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고궁 박물원(故宮博物院)과 톈안먼광장(天安门广场)을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정리해서 끝내버리려고 했으나...
명청 시절만 해도 황제가 톈안먼(天安门) 성루에 올라와서
백성들에게 중대사를 발표하는 궁정의 광장에 불과했던 이 공간은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공산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경험하면서 민주화와 공산화가 공존하는 중국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너무나 많은 생각할꺼리를 던져주었기에,
톈안먼광장(天安门广场) 이야기만 하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오늘은 중국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는 톈안먼광장(天安门广场)을 지나
자금성(紫禁城)의 실질적인 입구인 오문(午门)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청나라 시절 성곽 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포스팅 초반부에서 충분히 이야기했기에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2014 China ⑤ - 고궁 박물원(故宮博物院) 그리고 톈안먼광장(天安门广场)
황제가 걷는 길이 아니라 황제는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어가인 것이다.
가마를 든 가마꾼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양 옆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한 가지 재미있던 것은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와 보화전(保和殿)의 뒷 계단이
동일한 형태로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화전(保和殿)의 뒷 계단이 더 유명하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남들에게 항상 보여지는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이 더 중요할텐데,
운룡대석조라고 불리는 왜 보화전(保和殿)의 뒷 계단에 더 화려하고 좋은 돌을 사용했을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
일단 규모가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이 더 크기에
운룡대석조로는 커버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또 하나 가능한 시나리오는
보화전(保和殿)의 뒷 계단은 황제가 매일같이 보는 계단인데,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은 황제가 사실상 볼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태화전(太和殿)에서 업무를 보고 돌아가는 황제에게는
사실상 거리가 너무 멀기에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이 보이지도 않는다.
성밖으로 멀리 행차를 한 후 돌아올 때 말고는
태화전(太和殿)의 앞 계단을 어가를 타고 지나갈 일이 별로 없었기에,
보화전(保和殿)의 뒷 계단처럼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 더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정으로 들어와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바로 편액이다.
자금성(紫禁城)의 외정에서는 모두 한자로 편액이 써있었는데,
내정으로 들어오니까 모든 편액에는 한자와 만주족의 글씨가 병행표기 되어있었다.
왜 그런지 대충 추측은 됐으나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딱히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 내가 집착하는 것인가? 난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어쩔 수 없이 나의 추측을 이야기하고
혹시나 누군가 보고 명확한 사실 확인을 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자금성(紫禁城)이 지어진 것은 1420년
명나라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부터이고
이자성에 난 때 상당 부분이 전소되어 한동안 방치되다가 1645년 청나라 순치제가 재건해서 다시 사용된다.
명나라 때 처음 지어졌으나,
대부분의 건물들은 청나라 때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면에서는 재건 과정에서 편액에 병행 표기가 가능했지만,
청나라의 황제들은 외정의 건물들에 대해서는 한자로만 표기를 했다.
반면 내정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1798년 가경제가 재건한 것으로
아마도 이 과정에서 대부분 편액에 만주족의 글씨를 병행해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외정은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지만
내정은 개인적으로 생활을 하는 공간이기에 자유롭게 만주족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라 추측된다.
가경제 때만 해도 이미 청이 대륙을 지배한지 150년이 넘었고,
강희제-옹정제-건륭제를 거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점이 였다.
왕조가 안정되어있기에 내정의 재건이 가능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족의 눈치가 보여 외정에는 표기 못하던 만주족 글씨를 병행한 것으로 예상된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가정이기에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암튼, 만주족의 흔적을 이렇게라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흔히 몽골족의 정체성을 강조하다가
원나라가 100년밖에 못 갔던 사례를 반면 교사 삼아서,
청나라의 경우에는 한족의 문화를 상당히 받아들였으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체 만주족의 문화가 파괴되었다고 이야기되고 있으나,
이러한 노력들을 몰래몰래 하고 있었다는 점이 보여서,
자신들의 문화를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던 만주족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금성(紫禁城)에서
제일 재미있던 공간은 어화원(御花園)이라는 후원이였다.
자금성(紫禁城) 밖에만 해도 경산공원, 북해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존재하고,
좀 멀리 떨어져서는 이화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원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성내에서는 유일한 녹조지대다.
나무에 숨어서 자객이 잠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금성의 모든 구역에서는 풀 한 포기 구경하기 힘든데
이 곳은 중국전역에서 나무와 진기한 수석들을 모두 모아두었다는 것이다.
내가 재밌다고 한 것은 진기한 수석과 수백년 된 나무때문이 아니라
이런 공간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시대적 상황이나 황제의 처지가 아이러니 해서이다.
매일밤 침소를 옮겨다니고 심지어는 비밀 침실을 만들정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성 안은 보안 상의 이유로 풀 한 포기 자라지도 못하는 생명이란 찾아보기 힘든 공간이 되어버렸다.
황제라고 허울이 좋기는 한데,
새장 안의 새처럼 이것만 보고 지내라고 인공으로 정원을 만들어서 모아두었다.
특히 내정의 상당수의 건물들에는 세력다툼에서 밀려
아무런 실권도 없이 황제라는 허울만 쓰고 있었던 광서제의 슬픈 사연들이 녹아있다.
태화전에서 내려다보는 신하들,
톈안먼에서 내려다보는 백성들이 과연 이들에게는 사람으로 느껴지기나 했을까?
황제가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궁녀들과 환관들뿐이였고
나머지 권력다툼에 혈안이 되어있는 노련한 신하들은 오히려 더욱더 무서워보였을 것 같다.
황제라는 이유로 고립되면 될수록
오히려 더 어리석어지고 당연히 환관정치가 횡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이러한 환경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황제들은 진짜 하늘이 내려준 천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금성 관람의 마지막은 역시나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경산공원은 자금성 서쪽에 있는 3개의 인공호수(북해, 남해, 중해)를
만들면서 나온 흙을 쌓아 만들었다고 하며 명나라 시절에는 만세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의 장점은 자금성의 모습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는 것이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저~ 멀리 텐안문까지 한 눈에 다들어온다는 것이다.
성의 경계가 한눈에 다들어오기에
미쳐 못 느꼈던 자금성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다시 한 번 피부로 느껴질 수 있다.
(너무 커서 큰 길만 따라왔는데, 알고보니 옆으로도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더라...)
명나라 마지막 날 숭정제가 만세산에 올라
불타는 궁을 바라보며 홰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사연으로 더 유명한데,
이 곳에서 궁이 불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암울한 생각만 들뿐이였다.
베이징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기에
서쪽으로는 북해공원이 북쪽으로는 종루와 고루까지 잘 보인다는데...
이거는 뭐 날이 안좋아서 북해공원의 백탑말고는 사실 제대로 보인 것이 별로 없다.
암튼 경산공원의 정자들은
베이징에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야할 최고의 지점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첸먼에서부터 경산공원까지 무려 3시간에 걸친 도보 행진은
여기서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날까지 너무 더워서 진짜 왠만한 사람들은 여기서 탈진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역시 여행은 체력인가?
그 중에서도 고궁을 제대로 둘러보겠다고 맘 먹었다면 진짜 최고의 체력이 필요한 듯하다.
(예전의 경비병들은 어떻게 이 큰 성을 지켰는지 몰라... 암튼 중국의 스케일을 제대로 느낀 일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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