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효제 교수님 수업의 종강파티 시간에,
오늘 조희연 교수님의 고별 강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년이 넘게 근무했고 오늘의 성공회대학교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지만,
별도의 퇴임식은 없이 학부 수업 종강시간을 고별 강연이라는 타이틀로 공개 강연을 하신다는 것이다.
성공회대의 간판 교수 중에 한 명인 조효제 교수님은
조희연 교수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시며 아쉬움을 여실히 드러내셨다.
수업시간에도 선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조효제 교수님도
솔직히 조희연 교수님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당선될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한홍구 교수님도 이재정 총장님은 가능할 듯한데,
조희연 교수님은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힘들꺼라 이야기했었다.
대부분의 성공회대 교수님들도
조희연 교수님이 당선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은 분위기다...
암튼,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조효제 교수님에게
안면도 없었는데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성공회대로 초빙을 한 것도 조희연 교수님이고,
한 번 거절을 했었는데, 재차 전화를 걸어서 설득했다고 한다.
조효제 교수님도 조희연 교수님이라면 같이 있어볼만하다는 주변 추천에 마음을 정하셨다고 한다.
워낙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을 확실히 실천하는 성격이라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도 하셨다.
출마 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다고 도망다니더니,
출마하고 나서는 정치인의 피가 흐르는 듯한 열정이 보인다면서
농담삼아서 이야기했지만 진짜 잘해서 실력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과연 보수적인 교육계에 적응하실 수 있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워낙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열린 마인드이기에 조희연이라면 가능하다며
조희연 교수님의 제자들인 NGO대학원 학생들이 먼저 흥분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
과연 조희연이 어떤 사람이길래....
성공회대에 입학하고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은
'조희연 교수 강의 들어봤어?'라는 질문이였다.
(물론 매우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나 그렇고, 대다수는 학교 이름도 잘 모른다.)
그리고 이제 교육감에 당선된 후에는
'조희연 교수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당췌... 우리학과 교수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아나??
조희연, 조효제, 김동춘...
3인방의 수업은 꼭 들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우리학과는 아니지만 졸업 전에 수강신청이나 한 번 해볼까 찾아봤더니...
김동춘교수는 안식년이고,
조희연교수는 교육감 출마 관계로 학부 수업만 하신단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조효제 교수님의 수업은 진짜 최고였고~ 너무나 후회는 없었지만,
조희연 교수의 수업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최근에 썼던 책을 한 권 읽어봤는데...
소문대로 글을 참 어렵게 쓴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물론 어렵게 쓰시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은 소문대로 훌륭했다.)
민주주의 좌파, 철수와 원순을 논하다 - 조희연(2012)
수업시간은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토론 시간은 워낙 교수님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재밌다고 한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강의 내용도 별로 재미는 없는 듯...)
글도 어렵게 쓰고, 강의도 재미없지만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라...
확실히 독특한 캐릭터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고별 강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희연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
역시나 수업준비를 철저히 하신다는 소문답게
강의록을 7페이지나 작성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고별 강의형태이기에 대충 소감 좀 이야기하고 넘어가도 될텐데,
300명정도가 들어오는 대형홀에서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걸 모두 복사해서 나눠줄 생각을 하다니... 역시 징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은 꽉 찾고,
입장할 때 터지는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는 조희연 교수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
강의 내용은 개인적인 당선 소감을 좀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성공회대는 나에게 자유의 공간이였다.
당선 이후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83년 석사를 마친 이후 지식인의 삶을 살게 됐는데, 사실은 학자보다는 학술운동가의 삶이였다.
30년만에 갑자기 큰 전환이 시작됐고, 예비 경선을 하면서도 적성에 안맞아서 중단하기도 했다.
반장선거 외에는 선출직에 도전한적도 없고,
반장선거도 떨어져서 부반장밖에 해본적이 없다.
선거 전에는 결심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결심을 하자마자 험난한 길이 시작됐다.
출마했다가 망신만 당하게 되면 학교 체면도 있으니까,
집사람과는 예선만 통과하면 면피는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까지 이야기 했었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형제가 모두 목사이고, 중고등학교시절까지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말씀을 자꾸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렸을 때 읽었던 성경구절이 지금은 피부로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구절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베드로에게 했던 이야기로 기억이 난다.
