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ity

1975_Reaching Out : The Three Movements of the spriritual Life (영적발돋움 2007)

열린 공동체 사회 2022. 5. 3. 21:56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간 선배의 이야기들

책과 글은 그들의 지혜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전달해줄 수 있다.

 

마음이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

마침 오미크론에 걸려서 자가격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동료가 집으로 보내준 이 책은 영적 발돋움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삶의 모순 속에서 지쳐가고 있던 나에게 관계맺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하고 기도하게 해준 소중한 책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울림을 준 것은 '따뜻한 환대(hospitality)'에 관한 부분이다.

 

환대는 무엇보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환대는 사람을 우리 옆으로 데려다놓는 것이 아니라 선을 그어줌으로써 침해당하지 않는 자유를 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환대는 선택할 다른 대안이 없는 구성으로 이웃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책이나 이야기나 일로 교양있게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움에 질린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어서 근거 있는 말,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환대는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길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방법을 찾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p.85)

 

나는 그동안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내가 코칭할 때는 철저히 사람들에게 따뜻한 환대를 했지만, 실제 일하는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법이 무시된다고 느껴지고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흐를 때, 나는 동료로 인정하지 못했고 적대감을 드러냈던 것같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나의 마음이 지치게 된 원인일 것같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판단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나의 행동은 굉장히 서툴렀고 부족한 것같아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과정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일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다. 대신 목표를 높게 잡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목표를 정해놓지 않았지만 하기로 한 일에 대해서는 잘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다보니 최선을 다한다고 느껴지지 않거나 진행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 굉장히 불편함을 느낀다. 성과는 안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아름다워야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났었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같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들은 아니였던 것같은데, 과정이 무시되는 상황들이 속상했던 것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취향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따뜻한 환대를 보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많이 되돌아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마냥 관용적이고 상대방의 입장만 고려해주는 것이 따뜻한 환대의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환대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는 내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대립은 주인이 손님을 경계선 안에서 분명하게 대할 때 생깁니다. 그 경계선을 통해 주인은 스스로를 방위의 점으로 또 준거틀을 제시합니다. 집을 손님에게 맡기고 손님에게 마음대로 쓰게 하는 것은 따뜻하게 환대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빈 집은 따뜻한 집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집은 곧 방문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유령의 집이 됩니다. 손님은 두려움을 벗어버리기는 커녕 다락이나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소리에도 의심하고 불안에 떨게 됩니다. (p.121)

 

불명확한 것은 사람의 불안감을 높인다. 내가 바로 서서 기준을 제시해주지 못하면, 오히려 손님은 불안해질 수 밖에 없고, 불편함을 못견뎌서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되는 모습을 최근에 너무 많이 봐기에 피부로 와닿았다. 원칙이 없는 듯하지만, 나름의 기준이 모르게 존재할 때 사람들은 어찌하지도 못하고 불편함만 느끼게 된다. 하고 싶은대로 맘대로 하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때, 무엇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알아서 하라고 등 떠밀 때, 우리는 그 자리에 있기를 거부하게 된다. 손님을 맞이할 때,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때 우리는 그들이 편한함을 느끼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지 그 사람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즐겁게 함께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성과만 있는 삶을 꿈꾸지 않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성과주의적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들이 생겨났던 이유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 결국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감정에 대한 부분은 절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결국은 기도말고는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없다. 막연한 환상과 기대가 얼마나 일을 망치는지 너무나 처절하게 배우고 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후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같다. 이것이 바로 헨리 나우웬이 이야기한 3번째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지난 2년의 시간은 이부분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나에게 주어진 일과 나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뿐이며, 이것조차도 잘하기 어렵기에 끝없이 기도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이 한 몸 다스리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까지 그 부분을 다스리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환상에 불과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끝없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겸손해져야하는 부분인 것같다. 

 

자가격리 기간 나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어디서 온 것이며,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배운 것같다.

역시 변화의 시작은 나에서 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이 작은 영적 발돋움이 앞으로 삶을 사는데 큰 발돋움이 될 것같다.

결국은 스스로, 따뜻한 환대를 행하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같다.

 

나의 작은 발걸음들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