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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자체로 돌아가라" (Edmund Husserl)
이남인 교수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양적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서,
현상학적 질적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현상학적 질적 연구는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런지 현상학적 연구에 대한 제대로 정리된 국내 도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분야에서 나름 활발하게 연구를 해오시던 이남인 교수를 이를 정리하는 책을 출간한다.
책의 내용은 현상학적인 연구 방법에 대해서
현대적 의미로 분석한 반 캄, 지오르지, 콜레지, 반 매넌 등의 연구 방법을 분석해보고,
철학적 이념에서는 후설과 하이데거, 메르디-퐁티, 사르트르에 대한 펠리와 크로티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또한, 질적연구로써 현상학적 연구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으며,
얼마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국내에 몇 안되는 현상학적 연구 전문도서이다.
책의 내용은 아무래도 다소 좀 어렵고,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경향은 있으나,
그래도 훌륭한 선배 연구자들이 이런 책을 내주니 후진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질적연구의 연구 전통은 학자마다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Van Manen (1990)은 현상학, 민속지적 연구, 사례연구로 분류했으며, Merriam (1998)은 해석학적 연구, 현상학적 연구, 근거이론, 사례연구, 문화기술지, 내러티브 탐구, 비판연구, 포스트모던 연구의 7가지로, Creswell (2013) 은 내러티브 탐구, 현상학, 근거이론, 문화기술지, 사례연구의 5가지로, 김영천 (2013)은 시카고 사회학, 문화기술지, 현상학, 상징적 상호작용론, 민속방법론, 근거이론, 비판문화기술지,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 생태학적 심리학, 포스트 모더니즘의 10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만큼 질적연구의 연구 전통에 대해서 명확하게 무짜르듯이 구분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구분해놓고도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학자의 다양한 분류에도 불구하고 현상학적 연구는 엄연히 하나의 전통으로써 분류될 만큼 확고한 지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상학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면 유난히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현상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후설과 하이데거 등의 현상학이라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등장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난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상학의 출발은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주의가 지배하는 가치관이 확산되던 학문적 풍토에 대한 저항으로 후설이 현상학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김영천 2013). 후설의 현상학은 초월론적 주관이 초월론적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자연적 태도를 넘어선 상태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연적 태도에서 경험되는 ‘세계’와의 관련을 상실한 “초월론적 관념론”이다(이남인 2014). 반면,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핵심 주제인 현존재가 후설의 초월론적 주관과는 달리 자연적 태도에서 존재하며 언제나 세계와의 관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실재론”적 이념을 추구하고 있다(이남인 2014). 이러한 현상학적 이념들은 반 캄이나, 지오르지, 콜레지, 벤너, 디켈만 등의 학자들을 통해서 체험 연구에 도입되어 현상학적 체험연구 방법으로 활용된다. Van Manen (1990)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 학파의 교육현상학적 전통과 독일의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전통까지 모두 비판하며 자신의 현상학적 체험 연구 방법을 개발하였고, 그 동안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연구방버법을 교육학에서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연구 방법으로 개발하게 된다.
이러한 Van Manen (1990)의 연구 방법은 후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의 다양한 현상학적 전통뿐만 아니라 딜타이, 가다머, 볼노, 리쾨르 등의 해석학의 여러 동기들도 사용한다(이남인 2014). Van Manen (1990)은 현상학적 질적 연구의 특징으로 체험을 연구하며, 의식에 나타나는 대로 현상을 해명하고, 현상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으며, 체험적 의미를 우리가 겪은 대로 기술하고, 현상에 대한 인간과학적 연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Creswell (2013) 은 현상학적 연구는 하나의 개념이나 현상에 대한 여러 개인들의 체험의 공통적인 의미를 기술한다고 보았고, 현상학의 기본적인 목적은 현상에 대한 개인의 경험들을 보편적 본질에 대한 기술로 축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김영천 (2013)은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인간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그 체험을 바로 그 체험이게 만든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파악하여 이를 분명하게 기술하고 체험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영천 (2013)은 추가적으로 현상학적 질적 연구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해명을 하는데, 현상학에서 방법론과 태도를 가져왔지만 철학 그자체는 아니기에 사변 철학의 한 모습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해이며, 단순히 체험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 체험과 그 체험 속의 의식 현상, 그리고 본질들에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주관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도 활용하며,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남인 (2014)은 현상학적 체험연구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오해들이 현상학적 체험연구가 가지는 다양한 차원과 사태를 고려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았고, 현상학적 체험연구는 연구 태도에 따라서 현상학적 심리학적 체험연구와 초월론적 현상학적 체험연구로 구분되며, 연구 목표에 따라서 사실적 연구와 본질적 연구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오해들을 하는 이유가 사실적 현상학적 심리학적 체험연구만 현상학적 체험연구로 인식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기준에 따른 4가지 유형의 다양한 현상학적 체험연구를 모두 고려한다면, 현상학적 체험연구라는 것이 주관성과 객관성에 치우친 것이 아니며, 단순한 체험이나 절대적 본질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이남인 2014).