"니가 젊었을 때는 마음대로 다녔는데, 나이가 들면 니 허리에 띠를 두르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정확한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21장 18절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하신 이후 베드로의 삶을 예언하신 부분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할 수 있었던 교수직을 떠나서,
이제는 교육행정가로써의 삶을 사명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어찌보면 매우 솔직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매우 강한 의지가 숨겨져 있었다.
+
오프닝이 멘트가 끝난 이후에
강의록에 나온 내용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셨다.
(연합뉴스에 보도된 사진에는 삐딱하게 앉아있는 내 모습도 살짝 담겨있다.)
역시나... 강의록의 내용은 어려웠고...
강의 내용도 고별 강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
대충 주위를 한 번 둘러봤더니~~
역시나 고별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도 눈에 띄였다.
강의 제목 부터가 기가 막히다.
<포스트 민주화, 시민 사회,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
절대 권위주의적이지는 않지만,
항상 너무나 진지하다는 조희연 교수님 다운 제목이다...
그래도 딱딱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흥미로운 내용이였고 앞으로의 행보를 엿볼 수 있는 구석들이 들어있었다.
+
일단 조희연 교수는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시대 이후
이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라고 이야기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민주주의라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였다면,
사회적 민주화는 민주적 가치를 확장하고 사회적 관계를 호혜적인 관계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육도 바로 여기에 위치하며,
교육민주화를 통해서 독재체제 하에서 유지되었던 교육체제를 개혁해나가는 것이 주요 과제이다.
6.4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는 교육 민주화라는 과제를
전국민적 과제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교육체제를 열망하는 투표였다.
진보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유능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도 매우 신중하고 민주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혁신학교는
권력이 없는 교사에게 자율과 민주의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고,
학생에게 자율과 민주의 공간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프로젝트다.
혁신학교를 다른 모든 학교에 강제적으로 이식한다는 것은 아니며, 자발적 변화가 필요하다.
창의적 학습과 창의적 교육을 위해서는 지식 탐구의 방법론이 달라져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진보의 브레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차분한 접근이다.
전체 사회 문제에서 자신이 담당하게될 교육문제로 화두를 이어오는 논리가 굉장히 세련됐다.
그리고, 단순히 선동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조희연 교수는 현재 교육 체제의 문제점을 3가지로 정리했다.
1) 미친 경쟁의 장으로서의 교육
ㄱ.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과잉경쟁이며, 아무도 승자는 없는 상황
ㄴ. 현재의 과잉경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교육 체제에서 이탈(exit)하는 수밖에 없음
ㄷ. 성미산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들처럼 용기있는 선택을 솔직히 나는 하지 못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외고를 다녔으나, 현실과 타협했던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멘트였다.)
2) 과잉경쟁으로 인한 내면성의 파괴
ㄱ. 서로 간의 적대적 관계가 만들어지고 학생자살과 학교폭력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ㄴ.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전에 비해 다양한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기성세대가 가요한 경쟁구조에 살아가야 한다.
ㄷ. 학생들끼리 기말고사 때 노트도 서로 보여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정이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3) 교육평등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존 교육체제
ㄱ. 경제력의 심각한 불평등을 전제로하는 과잉교육경쟁은 '그들만의 경쟁'으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ㄴ. 이언 모리스의 '발전의 역설’이 나타난다. (발전이 진행될수록 발전을 가로막는 힘이 점점 더 강해져 단단한 천장을 형성)
ㄷ. "부모의 연봉 = 토익점수 = 대기업 취직"이 일치하는 식으로, 60년대까지만 해도 존재하던 교육의 평등이 사라지고 있다.
ㄹ. 사회적으로 교육이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하는 통로가 되아하는데, 새로운 신분제 사회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 체제는 기성세대 중심의 분재형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할 뿐이다.
확실히 키워드를 잘 만들어낸다는 평판답게,
'미친 경쟁', '분재형 인간' 등의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확실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을 할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혁신'과 '창의'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기본 지향을 혁신 미래 교육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1) 창의지성교육
ㄱ. 질문이 있는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
ㄴ. 현재는 정답을 전제하고 그것을 남보다 빨리 암기하는 선행학습을 중시하는 작업이다.
ㄷ. 현재 혁신학교가 초등학교에서는 반응이 좋지만,대입때문에 중고등학교는 아직 한계가 있다.
