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조형근(2014)

2014.08.22 10:25

경제가 효율성의 논리일뿐이라는 생각에 

전면으로 맞선 위대한 사상가들의 위대한 생각!!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국내도서
저자 : 김종배,조형근
출판 : 반비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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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방송된 팟캐스트에 나왔던 내용을

다시 책으로 엮어서 출간되었기에 굉장히 쉽게 읽힌다.


대부분의 내용이 구어체로 쓰여있고 

단지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론만 소개할뿐 아니라

2014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현실에 빗대애서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출연진의 라인업은 굉장히 화려하다.


애덤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즈, 슘페터, 막스 베버, 칼 폴라니, 베블린, 마르셀 모스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만한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보다는 오히려 사회학에서 굉장한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들까지...

진짜 이러한 사람들이 나선다면 사회를 구할 수 있을 듯한 쟁쟁한 라인업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주류 경제학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과 수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제학계에서 아직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4명의 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자나 지지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상당히 왜곡되어있으며,


나머지 4명(막스 베버, 칼 폴라니, 소스타인 베블린, 마르셀 모스)의 경우는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보다는 사회학분야에서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


누가 뭐라해도 가장 왜곡된 사람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의 초상화를 넥타이에 집어넣으면서 본격적으로 왜곡이 시작되었으며,

<국부론>에 단 한 차례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경제학의 절대 진리로 신봉되고 있다.


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게 되었고,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핵심 내용은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일단 애덤 스미스가 주로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양되던 시기 아직도 경제권은 군주들이 확고히 잡고 있었다.


중세 봉건 사회에서만 해도 가난한 사람이 빈곤한 것은 부가 편중되었다는 사고가 강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나 가진자들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빈곤이 사라진다는 견해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현재 시장은 절대 왕정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장을 맘대로 조절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자유로운 시장 거래와 생산 활동을 통해서 생산량을 증대시킨다면 다같이 부유해지는 국가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는 분업과 전문성을 강조했고,

이렇게 증대시킨 생산량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길 주장했다.


자유로운 상품 생산과 유통을 허용하되,

이 과정에서 불의가 나타나면 반드시 법으로 응징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근대적 사고를 제시했다.


윤리학자 출신의 애덤 스미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절대 왕정에 맞서서 법치주의와 합리주의를 주장하는 전형적인 진보적 사상가였다.


"임금을 많이줘라"

"일주일에 나흘 일하면 사흘은 쉬어야 한다"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자만 처벌하지 말고 자본가도 처벌하라" 등


오늘날 애덤 스미스를 추종하는 신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주장을 했을뿐만 아니라,

초등 의무교육, 누진세 추진 등의 굉장히 급진 좌파적 정책도 제안했다고 한다.


+


이에 못지 않게 왜곡되고 있는 학자가 바로 막스 베버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는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논리로 활용되며, 

개신교인들의 이윤 추구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막스 베버의 연구 내용을 자세히 보면

뭔가 중간에 논리적 왜곡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16~17세기의 서유럽 일부 지역(제노바, 플랑드르, 스코틀랜드 등)을 분석했고,

개신교들의 전형적인 특징과 당대 경제 상황의 상관관계를 추적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막스 베버는 칼뱅파의 세속적인 금욕주의가 천직에 전념하도록 요구하게 되면서,

소비가 아닌 축적을 향유하는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자신의 천직에 전념하라는 칼뱅파의 금욕주의로 인해 

생산은 증가하는데 소비는 발생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이 축적되고

이는 끊임없이 자본이 확대재생산되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보았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된 삶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해서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맞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해버린다.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된 삶이라는 부분은 사라지고, 이윤 획득은 어느 새 일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막스 베버의 문제는 항상 너무 똑똑해서

모순된 현상을 함께 분석했기에 오해의 소지를 항상 남겨두었다.


특히나, 막스 베버는 사회 현상들을 이해하는데 주목했으며 섣부른 일반화를 경계했는데,

'이해의 사회학'이라고도 불리는 이 관점은 막스 베버만의 독특한 학문적 특성이지만, 왜곡된 해석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막스 베버는 현상을 굉장히 세밀하게 분석했기에,

관료제, 직업 정치인, 카리스마적 리더십, 자본주의 정신 등의 엄청난 키워드를 뽑아내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각자 자신들이 사용하기 편한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합리적인 관료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관료제라는 새장 안에 합리성이 갇혀버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직업 정치인은 반드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권력을 쟁취해야하지만,

반드시 불변의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신념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스 베버의 이러한 주장들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합리적 관료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도가 가지는 함정에 대한 경계는 무시해버렸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 투쟁을 정당화하면서, 신념 윤리에 대한 강조는 뒤전으로 밀어버렸으며,

자신의 이윤 추구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소비를 절제하는 금욕주의에 대한 부분은 살짝 숨겨버렸다.


막스 베버는 항상 현실로 드러나는 부분을 지적한 후 이에 대한 이상적인 요소를 제시하였지만,

사람들은 현실을 설명한 막스 베버의 주장만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또 한명 대표적으로 왜곡된 학자는 바로 조셉 슘페터이다.


혁신이 사회적인 키워드로 급부상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슘페터는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와서 경영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슘페터가 주장한 기업가 정신은

경영혁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막대한 초과 이윤을 얻게 된다는 부분이다. 


혁신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균형을 강조하던 정태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역동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경영전략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슘페터는 혁신하는 기업가들이 처음에는 막대한 보상을 가지지만

점차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게 되면서 혁신의 성과가 골고루 퍼지게 되고 모두에게 혜택이 된다고 보았다.


