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다상담 10 - '꿈' 편

2014.09.26 22:24


꿈을 가지면 안된다.


우리는 꿈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꿈은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살게 만든다.


꿈을 생각할수록 현재를 살기 어려워진다.

내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즐겁게 놀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러 산에 가고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산을 가는게 좋은 것이다.

여행은 그냥 가는 것이다...
항상 가는 여행지는 확인 하러가는 것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목적없이 돌아다니고~ 그냥 편히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 것은 
목적지를 정하고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정한 순간 과정은 무시될 수도 있다.
삶은 과정이지만, 결과만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꿈은 2종류로 나뉜다. 

1) 현실을 못보게 만드는 꿈
- 개꿈, 그저 바라는 허상, 꿈에서 허덕이며 불행하게 만듬
- 현실을 은폐하는 꿈

2) 현실을 보여주는 꿈
- 꿈을 알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게 만듬
- 건강하지만, 현실은 아직 불행한 상황


꿈 자체가 없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꿈을 포기해버린다.

풍경과 현실은 다르다
산을 구경하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의 감정은 다르다.

꿈이 강할수록 현실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강하면... 
삶은 고난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일제시대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있다.
1940년대 독립에 대한 꿈을 접은 사람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정주이다.

우리 시대의 꿈과 당나라 시대의 꿈은 다르다.
우리 시대의 꿈은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꿈일 확률이 높다. 

막상 해보지 않으면 내것인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한다. 
해보고 신나면 내것이고, 했는데 욕이 나오면 내 꿈이 아니다. 

내 꿈인지 남의 꿈인지 알려면 이루어봐야 알 수 있다. 
꿈의 수준에서는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여행갈 때 땅끝마을에서 달마산은 가봐야한다.
산에 올라가봐야지, 산을 갈지 말지 버릴 수 있다. 

꿈을 얻는 순간, 앞이 보인다. 

죽을 때 우는 건 현재가 좋은거다
천국간다고 생각하면 죽는 것은 기쁜거다

연애를 하면 좋은것이 현재가 즐거워진다.
예술도 좋은것은 현재를 즐겁게 해준다.

여행이 매력적인 것은 매너리즘을 벗어나게 해준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강신주, , 다상담, 벙커1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3 -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2014.04.25 14:05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내용을 나눠서 정리했다.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3 -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지난 포스팅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나오기 전의 배경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두 사람의 실제 인생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한다.


다시 말하지만, 역시나 강헌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진짜 강추)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03-2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1부 강의 내용이 서론에 가까웠다면

2부 강의 내용은 본격적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삶을 다루고 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 ~ 1791)의 본명은 
<볼프강 오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테오필로스 모차르트> 이다.

모차르트는 테오필루스라는 말을 좋아했는데,
서명을 할 때, ‘아마데’를 사용했고, 비슷한 뜻을 가진 아마데우스를 그냥 미들네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데우스는 '신이 사랑하는’ 뜻을 가졌는데,
모차르트는 빈의 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나마 사이가 좋았던 귀족도 일찍 죽어버렸다.

로베르트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해버린다.
 
“그는 천재도 아니고, 신동도 아니고, 궁정사회의 시민 음악가였다. 
이것이 그의 본질이고, 비극의 시작이고, 하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의 원동력이다."

살리에리는 궁정사회의 궁정음악가였기에, 아무런 고민이 없었으나,
모차르트는 궁정사회의 시민음악가였기에, 끝없이 괴로운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잘 알려졌듯이 당대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6살때부터 12살까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순회연주를 다녔는데,

이 순회연주에서 모차르트는 큰 명예를 얻었으나,
실제로는 별로 돈벌이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나, 6살 때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지만,
9살 때는 이미 한 번 돌았기에 그다지 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슈퍼스타가 되어버리면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사회적인 사교력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마이클 잭슨이 20살까지 제대로된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과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근데, 당시 음악가는 귀족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찌보면 어렸을 때 모차르트의 이런 성장과정은 그의 인생에 독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모차르트는 찰스부르크라는 자유로운 도시에서 성장했다.
모차르트 이외에도 카라얀이라는 음악가를 배출한 이 작은 도시는
유럽의 동서남북의 모든 감각이 모여있는 작지만 희안하고 독특한 동네였다.

"게르만주의와 라틴주의가 활홀하게 만나 키스한 곳"

찰스부르크에서 자란 자유로운 영혼이 빈이라는 궁정사회를 선택한 것은 결정적 실수였다.

당시,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분권적인 국가에서는
음악가는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음악 도시였던 빈은
함부르크 왕조라는 중앙집권적인 절대 왕정이 지배하고 있었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더 인기가 좋았는데,
모차르트는 끝까지 빈을 고집했기에 그의 인생은 꼬일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음악가가 아니라, 철학가나 작가였다면 
동 시대의 칸트처럼 자신의 재능으로만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건축과 음악은 귀족의 지원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천재성은 인정받지만 그 어느 귀족도 모차르트를 지원해주지 않았다.

+

하지만, 모차르트가 처음부터 빈에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뮌헨-만하임-아우구스브루크-파리-로마-피렌체-나폴리-런던를 돌면서
구직활동에 완전히 실패했던 모차르트는 찰스부르크에 돌아와 오르간 부연주자가 되지만,

콜레라도 대주교와 사사껀껀 대립하면서,
결국 뮌헨으로 도망갔다가 빈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함부르크 왕조의 수도였던 빈은
최고의 도시이지만 매우 변덕스럽고, 속물주의적 동네였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그늘인 찰스부르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차르트는
너무나 몽상가였기에 굉장히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3년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날렸기에 인지도가 있었고,
천재적 피아노 연주 실력이 있었기에 개인 레슨을 시작해 연주 기회를 늘려나갔다.

당시에는 공개 연주회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예약연주회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마침내 왕실의 의례로 오페라를 제작했으나,
모차르트는 그의 실험정신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신뢰를 잃게 된다.

