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들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다.
토론의 시작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카톡 문자 퍼나르기에서 시작되었다.
너무나 공격적이고 선동적인 표현들이 눈에 거스리게 되었고,
법안에 대해서 찬반 양론이 갈려서 카톡방에서 3일간이나 이어졌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세계인권선언과 맥을 같이하며,
종교, 정치, 국가 등 어떠한 영역에서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금지라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그것을 법률로 규정한다는 것이 다소 공감하수 없지만,
이러한 법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법률을 도입하는 궁극적인 취지 자체에는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듯하다.)
근데, 문제는 이 법률의 적용 범위에 있다.
크리스챤들이 이 법률에 반대하는 이유는
동성애자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는 부분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과 대치되는 부분이기에
차별금지법의 통과는 동성애 결혼의 합법화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것 말고도 정치적인 영역에서
종북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있는데,
이 부분은 사실상 종교적 신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념때문에 기독교인들을 이용해 먹는 듯한 양상으로 보인다.
일단 문자 내용은 너무나 문제가 많다.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마치 그게 이 법률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서명운동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동성애와 입에 담기 어려운 부끄러운 내용들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문자를 유포한 사람의 불순한 의도가 너무나 눈에 보인다.
근데, 문제는 이런 방식이 순진한 크리스챤들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난 처음에 그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문자를 주도한 사람의 직책을 보면 정치적 의도로 눈에 보이는데,
그냥 정치권에 의해서 또 순진한 크리스챤들이 휩쓸리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다.
근데, 토론을 하다보니~~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성경적이냐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교회의 문제까지~~
+
일단, 이 논쟁에서 가장 문제점이 있어 보이는 것은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 하면서 논점을 자꾸 흐린다는 것이다.
법률의 문제를
자꾸 근본적인 가치관의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것을 반대한다는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률처럼 이야기한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
이는 동성 결혼까지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 논리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법률 해석에 있어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법률 제정해야한다면 세상의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법률의 타이틀이 차별금지법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성 결혼 합법화 법률처럼 과장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기독교 인으로써 부끄럽다.
가치관의 문제와 차별 금지는 엄격히 다른 것이다.
그 동안 차별해오지 않았다면,
이런 법안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사랑을 가지지 않고,
소수자를 핍박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기에,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어왔는가.
크리스챤으로써 그 부분에 대해서 얼마나 떳떳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자기 성찰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살겠다는 기독교인들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왜 이런 법률이 등장하게 됐는지,
반대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충분히 반성한 후에
법률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이제부터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도 사랑으로 대해주겠다면,
난 반대자들의 종교적 신념과 용기에 대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
기독교 인으로써 동성애에 반대하고
다른 종교를 옹호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나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독교인이기에 공감하는 바이지만,
다른 가치관을 수용하는 것과 용인하는 것은 엄격히 다른 문제이다.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과 30년 전쟁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오만의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똘레랑스'였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결론도 나지 않는데 계속해서 싸우기만 한다면,
결론적으로는 다같이 죽을 수 밖에 없기에 선택한 길이였다.
다른 사람의 주장이 옳아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살아야하기 때문에 인정해주는 것이다.
근데, 현재 한국 사회에는 똘레랑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 많은 갈등들을 계속해서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교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때문에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그 중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 기독교, 미국
이 3가지는 정치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드려서는 안되는 불문율이 되고 있다.
(이념도 있기는 하지만 성격이 좀 다르기에 여기에는 빠지는 듯하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진리를 수호한다는 이름 아래,
진리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고 적대시해왔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가지고 기독교에 맞지 않는 사상을 죄악시 하고 있다.
동성애자와 다른 종교인에 대한 태도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들이 진정 안타까운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사람으로써 존중을 해주고 사랑으로 돌봐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게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근데, 기독교인들의 논리에는 '사랑'이 없다.
아니 심지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나 예의 조차 없다.
막상 만나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잘 대해주면서도,
마치 동성애자와 타 종교인을 벌레 보듯이 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
마치 그들을 차별하는 것에 반대하면,
진리를 버리고, 악마와 손을 잡은 것처럼 매도하기 일 수 이다.
하지만,
'정의'와 '사랑' 이라는 이 두 가지는
크리스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할 중요한 가치이다.
+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해서 한 마디 더 하고 싶다.
이 번에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위협소구로 현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거저거 나쁜거니까~~
크리스챤들은 분별해야하고 상대하지 말아야돼~~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니까~
세상과는 구별되야하고 어두운 세상을 해쳐나가야돼~~
뭔가 이상하다~~
분명 성경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건만,
이러한 태도는 세상과 우리를 확연하게 구분짓고 있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교회라는 커다란 방주를 지어놓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라는 듯한 이야기로 들린다.
수십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에서 교회는 사회를 이끌어나갔다.
근데 언젠가부터 교회는 고립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두려움에 의존해서 교인들을 똘똘 뭉치는 모습들은
교인들의 내부 단속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더욱더 고립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과연 크리스챤들에게 세상은 두렵기만 한 대상인가?
세상이 바뀌는 것이 크리스챤들에게는 부정적인 것만 있는가?
언제까지 세상과 크리스챤을 구별짓기하면서,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라고만 할 것인가?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크리스챤들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울타리 안에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이라고 전한다고 누가 거기에 공감하겠으며,
울타리 안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울타리 밖으로 나갈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교회를 고립시킬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두려워하셨다.
