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④ - 엘리트의 사회지배는 불변인가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14 18:38


[2014.03.18] 엘리트의 사회 지배는 불변인가 - [시사통] 방송듣기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생물학에서 시작된 다윈의 진화론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있다.

'적자생존'이라는 논리로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허버트 스펜서와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상부상조론>을 주장한 표트르 크로프트킨이 그 주인공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에 적합한 생물체가 살아남는다고 설명했으나 그 생존의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국의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는
생물들이 생존 경쟁을 통해서 더욱더 환경에 적합한 자만 살아남는자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의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인 표트르 크로프트킨의 경우에는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관찰할 결과 만물은 서로 연대하고 돕는 과정을 통해 살남는다고 보았다.

생명의 진화과정에 대한 전혀 전반대의 설명인 것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우파들의 사상적 기반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었고,
표트르 크로프트킨의 <상부상조론>은 협동조합과 아나키즘의 사상적 뿌리가 되고 있다.

+

하지만, 자연 선택의 원리를 사회학에 적용시켜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한 허버트 스펜서의 주장은 당대의 지배적 사고가 되었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넘어와서 
일본은 물론 안중근과 같은 수많은 민족주의 좌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스펜서는 사회구조의 복합성도 증대하면서 
사회는 단순사회에서 점차 복합사회로 진화되어가는데,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고 통합도 증가하면서 
점점 관리와 규제의 기능이 커지게 되며 엘리트가 이를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이탈리아출신의 
경제학자이면서도 사회학자인 블브레도 파레토와도 상통한다.

파레토는 엘리트를 사자형과 여우형으로 구분하며,
인간에는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두 엘리트 유형이 순환 지배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폐쇄된 사회에서는
실제 능력있는 사람과 현재 엘리트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회 격차가 커져서 피지배 엘리트가 지배 엘리트가 될 수 없을 때 불만이 켜저 폭력적 변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스펜서와 파레토는 사람의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우파적인 주장같지만,

그 역할이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다는 구조기능주의적 견해와 비교한다면,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하고 능력에 따른 역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인 사고였다.

+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건드린 사람이 바로 로베르트 미헬스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미헬스는
사회민주당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당사회학(1911)>라는 책을 쓴다.

1900년대 유럽 사회주의의 간판격이였던 사민당이
1차 세계대전에 동의하는 등 왜 개량주의, 수정주의적 노선을 갔는지 그 원인을 자세히 분석했는데,

당시 외부에는 당의 창설자인 페르디난트 라샬의 이념적 후유증으로 알려져있었으나,
미헬스는 막스베버의 제자답게 조직적 차원에서 관료제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분석해서 설명해주었다.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연구는 관료제라는 조직에서 과두제가 나타나고, 
과두제에서 보수적인 신엘리트를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과정을 사민당의 성공과 격변이라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미헬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굉장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커져서 관료제가 되면 과두제가 나타나고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과두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 않았다.

민주주의 통치는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과두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버지가 숨겨놨다고 이야기했던 보물을 찾는 것처럼 허황된 것이지만,
그 허황된 꿈을 찾기 위해서 땅을 뒤엎어버리는 과정에서 땅은 비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은 배반당하고 결국 새로운 과두제만 나타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동시에 제시한다.

이후의 미헬스의 행보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경력 때문에 수임용에 탈락해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국적을 획득(1914)하고 파쇼당에 입당(1923)한 후 무솔리니의 지지를 받으며 우파로 돌아서게 된다.

미헬스는 대중에게 지도자를 추정하고자 하는 복종 심리가 있고,
대중은 전통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는 했지만 민주주의 희망을 놓치 않았었다.

결국 미헬스가 우파로 돌아서게 된 것은
냉혹한 사회 현실로 인한 대중에 대한 실망이 그를 냉소주의에 빠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

사회진화론의 논리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크로프트킨의 주장처럼 환경에 적합한 자가 남는다는 개념을 경쟁을 통핸 남는 것처럼 과대해석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진화론 자체가 변화의 방향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
스펜서는 사회가 성장한다는 목적론적 관점을 투영해버린 것이다.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라는 것은 
목적과 방향도 없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대응한다는 것이며, 이는 상황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론도 
조직 내부에서의 자생적 움직임을 무시했다는 한계를 가지면서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적인 자생력의 조화로 자기조직화를 이룬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세 사람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스펜서 -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엘리트가 필요하다
2) 파레토 - 인간에게는 능력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이 지배적 엘리트가 되야한다.
3) 미헬스 - 조직이 커지면 엘리트는 출현하게 되고, 대중은 지도자에 대한 복종 심리가 있다.

