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신드롬(Peter Pan syndrome)은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러(Dan Kiley)가 처음 정의했다.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역할을 거부하고 어린이의 심리 상태에 머무르고자 하는
심리적 퇴행 상태에 빠진 어른들을, 영원히 늙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에 비유한 것"
수 많은 피터팬 이야기의 버전 중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웬디를 따라나섰던 피터팬이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스토리다.
네버랜드를 떠나면 성인이 되지만, 성인이 가지는 책임과 역할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
난 아직도 네버랜드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7년간의 회사생활을 통해서 난 이미 주니어 레벨을 벗어났고,
혼자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은 이미 갖추었다.
나름의 전문성도 쌓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정도의 지식 수준은 될 것이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케팅 분야와 행사 기획 및 진행에 있어서는
어디가서 밥값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벌리는 것 또한 자꾸 주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쥐뿔도 없지만 열정으로 덤비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저러다가 큰 코 다칠까봐 안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어서일까?
방학 기간동안의 인턴은
내가 아직 피터팬 신드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였다.
+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수 많은 대학생들이 학생 신분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수 많은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점차적으로 주저한다.
그리고 수 많은 중소기업들도 중소기업 딱지를 벗어나길 두려워한다.
우산과도 같았던 존재를 벗어나야 하고,
반면에 책임과 역할은 점차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난 스스로를 철저히 학생의 신분으로 포지셔닝했고,
어딜가서도 아직도 내가 학생이라는 부분에서 어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난 이제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내 친구들은 한 가족의 가장이며 회사에서는 팀장급이다.
벤처를 운영하는 친구도 있고, 벌써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도 존재한다.
스스로 학생임을 자부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학생에 가두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약하게 만드는지 많이 느꼈다.
충분히 할 수 있고,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니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날 거들떠보지 않으니 편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되면서 난 그냥 주변인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가서 나 자신을 드러냈고,
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은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기에 책임질 부분도 별로 없는데,
괜히 몸을 사리고 난 학생에 불과하다는 꼬리표를 달고만 있었다.
이제는 충분히 나만의 일을 펼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많이 주저하고 있고 적당한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언제쯤 일과 사랑 모든 부분에서 피터팬 신드롬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이제는 충분히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언제쯤 인정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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