례의 경제적 공항을 거쳐서

풍요로운 골든 에이지가 시작되었고 역사상 유래없는 호황이 이어지게 된다.


이제는 부모의 도움 없이도 열심히 노력해서 일을 하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교외주택가에 살 수 있는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도 등장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10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생각만 강조하고 기존 질서와 경쟁만 강조하는 기성 세대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 삶이 평화로워져 보였지만, 

사실상 10대들의 삶에서는 성적이라는 전쟁이 일어나 있었고,

상대평가와 계량화된 교육은 양극화라는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이러한 10대들의 독립선언이

백인 중산층들이 싫어하는 흑인들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맴피스에서 
썬레코드라는 음반사를 운영하던 샘 필립스는

10대들이 리듬앤블루스를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1950년대 중반부터 백인 음악 음반 매출이 급감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샘 필립스는 흑인 음악이 가진 시장성을 알면서도,
존 하몬드가 했던 것처럼 직접 흑인 아티스트를 발굴하지는 않았다.

대신, 4달러를 내고 흔하디 흔한 오디션을 보러온
흑인 목소리를 내는 키 180의 백인 트럭 운전사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린다.

그가 너무 가난해서 흑인 거주지역 인근에서 자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교회에 다니며
흑인의 가스펠과 댄스에 익숙해있었던 그는
첫번째 백인 리듬앤블루스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차트를 점령해버렸다.

데뷔 초기 에드 설리번 쇼에 처음 출연한 엘비스는
엉덩이를 너무 흔들어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편집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바스트샷만 나가자는 매니저의 제안으로
궁여지책으로 방송이 되면서, 오히려 그의 독특한 움직임이 화제를 일으키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

데뷔한지 한 달 반만에 
막 시작된 TV시대 최고의 스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1956년 빌보드차트 52주 중 무려 34주 동안 1위를 점령해 버린다.


엘비스로 부터 시작된 로큰롤의 열풍은
미국 전역을 휩쓸지만 이에 대한 기성 세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로큰롤(Rock'n'Roll)이라는 용어 자체가 
원래 남여간의 성교를 의미하는 용어였고 노래의 가사 또한 만만치 않았다.

흑인 음악에서 시작된 것을 제외하더라도 기독교 사회가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 최대 시민단체인 PTA(학부모 교사 연합회)가 앞장서서
로큰롤은 사탄의 음악이라 선언하고 모든 로큰롤 음반을 불 태워버리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한다.
(10대들의 저항에서부터, 보수적인 종교계의 탄압 등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역시 이들의 힘은 대단했던 것 같다.
로큰롤의 저항정신을 도덕적 해이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고,

1956-1957년에 걸쳐서 급격히 성장한 로크롤은
1958-1960년에 걸쳐치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로큰롤의 열풍을 주도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에 입대했고,
로큰롤의 교본을 만들었다던 '척 베리'는 석연치 않게 매춘 협의로 감옥에 가고,
로큰롤을 실질적으로 탄생시켰다고 불리는 '리틀 리차드'는 갑자기 목사가 된다.

피아노 로큰롤의 개척자라 불린 '제이 리 루이스'는
14살짜리 사촌과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영국 순회 공연이 취소된 후 사회적으로 매장됐고,
(이후 루이스는 컨트리 음악으로 전향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재기한다.)

당시 방송국 DJ들 사이에 만연했던 금품 수수 관행에 대해 열린
페이올라(Payola) 청문회를 통해서 로큰롤에 호의적이였던 DJ들은 방송국에서 모두 축출된다.
(로큰롤의 아버지라 불리던 앨런 프리드는 이 때 모든 것을 다 잃고 1965년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심지어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은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나버리면서 세간에는 음모설까지 제기되었다.

+

시들해지던 로큰롤 열풍은 이제 정치권으로 넘어간다.
전후 처음으로 선거권을 획득하기 시작한 이들은 JFK라는 새로운 스타를 만난다.

기존 정치권과는 너무나 다른 젊고 잘생긴 대통령
그의 개혁적인 정신과 행동들은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하지만, 1963년 그 역시 정체 불명의 기성세대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다름 아닌 영국에서 넘어온 비틀즈였다.

미국은 영국에 대한 동경도 존재하지만,
또한 영국에 대한 적대감과 열등감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도 승리하고 재즈로 전 세계 음악을 평정했던 미국의 자존심에
비틀즈의 성공은 사실 반갑지 않았기에 이를 British Invasion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번에도 사건은 애드 셜리번 쇼에서 터지게 된다.

노동자 출신에 락커족에 가까웠던 비틀즈는
미국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모드족으로 연출을 한다.

50년대 후반 미국 시장에서 로큰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반면교사 삼았고,
또한, 미국인들이 영국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매니저는 기가막히게 알았던 것이다.

영국의 엘리트 모범생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비틀즈는
종전의 히트를 치게 되면서 에드 설리번 쇼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미국 기성세대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했던 비틀즈와는 다르게,
롤링스톤즈는 흑인 음악을 전면으로 추구하며 온몸으로 그 공격을 받아낸다.
(사실은 비틀즈가 노동자 출신의 히피들이였던 반면, 롤링스톤즈는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였다.)