하지만, 갯세마네 동산에게 기도를 하신 후
결국에는, 인류를 사랑했기에 십자가에 달려서 희생을 하셨다.
그 결과 세상은 바뀌었고, 수 많은 제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 그 제자들도 두려움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지만,
성령의 체험을 하고 나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전 세계에 복음이 퍼지게 되었고, 대한민국에도 수많은 크리스챤이 생기게 됐다.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 또한 말이 안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사랑을 실천했기에,
지금의 기독교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교회는 너무나 가진 것이 많다.
가진 것이 너무나 많기에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자꾸만 구별짓기에 나서고, 다른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람들을 사랑을 대하고, 그들에게 진리를 전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고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다.
+
차별 금지법에 대한 태도도,
소수자를 차별해 온 현실을 외면한 체
소수자와 크리스챤을 구별하면서 스스로만 거룩하다 말하고 있다.
그동안 크리스챤들은
동성애자와 다른 종교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수인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상처를 받아왔었다.
크리스챤들 역시 그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다.
그 동안의 소수자들에 대한 과오에 대해서는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지켜야할 선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줘야만 한다.
왜 법안이 나왔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서 '난 저거 싫어!!' 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의 오만으로만 보이며, 약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짓이다.
크리스챤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차별 금지법은 소수자들을 위해서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법이 될 것이다.
만약에 차별을 하지도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법안 자체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챤들에게는 종교적 신념의 문제이지만,
차별을 받는 입장에서는 생존권과 달린 문제이다.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법률로라도 보호해줘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오히려, 차별금지법이 기존의 표현의 자유같은 법률들과 상충되면서
사회적으로는 더 큰 혼란과 갈등만 일으키게 될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해도,
소수자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게 된다.
소수자와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의 계속적인 사회적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반대로 크리스챤들의 태도가 바뀐다면,
이 따위 법률이 통과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전혀 없는 법률이 될 뿐이며,
사회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스폰지같은 역할을 크리스챤들이 하게 될 것이다.
사실은, 법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당연히 차별하지 말아야되는 것을
법률로써 해결하려는 태도는 지나치게 법치주의에 의존하는 안타까운 태도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부족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러한 세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크리스챤이 먼저 앞장 서야만 한다.
비크리스챤들이 소수자를 차별할 때,
사랑으로 소수자들을 감싸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줘야한다.
크리스챤이 앞장서서 사랑을 실천한다면,
이러한 법률은 논의의 대상조차 될 필요도 없는 쓸데 없는 짓이다.
하지만 기존의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이러한 법안이 나오게 된 과오가 있기에 이 법안에 반대할 자격도 없다.
크리스챤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희생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는 이 곳에 임하게 될 것이다.
+
[첨언]
아끼는 후배의 코멘트를 추가한다면,
역시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영적인 측면을 무시하면 안된다.
내 글이 너무 지극히 이성적인 측면에 주목한 것은 인정한다.
당연히 크리스챤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에 언급 안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엄연히 인정하는 나로써도,
아무리 이성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면
어떠한 일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겸손함이 크리스챤을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자신감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오만함으로 비춰졌을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크리스챤들이 진정으로 영적으로 깨어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제에 더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한다.
이 번 단체 문자같은 행동을 하기 전에~
'과연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충분히 기도하고 움직여도 되는데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충분히 기도하고 그랬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듯 하다...)
+
[추가 첨언]
오늘 아는 지인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히려 목사님은~ 심플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성경에 근거해서 동성애는 절대 인정할 수 없어서,
동성애자에게는 사랑을 전할 대상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단호히 죄인으로 규정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심플해졌죠)
근데, 전 오히려 그 분의 단호함에 공감이 갔습니다.
동성애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지도 않으셨던 거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가 이중적이라고 비판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 관점이 크리스챤에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접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구차한 변명없이
좀 더 강경하기는 하지만, 원론적 관점에서 반대를 하신다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기존에 고민했던 부분보다
더 상위의 신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좀 간과했던 것 같네요~
크리스챤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라는 부분을
너무 제 기준으로만 본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한 듯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맞다는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더 원론적인 차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기 보다는 글을 여기서 그냥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좀 더 성경도 읽어보고, 기도도 필요할 듯합니다.)
제 글의 초점은
기존 크리스챤들의 소수자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3번째 첨언]
이 긴 글을 누가 읽겠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집고 넢어가야될 듯해서,
다시 추가로 첨언을 달게 되었다.
내가 목사님과 이야기하고 다시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고 한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여 어쩔 수 없이 추가 첨언을 남기게 된다.
일단, 다시 말하지만 난 그 목사님의 견해를 존중한다.
그 분은 나름대로 명확한 성경관을 가지고 계셨고 진심으로 그 것을 믿었으며,
그 분의 삶을 봤을 때도 특정 이권이 아니라 신념을 따르는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미 루터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이야기 한 순간부터
성경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영역으로 넘어와 버렸고, 그래서 같은 구문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합리적인 이유로 판단한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토를 달기 어려운 부분이다.
(난 기본적으로 신앙이라는 부분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특별한 관계라 생각한다.)
난 동성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동성애자를 죄인으로써 사랑을 전할 가치도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민해야겠다고 이야기한 이유는
이러한 나의 생각이 성경에 근거한 판단이냐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판단을 내리겠다는 이야기이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반성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아마 다음에 이 글에 첨언을 하던, 아니면 아예 새로운 글을 쓰든
그 시점은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한 이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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