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7월 17일 선포된 제헌헌법은
안타깝게도 원본이 6.25때 분실되었고, 현재 보관중인 것은 관보 등을 통해서 재작성된 것이다.
분단이 확장되고, 정부 수립 직전에 작성된 헌법이기에,
굉장히 우편향되었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과는 완전히 다르게...
재헌헌법의 내용은 굉장한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문 첫 줄에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내용이며,
도대체 건국절 운운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내용을 읽어라도 봤는지 의문시 되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시점부터 임시정부를 정통으로 내세우고 있구만...
아니, 어디서 어이없게 건국절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인지...
또한 여러가지 문구들이 눈에 띄는데,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항상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문구도 있지만,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평화, 차별금지, 각종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의무들...
심지어 공공성을 가진 기업들에 대해서는 국유화한다는 내용까지...
당시 일본인들이 기업의 94%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으로 보면 굉장히 좌파적인 내용들이 당시만 해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순수 대통령중심제보다는 내각책임제의 성격이 혼재되어있었다.
독재자의 출현을 막으면 민주주의적 이상을 더욱더 강하게 추진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적산기업(일본인이 경영하던 기업을 한국인에게 배분)으로 오늘날의 재벌들이 탄생하게 됐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헌법은 독재자에 의해서 걸레짝처럼 수정되어버렸다.
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헌번이 다시 수정되어서 본래의 정신을 많이 되찾았지만,
아직도, 제헌헌법에 비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성향이 많이 남아있다.
무려 2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러한 부분들이 수정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다.
물론 헌법의 개정이 과거처럼 정권의 연장을 위해서 이루어지면 안되며,
만약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했던 방식의 개헌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
해방 이후
과연 어디끼지 친일파로 볼 것인가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분명 미군정에 의해서 수많은 친일파가 부활했고 심지어는 노덕술, 김창용같은 인물들이 버졌이 활동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친일파들 말고,
한국민주당을 주도한 인물들도 모두 친일파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인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에서는
여운형은 미군정 하지를 만나서 2개의 명단을 전달했다고 이야기한다.
'충성스럽고 믿을 만한 한국인' vs '친일파'
친일파의 명단은 진짜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한 친일파들이였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윤치호, 박종양, 김명준, 한상용, 이진호
기독교계 지도자였지만 일제에 협력했던 신흥우, 양주삼
친일 기업가로써는 경성방직회사 사장 김연수,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총독부 교육국 관리 엄창섭, 조병상, 신용인, 김대운, 이기용
반면에, 충성스럽고 믿을 만한 한국인 명단은 너무나 다채롭다.
(물론 해당 명단에서는 해외 망명자들의 이름은 모두 빠져있다.)
여운홍, 백상규, 조한용, 이만규, 황진남, 조만식, 안재홍, 이임수, 최동오
김성수, 장덕수, 구자옥, 홍순엽, 이원철, 박용희, 김창수 (7명은 한민당 창당의 주역들)
심지어는 건국준비위원회의 공산주의 지도자였던 허헌과 이강국은 빠져있었다.
이에 대해서 브루스 커밍스는 여운형의 친일 경력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민당의 세력들을 모두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여운형이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이런 명단을 작성해서 제안한 것일까?
당시, 시대적 맥락에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일제 말기 좌익 공산주의운동가들은 모조리 감옥에 잡혀갔고,
남아있던 우익 민족주의운동가들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친일에 가담하게 된다.
물론 조만식이나 여운형처럼 끝까지 버티며 싸운 사람들도 있었고,
송진우처럼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리저리 잘 피해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김성수나 장덕수처럼 끌려가서 강연을 하거나 논설을 신문에 게재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여운형도 중간에 일제에 협조한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하조직은 운영한 것을 보면 진심은 아니였던 것 같음)
일례로 장덕수는 친일 강연을 한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는 강연 내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한 심정으로 이야기했고 듣는 학생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강연 내용은 분명히 친일이였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그의 행동은 친일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김성수, 장덕수 등의 인물들은 분명히 나약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했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국가를 재건해야하는 시절에 그들의 능력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여운형은 자신과 같이 건준을 이끌고 있는 좌익 지도자들의 이름을 빼버리고,
보수주의자였던 김성수나 장덕수 등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러한 여운형의 의도는 조선인민공화국의 내각구성에서도 옅볼 수 있다.
이 명단에는 해외파(이승만, 김규식, 김구, 김원봉 등)와 공산주의자(허헌, 이강국 등)뿐만 아니라,
김성수, 김병로 등의 이후 한민당의 주력 세력들의 이름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들을 본다면,
그들이 일제에 끌려가서 강연을 했고, 기사를 썼고, 돈을 냈다고 해서
무작정 그들은 친일파이기 때문에 처단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완전히 반발을 할 것이다.)
당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더 중요하며,
그렇기에 한민당을 주도했던 세력들을 무조건 친일로 몰아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민당이 만들어지면서, 상당 수의 친일파 세력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한민당에 빌붙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떳떳하게 민족을 이끌 수는 없었다.
자신들의 나약함을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에 한민당은 결국 정권을 획득할 수는 없었다.
그럴수도 있지라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지지해줄 수 없었던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심정이였던 것같다.
(대놓고 사죄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당시 분위기는 '사죄 = 좌익에 대한 승복'으로 흘렀던 것 같다.)
그렇기에 여운형이나 좌익의 지도자들이 인기를 끌었고,
아예 해외에서 활동했던 이승만, 김구 같은 사람이 대안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문제는 친일파를 척결하자는 사람들을 때려잡았다는 사실이다.
반민특위를 통해 깔끔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움직임에 대해서 이승만 정권은 탄압을 가했다.
어찌보면, 이 때라도 반민특위를 통해서 잘 정리되었으면,
이렇게까지 시끄럽지는 않았을텐데, 아쉽게도 2004년 노무현 정권에서야 다시 한번 청산이 이루어진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조사가 원활하지도 않았고,
친일행위의 대가성으로 받은 재산이라는 근거가 있는 부분만 정리한 것이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노력이라도 한 것이 한편으로는 좀 기특하기도 한다.
(물론,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정도는 어린애 장난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그렇지만, 친일의 자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받고 탄압하려는 태도는 다소 무리가 있어보인다.
또한, 일제 시대에 태어나서 그게 맞다고 배우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어느정도는 감안해줘야한다.
이완용의 친일과 일제 하에 태어나서 배우고 자란 박정희와 서정주의 친일은 명확히 구분해줘야한다.
(물론, 박정희가 군사정권 시기 보여준 친일적인 행동들은 당연히 비난해야한다.)
친일을 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 맞춰서 평가를 해야하는 부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지금의 친일 평가는 안타깝게도 기록에 남겨진 부분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에 그게 너무 아쉽다.)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깊게 패인체 방치되어 흘러온 것이 문제이고,
상처를 치유하자고 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당한 현실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과연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잘 아물게 해서,
이 남겨진 상처 자국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오늘날 역사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남겨진 큰 숙제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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