모차르트의 공연을 본 왕은
"그대의 작품에는 음이 너무 많은 것 같소"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당시, 오페라는 설명을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모차르트는 모든 내용을 음악으로 처리해버리는 획기적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고,
제작 당시부터 여배우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왕실과 귀족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고,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같은 불후의 명작을 통해 귀족을 씹으면서 적을 두었고,
1789년 예약연주회마져 완전히 실패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미카엘 프루베르트나 프리메이슨 쪽 사람들의 후원과
귀족들의 가장무도회의 배경 음악을 만들어 주면서 생계를 유지해나간다.

가부장(아버지)와 봉건영주(대주교)로 부터의 탈출하고자 했던 모차르트는 
절대 아부하지 못하는 성격이였고, 사실은 끝없이 사람들의 사랑받고자만 했었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이념이 부재했기에 투정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계몽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없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빈에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죽기 3년전에야 깨달았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 ~ 1827)은
모차르트보다 14년 뒤에 태어났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작곡가로 활동한 것은 모차르트가 죽은 이후였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갖지는 못했지만,
베토벤을 키운 것은 8할이 수 많은 컴플렉스였다.

하이든이 무어인이라고 욕할 정도로 용모는 형편없었고,
재능이 부족한 어린 시절 모차르트를 흉내내서 공연을 다니기 위해서 나이를 3살이나 속였다.
아버지의 학대로 자랐고, 벨기에계의 독일 귀족이라고 알려졌지만 그의 신분도 사실은 속인 것이였다.

프러시아계 사생아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후에 조카 양육권을 가지고 재판을 할 때 서민 재판장에 선 것으로 봐서는 귀족이 아님은 확실한 듯하다.

사회 부적응자로 유년시절을 보냈던 베토벤은 
성격도 굉장히 파탄적이였고 분노를 조절하지도 못했으며,
평생 가계부를 썼을 정도로 돈에 대해서 처절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30살이 되면서부터는 활성화된 음악시장으로 본격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자신만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작품도 못만들었던 21살의 나이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베토벤이 태어난 본이라는 곳은 
카톨릭의 영향이 강했던 보수적인 지역이였다.
훗날 보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랑크푸르트를 누르고 서독의 수도가 된 지역이였다.

하지만, 프랑스와 너무 가까워서 계몽주의가 빨리 전파되었고,
베토벤은 진보적인 본의 지식인 층의 영향을 받아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베토벤은 항상 상킬로트(프랑스 하급계층 공화주의자)의 상징인 긴바지를 입었다.
다른 음악가들이 하인의 상징인 반바리를 입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측면이다.

여기에 베토벤의 아버지의 무능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그래도 꽤 유명한 음악 교육가였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매우 성격도 문제고 능력도 부족했기에 베토벤은 이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첫 스승이였던 네페가 일루미나티의 열성 지지자였고,
슈나이더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자유는 관념적 추상적이였고,
베토벤은 평생을 공화주의자로 살았지만, 실천으로 옮긴 것은 전혀 없었다.

베토벤은 정신적 공화주의자만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루롤드 대공, 발트슈타인 백작같은 계몽귀족들과 교류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빈에서 35년을 살면서 80번의 이사를 했고,
귀족들과 함께 그들의 가족과 먹고 자면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성격의 문제 때문에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궁중 대악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루돌프대공도 추기경이 되었지만
베토벤이 귀족 질서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끝까지 그를 임명하지는 않았다.

베토벤은 끝없이 귀족의 여인들만 사랑했고,
신분상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끝없는 사랑만 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모두 사회적 인정을 받기를 꿈꾸었던 사람이였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귀족의 후원이 끊어졌을 때 생계가 어려웠지만,
베토벤은 공개 연주회와 출판 인쇄 산업을 통해서 귀족 눈치를 보지 않아도 생계가 가능했다.

모차르트의 꿈은 자기의 목적대로 쓰는 것이였으나 먹고 살아야했으나,
베토벤은 서양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적에 의해서 곡을 쓸 수 있었던 사람이였다.

베토벤도 헌정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지만,
이미 곡을 만들어놓고 귀족에게 억지로 헌정해서 돈을 뜯어가기도 했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적 공통점은 피아노라는 악기로 빈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둘 다 피아노 즉흥 연주가 매우 뛰어나고,
부르조아 사회에서 부르조아 악기로 자리잡는데 기여를 했다.

피아노는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퍼 포리가
메디치가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으며, 하프에 비해서 표현을 확대시킨 악기였다.

19세기 산업혁명기에 피아노는 최대의 산업이였으며,
거실에 피아노가 있는 것은 부르조아적인 삶의 상징이 되었다.

1850년대 1년에 5만대씩 생산되면서,
피아니스트가 인기를 얻었고, 최초의 스타는 프란체 리스트였다.

이러한 피아노가 대중화되는 교두보가 되는 것이 바로 베토벤과 모차르트였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무려 39곡이나 작곡했지만,
당시에는 오페라와 교향곡이 대세였기에 실제 피아노 솔로 연주가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바로크 시대에만 해도 그냥 곡이 쭉 직진으로 연주되면서 끝났는데,
소나타 형식이 도입되면서 음악이 서사적인 플롯의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소나타의 형식이 되었다는 기악 음악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고,
기악의 표현이 입체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철학적으로는 변증법적 토대에서 만들어졌다.

기악 음악과 소나타 형식은
19세기 후반까지 낭만주의 시대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형식이 된다.

하이든-모차르트를 거쳐서 베토벤에 고전주의는 완성되었고,
낭만주의 시대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베토벤은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베토벤은 또한 당대 민요를 수집해서 작품에 녹여냈고,
시민들이 음악을 즐기기 시작한 시대를 만들어낸 장본이였다.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위대한 시대에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였고,
베토벤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 시민 2만명이 모였고 역대 궁정악장들이 베토벤의 관을 들고 장지까지 갔다고 한다.
(베토벤은 궁정악장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결국 되지는 못하고 대신 그들이 그의 관을 무덤으로 보내준다.)

베토벤도 모차르트 못지않게 불우한 시대를 지냈으나,
그래도 베토벤은 귀족들과 적당히 코드가 맞았고 상당한 후원을 받았다.
또한, 시기적으로 시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할 수는 있었다.

+

하지만 베토벤의 삶에 대해서는 과대 포장된 경향이 좀 있다고 한다.

