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④ - '성선설'은 정치 구호였다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4.06.18 00:12

성선설과 성악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이론적으로 대조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차이로써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루소와 홉스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좀...)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주장을 끌어와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평가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속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둘 다 너무 표면적인 부분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시천 교수의 지적은 너무나 신선한 접근이였다.

[03/20pm] 성선설은 정치 구호였다 < 원문 방송 듣기 (시사통)

김시천 교수의 주장은 맹자가 왜 성선설을 이야기했는지...
그 맥락을 중심으로 그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자왈 맹자왈 암기식의 접근에서...
이렇게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니 동양철학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진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암기식 교육의 전형적이 폐해일뿐만 아니라...
지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강의 내용이였다.

+


맹자가 주로 이야기한 것에는
왕도 정치, 4단, 성선설, 민본사상 등이 있다.

공자보다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났던 맹자 역시
현실적으로는 군주의 부르심을 받아서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였다.

특이한 점은 맹자는 잘 나가는 나라의 왕들만 만났다는 사실이다.

맹자가 주로 만났던 위나라의 양혜왕과 
제나라의 선왕은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제왕들이였고,
맹자는 이들을 만나서 덕을 중시하는 왕도정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왕도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맹자가 이야기한 왕도정치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라는 것이였다.

맹자는 할 수 없는 것(불능)과 하지 않는 것(불이)를 구분했는데,
인간의 마음인 4단을 따라서 선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왕도정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출중하여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했고,
맹자는 작은 국가의 왕을 만나봤자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남을 돕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4단의 감정으로 설명하였다.

  •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 수오지심(羞惡之心) : 나쁜것을 멀리 하려는 마음
  • 사양지심(辭讓之心) :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
  •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맹자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착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군주가 착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정책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성선설이라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책을 입안하는 근본적인 원리였으며 4단의 감정을 따르는 행동의 원칙이였던 것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이다.
성선설이라는 개념이 철학이기 보다는 굉장히 실천을 강조하는 원리였다는 설명이다.

이미 인간이라면 4단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서구적인 관점이다.)

맹자는 오히려 4단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발현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집안과 국가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마음이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본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제공되느냐 아니냐가 달려있는 것이다.

+

맹자라는 인물 또한 매우 흥미롭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이 항상 들고 다녔던 책이 바로 <맹자>였으며,
정도전은 맹자를 통해 역성혁명을 꿈꾸게 되는데 이 맹자를 건내준 사람이 바로 고려의 충신 정몽주이다.

그 만큼 <맹자>라는 책은 매우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왕도정치, 민본사상, 성선설 등의 내용 자체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내용이였던 것이다.

왕도 잘못하면 갈아 치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백성을 착취하는 왕과 관료들은 도둑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날렸던 사람이 바로 맹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군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공자의 후손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정작 맹자 본인은 혼자서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공자와 맹자를 세트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질적으로 학통으로 보면 정통적으로 공자를 계승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군주들만을 상대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맹자는
공자가 살아 생전에 아무도 안불러줘서 우울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출세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인기가 있어서 불러주었던 맹자지만,
정작 맹자가 주장한 인치에 대해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으며 왕도정치는 실행되지 못했다.
(심지어 후대 사람들은 맹자의 주장들을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이야기했다.)

맹자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듯하다.

그냥 할 수 있는 데 안하고 있는 것을 하라는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화가 날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를 보면 또한 그렇지도 않다.

김시천 교수는 4대강 사업을 예로 들면서,
몇 백 조씩 낭비하고 있으면서 비관해서 굶어죽는 사람들은 방치하고 있는 것을
맹자가 보았으면 뭐라고 했을지 반문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너무나 시급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왜 쓸데없이 엉뚱한 것에 눈이 멀어서 모든 예산과 에너지를 쏟아붇는지...

