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강헌 교수의 광팬이 되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미국에서 일어났던
댄스음악에 기반을 두고 시작되었던 Jazz와 Rock'n'Roll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Jazz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1 - Rock'n'Roll
1960년대~ 1970년대 한국에서 일어났던
청년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모던 포크와 그룹사운드의 이야기
[Bunker1특강]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2 -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너무나 맛깔나는 강의는 같은 강의를 꼭 두 번씩 듣게 만들었으며,
다시 내용을 정리해서 기록해두게 만들었다.
진짜 나중에 하나로 묶어서 책으로 내도 좋을 듯하다.
강헌 교수가 이번에 건드려준 부분은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유럽에서 일어났던
클래식음악의 고전주의 시대에 일어났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야기이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03-1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 방송듣기
하지만, 전체 역사적 흐름을 알기 위해서
바흐 - 하이든 - 살리에리 - 모차르트 - 베토벤 으로 이어지는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의 이야기가 차레로 이어진다.
(조연으로 비발디, 헨델,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의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음악사 수업시간에 딱딱하게
바로크 - 고전주의 - 낭만주의로 흐름이 이어진다고 외웠던 내용이~
이렇게 흥미진지하게 이어진다니~~ 너무나 재미지고 흥미진지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원문 강의를 들어보시면 좋을 듯하고, (완전 강추!!)
개인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강의 내용을 재편집해서 다시 정리해두기로 했다.
+
일단,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야기
아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도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랑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본 단락의 내용은 강헌 선생의 강의에 없는 내용임을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타고난 천재이자 신동이였던 모차르트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베토벤
약간의 시간차이를 두고 등장했고,
둘 다 당대 최고의 음악시장이였던 비엔나에서 활동했지만,
조금은 다른 색깔의 음악을 추구했기에,
같은 고전주의로 분류되지만 베토벤은 낭만주의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곡은 가볍고 선율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베토벤의 곡은 무겁고 장중해서 모티브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베토벤의 곡들은 각각의 악기들이 따로 연주하면 별로지만,
모든 악기가 함께 조화롭게 연주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특징은 그들의 작곡형태 차이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순십간에 곡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 밤 사이에 오페라를 만들어내기고 했고, 그의 대표적인 교향곡인 39-40-41번은 단 6주만에 만들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정도였기에, 그냥 악보를 찍어내는 기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600여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천재성에 기반한 결과인 것이다.
(너무 쉽게 써서, 당대에도 수많은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노력도 안한 다는 오해도 받았으나, 실제로는 공부로 열심히했다고 한다.)
반면, 베토벤은 수없이 악보를 고치면서 정교하게 곡을 완성해나간다.
너무 진지하기에 좀 어둡고 무겁다는 의견도 많이 받고 있지만, 그 많큼 대작으로 평가받는 곡들이 많다.
이 둘의 삶에 대해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들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아마데우스> (1984)
베토벤의 삶을 그린 <불멸의 연인> (1994)
그런데, 영화라는 것이~~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재미를 위해서 다소 왜곡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찌보면 이 둘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극화된 재미에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다소 왜곡된 편견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나도 당연히 그랬고, 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리에리라는 경쟁자의 질투를 받은 불행한 천재 모차르트
한 여인을 영원히 사랑하고 장애를 극복해낸 악성 베토벤
그렇다면, 실제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강헌 선생은 이들의 삶을 역사적 배경과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해주고 있다.
+
역시나 역사적 흐름속에서 이들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과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상황에 대해서부터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당시 유럽에서 음악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시작했기에
이들은 신분제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살던 시기는 급격한 격동기였다.
1760년대부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은 전후로 계속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이전의 바로크 음악 세대였던
바흐와 헨델의 시기까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이후의 낭만주의 음악 세대였던
멘델스존, 바그너, 비제, 베르디 같은 음악가들이 비교적 근대사회에 살았던 것에 비해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 까지는
역사적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음악 활동을 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주로 활동했던 불과 16년의 차이는
숫자로는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음악가의 신분은 철저히 중간 계급이였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게스왈드라는 귀족출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일 뿐이며,
하층사회 출신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전 세대인 바로크 음악을 좀 알아야만 한다.
중세 음악까지는 너무나 단순한 음악의 형태였기에,
음악사에서 별로 안다루고 바로크 시대부터 주로 이야기를 한다.
바로크 시대에 음악가들 중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은 3명 정도이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비발디 (1678 ~ 1741)
독일의 요한 세바스챤 바흐 (1685 ~ 1750)
영국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 ~ 1759) / 태어나기는 독일에서 태어났음
이 중에서도 바흐와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와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동갑내기 이 두 작곡가의 삶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독일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죽을 때까지 독일 안에서만 살았고 당대에는 헨델과 같은 명성을 얻지도 못했다.
10명의 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서 10살이 되기 전에 부모가 다 죽었고,
제대로 된 정규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기에 형 몰래 스스로 음악을 공부하면서 재능을 키웠다.
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그는 너무나 근면 성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이러한 그의 삶은 죽은 후 75년 뒤에 그를 화려하게 부활시키게 만드는 단초가 되어준다.
반면, 헨델은 당시 유럽을 휩쓴 슈퍼스타였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독일과 피렌체 등에서 활동하다가
1712년이후에는 런던에 정착해 귀화했으며,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살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는 70개의 오페라를 만들었고, 그 중 40개 이상을 흥행에서 성공시켰다.
당대에는 오페라를 얼마나 성공시켰는가가 그 음악가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였고
오페라를 2~3편만 성공시켜서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먹고살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헨델은 전무후무한 존재였고 성악과 기악까지 모두 섭렵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지만,
이후 역사가들에게서는 오히려 바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헨델이 죽은 것은 1759년이지만,
역사가들은 바로크 음악의 종료를 바흐가 죽고 살리에리가 태어난 1750년으로 여기고 있다.
+
살리에리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지만,
대중에게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2인자로만 기억되고 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가 쓴 <아마데우스>라는 희극 때문인데,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심지어는 살리에리 컴플렉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살리에리(1750-1825)는
시기적으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이였고,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모든 음악가의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였던 빈의 궁정악장의 자리를
무려 36년간이 차지하면서 죽기 1년전에야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게 된다.
강헌 선생은 살리에리가 너무 저평가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모차르트를 시기했다는 풍문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살리에리는 4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라는 제자를 가르쳤으며,
너무나 잘 나갔기에 모차르트를 시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욕을 항상하고 다녔기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싫어한다는 풍문은 당시에도 있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노골적으로 궁정악장 자리를 탐했으나 하급 관료도 되지도 못한 사람들였던 반면에,
살리에리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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