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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탁월한 사유의 시선 by 최진석

열린 공동체 사회 2018. 9. 23. 04:24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철학 고전을 읽는 것을 쉽게 떠올린다.
공자, 노자, 스피노자, 칸트, 들레쥐, 라캉 등

하지만, 철학은 살아 있는 활동이고 사유를 의미한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적 사유를 전략적 사유와 유사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사유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철학 생산국이 아니라 철학 수입국이다.
이것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하지만, 아직도 배껴오기 바쁜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제시하면 레퍼런스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아직까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며,
오히려 남들이 가는 길을 안전하게 따라가길 기성세대들은 교육해왔다.
젊은 세대 역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게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
궁금한 것이 있어도, 남들이 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다보면 질문을 못하게 된다.
질문 역시도 좋은 질문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있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을 표현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용기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나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새로운 행동을 하거나 혁신적인 활동을 하면 눈총을 받게 된다.

내가 조금만 자신감을 잃고 주저하는 순간
난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고, 다시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

예의바르고 상식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만 존재하는 나이스한 세계는 현상을 유지하는 사회이다.

새로운 변화보다는 기존의 질서가 더 중요한 사회
거기에는 생명력이 점차 없어지기 마련이다.

편하게 살고 싶다면,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더 낮다.
불안과 평안 사이에 왔다갔다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참된 자아를 만나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상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외부 자극에 집착하지 않는 태연자약한 상태

내가 진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만 한다.

혁명이 완수되지 못한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사람들이 먼저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함석헌 -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국내도서
저자 : 최진석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8.08.13
상세보기


최진석 교수의 책은 1년만에 16쇄를 찍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1년만에 개정판을 냈다.

대화체가 내용의 무게감을 줄인다는 의견을 반영하고, 논리의 틈새도 매꿀 겸 바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미여시 X 트레바리>에서 진행한 북토크

거기서 만난 최진석 교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초판을 내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선진국'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다.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꼭 선진국이라는 표현을 써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인식은 객관적인 사고를 방해하기 마련이다. 

최진석 교수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부정적 견해를 많이 갖는다는 지적을 한다.


'전쟁'을 무조건 피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봐야하지만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것처럼

선진국이라는 단어 역시 윤리적 기준이 아닌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윤리적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면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게 된다.


윤리와 규정은 사건이 발생한 후 질서를 잡는 과정이기에

윤리적 판단이라는 것은 사고를 과거에 묶어 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유가 넓어야 통제력이 높아진다.

시선이 높고 넓어야 성인이 되 수 있다.


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과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현재만 보는 사람은 자기 활동성과 책임성이 적다. 주변의 일들을 나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생존력이 높아진다.
행복한 사람은 세상을 접촉하는 범위가 넓다.

관조적인 삶이란 
편견과 이념을 포기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이다.

세상을 봐야하는대로 보는 사람은 변화를 억제하게 된다.
'안빈낙도'의 삶은 가난한 삶보다는 단단함을 잃지 않고 사유를 즐기는 삶을 의미한다.

심리적 편안함을 자기존재적 평안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소유'라는 것은 가난한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소유라는 것은 세상을 내 뜻대로 정하는 것에 달려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존재적 상태를 의미한다.


연애도 결혼하자고 합의할 때까지만 사랑이며, 결혼을 하게 되면 소유관계로 바뀌게 된다.


존재적인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Let it be"


무소유는 내가 내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두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정한 것은 그 시야를 넘어서지 못한다.


+


도가에서는 

하려고 하는 욕망까지도 갖지 말고, 자연이 흘러가도록 둔다.

하려고 하는 마음조차 갖지 말라는 것이 기본 사상이다.


무소유의 삶 ≠ 가난한 삶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랑꺼리로 삼지 않고 나의 존재를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집을 크게 짓거나, 돈을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위'란 어떤 것도 갖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노자 모두 부국강병을 위한 주장을 펼쳤다.