최고의 성공은 비틀즈가 했지만, 
Spirit의 측면에서는 역시 롤링스톤즈가 최고인듯~~
(이런 면에서 롤링스톤즈를 더 선호하는 음악 전문가들도 많다고 한다.)

1965년 이후부터는
비틀즈 역시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미 그들은 넘사벽이 되었기에 기성세대의 공격쯤은 가뿐하게 넘겨버렸다.

암튼 비틀즈는 시들어가던 로큰롤의 열기를
완전히 되살려버렸고 아니 이제는 광풍의 경지에 올려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비틀즈의 British Invasion은
단순히 영국 음악이 미국 시장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에 무릎꿇었던 10대들이 다시 한 번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된 사건인 것이다.

이후, 대중문화는 10대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크게 변화하지는 않고 있다.

+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중 문화의 중심에는 항상 10대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중간세대라 볼 수 있는 30대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물론 세시봉 열풍처럼 기성세대의 열풍도 있었지만,
건축학 개론, 응칠, 응사로 대변되는 30대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문화계에 영향이 커지면서
대형 뮤지컬이나 콘서트, 미술관 같은 시장이 많이 커진 느낌이다.
(사실 어린 애들은 돈이 없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시장)

예전 같으면 결혼해서 애키우고 일하냐고 정신 없었던 세대인데,
결혼도 늦어지고, 애도 적게 낳고, 일을 하더라도 자신을 찾기 시작한 이들...

특히나 10대와 20대가 구매력이 약한 반면, 이들은 경제력도 강하다.
사실 가진 것은 50대 이상이 더 많지만 이들은 자식들에게 쏟아부어서 실제적인 가용 금액은 얼마 안된다.

내가 대학생 시절만 해도 대학생이 모든 문화의 중심이였는데,
지금 대학생은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불쌍한 청춘으로 전락해버렸기에
어떻게 보면 돈이 돌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바로 30대 시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화의 중심자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30대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적당히 기성세대에 저항하면서도,
적당히 예전에 대한 추억팔이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기존 질서에 저항할 여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뒤집어 놓을 정도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보수화되고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
10대와 20대에 비해서 싸워본 경험도 있고 싸울만한 체력이 있는 세대이다.

'30대의 정치학'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영향력과 잠재력을 가진 세대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치와 문화라는 것의 상관관계가 참으로 묘하게 연결되는 맥락이 존재한다.

새롭게 문화적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는 30대
이들이 과연 어떤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가져갈지 궁금하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헌 10대, 30대, Bill Haley, Blackboard Jungle, British Invasion, GOSPEL, Little Richard, pta, Rhythm & Blues, Rock Around The Clock, Rock'n'Roll Revolution, 강헌, 골든 에이지, 락 스피릿, 로큰롤, 롤링스톤즈, 리듬앤블루스, 리치 발렌스, 마이너리티 예술 선언, 버디 홀리, 비틀즈, 빌보드, 샘 필립스, 썬레코드, 앨런 프리드, 에드 설리번 쇼, 엘비스 프레슬리, 재즈, 제이 리 루이스, 중산층, 척 베리, 페이올라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Jazz

2014.02.18 23:29

나름 음악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다고...

흑인 음악의 역사에 대한 책도 읽어봤지만...

나의 지식은 살아있지 않는 그냥 머리로 이해한 음악이였다.


강헌...

그의 강의를 듣는 순간...

Jazz와 Rock'n'Roll 이라는 악이 나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우선, 책으로만 읽었던 흑인 음악의 역사를 대충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노동요 > 흑인 영가 > 블루스 > 랙타임 > 재즈 > 가스펠 > 리듬앤블루스 > 소울 > 모타운 > 펑크 > 디스코 > 힙합 > POP(장르 융합)


당연히 정확히 이런 순으로 발전한 것은 절대 아니며,

그냥 시대의 순서대로 유행한 음악을 정리해 놓은 것 뿐이다.

(특히나, POP같은 경우는 80년대 이후의 온갖 장르들이 융합되면서 대중화된 음악을 통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흑인음악의 흐름에 대해서

강헌 선생의 강의는 뭔가 그 맥락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냥 시대별로 딱딱 끊어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왜 그런 음악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명쾌하고 실질적으로 설명해주니까,

마음으로써 그 음악을 이해하고 그 음악적인 흐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강헌 선생의 강의는 리듬앤블루스에 대한 설명해서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대중화시킨 로큰롤로 넘어가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소울이라는 장르(?)부터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울이란 단어를 하나의 장르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60년대 인권운동과 함께한 흑인음악을 일컬어 소울이라 부른다.)


60년대 이후 흑인 음악의 흐름에 대해서도 강헌의 강의가 있는지 좀 찾아봐야겠다.


+


벙커1특강 -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 EP.01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 1 (Jazz)


16세기부터 흑인이 노예로 미국에 끌려오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아메리칸들의 황야에 외치는 소리(field the holler)는 시작된다.


초창기의 농장 노동요(Plantation Chaint)는 사실상 음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절규였다.


소수의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스페인 노예상에 납치되어 
미시시피주의 대농장에 팔려온 다수의 흑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가혹한 탄압을 한다.

