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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과 철학의 관계...
석사 때, 특히 질적연구방법으로 논문을 쓰기 전에 읽었어야 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어디가서 질적연구방법으로 논문을 썼다고 이야기하기가 민망해지는 요즘이다.
이 책은 시회과학철학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자연과학과 실증주의 연구부터 시작해서, 쭉~~ 여러가지 흐름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보려고 했으나, 살짝 뒤쪽으로 갈수록 주관적인 견해가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고, 자신의 의견은 보론에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이 가상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좀 어려웠다.
심지어 결론에서는 대놓고, 그건 철학이 아니라는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저자가 비판적 실재론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강하게 비판할 줄은 몰랐다.
이 사람도 오스웨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학풍의 1960년대 설립된 대학에 다녔다.
(세섹스와 에섹스가 처음에는 같은 대학인줄 알고, 처음에는 같이 공부했구나? 생각했다.)
에섹스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조직생태학과 비판적 실재론에 관심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적인 학문들의 전통이 살아있는 영국이 은근 부럽다.
암튼, 여기에 백화점식으로 나열해준 다양한 생각들은
내 위치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줬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쭉~ 살펴볼 수 있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질적연구방법을 활용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 번쯤 읽어봐야하는 책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오스웨이트의 책에 비하면 너무나 친절하고 쉽게 써주셨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결국 논문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써보기로 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학회지에 기고하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수준이다.
(진짜 똥오줌 못가리고 논문을 썼다는 말이 적당한 듯하다.)
과연 내가 얼마나 만족스로운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이 정도면 됐지~ 하면서 설렁설렁 마무리했던 지난 겨울이 너무나 부끄럽기만 하다.
+
“이 책이 사회과학의 성질에 관한 결론나지 않은, 그리고 아마도 성질상 결론 날 수 없는 주장을 담은 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들과 사상가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것처럼, 각각의 과학, 즉 각 형태의 과학은 관련된 학문분과들의 변화에 영향을 받고 또 한 다른 학문분과들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Benton and Craib 2010).”
결국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연구자 각자의 견해들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연구물들을 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놓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큰 연구흐름들을 형성해왔으며, 이러한 연구 흐름들은 학파(school)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내놓은 결과물도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 분류되고 구분될 것이다. 내가 어떤 렌즈를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대신 이에 대해서 분석을 해줄 수도 있다. 아니면 내 연구결과를 좀 더 명확하게 하고 설득력을 갖거나 좀 더 학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스스로 내가 어떤 렌즈를 세상을 보고 있는지 앞서 세상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서 설명해야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내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아직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지만, 권위도 없기에 아직까지는 ‘거인들의 어깨위에 서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법을 배워나가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Benton and Craib (2010) 과 Outhwaite (1987)의 책은 내가 과연 누구의 어깨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내가 디딛고 있는 이 곳이 얼마나 탄탄한지 아니면 얼마나 부실한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석사 시절 Burrell and Morgan (1979)의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사회과학의 연구에서는 기능주의적(Functionist) 패러다임 이외에도 해석주의(interpretive), 급진적 인문주의(radical humanist), 급진적 구조주의(radical structuralist) 패러다임이 있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적 연구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였다. 이렇게 다양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니… 그 책은 나에게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박사과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세상을 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렌즈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지 못했다. 조직이론 수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어떻게든 석사논문을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석사를 졸업해야지 박사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끼고 있는 렌즈가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논문이 완성되는 것이 중요했고,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 체 해피브릿지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기록들을 모아서 그럴듯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이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그 이론을 찾아서 조직 변화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자연과학에서 시작된 복잡계 이론의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을 찾아냈다. 이제 모든 현실은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에 껴맞추기 시작했다.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고,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에 맞춰서 이야기는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Burrell and Morgan (1979)의 이야기는 이미 잊혀진 이야기였고, 솔직히 그들이 이야기한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다만 그들이 이야기한 결론, 다양한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부분만 머리 속에 추억으로 남겨져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Benton and Craib (2010) 과 Outhwaite (1987)의 책은 잊고 지내던 Burrell and Morgan (1979)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주었고, 당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전혀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세삼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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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rell and Morgan (1979)은 사회학의 패러다임을 분류하기 위해서 2가지 측면에서 이론들을 분류하였다. 사회과학의 본성에 대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측면, 그리고 사회의 본성에 대한 질서와 갈등의 논쟁을 중심으로 4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패러다임에 따라서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내가 너무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분류는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였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에서 출발했던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분류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분류에 따라서 또 다른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합리주의는 비판적 실재론과 탈구조주의로 발전해나갔으며, 경험주의도 실증주의 뿐만 아니라 반실증주의 성향의 다양한 이론들로 발전해나가게 된다(Benton and Craib 2010).
Benton and Craib (2010)과 Outhwaite (1987)는 공통적으로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실증주의적 성향의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지만, 지식의 자동적 차원과 타동적 차원을 구분하는 바스카의 견해는 경험주의적 전통의 한계와 합리주의적 전통의 비판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으로써 저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접근이다. 탈근대주의자들의 태도가 철학적 논증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저자들은 하버마스와 함께 기존 이론들에 대해 가장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경우에는 인간과 사회의 합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프로이트의 강조를 과소평가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결국은 해석학과 구조주의의 통합에서 해석학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판적 실재론의 실체에 대해서는 뜬구름을 잡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바스카의 자동적 차원과 타동적 차원, 비판적 자연주의 견해, 변형적 사회행위모형, 설명적 비판 등의 개념들이 머릿 속에서는 대충 이해는 가지만 아직까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이해한 것인가? 나의 견해와 비판적 실재론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난 아무래도 탈근대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들이 이야기하지 않은 또다른 나만의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것을 알면 알수록 명쾌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만 발견해나가는 느낌이다. 오히려 단순하게 이해했던 시절이 더 속 편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견해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어떤 왜곡과 편견으로 쌓여있는 것은 아닌가? 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