슘페터에게 혁신하는 기업가는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아니며,

혁신이 좋아서 창조와 성취를 기뻐하는 일종의 엘리트로써 막대한 이윤 획득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심지어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성장할수록 미디어의 발전과 교육의 확산으로 인해 비판정신이 강해져서,

결국은 자본주의의 성공의 결과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견하며 마르크스를 칭송하였다.


하지만, 슘페터의 이러한 주장들은 싹~ 무시되고~


혁신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이윤을 벌기 위해서 혁신을 해야만 하며

이러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혁신하는 기업가에게는 막대한 보상을 해줘야만 한다는 주장만 남게 된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은 창조를 즐기는 전형적인 혁신하는 기업가였지만,

사람들은 애플의 주가와 스티브 잡스가 받은 연봉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가장 흥미롭게 읽은 3명의 이야기만 정리했지만,

케인즈와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는 책의 내용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칼 폴라니, 소스타인 베블린, 마르셀 모스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칼 폴라니와 마르셀 모스는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영역에서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이 쪽 바닥에서는 필독서이며,

마르셀 모스는 아직까지 책이 별로 번역이 안된 기대되는 거물이다.


이 번 기회를 통해서 <거대한 전환>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칼 폴라니가 이야기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대전제와

그가 제시했던 사회적 경제와 민주주의의 원리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왜곡된 주장들과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던 주장들을 잘 섞어서 정리해 구성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그렇다보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칼 폴라니와 마르셀 모스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 인물들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고 마르셀 모스가 대미를 장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의 탄탄한 논리를 깨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상황을 단순화하고 명확하게 가정했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급성장 할 수는 있었으나,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에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정은 한계에 붙이치고 있다.


정치경제학으로 시작해서 수리경제학으로 학문의 영역을 좁혀갔던 경제학은

이제 다시 경제학이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소스타인 베블린으로 시작된 제도주의 경제학이 주목을 받고,

인간의 행동 패턴을 고려한 행동 경제학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사람'이라는 파악하기 어려운 변수를 제외했기에

경제학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서 논리적 계산을 하는 경제학이 아닌

사람과 함께 숨쉬며 실질적으로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경제학이 되길 기대한다.


열린 공동체 사회 Study Room/Social Economy 거대한 전환, 경제학, 관료제, 국부론, 기업가 정신, 김종배, 꼬투리 경제학,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마르셀 모스, 마르크스, 막스 베버, 보이지 않는 손, 사사톡,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사회적 경제, 소스타인 베블린, 슘페터, 스티브 잡스, 아이언 게이지, 애덤스미스, 제도주의 경제학, 조형근, 주류 경제학, 카리스마적 리더십, 칼 폴라니, 케인즈, 팟캐스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행동 경제학, 혁신, 협동조합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2012) - 임승수

2014.08.12 22:56


2013년 9월 6일 경희대에서 

학부 1학년 학생이 대학 강사를 국정원에 신고했다.


신고한 학생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버젓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신고한 이유를 밝혔다.


민주노동당 간부까지 했던 이 강사는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제목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 유물론을 교양수업으로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자본론>을 강의하는 것은 

국정원에 신고되어야 하는 위험한 일인가?


불과 몇 십년 전만에서 대한민국에서는 굉장히 당연했던 일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대한민국에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자본론>을 번역한 성공회대 김수행 석좌교수는

<자본론>에 대해서 '자본주의를 철저히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공산당선언>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마르크스의 대표작은 누가뭐라고 해도 바로 <자본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자본론>은 오랜 기간 동안 금서였고, 아직도 선듯 손이 가지 못한다.


그 자본론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써 쓴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경희대에서 강의하다가 국정원에 신고를 당했다는 임승수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국내도서
저자 : 임승수
출판 : 시대의창 20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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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유난히 원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도 칸트나 헤겔같은 고전을

꼭 공부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한국 유학생밖에 없다고 한다.


독일 현지 사람들도 소수만 공부하는 내용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독일까지 유학갔으면 그 정도는 해야한다고 우긴다는 것이다.


중국의 성리학도 한국에 들어와서 이황와 이이를 거치면서

중국에서도 따라오기 힘든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괜한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한국의 기독교도 굉장히 근본주의적인 것을 강조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뭘해도 제대로 해야하는 한국인들은 그래서 자본론도 꼭 해설서가 아닌 원서를 사서 본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1권의 앞 부분이 어렵다는 것에 함정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 큰 맘먹고 읽기 시작했다가 중도에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권 앞부분만 잘 넘어가면 술술 읽히는 책도 아니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직접 편집하지 않은 2권과 3권은 논란의 여지도 많아서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진짜 전공자가 될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해설서를 읽는게 좋다는 것이 김수행 교수의 추천이다.


이미 김수행 교수의 해설서 <젊은 지성을 위한 자본론>을 읽기는 했었다.

이 책 또한 입문서로써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굉장히 쉽게 구어체로 쓰여있다.

전기공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자본론에 대한 책을 썼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견해가 강력하게 적용되면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등장하지만,

앞부분에 자본론에서 설명하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굉장히 쉽게 잘 설명이 되어있는 듯해서 마음에 든다.



+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마르크스가 사용한 수학적 수식들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매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행 교수는 아예 수식에 대한 부분은 빼버렸는데, 그럼에도 글이 쉽지는 않다)


자연계열 출신답게 수학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글도 굉장히 쉽고 명확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기존의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의 글에 비해서 굉장히 쉽게 읽히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는 '노동가치론'을 주장한다.

이윤이라는 것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에서 나오는 잉여가치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일을 더 오래시켜서 절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하며,

생산력을 증가시켜서 노동자의 몫을 줄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화폐에 대한 환상으로 바꿔버린다.