서로 대화도 못하게 하였고,
그들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소리를 부르짓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농장에서 부른 노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절망의 소리였던 것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교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블루스(Blues)와 흑인 영가(Negro Spirituals) 중 어느 것이 먼저 시작됐냐는 논란이 좀 있는데,
사실 둘을 들어보면 기본적인 리듬이나 분위기는 너무나 유사하다.
가사의 내용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세속적인 욕망을 다루냐의 차이정도?

물론 다루는 악기에서는 차이가 확인히 드러난다.
특히나 초기의 블루스(Blues)는 변변찮은 악기 하나 없이 하모니카나 목소리만으로 짜여졌다고 한다.

교회의 찬송가에 흑인 특유의 리듬감을 감미한 흑인 영가는 
개인적이고 세속적이던 블루스와 서로 영향을 주었고, 본격적으로 흑인 음악은 발전해나가기 시작한다.

출발부터 한이 셔려있어서 그런지 블루스의 soul이라 하면,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살짝 숨겨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흑인 영가에서도 대상만 다를뿐 기본적인 느낌은 비슷한 듯하다.

+


재즈(Jazz)의 시작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뒤로 한다.

프랑스령의 뉴올리언즈는
미국 내에서도 앵글로색슨족에 소외된 백인을 비롯한 온갖 인종이 모여들면서
한마디로 인종의 용광로와 같은 지역이였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인들이 흑인들과도 많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계 흑인인 크레올이라는 새로운 인종이 탄생하면서 렉타임(Ragtime)이라는 음악이 탄생한다.


백인들에게 악기 연주를 배운 이들은

처음에는 악보를 보고 그대로 연주하는 Classic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자유로운 연주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영화 The sting의 OST "The entertainer"를 만든 Scott Joplin이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군수물자들이 뉴올리언스에서 폐기되면서,

야전에서 활용도가 높고 내구성이 강했던 군악대의 관악기들이 이 동네에 흘러들어오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오래됐지만 소리가 거칠고 정확한 음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현악기에 비해서 오케스트라에서 천시를 받았던 관악기들은

흑인들의 두꺼운 입술과 뛰어난 폐활량을 만나서 새로운 빛을 밝휘하게 된다.


뉴올리언스에 유입된 관악기들은

공공연한 매춘의 장소였던 바에서 호객행위를 위한 악기로 활용된다.


Jazz라는 어원은 섹스, 창녀, 삐끼에서 유래되었다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뭐가 정확한지는 몰라도 그 맥락을 보면 굉장히 일관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동네 최고 인기를 누리던  '스토리 빌' 같은 재즈바에서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항구에서부터 삐기들이 즉흥적인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입된 손님이 매춘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술과 음악으로 계속해서 매장에 잡아두었다.


매춘을 위한 술집의 영업 전략이 오늘날의 재즈를 탄생시킨 것이다.


+


19세기까지만 해도 동네 음악이였던 재즈는

뉴올리언스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흑인들이 강을 타고 북쪽 도시로 진출하면서 점차 확산된다.


특히 이 때, 시카고 흑인 할렘가로 들어간 루이 암스트롱은

30년만에 재즈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된다.


루이 암스트롱은 놀라운 태크닉의 트럼펫리스트였지만,
여기에 놀라운 보컬 능력과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갖추었기에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26년 "히비 지비, 두비 두비, 지비 지비"의 경우에는
악보가 바닦에 떨어져 그냥 막 연주했는데, 그냥 녹음을 계속 진행해서 그게 대박이 났고,

그의 스캣 창법은 당시 인기를 끌던 다른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생애를 아주 잘 설명해주는 블로그 글


강헌 선생은 <St Louis Blues> 공연 영상을 통해서 당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교향곡은 현악기가 주도하지만

재즈는 소속된 모든 악기에 평등성을 부여하면서 보컬만 돗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계속 이어지는 경제적 공항(1907 / 1912 / 1929)과 전쟁으로 시대적인 암흑기였다.

거대한 댄스홀(클럽)들이 도시에 나타났고, 
17-23인조의 빅 밴드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 이후 재즈의 흐름은 스윙이라 불린다.

스윙은 듣는 사람이 플로우로 나가서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느낌을 의미하지만,
빅밴드로 넘어가면서 백인들이 재즈 시장을 점령하게 되고 스윙은 하나의 장르와 되어버린다.

흑인이 만들고, 백인이 돈을 버는 미국음악 산업의 구조가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사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진보적인 백인들이 흑인 아티스트를 키워냈다는 점이다.

강헌 선생은 '트로이의 목마'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강남좌파였던 존 하몬드가 뉴욕 사교계에 루이 암스트롱을 등장시킨다.

카운터 베이시, 브루스 스트링스 뿐만 아니라,
유태인 출신의 밥 딜런 역시 존 하몬드의 작품이였다고 하니 진짜 천재 프로듀서였던 것 같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문화산업 증흥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루이 암스트롱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재즈를 세계에 전파하게 된다.

그러면서 재즈는 오늘날 모든 대중음악의 출발점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이후의 Rock'n'Roll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 대한 다음 포스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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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08 - '소비' 편

2014.02.02 22:17


내가 강신주의 강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공감하기보다는 그는 나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면서

강신주의 다상담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쯤...

'소비'편에서는 다소 색다르게 자본주의를 이야기했다


이번 강의에서는 초반부터 남달랐다.