그러므로, 현상학적 체험연구는 체험의 본질 구조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연구보다 훨씬 더 광활하며, 다른 질적 연구의 전통들을 모두 포괄할 수도 있다. 이남인 (2014)은 현상학적 체험연구가 해석의 방법을 사용하기에 해석학적 체험연구를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연구 대상을 특정 사례나 생애사, 또는 특정 문화로 할 경우에도 다양한 유형의 형상학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태 자체를 근원적으로 제시해줄 수 있는 경험에 토대를 두고 전개되는 현상학의 실증주의적 입장은 근거이론의 기본 입장과도 동일하기에 근거이론은 충분히 현상학적일 수 있고, 현상학적 체험연구과 근거이론의 방법은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현상학적 체험연구가 환원이라는 방법을 필요로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철학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다양한 유형의 연구에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입장이며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상학적 체험연구 역시 내러티브 탐구나 근거이론, 사례연구 등과 같이 딱 부러지게 그 범위를 한정지을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한정 지을 수도 없다. 다른 질적 연구들과 마찬 가지로 그 한계를 짓는 순간 질적 연구가 가질 수 있는 창발성이 제한되며, 연구의 결과도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질적 연구의 분야를 규정짓기 어렵게 만들고 방법론에 있어서 굉장히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이 질적연구를 더욱더 다양하게 만들고 가치있게 만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질적 연구 방법에 대한 공부가 한 학기가 끝났다. 많은 책들을 읽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질적 연구에 대한 개념도가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지며 질적 연구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을 것이라 잘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질적 연구에 대해서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답을 얻기 보다는 내가 무모한 것을 기대했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 나름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근거이론이나 현상학도 사실은 내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며, 이들 명시 명확한 경계는 없다는 사실만 세삼깨닫게 된다. 같은 연구 대상을 가지고도 근거이론과 현상학적 체험연구의 개념을 살짝씩 차용해서 연구할 수도 있으며, 그 대상은 특정 사례나 문화가 될 수도 있고, 텍스트나 내러티브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내러티브를 탐구한다는 것도 텍스트 분석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서 할 수도 있고, 그 결과를 현상학적 철학을 기반으로 근거이론으로 접근해서 포스트트 모던의 방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결국은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연구자의 상상력에 달렸고, 그 상상력에 따라서 연구결과는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명확학 방법론이 존재하며 누구나 판단하거나 동의하기 쉬운 계량적인 연구방법에 비해서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이것이 바로 질적 연구의 매력인 것같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연구결과는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너무나 획기적일 수 있고, 주관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구 결과는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줄 수도 있으며,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다. 연구 방법과 연구 내용 자체도 창발적이지만, 연구 결과가 가져올 영향력도 창발적이다. 도대체 예상하기 힘든 신비로운 세상이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으며 원리가 존재한다.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명확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질적 연구 방법 수업이였던 것 같다.
[참고문헌]
김영천 (2013). 질적연구방법론. 2: Methods, 아카데미프레스.
이남인 (2014). 현상학과 질적 연구. 파주, 한길사.
Creswell, J. W. (2013). Research design: Qualitative, quantitative, and mixed methods approaches, Sage publications.
Merriam, S. B. (1998). Qualitative Research and Case Study Applications in Education. Revised and Expanded from" Case Study Research in Education.", ERIC.
Van Manen, M. (1990). Researching lived experience: Human science for an action sensitive pedagogy, Sun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