이윤을 지속적으로 재투자해서 자본으로 전환시키면서 '자본의 축적'이 나타난다.


자본이 교환과 생산의 과정을 거쳐서 다시 자본으로 회수되는 '자본의 회전'을 통해 이윤이 증가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한 명의 자본가가 착할 수는 있어도 자본가 계급 일반이 착할 수는 없다.


공황은 자본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데,

산업 예비군이 대규모로 존재하기에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좋고,

힘이 약화된 노동조합을 상대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신기술과 기계를 도입하지만,

잉여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노동자의 수가 줄게되면서 오히려 이윤율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후 13장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마르크스의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녹아져 있기 때문에 과학적 접근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졌으며,

개인적으로는 다소 공감하는 대목도 좀 있지만, 좀 과하게 주장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저자는 확실히 사회주의자였고, 남미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식 개혁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


암튼, 대중을 상대로 자본론의 입문서로써는 아주 훌륭한 책인 듯하다.


물론 13장 이후부터는 객관적이라 보기에는 어려운 주장들이 나오지만,

앞부분 자본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확실히 아직까지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려면 <자본론> 만한 책이 없는 듯하다.


물론 최근에 큰 화제를 이르키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책을 아직 못읽었기에 이렇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짜피 그 책 역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으로 알려진 마르크스가

사실은 자본주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최고의 학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계량경제학으로 너무 빠져서 경제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많이 사라진 오늘날

다시 마르크스에 주목하게 되는 현실은 자본주의를 열열히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신봉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다시 한 번 부활읠 날개짓을 펼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내놔야 한다.


마르크스는 전혀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단지 자본주의는 내부적 모순 때문에 성숙단계를 지나면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현실이 되지 않을 듯한 그의 예언이 2000년대 이후

다시 슬슬 고개를 들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민족주의적인 혁명이 일어났던 구 공산권과는 다르게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야말로 사실상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미 이전에도 수차례 위기를 겪었고,

주기적으로 찾아온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전쟁이나 무역 등을 통해서 극복해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위기만 잘 넘기면 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곪을대로 곪은 상황이라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과연 자본주의는 스스로 이를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님 진짜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갈 수 있을까?


둘 다 아니라면 진짜로 사회적 경제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마르크스의 원리로만 보면 자본주의는 명백히 자기 모순을 극복하기 어려워보지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체하기에는 공산주의는 너무 급진적이고 이미 실패를 맛봤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하지만, 이는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념적인 성격이 강하다.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서로 호혜적인 관점을 가지고 연대를 해야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러한 접근이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자들은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옹호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산주의를 왜곡시킨 것이기에

아직도 공산주의 사상에는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은근 슬쩍 양 진영 모두 

새로운 대안은 없는지 계속해서 중간지점을 찾아서 기웃거리고 있다.


고장난 자본주의 진짜 대안은 없는 것인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책들을 좀 더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열린 공동체 사회 Books/경제/사회 공산주의, 금융위기, 김수행, 마르크스, 사회적 경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자본론, 자본주의

[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① - 사회를 보는 좌우파의 시각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08.08 01:31

강의 제목은 <사회를 보는 좌우파의 시각>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기획의도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를 비교하려고 한 듯한데,
사실상 하이에크 이야기만 하다가 시간이 다가버려서 그냥 끝낸 듯한 느낌이다.

암튼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하이에크는
오늘날 경제 문제의 원흉처럼 취급을 받으며 천하의 못쓸 인간 취급을 받지만,
어찌보면 칼 마르크스와 대적할만한 유일한 우파 경제철학가라고 할만한 거물 중에 거물이다.

조형근 교수는 이러한 하이에크에 대해서
"개인의 근원적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고민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학자가 내리는 평가치고는
굉장히 호의적인 평가이지만 하이에크의 주장을 살펴보면 사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평가이다.

+

조형근 교수가 하이에크를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이에크는 다른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자본주의 모순'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은 불완전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장 이외에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질서가 없기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끝없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했고,
그러한 개인적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공간은 자생적 질서를 가진 '시장'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만든
국가나 기업 같은 존재들은 인위적 질서이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밖에 없는데,

시장은 스스로 누가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정보 전달의 매커니즘이 가격이라는 것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불완전한 이유는
완벽한 정보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정보가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제한되고 분산되어 있기에
구조적으로 인지적 무지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무시한 체 완전한 질서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치명적 자만이라 비판한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소유의 문제와 연결되는데,
능력으로서 자유를 정의하면 소유가 없는 사람은 자유를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소유물을 재분배하려고 개인적인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하지만 자유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기에,
어떤 것으로부터 억압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서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모순된 상황일 뿐이며,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강한 국가와 법의 지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마르크스 역시 인간을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을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라
이성, 의지, 감정을 공유하는 유적 존재로 보았고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았다.

그래서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은 관계에 의해서만 규정되며,
개인적인 자유가 인간의 본질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자생적 질서라고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시장을 인위적 질서라고 보았고, 국가와 자본가의 수탈이 일어나는 곳이라 보았다.

마르크스는 전통적인 시장은 자생적 질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시장은 인위적 질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중요시 여겼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사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에 대한 관점과 자유에 대한 관점이 차이가 나면서
마르크스와 하이에크는 같은 의도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전혀 다른 반대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개인적 자유가 없으면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서 자유를 추구해야하고 국가가 이를 보장해줘야한다는 것이다.

우파들은 사회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이런 주장을 보면 하이에크는 이상주의자 중에서도 최고봉에 도달한 듯하다.

+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한 하이에크
그는 시장이 정보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기에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정보가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그저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 듯하다.

