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볼만한 일을 누군가는 현실로 만들어본다.
남의집 프로젝트 X 어반플레이 X 플레이스캠프
이들은 이러한 발찍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서귀포에서 밤산책하기
플레이스캠프 제주에서의 하루 밤
그리고 제주 현지민 집에 놀러 가보기
제주 출장 일정을 끝내고,
1박 2일의 시간을 나만의 방법으로 좀 더 색다르게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였다.
+
제주는 매력적인 여행지지만,
요즘은 살고 싶은 동네로 자주 연상된다.
과연 제주에 놀러가는 것과 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난 번 제주 방문 시 제주에 산다는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천정부지 오르고 있는 땅값
2)관광지이기에 생활물가
3)부족한 자원 (육지에서 조달해야만)
4)여름에 매우 습하고 겨울에 매몰찬 바람
5)현지인과 이주민 간의 생각 차이
제주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도 독특한 특성을 갖는 곳이다.
목호의 난, 걸7호 작전, 제주 4.3은
제주가 왜 슬픔과 침묵의 섬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외부 세력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여성들은 살아남아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화산 섬이라는 척박한 환경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에 의한 온갖수모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았기에 강인하면서도 폐쇄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외부인에 대한 보수적인 성향때문에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관광객에게 굉장히 불친절한 편이며 외부 이주민에 대해서 배타적이라는 평도 듣는다.
남성들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여성들은 생활력이 엄청 강하다는 점도
스페인 바스크 같이 척박한 환경의 지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제주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면서 올해 7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라고 한다.
10년만에 20만명이 늘어났고 이중 상당수는 외지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다.
제주가 이제는 단순 관광지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고 있다.
나는 앞으로 3개월간 제주를 들락날락하면서 제주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내가 만날 그룹에는 제주 토박이와 이주민들이 섞여있기에 더욱더 기대가 된다.
+
이번 일정을 통해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만나보고 싶었다.
서귀포 토막이와 함께하는 야밤의 동네 한바퀴
제주 이주민이 들려주는 제주에서 살아남기
그리고 최근 핫플로 뜨고 있는 관광지에서의 하룻밤
혼자 올레 길을 걸어봤던
회사 워크샵으로 단체로 놀러왔던
어르신들과 함께 기업방문을 했던
참가자들을 데리고 모듈을 진행하러 왔던
그러한 뜨내기 방문객으로써의 제주가 아니라
현지인과 이주민이 섞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써의 제주를 느끼고 싶었다.
아주 짧은 여행으로 그러한 것을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
나의 일정은 제주시에서 저녁 6시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이동하는 것부터 도전은 시작됐다.
항상 제주에 오면 택시를 타거나 렌트카를 이용했기에,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낮설었다.
해외에 나가서도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오히려 서울을 벗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본젓이 거의 없다. 전주와 여수, 진주에서도 버스 시간도 잘 안맞고 동선도 안좋아 주로 택시를 타거나 현지인 차를 얻어타고 다녔다. 지방에서는 대중교통이 안좋다는 기본 인식이 있어서인지, 오히려 해외보다 더 도전을 안해왔던 나이다. 이번에는 혼자이고 동선도 너무 길기에 버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 버스노선이 개편되고 상당부분이 공공화되면서 이용하기 편해졌다는 버스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대중교통 어플은 역시 친절했지만, 가장 문제는 역시 버스 간격이다. 서울에 비하면 버스 간격이 너무 길어 대기 시간이 엄청났다. 다행히 서귀포 가는 길은 버스 시간이 딱딱 맞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고 1시간 반만에 집합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근에서 혼자 저녁도 먹을 시간이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그래도 서귀포는 시내인데도 7시에 식당의 절반이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 3월이 제주도에는 비수기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시내에서 약간 외각진 곳이긴 했지만 저녁 7시에 절반의 식당이 문을 닫는 점은 나에게는 새로웠다. 장사가 안되도 새벽까지 문을 못닫고 아둥바둥 버티는 서울의 상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단체로 블로그에 올라온 맛집만 찾아다녔던 나로써는 색다른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
주차장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어이없게 주차장은 여러 곳에 나뉘어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담당자도 현지 상황을 몰라 주차장 위치를 물어보는 내 질문에 동문서답만 했다. 결국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모이는데 10분이상 시간을 보낸 후 투어는 시작됐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온 여행객이였다. 다양한 액티비티를 찾아서 참여하던 사람도 있고, 일부러 일정을 투어에 맞춰 온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혼자서 제주도를 몇 차례 왔던 사람들이였다. 밤에 할 것이 없어서, 기존과는 색다른 경험을 원해서 신청한 사람들이였다. 나처럼 단체로 와서 정신없이 왔다가거나 렌터카를 타고 관광지만 찾아다녔던 것을 벗어나 진짜 제주를 느끼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기존의 방문과 다른 투어를 원했기에 현지전문가와 함께하는 밤산책은 분명 매력이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다른 투어도 기획했는데, 여기만 성공하고 모두 취소됐다고 한다. 서울과는 다른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통했던 테마의 모임은 성공하기 어려웠던 것같다. 굳이 제주까지 온 관광객들에게는 제주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필요했던 것 같다.
서귀포 토박이 출신인 길잡이는 어린시절 서귀포 풍경과 현재의 풍경을 비교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서귀포 시민들도 모를만한 길을 찾아다니며, 서귀포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관광지로만 왔던 서귀포시내를 이렇게 한 밤중에 걸어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단순 토박이가 아니라 건축 전문가이기에 시내 풍경 속 숨어있는 재미를 찍어서 이야기해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컨텐츠는 너무 풍부하셨는데, 너무 의욕이 넘치셔서 솔직히 따라가기 벅찬 측면이 있었다. 너무 혼자 앞서 가시는 바람에 뒤에 사람들이 조금씩 쳐지는 경향이 나타났고, 참가자간에 대화를 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뒤에 쳐진 사람들은 그냥 따라다니기 바뻤다. 2시간 넘는 시간을 계속 걷기만 하니 일부 참가자들은 좀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던 것같다.