하지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맹자가 이야기한대로 측은지심을 가지고 정책 예산을 편성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분명히 전략적이지 못하고, 이상적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근데, 결과로 보면 차라리 이상적인 것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어찌보면 이상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는 것'을 하는 것이였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생각통] 김시천 4단, 공자, 군주, 김시천, 동야철학, 루소, 맹자, 민본사상, 불능, 불이, 불인지심, 사양지심, 선왕, 성선설, 성악설, 수오지심, 시비지심, 시사통, 아리스토텔레스, 양혜왕, 왕도정치, 정도전, 정몽주, 측은지심, 홉스

[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③ -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4.05.14 01:51

피로사회
국내도서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 김태환역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03.05
상세보기


김시천 교수의 강의의 소재는 참 참신하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잘 골라와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근데, 결론 부분에 있어서 말은 되기는 하는데~

확~~ 잘 엮어서 마무리한다는 느낌이 좀 약하다는 인상이 든다...

(되씹어보면 좋은 이야기인데, 막상 듣고 있을 때는 명확하게 마무리가 잘 안된다.)


아직 3회니까~~ 뒤의 강의에서는 좀 더 좋아지겠지?

암튼~~ 지적 호기심은 완전 만빵으로 채워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2012년 화제의 책이였던 <피로사회>와 장자, 노자를 엮다니...

일단 소재 선택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인정해줄 수 밖에 없을 듯하다~~ ^^


[03/13pm] ‘용(用)의 역설’과 피로사회 < [시사통] 원문자료보기 & 방송듣기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피로사회>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모더니즘 시대는 규율과 법칙, 원리에 의해서 관리를 받았고,

개인을 구속하고 일하게 만들고 압박을 받았기에 피아구분이 명확한 면역학적 사회였다.

계급투쟁이 화두였고, 면역력(자기방어력)를 키워서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서 살아남으면 되었다.


근데, 현대 사회에서로 넘어와 다양성의 사회가 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서 보다 유연한 접근을 요구받게 되었고,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정보를 흡수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서, 끝없이 자기 개발을 해야하는 시대인 것이다.


긍정의 힘, 바로 "Yes We can"의 마법이 시작되었고,

무한한 소통과 협럭, 그리고 자기 긍정과 자신의 능력 과잉을 고양할 것을 요청받는다.


무한 경쟁시대가 되면서, 글로벌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

오히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착취하면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성과 사회가 도래하고 말았다.


이제는 전염성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경색성 질병에 걸리고 있다.


타자의 부정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아의 긍정성 과잉으로 병이 생기는 것이다.

무한 경쟁 속의 끝없는 자기 긍정이 오히려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시간은 부족하고, 일은 항상 많으며,

정보의 과잉으로 스스로 마음의 중심잡기조차 힘든 사회에 빠져드는 것이다.


진짜 말그래도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깊은 사색에 빠져보는 것이 최고의 사치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


<피로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장자와 노자의 이야기와 연결이 될까?


김시천 교수는 

장자의 '용(用)'의 개념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장자는 사람들이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 없음의 쓸모는 모른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릇이 비어있기에 쓰일 수 있는 것이고,

방도 비어있을 때만이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아무리 매력이 넘쳐나도 결혼 상대로는 쓸모가 없으며,

만약 내가 취업을 했다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채용 상대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뺏어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고 있지만,

정작 내 능력이 쓰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해줘야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암튼,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해도

내 능력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어찌보면, 제후들의 제대로된 초청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사실상 공자보다도 더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던 장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장자는 쓰임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묵상을 했고,

진짜 스스로 나 자신을 크게 쓰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유용하다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고,

내 삶을 좋게 바꿔줄 것만 같지만 사실은 나의 생명을 돌봐주지는 않는다.


무용하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직에 올라 출세를 하면 부귀영화를 잘 누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정신상태는 달갑지 않으며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닌 상태가 된다.


어쩔 때는 쓸모 있는 것이 가치가 있고,

어쩔 때는 쓸모 없는 것이 가치가 있기에,


장자는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사이에 처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

(참~ 애매모호하면서 뭔가 맞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서 바로 <피로사회>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능력을 개발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도 사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쓰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과로사의 문제,

일과 삶의 균형 문제, 가정파탄 등이 바로 사실은 여기와 이어지는 것이다.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면서 사는 것이 생명에는 더 좋을 수 있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와 

장자의 '용(用)'의 개념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면, 

이는 모더니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무위도식을 이야기했던 장자의 '도' 사상과 기본적으로 맞지가 않는다.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주길 기대했다면

이는 아마도 아직 이 두 사람의 성향을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




하지만, 김시천 교수는 

한스 게오르그 뮐러의 <노자>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제시한다.