뭔가 좀 아쉽다...
완벽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에 시장이 자생적으로 움직이게 두어야한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자유를 위해서 강력한 국가의 통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강의실에 있었다면 교수님한테 추가질문을 하고 싶었을 듯하다...
나만 이해를 못하는 것인가? 뭔가 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려는 순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하이에크의 대표저서인
<노예의 길>을 직접 한 번 읽어보는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담론통] 조형근 공산주의, 마르크스, 시사통, 시장, 이상주의, 인위적 질서, 자본주의, 자생적 질서, 자유, 조형근, 하이에크

[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② - 우울증과 공자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4.05.08 00:46


참 재미있는 강의다...

동양철학이 이렇게 쉽게 다가오다니...

김시천 교수의 두 번째 강의는 공자의 새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강의였다.


[03/06pm] 현대인의 불안·우울을 공자가 본다면? < [시사통] 원문 자료 보기 & 방송 듣기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시간에 대충 줏어 들었던,

논어의 첫 구절에는 오랜 세월 취준생의 삶을 살았던 공자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친구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준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공자는 평상 재상이 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공부를 했다.

근데 그게 마침 때에 맞춰서 익히게 되었으면 기쁠 것이라 이야기했다.

맨날 책만 읽었을 것같은 공자는 때를 기다린 것이였고, 그걸 써먹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유명해져서 교통편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

멀리서 누군가 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주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공자는 때를 기다렸고,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았고 공자는 이 불안한 상황을 이겨내는 스스로를 군자라고 칭했다.


비록 원하는 재상에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화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군자라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웃픈 이야기이다.

재상이 되지 못한 공자의 처지가 슬프지만,

군자라는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공자의 지혜가 재미있다.


얼마나 짜증났을까?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내가 가르친 제자만 3000명이 넘는데~

결국 아무도 자기를 안써주고 쓸쓸히 여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공자...


지금이야 공자면 성인의 반열에서 칭송을 해주지만,

한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공자는 별로 인정도 못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공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았고, 세상에 대한 자세를 바꿈으로써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다.


취준생이 남무하는,

감동노동에 씨달려야하는,

끝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자의 이런 마음 자세는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다.


흔히 한 때 유행이였던 힐링(Hilling)과 같은 방법인 것이다...


김시천 교수는 공자가 스스로 화를 다스렸기 때문에,

우울증을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같다는 이야기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근데, 반대로 묻고 싶다~ 

그렇다면 스스로 군자의 반열에 올라섰던 공자는 행복했을까?


안타깝게도 3번째 구절에는 기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스스로 위안을 찾았지만, 절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는 스스로에게 군자라는 칭호를 부여해줌으로써 현실을 오히려 외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과연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훌훌 날려버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즐겁게 살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난 오히려, 공자는 아닌 척했지만 기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였던 것 같고,

천하의 성인이라는 공자도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나의 꿈을 결국 펼쳐보이지는 못했지만,

제자를 가르치고, 기록으로 남겼더니 그래도 후대에서는 나를 알아주더라...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단지 한 군주를 섬긴 재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그 지혜가 수천년을 이어가면서 전수되고 있더라~~


오히려 난 이 사실이 더 마음에 와닿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쓸쓸하게 주어진 일만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덕에 수 많은 제자를 길러낼 수 있었고 역사에 길이 남는 인류의 스승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한 나에게...

참으로 힘이 되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강의 내용이였다.


이게 옳고 좋은 것이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공자처럼, 마르크스처럼, 반 고흐처럼 언젠가는 빛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짜피 나의 모토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기에... ^^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생각통] 김시천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공자, 군자, 김시천, 논어, 동양철학, 마르크스, 반 고흐, 시사통, 우울증, 재상, 취준생, 힐링

[Organization theory] 조직의 8가지 이미지 (Images of organization) - ⑦ Flux and Transformation

2014.04.01 20:22
조직이론 - 조직의 8가지 이미지
국내도서
저자 : 가레쓰 모르간(Gareth Morgan) / 박상언,김주엽역
출판 : 경문사(한헌주) 2012.09.07
상세보기


"당신은 걸어서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이 이 말은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지금과 다른 시간, 오늘과 다른 내일, 내일과 다른 모레...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단지 숫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법칙에는 대칭성이 존재하지만 시간은 화살처럼 방향성이 있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끊없이 변화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도 이건 이전에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론물리학자 데이비드 보옴은
과정, 흐름, 변화를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보고, 
현실을 함축적(implicit), 접혀진(enfolded)질서로 불렀다.

+

 



칠레의 생물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자기생성(autopoiesis)이론으로 환경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제시한다.

모든 살아 있는 시스템은 자기 자신만을 준거로 삼는,
조직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자율적인 상호작용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며,

시스템과 그 환경 사이에 그어놓은 구별의 타당성에 의문을 던지고, 
살아있는 시스템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아있는 시스템들은 자율성, 순환성, 자기준거성을 특징으로 하며,
시스템에게 자기창조적이고 자기혁신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조직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시스템은 ‘닫혀있는 상호작용의 고리(a closed loop of interaction)’라는 설명이다.

살아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관계의 안정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닫혀있는 것이며, 
자기준거화 과정이 궁극적으로 한 시스템을 시스템으로 구별짓게 하며,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뭔가 말이 어려운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한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과 연결되어있고, 하나가 변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인식한 것이 알고 보면 여러가지 시스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가 시스템과 환경 사이에 인위적인 경계선을 그어서
그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상호작용의 순환고리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은 환경도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며, 
변화라는 것은 외적인 영향들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 속에서 변하게 된다.