야경의 백미는 역시 이중섭 기념관 옆의 생가였다. 조경을 잘해놓은 덕에 밤에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낮에 왔던 풍경과는 사뭇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나무 사이에 숨겨놓은 조명에서 삐집고 올라오는 불빛들이 꽃들과 만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역시 카메라는 상황이 주는 감성까지는 담지 못하는 듯하다)
예상대로 어처구니 없는 시간에 투어는 종료했고,
이제 숙소인 플레이스캠프 제주까지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해야만 했다.
버스는 이미 끊어졌고, 택시비는 7만원 가까이 나오는 상황.
예견되었던 상황이였기에 당황하지 않았고, 예상했던 대로 숙소에서 여기까지 차로 이동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덕분에 카풀로 여유있게 성산일출봉 인근에 있는 플레이스캠프 제주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는 플레이스캠프 제주였지만,
역시나 평일 밤 12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팬시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분위기가 왠지 정감이 갔다.
숙소도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팬시한 느낌이 단기 체류하는 관광객에 최적화된 느낌이였다.
(다소 차가운 듯한 느낌도 있어서 길게 체류한다고 상상했을 때는 글쎄...)
낮에 만난 플레이스캠프 제주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에 사람이 북적북적 될 경우에는 사뭇 다른 모습이 연출될 것같기는 하지만,
비수기인 3월 평일 낮의 모습은 그져 쏘쏘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한 듯하다.
팬시한 카페와 가게, 식당의 모습은 서울 성수동이나 연남동과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한적한 가게들의 모습은 바쁜 일상을 사는 서울사람들의 삶과는 또 다른 모습이기는 했다.
+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남의집 호스트가 살고 있는 김녕지역으로 다시 버스로 이동하게 됐다.
원래 제주에서도 가장 잘 살던 지역있다는 김녕은 이제 김녕 해수욕장과 해녀들의 지역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래도 제주시에서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서쪽의 애월쪽 집 값이 너무 올라 이제는 동쪽인 조천을 거쳐 김녕까지도 이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남의집 예약자가 나밖에 없어서, 1:1 만남이 되어버렸다.
평일 낮 시간 관광을 즐기지 않고 남의집에 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의집 프로그램도 금토일 주말에 예약자가 몰렸고,
그나마 월요일까지는 좀 괜찮았다는 것같은데, 주중에 열린 프로그램들은 참여자가 적다고 한다.
이러한 이색 프로그램도 제주 현지인들보다는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신청하기에,
비수기 평일 낮이라는 시간에 신청한 내가 오히려 신기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암튼 덕분에 집주인장과 오붓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예상치도 못한 수확을 얻었다면 얻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왔다고 해서 액자도 만들어 주셨다.)
예술 프로젝트로 제주에 내려왔다가, 살기 위해 다시 내려와서 이제는 제주 현지인과 결혼해
이주민과 현지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집주인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집주인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미로웠는데,
집주인과 함께 김녕에 남겨진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행보는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주민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집주인은 오히려 현지인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주민의 문화를 이식시키고 있었다.
관광으로 먹고살지만, 외지인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제주의 특색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현지인들과 함께 소소하게 일을 만들어가고, 이주민들도 끌어들이는 모습이 새로웠다.
대대적으로 일을 벌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미 제주의 삶에 들어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같다.
제주에 온 지 6년되었다는 그녀의 삶들은 잠깐 제주에 쉬러온 이주민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깊게 뿌리내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짝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
그녀의 사는 모습을 엿보면서 제주에서 이주민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나의 고향도 아니면서, 잠깐 쉬러온 것도 아닌, 그렇다고 현지인들과 똑같을 수도 없는
이미 도시 속의 삶이 익숙해졌지만, 제주에서의 삶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버린...
어느 중간쯤에 위치하면서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모습은
때로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굉장한 약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탈피해 어느 한 곳에 정착해버린다.
하지만, 이러한한 불안정을 이겨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면 이것이 바로 혁신의 출발이 된다.
현실을 고통이 아닌 도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앙트로프로뉴어십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혁신을 만들어내는 혁신가의 리더십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변화와 혁신은 원대한 꿈에서 시작되기 보다는,
이러한 변방의 작은 곳에서 시작해서 점차 사람들이 모이며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주인이 시도해보려는 생활 속에서의 이러한 작은 도전들이
오히려 나는 더욱더 의미있는 일이고, 큰 도전이 될 초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제주에 살아보고자 참여했던 이번 프로젝트는 어느 새 제주를 이해하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외지인의 관점에서 제주에 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서귀포 밤거리를 걸으면서,
플레이스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김녕일대 예술품들을 둘러보면서,
사실 일정 상은 대단한 여행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용히 제주를 느끼며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은 소소한 재미를 줬다.
뭔가 마음으로 제주를 받아들인 느낌이라고 할까?
아직 말로 표현은 안되지만 제주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연 3개월 동안 나는 제주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더 이상 관광객 모드가 아닌 제주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팀기업가 모드로 전환해야한다.
이제 제주는 나에게 더 이상 놀러갈 곳이 아닌, 삶의 터전이자 비즈니스의 현장이 될 것이다.
제주 사람들과 만들어나갈 새로운 시간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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