베토벤은 초기 작품에서부터 귓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베토벤 제자 체르니의 회고에 따르면 완전히 멀지는 않았을 확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귀먹어리가 되었다는 소문은 베토벤에게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베토벤이 쓴 하일리겐슈터트의 유서나
그의 기존 행동을 보면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베토벤을 공화주의자라고 보기에는 뭔가 구린 측면이 많았다고 한다.

보나파르트가 빈을 점령하면 파리로 가려고 했다는 점이나,
에로이카라는 이름을 짖는 과정도 뭔가 이익을 챙기고자 한 측면이 있다.

또한, 181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고 후원도 끊어지자 큰 좌절을 겪었고,
1814년 워털루 전투를 다룬 <월링턴의 승리>, <영광의 순간>를 작곡하면서 큰 돈을 벌게 되고,
베토벤은 전후 협정을 하는 빈회의에 초대를 받아 보수파들과 흥청망청한 삶을 살게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노년에 변절한 예술가들이 부귀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향후 10년간 로시니의 재기발랄한 오페라가 대세를 이루면서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베토벤은 다시 내면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전형적인 경찰국가가 되어가었고,
베토벤은 온갖 소송에 휩싸이고 성병에도 걸리면서 인생의 내리막길로 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발표한 두 곡은
그의 노년을 너무나 아름답게 만드는 명곡이였다.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을 프로이센 왕에게,  "작은 미사"를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하며,
같은날 이 두 곡을 초연하는데, 이 두 곡은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명작으로 남게 된다.

베토벤은 후대에 수많은 평가를 받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베토벤의 곡을 높게 평가한 반면,
헤겔은 베토벤을 개인적 감정의 포출이라고 굉장히 폄하하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위대한 점은
시대에서 가장 극적으로 진보적인 이념을 음악을 통해서 들어내려고 했으나,
그 안에는 신념뿐만 아니라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헌 선생은 설명한다.

합창의 4악장은 평생 품고 있던 내용은,

"서롭고 가난한 사람들도 다같이 즐겨라 "
"고뇌을 넘어서 환희를 모든 사람이여 즐겨라"

강헌 선생은 베토벤에 대한 가장 명확한 평가로 다음을 뽑는다.

"사이언스(기술)를 컨시어스(의식 혹은 양심)로 만들었다"

+

베토벤이 현대 음악의 영원한 챔피언일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부르주아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 강헌 선생은 설명한다.

베토벤은 부르주아 시대가 열리는 시기를 이끈 음악가였다.
그리고 베토벤은 부르주아 시대가 역사를 배신하는 것을 보지 않고 죽었다.

그렇기에 베토벤의 음악에는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갈등은 있으나 의심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낭만주의 후계자들의 음악에서는
부르주아적 이상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믿음이 흔들림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완벽하게 부르주아를 수호했던
베토벤의 음악은 부르주아 시대를 대변하는 최고의 음악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흐에 대한 부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한다.

바흐는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개신교도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근면 성실했으며, 모든 악보의 말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작곡가였다.
이전에 유명한 카톨릭 신도는 있었지만, 개신교 신도 음악가 중에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부르주아적 이상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는 인간형이였고,
유태인 금융자본가의 자손이였던 멘델스존이 그를 무덤에서 끄집어 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대에도 유명하지 못했고 75년간 잊혀져있던 바흐라는 인물은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의 대변인으로 추앙되기 시작했고 갑작스렐 바흐의 예찬이 시작된다.

바흐를 살려낸 것은 부르주아의 승리곡이였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신동이 아니였다.
그는 오히려 아버지와 시대가 만든 괴물이였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계였다.

모차르트의 싸움으 어떻게 보면 개인이 자아를 찾고자 하는 싸움이였고,
그의 삶에 있어서는 그냥 편히 쉬고 있는 현실보다는 음악에 몰두해서 작곡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편했던 것이다.

그의 삶이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그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반면에 베토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보다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세상에 파괴시키지 못한 규칙은 없다."

계급적 투쟁에서 승리한 부르주아의 자신감이
베토벤의 미학적 자신감에서도 흘러 넘치고 있었다.

불과 몇 년차이가 나지 않지만, 모차르트가 투정으로만 끝냈던 싸움에서
베토벤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째낀 완벽한 승리자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파괴시킬 수 있는 권능이 베토벤과 그의 시대에 등장했던 것이고,
그래서 베토벤은 영원한 승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

참~~ 주옥 같은 강의 내용이다.

클래식에 무뇌한이던 나를
고전주의 음악 100년의 역사를 꽤뚫어보게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시대가 만든 투정꾼과 투쟁가의 삶
그리고, 그들을 갈라놓았던 천재적 재능과 이념적 기반의 차이...

천재적인 재능으로 수백곡을 작곡한 모차르트보다
많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념적으로 무장한 베토벤이 왜 더 칭송받는지,

그리고, 승자의 역사가 만들어낸 바흐와 베토벤의 업적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과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 기반에 깔려있는 정신이 중요하고,
그것이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같다.

(물론, 역사와 시대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나의 행동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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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3 -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2014.04.25 11:39

어느 새 강헌 교수의 광팬이 되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미국에서 일어났던

댄스음악에 기반을 두고 시작되었던 Jazz와 Rock'n'Roll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Jazz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Rock'n'Roll


1960년대~ 1970년대 한국에서 일어났던

청년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모던 포크와 그룹사운드의 이야기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2 -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너무나 맛깔나는 강의는 같은 강의를 꼭 두 번씩 듣게 만들었으며,

다시 내용을 정리해서 기록해두게 만들었다.


진짜 나중에 하나로 묶어서 책으로 내도 좋을 듯하다.



강헌 교수가 이번에 건드려준 부분은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유럽에서 일어났던

클래식음악의 고전주의 시대에 일어났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야기이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03-1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 방송듣기


하지만, 전체 역사적 흐름을 알기 위해서


바흐 - 하이든 - 살리에리 - 모차르트 - 베토벤 으로 이어지는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의 이야기가 차레로 이어진다.