진짜 돈을 불로 태우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강신주는 돈이 가지고 있는 허상에 대해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예상치 못한 강펀치를 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강의 스킬이 늘은 것인가? 아니면 특별한 임펙트가 필요했나?


어쩌면, 그만큼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


이 번 강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격을 명확하게 지적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종이 뭉치에 불과한 돈에

단순히 종이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벤야민, 짐멜)


종교에서는 흔히 천국이라는 백지수표를 약속하면서

현세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 것을 요구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돈만 있으면 현세에서 바로 천국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 점이 바로 자본주의가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하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소비는 메트릭스의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돈을 계속해서 벌어서 쓰지 않으면 돈이 순환되지 않아서,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에 끝없이 소비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월급은 돈을 쓰라고주는 것이며,

사람들이 쓴 돈으로 기업은 다시 제품을 만들어 낸다.


만약 사람들이 돈을 안쓰고 가지고만 있으면 

물가가 더 오르게 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다.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원리이까~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냐,

바로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


+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실 소비에 대해서 고민을 덜한다.

일단, 돈이 있으니까 그냥 사보고 아니면 말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제한된 자원에서 돈을 소모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과소비를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첫 번째 이유는

수입이 불안하게 되면 있을 때 써버려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건설작업장에서 일하시는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사업을 직접하는 사람들이나 프리랜서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는데,

돈을 벌 때는 바싹 벌게 되지만 어떤 때는 일이 없어서 수입이 계속 없을 때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소비패턴이 이해가 잘 안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이들에게 돈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있을 때 확~ 써버리지 않으면 어짜피 그냥 사라져버리는 돈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수입이 좋을 때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사게 되는 과소비가 나타난다.



두 번째 이유는

돈을 쓰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30일 죽도록 일을 하고나서

하루만에 다 쓰고 이를 만족해하는 경우가 많다.


월급은 다시 열심히 일을 하도록 몰핀주사를 놓는 것이며,

카드 청구서는 내가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인식시켜 준다.


월급은 분명히 받기는 하지만, 

통장에 스쳐지나가는 사이버 머니일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열심히 카드를 긁어대기 시작한다.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를 함으로써 어렵게 돈을 벌게된 굴욕을 해소하게 된다.


돈을 쓸 때는 자유를 느끼게 되면서

이는 사실은 노동자의 삶을 은폐하려는 회피의 수단이다.


스트레스를 소비로 해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여된 행복(사랑, 성취감)들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여릴수록 먹는거로 스트레스를 푸는 여자와 유사한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실연당하고 열무비빔밥을 먹는 여자가 이런 맥락이다.


+


이러한 과소비들을 제어하는 방법은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함부로 돈을 못쓰게 된다.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쉽게 번 돈은 쉽게 쓸 수 있다.

(복권 당첨, 부모님의 용돈, 남편의 월급)


하지만, 부모나 남편이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 생각하고,

돈을 쓸 때 스스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고민하면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사실 왠만한 주부들은 남편의 월급을 쉽게 쓰지 못한다.)


막상 써 놓고 나서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들에 허무감은 밀려오게 된다.

과연 내가 그렇게 고생해놓고 진정 필요한 것을 산 것인가?


소비를 하는 순간

나는 주인이며 왕이된 기분이겠지만,

사실은 백화점 직원들에게는 손님이 아니라 돈이 왕이다.


점원들은 손님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쓸 것같아 보이는 손님들을 존중하기 마련이다.


소비를 통해서 자유를 만끽하려 하지만,

사실은 돈이 있어야만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돈은 물건과 다르게 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가여도

물건보다 돈이 더 효용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에 더 목을 메게 된다.


이에 온갖 마케팅과 광고는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해서 불필요한 소비를 유발한다.


자본주의의 생존 매카니즘은

우리는 끝없는 소비의 연속으로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무서운 것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시 되는 이 메카니즘을 깰 수 있을까?



+


마지막으로 정리할 내용은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지지만 그래도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바로 여성(Gender)의 문제이다.


강신주의 강의에는 여성들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그만큼 사회에서 여성들이 억눌리고 스스로에게 갇혀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인상 깊은 비유는 정실부인과 첩의 비유였다.


정실부인은 첩이 되고 싶어하고
첩은 정실부인이 되고 싶어한다.


정실부인은 온갖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지만 남편의 사랑은 못받는다.

첩은 남편의 사랑은 독차지 하지만 사회적 역할은 부여받지 못한다.


첩은 사랑만으로 먹고 살았지만,
정실부인은 사랑빼고 모든 권력을 가지게된다.

그래서 이혼하면 아내는 모든 권력을 박탈당하기에 사회적으로 이혼을 금지시켰다.


과감히 떠날 수 있는데도 머물고 있다면,

언제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다.

반대로 욕해도 하라는 대로 하고 있으면, 그 때부터는 무시를 당하게 된다.


정실부인은 떠나지 못하는 존재였고,

사회는 이러한 메카니즘을 정당화 시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혼도 가능해졌고, 첩을 두지도 못한다.


아내는 정실부인이면서 사랑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위자료를 받고 과감히 이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혼을 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이 존재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바뀌면서 반대의 현상도 나타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은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들은 아직도 너무 착하고, 좀 더 모질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능력에 비해서 아직도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것같다.


