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행사였다.
간만에 시간이 되서 어떤 분위기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첫날 직접 참관했다.
기존에 참여하던 포럼들보다는 훨씬 더 이벤트성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SBS에서 주최해서 그런지 세련된 무대 구성과 방송 연출적 요소들이 강해서, 방송국에 방청온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 포럼은 굳이 직접 찾아 올 필요는 없겠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생방송되기에, 통역 서비스까지 받으며 편하게 집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포럼에 참여해봤지만,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현장성보다는 방송 위주라서 그런지 부대행사들이 별로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복잡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보여주기 식의 현장 이벤트나, 불필요해보이는 일회성 현수막 제작물, 심지어는 인쇄물도 없었다.
로비 자체가 좁아서 뭘 하기도 애매한 공간이긴 했지만, 굳이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버리는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해외의 포럼이나 컨퍼런스에 비해서 뭔가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들이,
그동안 너무 낭비는 아니였나 싶은 생각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는 구성이였다.
대신 메인 이벤트 장소의 무대구성이나 세팅은 굉장히 세련된 수준이였다.
무대에 배치한 조형물도 인상적이였고, 대형 스크린을 3등분해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미 애플 컨퍼런스나 다른 행사들에서도 많이 쓰는 구성이기는 하지만,
포럼이라는 행사에서 이런 무대 구성이나 화면 분할과 전환 등은 방송국이 개최하기에 가능한 것 같다.
(미안하지만,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포럼들에서는 이런 세련된 구성과 연출을 경험하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편하게 볼 수도 있었는데, 괜히 현장에 와봤나 싶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나름 꽤 괜찮은 수확이였던 것같다.
(하지만, 너무 멀기에 2일차 행사는 그냥 보고싶은 것만 골라서 집에서 생중계로 봤다)
+
강연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20분씩 짧게 쪼개서 진행되었고 메인 세션만 길게 진행되었는데,
사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내용이 그렇게 풍성하지는 못한 느낌이였다.
세바스챤 프럼, 스튜어트 러셀, 위화 작가, 스티븐 핑거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글쎄 뭔가 핀트가 계속해서 안맞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원래 포럼이라는 행사자체가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보여주기식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같은 이쪽 분야의 초보자들에게는 많은 영감을 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은 너무 평범했고 일반론적이였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 정보들이 많았고 뭔가 뻔한 이야기들이 전개됐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인가?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한국 사회자들의 반복된 질문이였다.
해외에서 온 초대 손님들에게 비슷한 뉘앙스의 질문을 반복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과연 기술의 변화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을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이 분야의 대가라면 뭔가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하는 뭔가를 기대하는 질문이였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이 질문에 서양에서 온 연사들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반응이였다.
이미 이런 내용은 그들의 강연 중에도 살짝 나와있었고, 이걸 물어보는 의도는 모르겠다며 당황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예측하는 시대는 지났고,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고 이것이 확산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냐가 중요합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사회자들은 한결같이 이 비슷한 질문을 계속해서 물어봤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스러운 질문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질문을 한국인에게 했다면
아마 뭔가 정답을 주기 위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질문과 상관없이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이야기를 했을 것같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흔히 나오는 질문 스타일이고, 우리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패턴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질문에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두리뭉실한 질문에 그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후자야 문화적 특성과 차이니까 헤프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꼭 저런 질문을 던져야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요즘같은 시대에 미래를 어떻게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는 여유가 과연 없는 것인가?
이미 강연 내용에 그런 부분들이 상당부분 언급됐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는가?
정답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 좀 안타까웠다.
+
반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예상치도 못한
한국인 연사들이 참여한 SF 세션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SF라는 것은 문화이나 예술계에서 크게 각광받지 못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그 어떤 기술자보다도 인사이트가 넘치고 흥미로웠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인문계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들이 말한 점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예전 SF영화를 보면 우리는 공간을 중심을 기술의 발전을 예상했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통신수단을 중심으로 기술이 훨씬 더 빨리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우주여행, 날라다니는 자동차 등은 오래전부터 영화 속에 등장했지만,
스마트폰 같은 매체나 인터넷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소재로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강국인 한국은 기술의 발전에 중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술의 발전에서 변방인 것처럼 스스로를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약 SF 소설의 주인공을 한국인으로 한다면, 사람들은 굉장히 어색해할 것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하는 것도 한국에서는 바둑이라는 특수성때문에 한국에서 열린다고 봤지만,
한국의 통신 기술의 수준이 낮았더라면 이세돌이 영국에 찾아가서 대국을 치뤘어야만 했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이 부족한 첨단 기술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에서는 한국을 기술 강국으로 봐주고 있는데 스스로를 너무 낮춰보면서 끝없이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Do you know 강남스타일?'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해주는 한국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경제수준, 그리고 심지어는 문화컨텐츠에서도 이제는 선진국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위치를 잘 판단하고,
이제는 남에게 물어보고 배우기 보다는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나가야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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