(조연으로 비발디, 헨델,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의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음악사 수업시간에 딱딱하게

바로크 - 고전주의 - 낭만주의로 흐름이 이어진다고 외웠던 내용이~

이렇게 흥미진지하게 이어진다니~~ 너무나 재미지고 흥미진지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원문 강의를 들어보시면 좋을 듯하고, (완전 강추!!)

개인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강의 내용을 재편집해서 다시 정리해두기로 했다.


+



일단,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야기

아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도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랑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본 단락의 내용은 강헌 선생의 강의에 없는 내용임을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타고난 천재이자 신동이였던 모차르트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베토벤


약간의 시간차이를 두고 등장했고,

둘 다 당대 최고의 음악시장이였던 비엔나에서 활동했지만,


조금은 다른 색깔의 음악을 추구했기에,

같은 고전주의로 분류되지만 베토벤은 낭만주의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곡은 가볍고 선율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베토벤의 곡은 무겁고 장중해서 모티브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베토벤의 곡들은 각각의 악기들이 따로 연주하면 별로지만,

모든 악기가 함께 조화롭게 연주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특징은 그들의 작곡형태 차이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순십간에 곡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 밤 사이에 오페라를 만들어내기고 했고, 그의 대표적인 교향곡인 39-40-41번은 단 6주만에 만들었다.


'나는 머릿속에 완성된 스코어(악보)를 그저 오선지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정도였기에, 그냥 악보를 찍어내는 기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600여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천재성에 기반한 결과인 것이다.

(너무 쉽게 써서, 당대에도 수많은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노력도 안한 다는 오해도 받았으나, 실제로는 공부로 열심히했다고 한다.)


반면, 베토벤은 수없이 악보를 고치면서 정교하게 곡을 완성해나간다.

너무 진지하기에 좀 어둡고 무겁다는 의견도 많이 받고 있지만, 그 많큼 대작으로 평가받는 곡들이 많다.


이 둘의 삶에 대해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들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아마데우스> (1984)

베토벤의 삶을 그린 <불멸의 연인> (1994)


그런데, 영화라는 것이~~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재미를 위해서 다소 왜곡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찌보면 이 둘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극화된 재미에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다소 왜곡된 편견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나도 당연히 그랬고, 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리에리라는 경쟁자의 질투를 받은 불행한 천재 모차르트

한 여인을 영원히 사랑하고 장애를 극복해낸 악성 베토벤


그렇다면, 실제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강헌 선생은 이들의 삶을 역사적 배경과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해주고 있다.


+


역시나 역사적 흐름속에서 이들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과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상황에 대해서부터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당시 유럽에서 음악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시작했기에

이들은 신분제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살던 시기는 급격한 격동기였다.


1760년대부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은 전후로 계속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이전의 바로크 음악 세대였던

바흐와 헨델의 시기까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이후의 낭만주의 음악 세대였던

멘델스존, 바그너, 비제, 베르디 같은 음악가들이 비교적 근대사회에 살았던 것에 비해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 까지는

역사적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음악 활동을 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주로 활동했던 불과 16년의 차이는

숫자로는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음악가의 신분은 철저히 중간 계급이였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게스왈드라는 귀족출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일 뿐이며,

하층사회 출신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귀족들은 자녀들에게 음악 교육을 반드시 시켰지만,
이는 교양 수준으로 이어진 것이며, 절대 직업적으로 활동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천민 출신들이 음악을 했던 고려-조선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이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우리 역사상 위대한 작곡가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인도에서는 주로 최고 권력층인 브라만 출신들이 음악을 했는데,
이는 문화적 전통성과 우월성으로 이어지면서 영국의 식민지배를 200년이나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보다 더 발달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화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의 음악가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기에,
유명해지면 귀족과 겸상을 하면서 상류사회의 삶을 살 수 있고
반면에 뜨지못하면 생계를 걱정해야만 하는 완전 하층 계급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들에게 음악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에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철저히 경쟁을 통해서,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기에 경쟁력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보다는 귀족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고,
하이든 - 살리에리가 대표적으로 귀족의 인정을 받은 케이스라면,
모차르트 - 슈베르트가 대표적으로 인정을 못받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31살까지 결혼도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매독걸려서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음악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전 세대인 바로크 음악을 좀 알아야만 한다.


중세 음악까지는 너무나 단순한 음악의 형태였기에,

음악사에서 별로 안다루고 바로크 시대부터 주로 이야기를 한다.


바로크 시대에 음악가들 중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은 3명 정도이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비발디 (1678 ~ 1741)

독일의 요한 세바스챤 바흐 (1685 ~ 1750)

영국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 ~ 1759) / 태어나기는 독일에서 태어났음


이 중에서도 바흐와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와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동갑내기 이 두 작곡가의 삶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독일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죽을 때까지 독일 안에서만 살았고 당대에는 헨델과 같은 명성을 얻지도 못했다.


10명의 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서 10살이 되기 전에 부모가 다 죽었고,

제대로 된 정규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기에 형 몰래 스스로 음악을 공부하면서 재능을 키웠다.


나름 명문 음악 집안이기에 바흐라는 작곡가만 60명이 넘는데,
이렇다보니 오히려 집안 내에서도 경쟁이 심했고, 큰형은 막내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재능을 경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마르 궁전의 음악가 시절에는 성문 문지기와 동급의 대우를 받았고,
쾨텐 궁전에서도 처음 6년은 평화의 시대를 지내지만, 성주가 결혼 한 이후에는 찬밥 취급을 받게 되었고,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악장 시험에서는 3위가 되지만, 1등과 2등의 기타 요구하는 잡무가 너무 많다고 그만두면서
과도한 업무를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성실하게 꾸준히 수많은 곡들을 작곡해낸다.

하지만, 바흐는 무려 1300여곡을 썼냈지만,
당대 사회의 주류를 이루였던 오페라는 단 한편도 쓰지 못한 체 사회의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누구나 나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나처럼 쓸 수 있다.” 

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그는 너무나 근면 성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이러한 그의 삶은 죽은 후 75년 뒤에 그를 화려하게 부활시키게 만드는 단초가 되어준다.