그냥 나란 존재는 혼자서 먹고 살 수 있는 닫혀있는 시스템이 되기도 하지만,
환경 속에서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수많은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나란 존재랑 환경이란 존재는 분리할 수 없는 순환고리로 이어져있기에,
나만 똑 때서 설명하게 되면 나란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고, 학교의 학생이고, 대한민국 국민이고~ 등으로 엮여있음)

칼 와이크(Karl Weick)는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세계에
의미의 패턴과 중요성을 부여함(Sensemaking)으로 조직이 환경을 설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직이란 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바라는 정체성을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 있도록
조직과 환경을 대변하도록 허용하는 오픈된 시스템인 것이다.

전경(figure)와 배경(ground)은 결국 동일한 관계 시스템의 일부분인 것이며,
조직의 생존은 환경이나 상황과 함께 할 때 가능하며 조직은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Gareth Morgan은 조직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며,
조직의 생존은 환경이나 상황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일 때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자기생성이론은 우리가 변화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방식의 결과라는 점을 지적해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이러한 설정의 결과물이며,
경계를 고객들과 '경쟁자들' 그리고 '환경'에 속한 다른 중요한 요소들 모두를 폭넓게 품에 안는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오픈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서
오히려 환경과 조직이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영속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

조직을 변화의 흐름으로 보는 또다른 이론은
내가 아주많이 관심이 있는 혼돈 이론과 복잡계 이론이다.

자연생태계나 조직과 같이 복잡하고 비선형적인 시스템들은
'질서'와 '혼돈'의 다중적인 상호작용의 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예측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질서가 우발성과 표면적 혼돈으로부터 언제나 출현하게 된다.

균형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혼돈의 가장자리' 상태가 되면,
시스템은 새로운 변화로 이어지는 갈림길과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이 때,  사소하게 보이는 점진적인 변화들도 
미세한 조정으로 촉발된 발현적 특성 때문에 주목할 만한 단절적, 혹은 질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바로 미세한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바로 복잡계 이론의 매력 보인트라고 할 수 있다.


Gareth Morgan은 복잡성 하에서의 

조직의 변화관리를 위한 5가지 핵심 지침을 제공해주고 있다.


1) 질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결코 계획되거나 미리 정해져있지 않기에

    관리자들 역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미리 설계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촉진하고 동참해야 한다.


2) 혁신적 변화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의 편에 서서 새로운 맥락(CONTEXT)을 창조하는 것이며,

    관리자들의 역할은 새로운 상황적 맥락이 잘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3) 작은 변화가 중요한 성격의 변화일 때나,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할 때 그 잠재력이 펼쳐지기에,
    커다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하여 작은 변화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4) 복잡계 시스템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시스템의 운영을 종합적으로 통제하거나 설계할 위치에 놓이지 않기에,
    발현적 현상을 자연스럽게 수용해야하며, 체계적인 탐사 / 학습 기회 / 경계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한다.

5) 자기조직화 과정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은유들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한다.


좀 길게 설명했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맥락을 잘 파악해서,
사전에 계획된 것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에 맞춰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굉장히 쉬워보이지만,
혼돈 현상이라는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막상 터지면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규칙을 잘 찾아내서 나비의 날개짓이 제대로된 태풍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규칙을 못찾아내고 정신 못차리면 그냥 말그래도 혼돈에 빠지는 것이고,
여기서 복잡계를 찾아내 시스템으로 활용하면 진짜 강력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참~~ 매력적이다~~
읽고만 있는데도 왠지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해낼 수 있을 듯한 기대감?? ^^

+

다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은 System Dynamics 이다.

이는 상황적인 맥락은 
선(Lines)보다는 고리(loops)의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계적 인과성(mechanical causality)에 기반한 사고를 상호 인과성(mutual causality)의 사고로 대체하는 방법이다.

마루야마(Magorah Maruyama)가 
로마클럽 연구보고서에서 세계 경제를 하나의 고리시스템으로서 이해햐야 한다는 점을 처음 제시했는데,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안정적 고리를 가지지 않는 긍정적 피드백은 기하급수적 변동을 초래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상황맥락적 분석을 통해서 관계들의 패턴을 밝혀냄으로써,
문제에 대한 대안적 사고방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스템 패턴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관계 배열을 찾아낼 수 있다.

실제 매핑(mapping)을 해보면,
변화 과정들을 완전한 관계들의 영역을 규정하는 긍정적/부정적 피드백의 순환고리로 이해하다보니,
조직과 환경의 구분이라는 것이 제멋대로이지만 전체적으로 일탈-증폭, 또는 일탈-안정 의 고리가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 방법론이 가지는 결정적인 문제는

복잡한 비선형시스템이 계속해서 펼쳐지기 때문에 그 형태가 사후에야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일단 그려봐야지 이게 잘못된 것인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접근은
그 유명하신 헤겔과 칼 마르크스 형님의 변증법적 분석이다.

적대적인 세력들 간의 내적인 갈등과 긴장을 통해서 세계가 진화한다는 변증법적 사고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변증적인 변화의 원칙을 따른다.

1) 대립자들 사이의 상호투쟁 또는 통합
2) 부정의 부정 (negation of negation)
3)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환을 통해서 총체성 전환(Totality shifts)이 일어남

이 세가지 원칙은 모든 사회 시스템의 변환과정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르크스 방법은 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한 긴장이나 모순들을 탐색한 다음, 
어떻게 사회조직의 한 단계가 필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옮아가는지를 기술하고자 운동법칙을 찾으려 했다.

그 대상은 역시나 자본주의 사회였으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산출하는 기본적인 모순과 운동법칙을 밝히는 수단으로서 자본축적 과정을 분석했다.