강신주의 비유가 다소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 같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강신주, 노동의 가치, 다상담, , 소비, 여성, 자본주의

강신주의 다상담 05 - '가면' 편

2014.02.01 20:25


강신주의 다상담 강의를 몇 번 듣다보니,

다소 비슷한 맥락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정 관념이라는 알을 깨고 나와서

자아를 찾아가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과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과 시선을 생각하는가?

착함이라는 허상이 어떻게 나를 속이고 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신주 강의는 끌리는 맛이 있다.

그건 바로, 아직도 내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으며,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학적인 용어이다.


강신주가 이야기하는 가면은

단지 페르소나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내면에 억지로 눌려있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약한 사람이 생존을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끔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약한 척하면서 가면을 쓰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이는 솔직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부러 우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도 생존을 위해서는 가면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가면을 쓰는 것을 사람들은 대체로 싫어하지만,

무언가를 얻기위해서는 때론 자신의 감정을 속여야만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나마, 무언가를 위해서 일부러 가면을 쓰는 경우는 덜 불행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써야하는 경우에는 스스로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근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가면을 쓴 체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들은 나보다 강한 사람을 항상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가면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되고,

자아가 강해지는 시기(5~7살 때와 사춘기 시절)에 멋모르고 가면을 벗어던졌다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호되게 당한 후에 다시금 가면을 집어들게 된다. 


강신주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부모님한테 빌 붙어서 가면을 쓴 체 착실히 살라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주는 월급받으면서 안정되게 살고싶으면 가면 쓴 체 살면된다고...

남의 회사에서 일해주는 대가로 받는 돈받으면 비유도 맞춰줘야하는 거라고~


가면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그만큼

용기도 필요하지만 희생을 각오해야하는 행위인 것이다.

가면을 누군가 앞에서 한 번 벗게 되면 그 사람 앞에서는 다시는 쓸 수 없다.


이는 가면을 쓴 사람을 대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가 가면을 쓰고 있을 경우에는 속으로는 싫어해도 절대 나를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상대가 가면을 벗어버리면 그 맨얼굴을 감당해내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가면을 벗지 못하도록

절대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 필수적이며 점점 더 차이를 벌리게 된다.


절대 권력자인 박근혜와 이건희,

이런 사람들 주위에는 가면 쓴 사람들이 철의 장막을 이루게 되고,

그들은 이제 가면을 벗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된다.


+


근데 이와는 다르게 가면을 써야하는 경우가 또 한 번 있다.


상대방과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고, 상황을 빨리 탈출하고 싶을 때

이건 아니다 싶으면 빨리 웃으면서 비유맞춰주고 대화를 끝내고 나와버려야 한다.


오히려 마음이 안드는 상대를 대할 때

상대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투영하지 않고 오히려 더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피상적인 관계로 남고 싶고,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면

쓸데 없이 시간낭비 감정 낭비하지 않고 가면을 쓰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나의 가면을 벗어던질 줄 알아야 한다.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가면을 벗어야만 한다.


하지만, 흠모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오히려 더 두꺼운 가면을 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것도 과연 사랑일까? 


난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


+


나의 20대는 밝고 명랑한 교회 오빠였다.

집에서는 착실한 아들이였고, 학교에서는 성실한 학생이였다.

그러면서도 나름 주관도 있어보였기에 꽤 괜찮은 녀석이라 평가받았다.

(자뻑일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정글 속의 야생마가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한 번도 가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기존의 삶이 가면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

성실한 신입사원

착실한 막내아들

다정다감한 교회오빠

뭐든지 할 줄 아는 슈퍼맨


남들이 이렇게 봐주는 것이

사실은 나도 원하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난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였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고 있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내가 그걸 원한다고 생각했었다.


일탈과 욕망, 저항, 거만, 잉여 같은 단어들이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나는 그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것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내 속에서 억눌러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스스로 잘 만들어놓은 새장을 벗어나고 싶어졌고,

그 것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 동안 쌓아둔 것이 무너질 것을 직감하게 됐다.


내가 가면을 일부러 쓴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 그게 가면이 아니였고, 

순간적인 일탈이였다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된 나를

찾기 시작했다고 느낀다는 것은 그 것이 순간적인 감정만은 아니였던 것 같다.


가장 먼저 새로운(?) 맨 얼굴을 보여주게 된 것은 여자친구였다.

은밀히 조금씩 내비치는 내 맨 얼굴에 그녀는 내가 변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평생 가려면 내 맨 얼굴도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예전 새장 속에 있던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난 솔직해지려고 했다.


결국 아름답게 헤어지길 선택했고,

그녀는 너무나 순순히 그 선택에 공감해주었다.


그런 후 너무나 편함을 느꼈지만, 아직도 그녀가 많이 생각난다.

이 것이 내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아직도 남는 이유일 것이다.

(헤어질 때까지도 긴가민가했는데, 난 진짜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 같다.)


+


이별은 나에게 변화의 시작이였고,

이제 본격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했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찾고 싶었고,

내가 있던 모든 것을 떠나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졌다.