공자는 덕이 있는 통치자를 주장했지만,

노자는 도덕적 자각 능력을 갖는 '유위'가 궁극적인 처방이 안된다고 보았다.

개인의 자발성에 의존해 자발성의 자발적 연합 즉 '무위'를 주장했다.


'무위'를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유위'적 방법으로는 천하를 차지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강해지지 말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노자 역시 공자처럼 부국강병을 꿈뀌었다.


'뒤로 물서면 앞에 서있을 것이다'

'갖고 싶으면 주어라'


+


문명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문명을 만드는 인간의 활동이 문화이다.


체인지메이커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엄지 손가락이 있어서 동물보다 다른 능력을 갖는다. 

도구를 만들어서 문명을 만들 수 있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문화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는 남이 만든 변화를 수용하는 것을 종속적 인간이라고 보며,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사람을 창의적, 주체적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체적 인간은 격이 높은 인간이며, 자유인이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사고의 범위가 나를 넘어서 확장된 사람이다.

나의 통제 범위를 확장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게 된다. (돈, 섹스, 권력)


내가 아닌 우리라는 개념을 확장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될 수 있다.


고고학이 발달한 영국, 프랑스, 중국, 미국, 일본은 모두 제국을 꿈꾸며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나라들이다.

일본 역시 조선을 침략할 때 고고학과 민속학을 먼저 연구했다.


제국적 높이의 시선에서는 남의 일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지식과 이론은 구체적으로 있는 것을 설명해두는 것뿐이다.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 설명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루크, 스피노자)하거나 만드는 것(칸트)이 편하다.


"지식은 만드는 것이다" >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 사람들 (칼 맑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는 현상적이며 감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세계는 추삭적이며 사유적이다.


감각적 단계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기능이라 하며, 몸을 쓰는 예능은 짜릿함을 준다.

사유적 단계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기술이라 하며, 머리를 쓰는 예술은 영감을 준다.


대한민국 TV에는 아직 예능이 넘쳐난다. (맛집, 섹스 등)


사유는 힘이 들고 지루하며, 지적 노동을 감내할 내공이 필요하다.

독서는 지적 사유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주변에는 서점이 넘쳐나지만 한국의 대학가는 어떠한가?

감각적 쾌락에 몰입하면서 추상적 사유는 고갈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는 민족이어야 한다" - 함석헌 선생


우리에게는 세상의 구조, 넓이, 높이를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건국 이후 산업화(박정희), 민주화(김대중)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적 아젠다가 부재한 상황이 되었다.


선진국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사유의 시선을 높고 넓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


공부를 많이 할수록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교육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일을 그만해야한다. (성적처리, 행정 업무)


감화력이 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

아이들은 보호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못받고 있다. 

무언가를 알게 해주게 하고 있지, 알고 싶어하는 욕망을 주지 못한다.


성적과 서열만 남은 대한민국은 교육이 무너졌다.


+


협치를 위해서는 양쪽의 입장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지 가능하다.


역사적 시민의식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내각제가 되려면, 내각제가 운영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가능하다.

스웨덴은 개인을 성숙시킨 이후 제도를 도입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충고도 하면 안된다.

내가 그런 삶을 산다면 또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설득이 가능하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조건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변화는 조건을 극복할 수 있어야 일이 난다.


마음 먹고 일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장애는 나타난다.

인생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며, 조건은 그냥 가정에 불과하다.


누구에게나 시대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돌파하느냐 그냥 포기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 모택동)

혼자 우주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신비이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된다. - 티베트 사자의 서 -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사람은 자기 자신 한 명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든 혁명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완장을 차고 있게 되어버린다.

어떤 변화도 언젠가는 변화될 대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시대의 문제이며, 모든 것은 변할 수 밖에 없다.

완장을 오래차고 있으면 퇴화하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에 분석자가 되고 끝없는 순환 질문에 빠지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그것 자체가 내가 되어버린다.


더 이상 분석자가 아닌 행위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지면, 모든 가치가 정리되고 논리도 만들어진다.


꿈이 없으면 논리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깨닫게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