자본이란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의미하며,
이러한 자본은 사람들을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서게 만들기 때문에 무엇보다 근본적인 모순에 내재해 있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과 부, 그리고 이윤이라는 것은 자체의 추진력을 가진 적대감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언제나 지속적인 혁신과 전 세계에 걸쳐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서려는 동인이 존재한다.

이는 종착점 없는 과정이며,
새로운 이윤의 원천이 발굴되면 바로 뒤이어 새로운 형태의 경쟁이 출현하며 경쟁하게 된다.

결국 어떤 자본가적 생산자들도 이윤의 저하 현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기로 몰게 되며, 독점을 막고자 했던 경쟁은 끝없이 달성 목표를 올리도록 몰아가는 원동력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자본주의 모순을 통해서 마르크스 형님은
자본주의 생성의 역사를 분석했고 미래를 예측하셨다.

1) 생산의 집중화로 집단적 노동자 세력이 출현
2)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대항하기 시작했음
3) 노동조합의 힘이 강화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경영 측의 효율성 제고의 노력 역시 마찬가지로 강화됨
4) 효율성을 위해서, 노동자 통제, 자동화, 제3세계로 진출 등이 진행이 구조적 실업률과 장기적 소비 침체 초래
5) 고실업 > 국가 세수감소 > 복지 지출 감소 > 구매력 감소 > 시장 위축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음

결과적으로 큰 거시적 역동성을 간과함으로써
모든 해결책은 또다시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놀랄만한 탄력성으로
자기조직화하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마르크스의 예언은 틀려버렸다.
(위기의 순간을 전쟁과 세계화, 사회주의적 정책 실시 등을 통해서 기적같이 회생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분석방법은
그 어떤 방법보다 여전히 강력한 연구방법으로 남아있으며 자본의 논리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방법이다.

+

그렇다면 이 변증법을 management분야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변증법적 사고는 우리들에게 표피적인 변화의 흐름에 함몰되지 말고,
일상의 세세한 조직생활을 형성해가고 있는 변증법적 모순들에 주목해보도록 독려한다.

현대 자본주의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양상들을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구조조정이나 다운 사이징 등의 부차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들은 근본적이지 않으며, 
자본주의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들'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적 분석은 조직 수준에서
자본주의의 미시적 관리에 대한 깨달음과 해결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조직 문제들이 효과적인 패러독스 관리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혁신과 발달은 항상 '창조적 파괴'의 과정 속에 자리하고 있다.

분기점이나 갈림길은 대개는
새로운 미래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핵심적인 패러독스나 모순에서 나온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패러독스는 불가피하며, 
대립물 간의 투쟁과 함께, 항상 역방향의 발달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변화가 동반하는 모순들 양쪽 모두 다 대개 나름대로 장점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또한, 모순의 양쪽 측면들 가운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차원들은 최소화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은 최대화해야한다.

패러독스가 잘못 관리될 경우, 
심리적 차원과 행위적 차원에서 동력을 잃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패러독스를 용해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본 게임 규칙을 변경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로서의 혁신이 필요하게 된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새로운 혁신은 기존의 관행을 파괴하고
다음 혁신 단계를 위한 전선을 규정한다는 창조적 파괴 과정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만약 조직이 경쟁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성공이 머지않아 곧 약점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은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계속 부정해가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한다.


다트마스 대학의 리차드 다베니(Richard d'Aveni)는
무한 경쟁(Hyper-competition) 하에서도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든 혁신제품에 대해서 더 좋은 제품을 시장에 먼저 내놔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창조적 파괴를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추구하게 되면
시스템에 내재한 잠재적 파괴력을 강조함으로써 지나친 역동성이 발생할 위험도 존재한다.

지나친 파괴의 재생산은 생존을 위해 먹고 먹히는 전쟁터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

현대 자본주의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혁신 이론(Innovation theory)가 그 논리적 맥락을 보면 변증법과 동일하다니...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20세기 대공항에 빠진 세계경제를 사회주의적 발상들이 살려냈듯이,
21세기 금융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이러한 창조적 접근들이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어찌보면, 복잡계, System Dynamics, 창조적 파괴 같은 
새로운 접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 같은 
주류 경영학과 경제학에서 관심 받지 못하던 부분들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은 아닌가 싶다~

Anyway~~
끊임없는 변화로써의 조직...
조직이라는 녀석을 이해하는데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접근임에는 틀림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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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혁명가의 회상 (크로포트킨 자서전) - Memories of a revolutionist (1899)

2013.12.18 23:35


Pyotr Alekseyevich Kropotkin (1842 1921)


굉장히 낮선 이름이였다.

특히 아나키스트라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공산주의 비스므르하게 등장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시대적 사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나키스트하면,

무정부주의자와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common sense)일 것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 사상을

과학적으로 체계화 시켰다고 평가받는

크로포트킨은 그 누구보다도 폭력을 싫어한 평화주의자였다.

(사실 아나키스트가 테러리스트로 포장된 것은 정치적 공작의 성격이 강하다)


러시아 정치를 전공하신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의 김창진 교수님은

국내에는 무정부주의라는 부정적인 번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유연합주의 또는 자유연대주의라는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설명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중앙집권적 권력이 아닌,

자율적인 조직들의 연대를 통한 운영


어찌보면, 현대 조직 이론의 흐름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는 시대를 앞서 간 사상이다.


+


아나키즘이라는 사상보다

크로포트킨의 인생은 더욱더 매력적이다.


40년 간의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마치고,

부푼 꿈을 품고 노년에 돌아간 조국의 비참한 현실


자신이 꿈꿨던 제정 러시아가 무너졌지만,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현실 앞에서 비참히 짖밝히고 말았다.