ㄹ. 대안적인 대학들이 등장해야하며, 성공회대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 중 하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2) 창의감성교육
ㄱ. 국영수중심뿐만 아니라 문예체 교육의 활성화 등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ㄴ. 쉬어야지 창의성이 나타난다. (물론 솔직히 나는 잘쉬는 스타일은 아니다.)
ㄷ. 내가 교수중에서도 바쁜 스타일인데, 대학생인 자녀들을 보면 솔직히 훨씬 더 바쁘다.
3) 창의세계화교육
ㄱ. 모방 세계화가 아니라 창의 세계화가 필요하다.
ㄴ. 열린 세계 시민 교육이 필요하며, 협소한 국가주의나 협소한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ㄷ. 지구촌 학교가 되어야 하며, "미래의 아베"로 키우지 않기위해서는 열린 세계시민적 감수성과 태도를 갖도록 해야한다.
ㄹ. 포스트 민주화시대는 민주시민교육의 토대위에서 열린 세계 시민 교육을 실시해야한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사회민주화 그중에서도 교육민주화를 해결하는 것이 지식인의 과제 중 하나이다.
이제는 비판적 사회학자의 길을 접고, 교육 정책가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비판적 사회학자로서의 시선을 잃지 않고 올바른 교육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렵다.
이번 선거에서 표현된 시민들과 학부모들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저를 잘 지도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
한 시간 분량의 강의내용은 솔직히 재미있었다.
굉장히 재미가 없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확실한 철학을 느낄 수 있었기에,
뻔할 수도 있는 내용이 굉장히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론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믿어준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태도가 진심이 느껴졌다.
아니다 다를까~~
토론의 달인답게, 강의를 마치자마자 질의응답을 시작하셨다.
시간 관계 상 2명의 질문만 받겠다는 사회자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정리해서 답변할테니 추가로 2명을 더 받겠다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주셨다.
이 모습이 4년 후에도 꾸준히 이어지면
서울시의 교육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같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훈훈한 모습이였다.
질문의 내용은 아주 다채로웠고,
조희연 교수의 답변도 매우 솔직하면서도 성실하게 답변하는 태도를 보였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그 동안 큰 방향성을 이야기하던 사람이라서
현장의 세세한 부분을 얼마나 잘 챙길 수 있냐의 문제이다.
박원순 시장이야 원래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이고 실무형이기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괴로울 정도로 미시적인 부분까지 잘 챙기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은 성격이 다르기에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보수언론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는데,
일류 대학 발언 논란에 있어서는
"세칭 일류 대학이라 불리는"이라는 표현을 왜곡 보도한 것이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아침 정정 기사가 나갔다.
또한, 인수위를 구성했더니 전교조 일색이라는 비난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인수위원장도 일부러 신인령 이대 총장을 선정했더니
갑자기 신인령 총장이 좌파학자로 몰아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인수위에도 교총출신을 포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한 마디도 언급을 안하고 있다.
반면에 진보진영에서는 진보교육감이라면서
왜 저런 사람들을 포함시키냐면서 벌써부터 반발이 일어나고 있어서 앞으로 쉽지 않을 듯하다.
30년동안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 심지가 있어서 걱정은 안하지만,
옆에서 많이 응원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일단 7월 한달 간은
"듣는다 희연쌤"이라는 타이틀로 현장 투어를 먼저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행보가 듣는 프로젝트라니~ 아주 맘에 든다.
급진 민주주의를 끝없이 주창하던 조희연 교수답다는 생각도 든다.
(급진 민주주의는 끝없는 소통을 통해서 민주주의 원리를 함께 실천해나가야한다는 정치적 사상이다.)
지금의 스탠스로는 박원순 시장만큼 매우 기대가 되는 인물이다.
인지도로는 김상곤 교육감과 이재정 총장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동안의 행보로봐서는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지방선거 최고의 스타답게...
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서로 사진찍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아마 이런 대중적인 인기는 태어나서 처음 누리시는 인기일 듯하다...)
과연 앞으로 4년간 어떤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당선된 이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조희연 교육감이
과연 자신의 색깔을 얼마나 잘 유지하면서 보수적인 교육계와 잘 융합할 수 있을까?
성공회대로써는 굉장히 큰 자산을 잃게되었지만,
이제는 서울시민들과 그 자산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아낌없이 잘 써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