서양에서 욕망은 신체에서 오고 악한 것이라고 보았다.

동양에서 욕망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냥 절제만 필요한 대상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욕망을 없애려고 했지만,

노자는 욕망이 없어지지 않기에 오히려 욕망을 채워줌으로써 욕망 자체가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욕망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만족을 주면서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용(無用)이 구속 당해있지 않은 상태라면

무욕(欲)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과잉 경쟁만 발생하고, 과잉 결핍만 누적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서 욕구가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욕망의 층위를 조절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가 해주어야 하는 역할인 것이다.


노자는 만족의 극대화 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욕망 성취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피로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욕망 해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만족하게 만들 것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욕망을 점점 키워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옥망을 계속 채워서 만족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거대한 욕망을 위한 끝없는 결핍이 아닌,

사소한 욕망을 위한 소소한 만족이 있는 삶...


장자가 이야기한 처럼 

자기 스스로를 가장 크게 사용하는 방법은


남의 마음에 들고자 큰 욕망을 마음에 품고 정신없이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큰 욕심부리지 말고 하루하루 소소한 만족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잘 다스려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 번뿐인 내 인생...

나 스스로를 가장 크게 사용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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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② - 우울증과 공자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4.05.08 00:46


참 재미있는 강의다...

동양철학이 이렇게 쉽게 다가오다니...

김시천 교수의 두 번째 강의는 공자의 새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강의였다.


[03/06pm] 현대인의 불안·우울을 공자가 본다면? < [시사통] 원문 자료 보기 & 방송 듣기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시간에 대충 줏어 들었던,

논어의 첫 구절에는 오랜 세월 취준생의 삶을 살았던 공자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친구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준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공자는 평상 재상이 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공부를 했다.

근데 그게 마침 때에 맞춰서 익히게 되었으면 기쁠 것이라 이야기했다.

맨날 책만 읽었을 것같은 공자는 때를 기다린 것이였고, 그걸 써먹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유명해져서 교통편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

멀리서 누군가 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주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공자는 때를 기다렸고,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았고 공자는 이 불안한 상황을 이겨내는 스스로를 군자라고 칭했다.


비록 원하는 재상에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화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군자라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웃픈 이야기이다.

재상이 되지 못한 공자의 처지가 슬프지만,

군자라는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공자의 지혜가 재미있다.


얼마나 짜증났을까?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내가 가르친 제자만 3000명이 넘는데~

결국 아무도 자기를 안써주고 쓸쓸히 여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공자...


지금이야 공자면 성인의 반열에서 칭송을 해주지만,

한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공자는 별로 인정도 못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공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았고, 세상에 대한 자세를 바꿈으로써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다.


취준생이 남무하는,

감동노동에 씨달려야하는,

끝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자의 이런 마음 자세는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다.


흔히 한 때 유행이였던 힐링(Hilling)과 같은 방법인 것이다...


김시천 교수는 공자가 스스로 화를 다스렸기 때문에,

우울증을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같다는 이야기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근데, 반대로 묻고 싶다~ 

그렇다면 스스로 군자의 반열에 올라섰던 공자는 행복했을까?


안타깝게도 3번째 구절에는 기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스스로 위안을 찾았지만, 절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는 스스로에게 군자라는 칭호를 부여해줌으로써 현실을 오히려 외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과연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훌훌 날려버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즐겁게 살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난 오히려, 공자는 아닌 척했지만 기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였던 것 같고,

천하의 성인이라는 공자도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나의 꿈을 결국 펼쳐보이지는 못했지만,

제자를 가르치고, 기록으로 남겼더니 그래도 후대에서는 나를 알아주더라...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단지 한 군주를 섬긴 재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그 지혜가 수천년을 이어가면서 전수되고 있더라~~


오히려 난 이 사실이 더 마음에 와닿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쓸쓸하게 주어진 일만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덕에 수 많은 제자를 길러낼 수 있었고 역사에 길이 남는 인류의 스승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한 나에게...

참으로 힘이 되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강의 내용이였다.


이게 옳고 좋은 것이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공자처럼, 마르크스처럼, 반 고흐처럼 언젠가는 빛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짜피 나의 모토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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