반면, 헨델은 당시 유럽을 휩쓴 슈퍼스타였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독일과 피렌체 등에서 활동하다가

1712년이후에는 런던에 정착해 귀화했으며,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살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는 70개의 오페라를 만들었고, 그 중 40개 이상을 흥행에서 성공시켰다.

당대에는 오페라를 얼마나 성공시켰는가가 그 음악가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였고

오페라를 2~3편만 성공시켜서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먹고살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헨델은 전무후무한 존재였고 성악과 기악까지 모두 섭렵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지만,

이후 역사가들에게서는 오히려 바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헨델이 죽은 것은 1759년이지만,

역사가들은 바로크 음악의 종료를 바흐가 죽고 살리에리가 태어난 1750년으로 여기고 있다.


+



살리에리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지만,

대중에게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2인자로만 기억되고 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가 쓴 <아마데우스>라는 희극 때문인데,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심지어는 살리에리 컴플렉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살리에리(1750-1825)는

시기적으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이였고,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모든 음악가의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였던 빈의 궁정악장의 자리를

무려 36년간이 차지하면서 죽기 1년전에야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게 된다.


강헌 선생은 살리에리가 너무 저평가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모차르트를 시기했다는 풍문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살리에리는 4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라는 제자를 가르쳤으며,

너무나 잘 나갔기에 모차르트를 시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욕을 항상하고 다녔기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싫어한다는 풍문은 당시에도 있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노골적으로 궁정악장 자리를 탐했으나 하급 관료도 되지도 못한 사람들였던 반면에,


살리에리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시기할 이유가 별로 없었던 사람이였기 때문이라고 강헌 선생은 설명한다.

하지만, 당대 또다른 최고 명성의 하이든이 모차르트를 극찬했고,
주류에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음악을 찍어내듯이 만들어내는 모차르트에게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권력의 속성을 너무 모르는 순수한 강헌 선생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권력자는 아무리 권력을 가져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나와 다른 성격의 놈, 특히나 자기를 대놓고 욕하는 놈이 신경 안쓰일 수는 없다.

여하튼, 살리에리는 당대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역사에서는 그냥 시기심 많은 2인자로 사람들에게는 기억되고 있는 안타까운 인물이 되고야 말았다.

반면, 영국에서는 헨델의 뒤를 이어서 하이든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이든(1732 ~ 1809)은 
오스트라이 동쪽 로라우에서 마차바퀴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역시나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하이든은
성당 소년합창대에 들어가 성가대원이 되지만 변성기 이후 쫒겨나게 되고,
이후 10년간 본의 아니게 길거리를 떠돌며 예술적 자유기를 경험하게 된다.

1759년 보헤미아의 칼 폰 모르친 백작의 궁정악장에 취임했지만 그가 파산하면서 실업자가 됐다가,
1761년 헝가리의 에스트라하지 후작 집안의 하인으로 들어가 완전 출세한 이후에도 평생 그 신분을 유지하게 된다.

하이든은 '파파'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충실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했고 그의 음악에서도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잘 들어난다.

1790년 명예악장이라는 직위를 받으며 현직에서 물러나 자유의 몸이 되었고,
1791년 런던으로 건너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노년까지 최고의 명예를 누리게 된다.

하이든은 헨델처럼 영국국왕으로부터 귀화를 권고받았지만,
끝까지 오스트리아 국적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스트리아 국민들로부터는 큰 사람을 받았다.
(하이든 두개골 도난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살리에리와 하이든은 모두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동 시대에 활동하였는데 그들의 관계도 참 기묘하기 그지 없다.

일단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와 천적이였지만,
하이든과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면서도 서로 존경하는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고,
이 둘은 서로서로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잘 알려졌다.

반면, 베토벤은 살리에리와 하이든을 모두 스승으로 모셨지만,
자신의 스승들과의 사이는 너무나 최악이였다.

베토벤은 공식적으로 스승이 4명이였는데,
첫 번째 스승인 네페를 제외하고는 다들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1972년 런던에서 활동하던 하이든이 빈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베토벤은 하이든을 찾아가 배웠으나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같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느긋한 하이든의 교습법이
불같은 열정으로 불타는 베토벤에게는 성에 안찾던 것같고,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에 스승의 이름을 빼버리고 말았다.
이에, 하이든은 베토벤을 방자한 무어인이라고 욕하면서 베토벤을 맹 비난한다.
(성격좋기로 유명했던 하이든이 외모를 가지고 욕했다는 것을 보면 진짜 화가 많이 났던 것같다.)

베토벤이 이후 살리에리에게도 찾아가서 음악 수업을 배웠는데,
살리에리는 오페라 작가라서 성악음악을 중시했고, 이탈리아 음악의 선율 감각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첫 번째 오페라 작품에 대해서
살리에리가 선율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씹었고, 이후로 베토벤은 완전히 삐져서 쳐다도 안봤다고 한다.

생각보다 포스팅이 너무 길어져서,
이후의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3 -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헌 강헌, 고전주의, 낭만주의, 멘델스존, 모차르트, 바로크, 바흐, 벙커1, 베노벤, 불멸의 연인, 비발디, 살리에리, 슈베르트, 아마데우스, 클래식, 피터 쉐퍼, 하이든, 헨델

김현철의 나상담 - '불안' 편

2013.12.29 09:11

대구의 패션스타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박사는 아니라고 강조해서 이야기하네요)



전혀 모르는 쌩뚱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를 통해서 나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이다.

처음 들어본 방송인데,
내공은 장난이 아니신듯...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가보다는
그 내면에 숨겨진 심리와 근본적인 생각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다만, 답을 주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보니,
약간 서둘러서 의견을 개진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

대부분의 정신과 진료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더 아쉽게만 느껴진다... 좀 더 심오하게 파고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시간 관계상 서면으로 먼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주고자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하다...

명의들에게 줄을 서서 진단을 받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다만, 명의가 명의인 이유는
짧게 보더라도 정확하게 잡아낸다는 것에 있다.

그 이유는 숙련된 경험에도 있지만,
환자에 대한 뛰어난 집중력과 진심이 아닐까 싶다~

내용 중 흥미로운 상담 주제가 몇 가지 귀에 들어왔다~~
특히 몇 가지 답변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

[나이를 먹었는데도 아직까지 꿈이 없다면?]

