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연구방법론 수업인데, 처음으로 읽은 책은 철학에 대한 책이다.
당췌 뭔소리를 하는 건지...
솔직히 굉장히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책이다.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에 대한 내용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근데 저자의 이력을 보면 재미있다.
http://www.ncl.ac.uk/gps/staff/profile/william.outhwaite
옥스포드에서 학부를 나왔는데, 석사와 박사는 Sussex라는 작은 대학에서 받았다.
(계속 서섹스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뉴캐슬로 자리를 옮긴 듯하다.)
'세계적인 명문대에서 1960년대 새로 생긴 대학으로 옮겼으니 공부를 별로 못했나?'
나의 이 의구심은 무식함의 반로라는 것은 조금만 알고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영국에는 9개의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었고, 신생대학들은 독특한 학문적 영역을 개척했다.
주로 좌파색채가 강했다고 평가를 받는 이들 학교들에 젊은 학자들이 몰려들었고,
상대적으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활용한 서베이를 못하면서 양적연구보다는 비판연구에 주목했다고 한다.
근데, 이것이 1960년대 양적연구에 대한 비판적 흐름과 합류하면서 영국의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질적 연구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영국의 경영학에서 큰 연구 흐름을 형성한다고 한다.
미국식 연구 흐름에만 익숙하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참 새로웠다.
(내가 주로 읽었던 경영학 연구에 대한 내용들은 주로 미국의 이야기였기 때문)
암튼 이 책을 읽고 사회과학철학의 필요성에 대해서 느낀 바가 많아서 기록으로 남겼다.
수업 시간에 과제로 짧게 적어본 것이기에 부족함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학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내용을 공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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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 (출처 : 두산백과사전)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은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다르게 이야기하면 철학이라는 단어를 못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에 대해서도 철학을 할 수 있으며, 사랑에도 철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철학과 사회과학을 분리된 분야로 생각했고, 이는 경영학에도 마찬가지다. ‘경영철학’이라는 표현은 사실 자연스러운 단어의 조합이지만,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경영학도에게는 낯설은 조합이다. 경영학과 수업에 철학과 관련된 수업이 개설된다면, 이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우리가 이미 철학과 경영학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고, 실체도 없고 현실에서 써먹기도 힘들 것 같은 철학과 시대흐름에 민감하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접근을 할 것만 같은 경영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러한 편견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어느새 경영학과는 당장 회사에서 써먹기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직장인 양성소가 되었고, 타 전공 학생들은 경영학 과정을 수강해서 조금이라도 취업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면, 학문적으로도 경영학자 역시 주로 글로벌 대기업들 위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집중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과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익을 최대로 내는 것을 목적이라고 본 반면, 피터 드러커는 고객의 가치 창출에 있다고 보았고, 최근에 마이클 포터는 공유가치창출(CSV)를 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관점은 계속해서 변화해왔고 기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관점도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서 바뀌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그리고 기업을 연구하는 경영학의 관점 역시 끝없이 성찰하고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하고, 어떤 종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연구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스럽게 사회과학에서 철학적인 성찰과 질문이 필요하다는 관점과 맥을 같이한다(Benton 2001). Outhwaite(1987)는 자연과학의 경험주의적 관점에 바탕을 준 콩트식 실증주의와 비엔나 그룹(Vienna Circle)의 논리경험주의, 포퍼류의 비판적 합리주의, 실용주의적 관점과는 다른 실재론, 해석학, 비판이론적 관점을 사회과학의 중요한 관점이라고 이야기한다. Benton (2001) 역시 이러한 견해와 동일한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다양한 대안으로 전통 마르크스주의, 베버와 머튼의 과학사회학, 역사적 인식론과 구조적 마르크스주의, 상대주의, 여성주의, 행위자네트워크이론, 현상학적 관점, 합리적 선택이론, 상징적 상호작용이론, 해석학, 비판이론, 비판적 실재론, 탈구조주의와 탈근대주의 등으로 그 영역을 더욱더 확장시킨다. 이러한 견해는 기존의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틀 안에 묶여있던 사회과학에 대한 연구 방법과 문제 의식을 대폭 확장해주면서, 현실에서 멀어진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닌 현실 속에서 더욱더 현실과 더욱 가까운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을 한다면 기업은 무엇이며,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도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경제적 제도로써 기업을 바라보고, 시장 중심적이고 이익 창출 중심으로만 보던 경영학의 관점을 보다 확대해 사회속의 하나의 조직의 형태로 기업을 바라보고,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저장된 잠재력을 실현하는 인류의 소명을 다한다(Nicholas 1983)는 관점으로도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확장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연구하는 협동조합경영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다. 기존의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영학의 영역에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기업의 관점과는 다른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의 확장은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기존의 양적 연구방법과는 다른 질적연구방법도 필요하다는 방법론적 확장을 자연스럽게 가져오게 만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영학에서는 미개척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어떠한 연구방법이 어떠한 상황이나 어떠한 대상에 더 적합하며, 기존에 주류를 이루어왔던 양적 연구방법을 어떠한 형식으로 활용할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많이 도입되지 못했던 질적연구방법을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해 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경영학 연구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고의 확장을 통해서 그동안 경영학 분야에서 부족했던 철학적 사고와 성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어 일으키고 경영학의 연구 분야과 방법을 확장시켜나가는 것 또한 경영학 연구자로써의 새로운 사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Benton, T. (2001). "Philosophy of social science: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social thought." / 사회과학의 철학 (이기홍 역, 한울아카데미 2014)
Nicholas, W. (1983).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Michigan: William B, Eerdmann Publication.
Outhwaite, W. (1987). "New philosophies of social science: Realism, hermeneutics, and critical theory." /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이기홍 역, 사회학강좌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