풍요로운 어린 시절과

제정 러시아의 우울한 시대 상

2번의 수감과 극적인 탈옥, 그리고 도피 생활

크로포트킨의 인생은 한 편의 장편 영화를 보는 듯했다.


특히나 금서와 사상 검증이 남무하고,

온갖 정치적 공세와 비밀 경찰의 등장은

대한민국의 70년대 유신시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너무나 흥미진지하게 스토리가 전개된다.


아쉽게도 57세의 나이에 기록한 자서전이라서,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추가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다.


+


책의 서문에서도 나오지만,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여타 다른 자서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객관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으며,


상당한 분량을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시대상과 역사적 주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결혼한 이야기도 없으며,

중간에 갑자기 부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할 뿐이다.


시대의 주요 사상적인 흐름과 변화에 대해서

굉장히 쉽게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특히, 노동자들을 위한 쉬운 교육을 강조했던 터라

문체나 표현들도 다른 지식인들과 다르게 굉장히 쉽게 쓰여있다.


괜히 세계의 5대 자선전으로

손 뽑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사람을 사랑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는 여타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사회주의 사상가들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면모이다.


+


이 책에서는

사상가로써, 혁명가로써의

그의 고뇌가 매우 담백하게 드러난다.


이상을 꿈꾸고,

가슴이 먼저 움직였지만,

현실은 계속 암담하기만 했고,

그 속에서 끝없이 실천적 대안을 찾아나갔다.


아나키즘으로 시작해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행동적 아나키즘을 완성했고,

이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선전에서 찾았으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나중에 노년에는

생디칼리즘에 이어서 협동조합운동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끝없이 고민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실천에 옮겼다.

그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전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그 이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는 실패한 듯하다.


폭력적인 방법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교육을 통한 자발적 혁명을 주장했지만 ,


결국은 레닌과 마르크스의 방식을

맹렬하게 비난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이론의 실천적 한계를 깨달았지만,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어떻게 보면,

사상가들의 문제의식은 비슷하고,

그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상향을 향해서 가는 방법과

그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델에서는 차이점이 나타난다.

(이는 많은 혁명가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꿈꾼 사회는

모두가 잘 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이다.


폭력을 사용하든,

자율적인 연대를 사용하든,

아니면, 아예 완전히 자유를 보장하든... 


마르크스도, 크로포트킨도, 애덤 스미스도

방법과 이상향은 달랐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과연 모두가 잘 사는 그런 사회는

어떤 모습이며,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과연 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답을 협동조합에서 찾고 싶었는데,

과연 협동조합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사상적인 대안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협동조합이

최근 들어서는 실천적인 대안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세상을 뒤바꾸고 싶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너무나 협소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사상적인 대안으로 협동조합은 한 쪽 편에 밀려있었다.


크로포트킨도 아나키즘과 협동조합이

상당한 부분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책에서도 이야기하면서도 딱히 주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나키즘도 맑시즘도 무너진 오늘날

자본주의와 기존의 체재안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협동조합만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은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협동조합은 철저히 이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필요에 의해서, 실천에 의해서 시작되기에

현실과 이상이 따로 놀았던 다른 사회주의 사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초창기 사회주의 사상의 3가지 흐름 중

가장 주목받지 못하고 밀려나있던 협동조합운동이

이제는 어찌보면 사회주의 사상의 새로운 희망이 되는 분위기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세상을 한꺼번에 뒤집지는 못하지만,


작지만 조용한, 그리고 꾸준한 혁명이

협동조합만이 가지는 매력이자 강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당장의 큰 효과를 거두지는 않지만,

더더욱 협동조합에 기대를 걸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협동조합운동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협동조합이 많이 생기게 된다면 세상은 분명히 바뀌게 될 것이다.



한 혁명가의 회상
국내도서
저자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김유곤역
출판 : 우물이있는집 2009.08.20
상세보기


열린 공동체 사회 Books/사람/이야기 Kropotkin, 러시아, 마르크스, 무정부주의, 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 아나키즘, 애덤 스미스, 자유연대주의, 자유연합주의, 크로포트킨, 한 혁명가의 회상, 행복한 사회, 혁명가, 협동조합, 협동조합운동

[사회적경제] 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1편: 돈은 빚이다.

2013.12.11 17:47
EBS 자본주의 - DVD
배급 : .
출시 : 2012.12.03
상세보기


자본주의를 5가지 주제로 다른 5부작 다큐멘터리


그 중에 역시 제일 임펙트가 강한 것은 바로 1편이었다.



2편(브랜드와 소비)과 3편(금융상품)은 약간 실제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내용이 좀 부실하다는 아쉬움이 많이 강했고,


4편(애덤스미스와 칼마르크스)과 5편(케인즈와 하이에크)은

나름 열심히 다루려고 했으나, 압축해서 다루려고 하다보니 여기도 한계가 드러난다.


하지만, 4편의 결론은 너무나 훌륭하고 인상이 깊었다.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를 왜곡했고

공산주의는 칼 마르크스를 왜곡했다.


둘 다 사람을 사람으로 따뜻하게 보고 싶어했던 사람들이다.


워낙 호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이기에 다시 한 번 찾아서 보았다.


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다시 보기  < EBS 홈페이지에서 영상 보기 클릭


+


이에 대한 정규재(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비평도 있다. <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


정규재 논설위원은 백분토론에서의 어이없는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상대방을 깍아 내리며 잘난 척하는데, 사실 자신은 별 근거도 논리도 없다는...)


특히... 미국의 달러를 찍어내는 기관인 연방준비제도에 대해서는

정규제 논설위원은 정부기관이 맞다고 우기면서 또 한 번 괘변을 드러낸다.