현재의 자리가 스스로에게 불편했고,

뭔가 다른 나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 후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다가,

예전의 그 삶이 그리워서 다시 교회로 돌아가게 되고 직장도 옮기게 된다.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도

별로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솔직히 뭐가 본질인지 헸갈렸다.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일탈이나 욕망이 솔직히 나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난 다시 예전의 나름 괜찮았던 삶을 유지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적당히 솔직한 삶을 살고 싶었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반쯤만 가린 가면을 쓰면서 타협점을 찾고 싶었다.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어떤 것이 가면이고 어떤 것이 맨 얼굴인지 확신이 안섰던 것같다.


역시나 다시 돌아간 온실은 따뜻했지만, 

역시나 온실은 나에게는 너무나 답답한 곳이었다.


+


그렇게 시작한 30대의 삶은 많은 것은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그제서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찾아가기 시작한 것같다.


20대 후반에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왔다갔다했다면,

본격적으로 무엇이 가면이고, 무엇이 본질인지 찾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와 새로운 직장이라는 온실 속에서

제대로된 나를 찾을 때까지 철저히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양 극단에는 나는 없었다.

난 처음부터 그 중간 어디쯤, 남들이 보기에는 애매모호한 어딘가에 있던 것이다.


남들 기준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지점에

나는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난 크리스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성 교회에서 원하는 그런 크리스챤은 확실히 아니였다.


난 기업가 마인드가 강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 논리에서 이야기하는 자본가도 노동자도 아니였다.


난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혁명을 원하지는 않는다.


난 솔직하고 욕망에 충실한 삶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원하지도 않는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지점에 위치한 나의 삶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방향성이 보이자마자 과감하게 난 다시 떠나기로 했다.


강신주는 어느 곳을 떠난다는 것은

그 곳이 최악이라고 느낄때만 떠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지금있는 곳이 어쩌면 최선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난 내가 이미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싶었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


지금의 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완전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강신주의 말처럼 새로운 것을 시작했을 때,


'이제는 끝이다.'라는 느낌이 들면 남들이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고,

'이제 시작이다.'라는 느낌이 들면 스스로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라는데,


난 확실히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워낙 긍정적이라 첫 사랑, 첫 입사, 첫 이직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너무나 아프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나보기로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직도 그 때 잠시 만났던 여자분께는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든다.)


심지어,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과 다시 만났을 때도

그들 역시 나의 선택이 의외이지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나만 나 스스로를 잘 몰랐던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어쩌면 이미 내가 그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이미 나의 맨얼굴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때도 강자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은 했고,

약자들에게도 절대 내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강한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진심은 전달했고,

약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도록 그들 앞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지혜와 가면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난 그 부분을 잘 구분하지 못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의 고민은 완벽히 해결했는가?

다시는 강신주의 강의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이 문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아직도 가슴 한편에는 찝찝함이 남아있고,

나는 가면을 완벽하게 벗어버리지도 또한 계속 쓰고 있지도 않다.


이는 한 극단에 치웃치지 않는 내 성향탓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가면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나의 특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맨얼굴이라고 생각한 것이 가면이였거나,

내가 가면이라고 생각한 것이 나의 맨얼굴이 아니였으면 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진실을 은폐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인 가면이든 맨얼굴이든

그 모습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가면, 강신주, 다상담

[세바시 207회] 당신에게 힐링이 필요하다면... - 고도원 아침편지

2013.12.29 09:05


이 시대의 진정한 힐링은 무엇인가?


우리의 가슴에 북극성이 필요하다.

북금성을 띄우면 방향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꿈이 있으면 방향이 생긴다.


진짜 북극성은 '꿈넘어 꿈'에 있다.


'꿈넘어 꿈'은

꿈을 이루어진 다음에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의 꿈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까지 주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


'꿈넘어 꿈'을 위해서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위기의 순간,

절대 고독의 시간이 찾아온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 때, 눈물을 흘릴줄 알아야 한다.


부시는 임기말에 이야기했다.

'나는 지난 7년동안, 신의 어깨에 기대서 많이 울었다.'


나만의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힐링이 필요하다면,

잠깐 멈추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시 울어라.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세바시 고도원, 고도원의 아침편지, 꿈넘어 꿈, 눈물, 부시, 북극성, 힐링

말콤 글레드웰 - 스파게티 소스에 대하여

2013.12.19 08:20

'블링크'와 '아웃라이어'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버린 말콤 글래드웰은

2006년 TED강연에서 난데없이 스파게티 소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신물리학자 하워드 모스코워츠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블링크를 출간하기 전이라 말콤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70년대 초, 하워드는 다이어트 펩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펩시의 요청은 아스파탐이라는 물질을

얼마나 넣어야 소비자가 원하는 최적의 비율을 맞추냐의 문제였는데,

단도 직입적으로 8~12% 정도 사이에서 최적의 sweet spot을 찾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종형 곡선이 나오지 않았고,

일관성을 찾지 못한 하워드는 질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완벽한 펩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펩시들을 찾아야했다는 것이다.


맛에 대해서 절대적인 정답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쪼졸한 핑계처럼 들렸고 학계에서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80년대 캠벨 스프는 하워드와 만나게 된다.


스파게티 소스 브랜드 프레고는

품질 테스트에서는 항상 우수했지만, 경쟁사에 항상 밀리고 있었다.


