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014 China / Beijing ② - 첸먼다제(前門大街)와 유명한 음식점들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7. 17. 03:10

베이징 최고의 중심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첸먼다제에서 텐안먼광장, 고궁박물원으로 이어지는 약 4km에 달하는 구간이다.


내성의 출입구라고 볼 수 있는 정양문(正阳门) 아래로

수많은 화살 구멍이 나 있는 군사적 방어망인 전루(箭楼)가 위치해있고,

그 밑으로 약 1km 정도의 긴 대로가 펼쳐져 있는데 이 곳에는 수많은 공방과 상점들이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19세기말 서양 세력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고전적 중국풍의 상점가는 식민지풍의 근대적 거리로 탈바꿈하게 되지만,

밤에는 아편과 매음굴의 본거지가 되면서 근대화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194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상점은 모두 국영화되고 주택이 마구잡이로 건립되면서 혼잡한 시장통으로 퇴색되어버린다.


하지만, 중국은 역시 1당 독재의 공산주의 국가였고,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하여 7개월의 공사를 거쳐서 반세기 전의 첸먼다제를 재현시켜버린다.

(역시 대단한 공산당, 이런 일은 일당 독재가 아닌 이상 추진해볼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다.)


최대 100명이 탈 수 있는 궤도전차를 부활시켜버리고,

도로 한복판에서 시속 8km의 속력으로 보행자 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가진 가장 큰 함정은

핵심 길목은 글로벌 기업들의 상점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삼성전자, 스타벅스, 하겐다즈가 가장 눈에 띄고, 유니클로, 자라 등이 한복판에 크게 자리잡고 있음)



외형은 20세기초를 아주 잘 재현해놔서 훌륭한 관광 요소가 되었지만,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이나 두이추(都一处/도일처)같은 역사가 깊은 식당들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진짜 식민지시대 외세가 범람했던 시절을 내면적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해놓은 꼴이 될 뻔했다.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은 워낙 유명해 중국 전역에 분점이 퍼져있고,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가격에 비해서 맛과 서비스가 꽝이라는 소문이 퍼졌기에,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의 상징물인 오리 앞에서 사진만 찍고

첫날의 저녁식사는 건륭제가 간판을 직접써주었다는 두이추(都一处/도일처)로 항했다.


1864년에 처음 문을 열은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은

오늘날의 베이징 카오야의 명성을 만들어낸 장본인임에는 틀림없다.


푸아그라처럼 오리를 묶어놓고 움직이도 못하게 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살찌워서 

지방함량을 40%이상으로 끌어올린 다음에 소스를 발라서 장작불에 굽는 훈제방식의 요리인데,

너무 느끼한 나머지 최근에는 지방함량을 15%로 이하로 줄인 따동 카오야(大董烤鸭)라는 음식점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이징 카오야의 맛은 기름진 껍질에 있다는 것이 정평이라서,

내일 모레 1855년 개업한 편의방 카오야(便宜坊 烤鸭)에서 베이징 카오야는 맛보기로 결정했다.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된 것에는 맛도 맛이겠지만

사실은 마오쩌둥이 '전취덕을... 보전하라...'라고 한 마디 한 것이 매우 큰 듯하다.


마오저뚱이 거의 신격화된 중국에서

그 정도의 칭찬을 받았다면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갈 수 밖에 없다.


첸먼다제에 있는 본점은 거의 박물관 수준으로 잘 꾸며놨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일반 음식점에서 13위안이면 먹을 수 있는 카오야를 12배나 비싸게 받는 것은 사실 좀...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은 단순히 분점만 잔뜩 내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포장해서 판매만하는 전문 판매처를 시내 곳곳에 둘 정도로 베이징 카오야의 대표 브랜드가 되어있었다.


(이 사진은 베이징 카오야에 대한 구글링 검색을 통해서 전취덕 소개 사이트에서 그냥 퍼왔습니다)


+


두이추(都一处/도일처)는 1738년 산서성의 왕씨가 시작한 작은 주점으로

건륭제 17년에 황제로부터 호랑이 머리를 하사받으면서 일약 스타가 되어버린다.