꿈을 꾸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해야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나에게는 왜 꿈이 없는지를 고민하면서 힘들어 한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근데, 김현철 선생은 쉽게 답변한다.
꿈은 없어도 된다, 그냥 내가 있으면 된다.

생활이 무기력하고, 불안한 이유가
과연 꿈이 없어서인지, 내가 없어서인지 생각해보라~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답변이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꿈이 왜 있어야하는지에 대해서 부터 의문을 던진다.

많은 이들은 꿈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게된다,

왜 성공해야만 하는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냥 성공하지 않고, 지금 행복하면 안되나?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그냥 남들이 성공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꿈을 꾸고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하니까~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꿈을 꾸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
나에게 행복한 삶이라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근데, 없는 꿈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꿈이 없는가?
또한, 그렇지는 않다~

나 또한 꿈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꿈을 가지는 이유는 또한 다르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비루해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불안하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은 것이다.

+


[난 다 잘하는데 연애만 못한다?]

심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내가 틀릴까봐 불안해서,
인간관계에서도 성공하려고 하고,
인간관계조차도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고,
인간관계에는 악연과 인연만 있을 뿐이다~

내가 목표지향적 성공지향적 삶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 성향은 목표지향적이고 성공지향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30년간 교육을 받아왔고,
사실 지금도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
(성공지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완벽지향주의와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인간 관계만큼은 내가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하나님께 내어드려야하는 부분인데,
아직까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현철선생은 고민자에게
마지막으로 중요한 충고를 해준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느낄때 사랑은 찾아온다.

내가 외로워서,
스스로에 당당하지 못할 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사랑하고 혼자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써 진정으로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마지막 김어준이 나와서 던진 화두는
이 강의의 사실상의 결론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왜 그럴까?

결론은 의외로 명쾌하다.
바로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없다.
대부분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 불안해한다.
근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 수 있다면,
불안해할 일은 전혀 없다.

여기에서 진정한 용기라는 것이 튀어나올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주어진 환경과 현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 후 
원했던 결과이든 아니든 쿨해질 수 있다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도 없게 되어버린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수록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할수록
불안이라는 것은 점점 더 커지고 현재의 삶은 불행해진다.

생존과 번영에 대한 걱정에서 쿨해지고,
닥치는대로 살게되면, 예기치 못한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

자~~ 과연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현재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불안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이 행복이 사라질까봐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할 수도 있다.

어찌보면,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통제할 수도 없는 것들을 
붙잡고 끝없이 통제하려고하고, 심지어는 종교도 이용하게 된다.

하나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분이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

강의의 내용은
불안을 없에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불안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불안하지 않는 삶,
사실 그것도 그만큼 현재 가진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로 행복한 삶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 삶이
무기력한 삶이나 나태한 삶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불안하지 않는 삶은
다시 말하면 긴장하지 않는 삶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상은 더 혼란에 빠지고 발전할 수 없다.
세상을 살면서 적당한 긴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의 육체도 모든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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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동체 사회 Meditation 김어준, 김현철, 나상담, 벙커1, 불안, 주진우

죄와 벌 - 김수영 (1963)

2013.12.13 20:50

罪와 罰


남에게 犧牲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殺人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四十명가량의 醉客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犯行의 現場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김수영이

일자리를 찾아 다시 대구로 떠났을 때,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은 선린상고 2년 선배인

이종구와 잠시 살았던 일이 있다.


김수영이 돌아와 아내에게 돌아가자고 했지만,

아내 김현경은 이종구 곁에 남았다가 이종구가 죽자 김수영에게 돌아갔다.


김수영은 아내를 받아주지만, 이 때부터 학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자신을 떠났던 배신자에 대한 학대는 이 시를 쓴 후 끝나게 된다.


학대가 끝난 후 이 두 사람은 행복해졌을까?


+


철학자 강신주는 두 사람의 진정한 불행은

이 시를 쓰고 난 후 학대가 끝난 다음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폭력이 사라진 체 살기 시작하지만,

더 이상 사랑이란 감정도 미움이라는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김수영이 아내를 죽도록 미워한 것은

그 만큼 아내를 사랑하기에 가능했었다.


아내에 폭행을 할 때만 해도,

김수영은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


오직 아내와 자신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나가던 행인이 보이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때리던 우산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자신의 관계에서

아내보다 다른 것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더니, 이제 미움마져 끝나버렸다.


진짜 미워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이기적이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없게 된다.

미움과 상극의 감정인 사랑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진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


철학자 강신주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말을 인용한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둘의 관계에 엉뚱한 것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면,

상대방은 조연으로 전락하고 사랑은 끝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과정이 바로 결혼이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과정이지만,

결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가족, 재산, 명예, 직업 등)


그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그래서 강신주 박사는 이야기 한다.


사랑과 결혼을 할 때는

이혼하는 것처럼 하라고~~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김어준 총수의 말을 들으면 공감이 간다.


'이혼은 내가 하는 것이다.'


이혼은 잔인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결혼한다고 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축복해주지만,

이혼한다고 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잔인한 행동이면서도 굉장히 용기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사랑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나 조건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철저히 잔인하게 행동할지라도,


내 감정에 충실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사랑을 해야만 한다.


+


사랑을 하는 이유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이유도


상대방을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고,

나도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시작한다.

사랑을 열망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내가 행복하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목을 매는 이유도

사랑이 떠나면 내가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


< 벙커 1 특강 - 이 죽일놈의 사랑 中 에서 >


+


내가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을 배우는 것은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섭지만,

막상 타보면 금방 배울 수 있는...


넘어졌던 아픈 기억 때문에 겁을 먹지만,

막상 과감하게 도전하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맘에 드는 사람이 생겨도

차 한잔 하자고 먼저 이야기해보지 않는다.


일단 저질러보고

내 감정을 수습해보면

내 생각도 많이 정리될 수 있는데... 난 그게 안 된다.


강신주 박사의 말처럼

주변의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아직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나서 그런가?