하워드는 다양한 형태의 스파케티 소스를 만들어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소스를  고르라고 하면서,

최고의 제품을 찾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가지고 선호도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의 선호도는 3가지로 그룹핑이 되었다.

plain, spicy, extra chunky


미국인의 1/3이 extra chunky 를 선호한다는 발견은

새로운 라인을 출시하게 만들었고,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만들어준다.


이 일이 있은 후 식품 업계에서는 다양한 flavour를 출시하게 만들었다.


하워드의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한 발견은

당시 마케팅계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소비자들 모아서 어떤 스파케티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는

extra chunky라는  것은 절대 나오지 않은 답이었다.


무슨 커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믹스커피를 좋아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향을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인 것이다.


두 번째로 하워드의 기여는

Horizontal Segmentation(수평적 세분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언제나 고급의 신제품만 출시하려고 했던 식품업계에서

수평적인 개념의 신제품을 낸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더 고급 제품을 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제품을 낼 수 있다.

제품에 대한 서열화에 맞섰다는 점에서 하나의 혁명이었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하워드의 기여는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must be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렸고,

덩어리가 있는 스파게티 소스라는 발상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특히 세부 그룹을 위해서 맞춤형 제품을 낸다는 발상 자체는 커다란 인식의 전환이었다.


입맛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더군다나 세분화된 사람들에게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시장 세분화와 맞춤형 전략이라는 놀라운 마케팅적 접근이 시작된 것이다.



하워드 모스코워츠 박사의 관련 기사 보기 GO!!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TED ted, 과학적 분석법, 마케팅, 말콤 글레드웰, 블링크, 수평적 세분화, 시장 세분화, 아웃라이어, 하워드 모스코위츠

[세바시 252회] 슬픈 날의 행복 여행 - 남기환

2013.12.13 20:48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지만,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낮선 곳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남기환씨는 그리 유명한 칼럼리스트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떠난 여행


아픈 아내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7개월의 여행 이야기는 마음 한 구석이 짠~~ 해진다.


앞만 보고 달리기 바쁜데,

이것 저것 생각하다보면 할 수 없는데...


그런 후 나중에 생각해보면 못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소중한 사람과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들...


낮선 곳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기 보다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어디를 가고,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이미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세바시 남기환, 여행

인터넷과 협동조합, 그리고 사회적 경제

2013.12.11 20:53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2012년 6월 TED 강연에서

인터넷이 만들고 있는 미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돈 탭스콧은

인터넷이 만들어낸 개방성(openness)이 가진

그 의미와 그에 따른 4가지 행동 원리를 설명한다.


협동 (Collaboration)

투명성(Transparency)

공유 (Shiring)

권력의 분산(Empowerment)


주류 비즈니스계에서는 획기적인 이야기이지만,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를 배우는 나에게는 맨날 해오는 뻔한 이야기이다.


특히, 돈 탭스콧이

강연 마지막에 언급해 감동을 준

철새들의 상호 협력적인 신호 체계의 이야기는


무려 110년전 크로프트킨이

'만물은 서로 돕는다(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에서

설명한 동물 세계에 존재하는 상호부조의 원리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진의 출처: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크로프트킨은 잊혀졌지만,

돈 탭스콧의 강연은 대중들에게 회자가 되고 있을까?

(물론 학계에서는 아직도 크로포트킨은 지존 중에 한 명이다.)


가장 큰 원인은 

지금이 바로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이다.


110년 전 크로프트킨이 이야기했을 때는

원리만 있었고, 현실에서의 적용 방법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그가 꿈꾼 이상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이러한 것들을

현실 가능하게, 아니 현실에서 이미 발생하게 만들었다.


이 점이 둘 다 아나키스트이지만

크로프트킨이 이상주의자로만 보인다면,

노암 촘스키가 시대의 진정한 지성으로 인정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촘스키가 언어학자이기 때문에 더 실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크로프트킨이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 갔지만,


한 편으로는 그럼 사람들이 있었기에 

노암 촘스키 같은 대학자가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


인터넷은 시대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크로프트킨이나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에도

지식이 권력의 핵심이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로프트킨은

폭력적인 혁명보다는 교육과 선전에 의한 각성을 중요시 했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고, 기득권의 독점을 막을 수 없었다.


근데, 돈 탭스콧이 이야기한 것처럼


인터넷의 세상에서는

협력과 공유, 권력의 분산, 투명성이

너무나 당연한 기본 원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물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기에

기득권 세력이 존재하지 못한 체 공평하게 시작되었기에

기존 사회의 질서 원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제는 그 인터넷 세상의 원리가

현실 세상의 원리에 점차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물론 반대로, 현실 세상의 원리를

인터넷 세계에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검열, 독점, 위계질서, 폐쇄성, 경쟁 등....

물론 이 것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료제와 규제, 경쟁 시스템이 인류에 기여한 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200년 전부터 유럽에서

수많은 젋은이가 피를 흘리며 이루러고 했던 혁명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제는 그 원리들이 점차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려 하고 있다.