(쑹홍빙의 책 <화폐전쟁>을 언급하는데, 과연 그 책을 읽어는 봤나 심히 의심스럽다.)


연방준비제도의 지분은 민간은행들이 53%를 가지고 있다. 

(설립 시에는 약 40% 정도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는...)


법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대통령이 의장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통제를 받는 민간 은행"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이다.

 

JP모건을 비록한 금융가들과 공화당이 손잡고 만들려는 것을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법안을 대폭 수정한다.

(화폐전쟁에서는 이것을 월가가 2가지 계획을 가지고 윌슨 대통령을 이용해 먹은 것으로 설명한다)

 

연방준비 제도는 민간이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사회는 워싱턴에 위치해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으로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은

의회와 정부의 승인없이도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들은 법적 의무 사항이 없음에도 연방준비제도의 활동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규제 논설위원은 법률상의 통제권과 임명권만 가지고

한국은행같은 국책은행과 똑같은 정부 기관처럼 열을 내면서 우긴다.

 

나름 유투브 조회수가 꽤 높던데, 참... 한심하다...

좀 많이 지루해서 끝까지 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암튼 연방준비제도는 지금까지 실시한 주요 정책이

모두 실패한 것으로도 악명높다.

(1920년 주식폭락, 1935년 경기 붕괴의 주요 원인 제공)


그리고 지금도 금융 위기에 대해서

별 다른 대안을 못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째 0% 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돈을 찍어내고만 있는 상황(양적완화)이다...


+


자본주의 1편의 핵심 내용은


1. 은행이 신용(돈)을 창출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은행은 지급준비율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은행이 최소한의 예비적인 돈(10%)만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대출해주면서 실제 돈도 없으면서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한번에 고객들이 돈을 찾으러 오지 않는 한

은행은 계속해서 돈을 돌릴 수 있다.

(이를 뱅크런이라고 부르며, 어떤 은행도 뱅크 런이 일어나면 망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돈을 운영하면

은행은 실제 가지고 있는 돈의 10배까지 대출을 해줄 수 있다.

(최초 시점의 이야기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까지 회수함으로 더 늘어나게 된다.)



2. 물가와 돈의 관계를 설명한다.


실물도 없이, 은행이 계속해서 대출을 돌리면서 돈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사람들은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도 추가로 갚아야하니 다시 또 대출하게 된다.


시장에 돈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상승하게 된다.



물가가 상승하고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돈이 없으면 그냥 은행에서 빌려다가 이자를 갚으면 되니까...


문제는 물가가 하락하고, 시장에 돈이 적어질 때이다...



3. "이자"라는 것은 생산과 상관없이 생겨난 괴물이다.


숫자로만 존재하던 돈을 갚을 때는

반드시 이자라는 것을 지불해야 한다.


근데, 이자는 돈을 찍어낼 때 만들어 낸적이 없는,

시중에서 돈이 돌면서 생겨난 파생적인 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자까지 모두 갚으려면

시중에 있는 돈을 모두 갚아도 항상 모자를 수 밖에 없다.


결국 누군가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4. 자본주의는 "의자놀이" 다


빚을 많이 가진 사람이 파산해 버리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사람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은행이 됐던, 개인이 되었던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돈의 흐름이 계속해서 끊어지게 되면,

시중에는 돈이 더 줄어들게 되면서 물가는 더 하락하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고, 파산을 하는 사람을 줄을 있게 된다.

 (이 것이 바로 디플레이션이고 이것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금융 위기라 부른다.) 



결국은 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서 누군가는 파산을 맞아 희생되야만 한다...


제작진은 이러한 현상을 '의자놀이'에 비유하며,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1부를 마감한다.


+


솔직히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 공감하면서 몰입하면서 봤다~~


근데 '의자놀이'라는 결론에서는

너무 나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경기가 않좋아지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이것을 과연 의자놀이에 비유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시간관계 상 내용을 생략해서 논리가 갑자기 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비약을 하면서 감성적으로 선동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의자놀이도 그렇고, 욕조 속의 물고기 비유도 그렇다. 이러한 비유들은 화폐전쟁에 살짝 나온 비유들임)


정부가 나서거나, 아니면 시민끼리 힘을 합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한다면 제로섬 게임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 그렇게 냉혹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니까~


물론 1부에서는 문제 제기로 화두만 던지고,

5부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몰아간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의자놀이라는 결론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너무나 절망적인 결론이다.


특히 5부에서 제시한 대안이 복지자본주의라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대안을 찾은 것이기에 사실상 논리상 말이 안된다.


이야기를 정리하려다보니, 마지막에 과욕을 부린 듯한 느낌?

너무 제작진의 주관이 들어간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는가?

그리고 불황기에는 반드시 한 명 한 명 힘없이 죽어야만 하는가?


갑자기 누군가 새로운 탈출구를 뚤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역사적으로 전쟁과 식민지 개척이 이런 역할을 해왔다.)


복지자본주의 이외에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을까?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자본주의'라서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춘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만 잔뜩 지적해놓고 대안은 너무나 부실하게 마무리를 한 듯한 느낌이 강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복지자본주의( or 자본주의 4.0)와 사회적 경제(or 협동조합)을 두고

좀 더 심도있게 접근해봤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열린 공동체 사회 Study Room/Social Economy EBS, 다큐프라임, 달러, 디플레이션, 마르크스, 뱅크런, 복지자본주의, 사회적 경제, 신용, 애덤 스미스, 연방준비제도, 은행, 의자놀이, 이자, 자본주의, 자본주의4.0, 정규제, 지급준비율, 화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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