아님 시작조차 안해봐서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나는 것인가?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열린 공동체 사회 Books/소설/시/문학 강신주, 결혼, 김수영, 벙커1, 불행, 사랑, 아내, 알랭 바디 우, 이 죽일놈의 사랑, 이혼, 죄와 벌, 철학박사, 행복

  1. 저도 김수영시인을 좋아하고 강신주박사님의 책과 강연을 즐겨듣는 사람입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내용을 다시 보고 싶어서 검색하던 도중에 들어오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갈하게 정리된글과 솔직한 리뷰..
    저도 어릴때는 소심(좋게말하면 섬세)하고 안정지향의 한량스타일이었는데
    20대 중후반부터 갑갑해서 못살겠더라구요.. 기억이 남지않는 삶이랄까..
    주변사람(특히가족)과 많이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고 하면서 제 맘대로 살게되네요
    애인에게도 모든걸 솔직하게 말하고 주인공으로 서로 만들어주고..
    특히 반대하는 결혼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고 승낙까지 받은 상황입니다.

    전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가치관과 감정을 제외한 부차적인것들은 가볍게 무시할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

  2. 공감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

  3. Blog Icon
    제이슨

    해당 시에 대한 다른 관점...(퍼온 글)
    -------------------------------------------------
    김수영은 왜 아내를 팼을까? 그 때는 세계적으로 흔했다.
    '오 헨리'의 단편집에도 마누라 패는 할렘가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도 어렸을 때 동생을 때린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안 때렸다.
    때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으면 안 때리게 된다.

    때리는 이유는 때리기로 해서 때리는 것이다. 타고난 본능이다.
    굳이 말하자면.. 찌질한 거다. 지식인은 이러한 찌질본능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김수영이 아내를 때린 이유는 충분한 지식인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이 있어서 '그만둬!' 하고 가르치면 바로 그만두게 된다.

    김수영에게는 그런 스승이 없었던 거다.
    만약 꾸짖는 스승이 있었는데도 그랬다면 인간이하 호로자슥이다.

    지식인은 그런 점에서 통제가 된다는 사실이 봉건인과 다르다.
    지식인은 언제라도 팀플레이를 한다. 팀 안에서의 행동이 훈련되어 있다.

    아내가 미워서 때리는게 아니다.
    맨 처음 때렸을 때 아내가 별다른 대응을 안했기 때문에

    두 번 때리게 되고, 두 번 때렸으므로 세 번 때리게 된다.
    문득 부아가 치밀고, 살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열이 뻗치면 주먹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폭력을 당했을 때 강력하게 제압해야 한다.
    하지 말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면 안 하는게 지식인이다.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폭력을 반복한다면 강용석 부류다.
    지식인의 탈을 썼지만 거죽이 그러할 뿐 속살은 지식인이 아닌 것이다.

    하여간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했다는 신파조 곤란하다.
    이게 글자 배운 사람의 입에서 나와도 되는 소리가 아니다.

    누구 이야긴지 모르겠으나 강신주 말이라면 이 양반도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
    분명히 말한다. 훈련된 사람은 다르다. 바로 그래서 지식인이다.

    김수영이 이런 시를 쓴 진짜 이유?
    세상의 모든 아내를 때리는 쓰레기 남편들을 향해

    '그만둬!' 하고 외치는 사람이 되고자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수영은 깨달은 것이다. 지켜본 40여 명의 인파 속에

    자신의 범죄를 말려줄 의인 하나가 없었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그 의인이 이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단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아무도 가지 않는 좁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길을 발견한 사람은 그 길을 간다.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 길로 간다.

    '내가 우연히 아내 패는 남자를 봤으면 말렸을 텐데.'
    이 생각을 하는 순간에 사람은 변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동생을 때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동생을 때리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열일곱살 때다. 동생을 때리면 동생을 때리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김수영이 아내를 패고, 아내를 때린 부끄러운 사실을 시로 쓴 이유는

    반성하고 다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를 패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것이 지식인의 길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길에서 우연히 여자를 패는 남자를 목격했다면 단번에 그 자의 팔을 꺾어야 한다.

    하여간 강신주의 똥같은 소리는 되도록 멀리해야 한다.
    사랑하려면? 본인이 사랑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최고의 사랑은 이런 것이라는걸 세상에 보여주겠어.'
    이런 마음이 당신으로 하여금 진짜 사랑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황금을 탐하는 이유는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어보려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을 탐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반지를 가슴에 품어보려는 것이다.

    사랑할 분명한 의도가 없으면 진짜 사랑은 없다.
    들판의 짐승들이 진짜 사랑을 한다는 착각을 버려라.

    진짜 사랑은 글 배운 지식인이 하는 것이다.
    영화에나 나오는 칠뜩이와 갑순이의 순수한 사랑은 없다. 착각하지 말라.

    원래 부족민은 여자그룹, 남자그룹이 따로 있어서 성별그룹에 소속하는 것이며
    부부 둘 만의 깨가 쏟아지는 사랑은 해괴한 것이다. 그거 징그럽다. 부족민 입장에서.

    결혼하려면 최고의 결혼은 이런 것이라는걸 세상에 보여주겠어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이혼하려면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겪어보겠어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젊은이여. 사랑에 도전하라. 이왕 하려면 그 사랑의 승리자가 되라.
    최고의 사랑을 하고 모두를 부럽게 하라. 마음껏 뽐내라. 세상에 알려라.

    젊은이여. 이혼에 도전하라. 이왕 이혼하려면 그 이혼의 승리자가 되라.
    즐거운 이혼을 하고 이혼해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라.

    분명히 말한다. 때리려고 때리는 거다.
    사랑하려고 사랑하는 거다. 이혼하려고 이혼하는 거다.

    지식인은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남자가 남자도 사랑할 수 있고
    심지어 통나무도 사랑할 수 있다. 당연히 강아지도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떳떳하고 그것을 세상이 필요로 한다는 판단이 서면
    지식인은 할 수 있다. 그 길을 갈 수 있다. 못생긴 여자도 사랑할 수 있다.

    제갈량의 아내가 추하다고 해서.. 저 자슥 정치적인 판단을 했군.. 아니다.
    지식인은 아내의 지성에 반할 수 있고 용모와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다.