+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나에게

정보와 인터넷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200년전에는 혁명가들이 공감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너무나 현실이 고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해줘서 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는 그 꿈이 '실현가능'하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 먹고 살만해졌지만, 나같이 개혁을 소망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 중요한 차이를 이끌어낸 것이 정보시스템의 발달과 

인터넷 세상이 만들어낸 새로운 의사소통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협동조합운동이나 사회적 경제를 꿈꾸는 사람들은

사상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활용하려면,

정보시스템과 인터넷, 의사소통 체계와 새로운 문화에 주목해야한다고 본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공간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얼마나 더 가치있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오프라인상의 세상에서도 그 가치들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의 형성은

현실에서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TED Collaboration, empowerment, Openness, Shiring, ted, transparency, 개방성, 공유, 권력의 분산, 돈 탭스콧, 만물은 서로 돕는다, 미래학자, 사회적 경제, 상호부조론, 인터넷, 정보시스템, 철새, 크로프트킨, 투명성, 협동, 협동조합, 협동조합운동

강신주의 다상담 02 - '고독' 편

2013.12.11 17:44


강신주 박사는 고독을 

강한 자의식의 상태라 이야기한다.


나에게 집중하고, 계속해서 긴장하고,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몰입하지 못하는...


고독이라는 상태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게 되고, 이럴 경우 2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고독을 벗고 나오느냐 

아니면 더 깊은 고독으로 들어가느냐...


고독을 즐기는 방법도 불안정 상태를 탈출할 수 있다.

더 깊은 고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이며,

스스로를 고독에 갇두면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세상과는 점차적으로 멀어지게 만든다.


평생 혼자 살 자신이 있으면, 고독을 즐겨도 된다.

하지만, 고독을 즐기는 것도 잠시뿐 언제가는 돌아오기 마련이다.


모든 자기 의식은 타인에 의해서 매게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내가 좋은 것이, 내가 이쁜 것이 정답이지만,

이런 주관적인 감정에서 조차 다른 사람과 교감을 할 때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잠시동안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할 수 없어지고, 결국은 사람을 찾게 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독하지 않은 존재를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고독이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점차적으로 고독을 느낀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는 꽃잎을 봐도 몰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을 하게 되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세계가 나를 밀어낼 때 고독은 없어진다.


멀리서 여자친구가 걸어오는데, 나머지는 모두 배경일 뿐 여자친구만 보인다.

반대로, 여자친구와 있는데, 자꾸 시계를 보고 스마트폰만 만지게 되면 몰입이 끝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몰입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


+


몰입이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부모님이 막~~ 야단칠 때~~

그 내용에 집중하고 있으면 맘이 어렵다.

하지만,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별로 마음이 어렵지 않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은 몰입하기 좋은 환경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순간적으로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와지면서 다른 모든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냥 나와는 구분된 풍경으로만 보이면 고독을 느끼지만,

만지고 싶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있다면 고독은 사라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고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어떻게하면 무언가에 몰일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된다.


강신주 박사는 이를 모든 금기된 것을 벗어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스피노자의 평행론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의 금욕 생활은 정신과 고통이 반비례한다고 보지만,


스피노자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기에, 

정신이 건강하려면 금욕생활을 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업악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에 몰입해볼 때 고민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강신주 박사의 이야기는 '사랑'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http://socialplanner.tistory.com/entry/죄와-벌-김수영-1963)


'앞뒤 제지말고 스스로 감정에 솔직하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라.'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시선이 두려워서

솔직하지 못한 것이 스스로의 불행을 만들고 있다고...


쓸데없이 남을 배려한다고

스스로를 옥죄이지 말고 당당하게 감정을 표현해라~

(단,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다소 추상적인 결론이지만,

그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하는 바이다.


+


그렇다면, 과연 실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몰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려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운동, 취미활동, 술, 마약 등 모든 것이 고독을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모두 일시적인 관점이며, 근본적으로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효과가 크다.


그래서, 사랑을 하거나 종교, 특정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못해서 종교를 도피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교회에 수 많은 여성분들이 사랑에 실패해 종교에 더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순수한 신앙적인 판단에서 그러는 것은 뭐라할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신앙에 매달리는 분들을 보면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상처를 신앙으로 승화시켜서 극복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게 과도하게 흐를 경우 신앙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여기에 상처는 사랑 이외에 수 많은 다양한 상처가 포함된다.)


사랑과 신앙이라는 부분...

둘 다 균형을 맞춰줄 필요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


나에게 현재 몰입할 대상이 존재한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지만,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 고독함을 덜 느낀다.


이유는 사랑도 신앙도 아닌 신념이라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목표가 너무나 명확하고, 아직은 수풀을 헤메고 있기는 하지만,


이 숲을 헤쳐나왔을 때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지만,

종교에 대한 열정도 예전만 하지 않지만,

갈급함이나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사랑하고 싶은 욕심은 많이 있지만,

신념이라는 부분이 아직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기에

신념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리해서 사랑에 목메고 싶지는 않다.


어느 새 남들이 말하는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에 자연스레 합류해버렸지만,

남들이 날 3포세대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런 남들 시선에는 자유로운 듯하다.


다만, 이 신념이라는 몰입의 힘빨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고독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사랑이 다시 시작됐으면 좋겠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3포세대, 강신주, 고독, 몰입, 벙커1, 사랑, 스피노자, 신념, 신앙, 자의식, 종교, 평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