결국 엘리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사회와 구조의 특성상 엘리트라는 존재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엘리트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근데, 근본적으로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에 어떠한 지배라는 구체적인 방식이 빠진 느낌이다.

분명히 리더와 지배자는 다르다.
근데, 이들의 논리에서는 이 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부족하며,
엘리트가 지배자가 아닌 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과한 측면이 있어보인다.

이는 이들이 생존했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환경 상
오늘날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불평등의 문제를 강하게 인식했던 파레토나
현대적인 네트워크나 홀리그래피적 조직 구조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미헬스에게
오늘날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상상해달라는 것은 너무나 무리이기 때문이다.

고전을 공부한 것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강의였지만,
오늘날 조직학자들이 엘리트를 보는 견해에 대한 설명이 추가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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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② - 우파 불평등론은 파산했지만...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05 22:14

[2014.03.04] 우파 불평등론은 파산했지만 - [시사통] 방송듣기


불평등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끝이 없다.


좌파에서는 불평등을 사회악으로 간주하지만,

우파에서는 불평등을 필요악으로 간주한다.


물론 우파의 불평등론은 이제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지만,

조형근 교수는 우파 불평등론의 핵심을 구조기능주의에서 찾아보았다.


+


구조기능주의는

전설적인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에 의해서 

주장된 것으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1970년대 이후로 비판에 직면하게 되면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의 구조기능주의는

킹슬리 데이비스, 윌버트 무어, 니콜라스 루만 등에 영감을 주었고,

현대 조직 이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상적 근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비판적으로...)


영국에서 최초로 이주해온 전통적인 교수&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파슨스는

아이비 리그가 아닌 리버럴 아트 스쿨 중에서도 유명한 애머스트 대학교 생물학과 입학한다.

(그의 배경만 봐도 얼마나 전통적인 우파일지 상상이 간다.)


대학교 3학년 때 사회과학으로 전과하게 되면서 사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는 생물학적 유기체론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기체와 같이 각자 필수적인 역할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의존적인 존재이기에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필요한 존재이지만 중요도는 각기 다르다고 보았다.


파슨스는 왜 사람들이 직업, 기능적인 수평적인 분화뿐만 아니라 

계층적인 수직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뒤르켐의 문제의식을 수용한다.


공화주의 좌파였던 뒤르켐은 혁명시기의 프랑스가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서 갈등이 증폭되면서 오히려 상호의존성이 증가되고,

이로 인해서 분화와 통합이 반복되면서 각자 지위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불평등이 용인되었다고 보았다.


파슨스가 보기에 사회의 유기적인 연대를 위해서 불평등은 필요악이였던 것이다.


불평등의 필요성을 주장한 또 다른 견해를 주장한 것은

바로 파슨스의 제자였던 킹슬리 데이비스와 윌버트 무어이다.


이들은 불평등이 사회의 기능적 존속을 위해서

중요한 위치에 적합한 사람을 충원하기 위해서 발달하게 되며,

사람을 차등화시키면서 제도화된 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이 것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았다.


사회적 기능이 작동할 때 어떤 기능들은 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뛰어난 능력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일을 수행해야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역할일수록 많은 보상을 해줘야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매우 낮은 보상을 해줘야 사람들은 노력하고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


강력했던 이들의 주장이 무너지게 된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순환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조형근 교수는 설명한다.


'어떤 기능이 다른 기능보다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구조 기능주의는 제대로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


청소부보다 의사가 뛰어나다고 말한다면 과연 기준은 무엇인가?

높은 보상을 받으니까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중요한 역할이기에 높은 보상을 주는가?


청소부가 없다면?

처음에는 별문제 없지만, 장기간 방치되면 사회적 큰 혼란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청소부도 사회에 중요한 역할인 것 아닌가?

그럼 청소부도 높은 보상을 주어야하는 것은 아닌가?


구조기능주의는 이론적으로 치명적 오류가 있어서 폐기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하류층에 있는 것은 내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불평등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


조형근 교수의 강의해서 인상깊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불평등이라는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지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은 부정확한 사고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우파의 불평등론은 이미 논리적 오류를 드러냈지만,

사람들에게는 불평등한 현실을 수용하는 자연스런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사회란 그런 것이니까...'


원래 사회는 불평등한 것이라는 생각은 

논리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영향에 가까운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강력하다.


사회에 만연한 이 지배적 논리를 벗어나서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문제의 근원을 고민하는 좌파의 사상들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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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연구방법론] 제1장 문화기술지(ethnography) - 김영천(2013)

2014.06.18 13:24


석사논문을 질적연구방법으로 쓰기로 했더니...