    지식인은 아내의 배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배반한 아내를 사랑해 버리는 모험을 지식인은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아. 나는 나를 배신한 여인을 끝까지 사랑했노라고 말하려면 말이다.
    의도가 있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며 아름다운 사랑이다.

    부족민의 순수한 사랑? 미쳤구만. 그런거 없다.
    사랑을 탐하는 자가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을 탐하는 자라면 배반한 아내를 사랑하는 모험도 탐해야 한다.
    하여간 강신주인지 블로거인지 똥같은 글을 읽고 나의 판단은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은 좋은 사람이었으며 그의 본심을 알고 있었다는 거.
    아내를 때린 김수영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내의 지성이 나보다 높구나. 아내가 나의 스승이야. 마침내 찾던 스승을 발견했어.'
    이건 필자의 확신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지성이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변한다.

    김현경의 지성에 반한 김수영이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고
    눈이 번쩍 떠져서 이후 변한 것이다. 그것은 깨달음과 통한다.

    두 사람의 진짜 사랑은
    그 시를 쓴 후에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하여간 담배를 끊지 못하겠다거나
    뭐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스승을 만난 적이 없는 거다.

    ###

    부족민 사회의 관습이 남아있는 봉건사회는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혐오하고 경멸합니다.

    그러다 남자그룹, 여자그룹 안에서 왕따되는 수 있다는 거지요.
    여자는 길쌈패거리에 안끼워주고, 남자는 사냥패거리에 안 끼워줍니다.

    그 때문에 결혼을 해도 남녀간에 심리적 거리가 있어서
    그것이 폭력으로 나타나는 비문명의 관습이 있는 것입니다.

    결혼제도는 매우 발달된 문명인의 관습입니다.
    훈련된 사람만이 소화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라는 거지요.

강신주의 다상담 02 - '고독' 편

2013.12.11 17:44


강신주 박사는 고독을 

강한 자의식의 상태라 이야기한다.


나에게 집중하고, 계속해서 긴장하고,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몰입하지 못하는...


고독이라는 상태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게 되고, 이럴 경우 2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고독을 벗고 나오느냐 

아니면 더 깊은 고독으로 들어가느냐...


고독을 즐기는 방법도 불안정 상태를 탈출할 수 있다.

더 깊은 고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이며,

스스로를 고독에 갇두면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세상과는 점차적으로 멀어지게 만든다.


평생 혼자 살 자신이 있으면, 고독을 즐겨도 된다.

하지만, 고독을 즐기는 것도 잠시뿐 언제가는 돌아오기 마련이다.


모든 자기 의식은 타인에 의해서 매게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내가 좋은 것이, 내가 이쁜 것이 정답이지만,

이런 주관적인 감정에서 조차 다른 사람과 교감을 할 때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잠시동안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할 수 없어지고, 결국은 사람을 찾게 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독하지 않은 존재를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고독이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점차적으로 고독을 느낀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는 꽃잎을 봐도 몰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을 하게 되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세계가 나를 밀어낼 때 고독은 없어진다.


멀리서 여자친구가 걸어오는데, 나머지는 모두 배경일 뿐 여자친구만 보인다.

반대로, 여자친구와 있는데, 자꾸 시계를 보고 스마트폰만 만지게 되면 몰입이 끝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몰입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


+


몰입이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부모님이 막~~ 야단칠 때~~

그 내용에 집중하고 있으면 맘이 어렵다.

하지만,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별로 마음이 어렵지 않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영화가 더 재미있는 것은 몰입하기 좋은 환경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순간적으로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와지면서 다른 모든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냥 나와는 구분된 풍경으로만 보이면 고독을 느끼지만,

만지고 싶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있다면 고독은 사라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고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어떻게하면 무언가에 몰일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된다.


강신주 박사는 이를 모든 금기된 것을 벗어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스피노자의 평행론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의 금욕 생활은 정신과 고통이 반비례한다고 보지만,


스피노자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기에, 

정신이 건강하려면 금욕생활을 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업악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에 몰입해볼 때 고민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강신주 박사의 이야기는 '사랑'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http://socialplanner.tistory.com/entry/죄와-벌-김수영-1963)


'앞뒤 제지말고 스스로 감정에 솔직하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라.'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시선이 두려워서

솔직하지 못한 것이 스스로의 불행을 만들고 있다고...


쓸데없이 남을 배려한다고

스스로를 옥죄이지 말고 당당하게 감정을 표현해라~

(단,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다소 추상적인 결론이지만,

그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하는 바이다.


+


그렇다면, 과연 실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몰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려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운동, 취미활동, 술, 마약 등 모든 것이 고독을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모두 일시적인 관점이며, 근본적으로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효과가 크다.


그래서, 사랑을 하거나 종교, 특정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못해서 종교를 도피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교회에 수 많은 여성분들이 사랑에 실패해 종교에 더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순수한 신앙적인 판단에서 그러는 것은 뭐라할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신앙에 매달리는 분들을 보면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상처를 신앙으로 승화시켜서 극복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게 과도하게 흐를 경우 신앙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여기에 상처는 사랑 이외에 수 많은 다양한 상처가 포함된다.)


사랑과 신앙이라는 부분...

둘 다 균형을 맞춰줄 필요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


나에게 현재 몰입할 대상이 존재한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지만,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 고독함을 덜 느낀다.


이유는 사랑도 신앙도 아닌 신념이라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목표가 너무나 명확하고, 아직은 수풀을 헤메고 있기는 하지만,


이 숲을 헤쳐나왔을 때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지만,

종교에 대한 열정도 예전만 하지 않지만,

갈급함이나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사랑하고 싶은 욕심은 많이 있지만,

신념이라는 부분이 아직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기에

신념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리해서 사랑에 목메고 싶지는 않다.


어느 새 남들이 말하는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에 자연스레 합류해버렸지만,

남들이 날 3포세대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런 남들 시선에는 자유로운 듯하다.


다만, 이 신념이라는 몰입의 힘빨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고독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사랑이 다시 시작됐으면 좋겠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3포세대, 강신주, 고독, 몰입, 벙커1, 사랑, 스피노자, 신념, 신앙, 자의식, 종교, 평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