원래 이름도 없었던 가게였는데 암행을 떠났다가 베이징 성내에 늦은 밤 도착한 건륭제가

유일하게 열려있던 이 음식점에 들어와서 너무나 배불리 잘먹고 가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암행중이기에 황제인지도 모르고 작은 가게라서 이름도 없다고 주인이 대답하자,

건륭제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집'이라는 뜻의 두이추(都一处/도일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튿날 황궁으로 돌아간 건륭제는 직접 가게이름을 써서 편액으로 만들어 전달해주는데,

두이추(都一处/도일처) 앞에는 이 사건을 동상으로 만들어서 가게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지금의 간판이 그 때 간판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듯보이는데, 간판이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서 못 찾고 지나쳐 버렸었다는...)



28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점인데,

한국에도 도일처(都一处)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중국 전통 음식점들이 몇 군데 존재한다.

(어찌보면 맛이 좋아서 유명해진 것보다는 중국상인 특유의 그 성실함으로 인정을 받은 식당이다.)


핵심 메뉴는 샤오마이(烧麦), 마롄러우(马莲肉), 쟈산쟈오(炸三角)인데,

이 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소맥이라고 부르는 샤오마이(烧麦)가 가장 유명하다기에 한 번 먹어봤다.

(만두피의 끝이 꽃봉우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인데, 안에 육즙이 들어있는 것이 샤오룽빠오쯔 같은 느낌이다)



가격은 40위안정도로 빠오즈치고는 비싼편이기는 하지만,

근처에 위치한 고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의 베이징 분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텐진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먹어보고,

서태후에서 선물하면서 유명해졌다는 것이 바로 고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이다.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않하고 빠오즈를 만들었다고 해서 고부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아무리 유명해도 빠오즈 한 접시에 100위안을 넘게 받는 것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일반 음식점에서 빠오즈 한 접시는 10~20위안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마오쩌둥의 취안지더(全聚德/전취덕)

건륭제의 두이추(都一处/도일처)

서태후의 고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


물론 전통의 음식점 답게 음식 맛도 훌륭하겠지만,

사실은 음식 맛보다 유명인사와 그와 어울어진 스토리 때문에 더 잘 알려진 음식점들이다.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두이추(都一处/도일처)에서 샤오마이(烧麦)와 함께 주문한 것은 산동식 볶음요리다.



중국 네티즌들이 샤오마이(烧麦)와 함께 가장 추천하는 음식이기에,

나름 기대를 가지고 주문을 했는데, 그냥 땅콩 소스에 버무린 양상추 볶음 요리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 살짝 단순한 요리인줄은 알았지만,

막상 나왔을 때 고추 기름 소스가 없었으면 느끼해서 반도 못 먹었을 것같다.

(처음에는 나름 맛있었는데 점점 느끼해졌지만, 고추기름 양념이 굉장히 맛있어서 거의 다 먹어 치웠다.)



베이징 요리가 기름에 튀긴 것이 많고, 

심지어 무침요리에도 땅콩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환타 아저씨 책에서 읽었지만,

첫 번째 베이징의 저녁식사에서부터 이를 극대화한 요리를 먹게 될 줄이야~


암튼, 가격이 다소 맘에 안들기는 했지만 

샤오마이(烧麦) 두 접시와 볶음요리는 연경맥주와 함께 나름 괜찮은 첫 번째 저녁식사가 되어주었다.


+


저녁을 먹고 첸먼다제의 골목길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나름 볼꺼리도 많고 훌륭한 관광지였다.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 음식점 이야기가 길어졌기에,

첸먼다제의 골목길을 돌아본 이야기는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해야겠다~


숙소가 첸먼다제 근처에 있다보니

사실 6일간의 일정에서 3~4일은 저녁에 여기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아침식사를 이곳에서 먹고 나간 것도 몇 차례 되는 듯하다.)


다음 편에는 날짜에 상관없이 한 번에 모아서 첸먼다제의 골목길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방과 상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