생각보다 질적연구방법이라는 것이 단순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연구 방법도 매우 다양한데, 그 경계도 굉장히 모호한 구석이 있다.


참여관찰을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며,

참여관찰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고 기술하는 것도 테크닉이 필요했다.


그마나 근거이론은 방법론적으로 좀 명확한 구석이 있었으나,

사례분석과 내러티브분석, 내러티브 분석 중에서도 다양한 방법들의 차이는

좀처럼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면이 분명이 존재하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방법론을 다시 공부한다는 맘으로

국내 교수가 정리한 책을 쭉~~ 훌터보다가 가장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이는 책을 골라잡았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기에 최고의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듯...)


질적연구방법론 2 - Methods
국내도서
저자 : 김영천
출판 : 피어슨(아카데미프레스) 2013.11.22
상세보기


총 4권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질적연구에 대해서 꽤 심도있게 정리를 하신 것으로 보인다.

내가 고른 것은 그 중에서도 2권에 해당되는 상세한 방법론들에 대한 책이다.


+


그냥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참여관찰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다양한 문화기술지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세삼 놀라는 파트였다.


고전적인 방법인 총체적 문화기술지의 연구 방법도 있었지만,

해석적, 상징적 문화기술지 연구 방법도 존재했고 다양한 응용인류학의 분야도 존재했다.


문화를 공유된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의 총체로 이해하는

총체적 문화기술지의 연구방법에서도 어디에 초점을 두냐에 따라서 구분된다.


사회 집단의 각 부분들의 기능들을 주로 탐구하는지,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을 주로 보는지,

문화가 형성되고 공유되는 패턴을 중심으로 보는지,

환경과의 상호작용과 문화의 환경에 대한 조정과 적응과정을 중심으로 보는지에 따라서...


하지만, 이에 비해서 문화를 하나의 상징 체계로 보는,

해석적, 상징적 문화기술지의 연구방법이 확실히 좀 땡기는 구석이 있다.


막스 베버의 이해사회학의 영향을 받아서

문화를 인간 자신이 뿜어낸 의미의 그물망으로 파악하여 의미의 구조를 정의한 Geertz


뒤르켐의 기능주의적 사회학의 영향을 받아서

의례를 중심으로 사회적드라마, 리미널리티, 코뮤니타스 등의 개념을 제시한 Turner


뒤르켐의 영향을 받았으며,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실에서 

그 사회의 내재되고 고유한 상징과 의미의 체계를 효과적으로 탐구한 Douglas 등의 학자들이 이러한 흐름을 보인다.


이쪽 분야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Clifford Geertz의 연구도 흥미롭지만,

의례적 행위를 중심으로 파고들었던 Victor Turner의 연구가 매우 매력적이였다.



사회적 과정을 사회적 드라마(Social drama)라는 플롯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갈등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를 분열해나가는 과정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승전결의 원리처럼 분석한다.


사회와 문화를 정적인 조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으로 보면서

사회과정이 진행되는 하나의 서사 구조로 분석을 한 것이다.


리미날리티(Liminality)와 코뮤니타스(Communitas)라는 개념도 제시하는데

이건 뭐 좀 어려워서 제대로 책을 찾아서 읽어보지 않으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


이외에도 응용인류학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문화기술지가 특정 장소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면,

응용인류학은 자문화와 타문화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사회 전반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의미한다.


글로벌 문화기술지, 발전 문화기술지, 의료 문화기술지, 관광 문화기술지 등의

사회 현상들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에서 창의적인 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들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나 

나의 전공분야였던 마케팅 문화기술지의 방법에 대한 내용이였다.


2000년대 이후 소비자 행동과 마케팅분야에서도

문화기술지를 활용한 방법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인류학자들이 이에 합류했다고 한다.


기존의 실증주의적인 검증 방식으로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어렵기에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분석하고자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당시에도

사무실에 앉아서 숫자만 보고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한 마디라도 물어보라는 것이 대세였다.


물론 그렇게 하길 대부분이 귀찮아했고 항상 숫자만 들여다보게 되지만,

소비자 인사이트를 숫자에서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에 FGI같은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FGI를 진행하려면 엄청난 돈을 내야하지만, 그래도 매장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편했다.)


암튼 소비행위를 문화기술지의 방법으로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고,

윤리적 소비라는 이슈에 대해서 이러한 접근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오래된 질적 연구방법이라는 문화기술지


어떻게 보면 문화를 기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포괄적인 연구방법이지만,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상징과 의미체계를 분석한다는 부분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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