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봉 교수의 고민의 시작은
2009년 진보신당의 강령 전문 작성 시
자신이 작성했던 문구가 가진 결정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
강령에는 이런 문구를 삽입했지만,
정작 자본주의에 대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상봉 교수의 고백은 현재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한 마디로 정리해준 말이다.
나 역시 진보 진영의 논리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그들에서 쉽게 표를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 진영은 언제나 말만 뻔지르하게 할 뿐,
실질적인 대안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가 등장하고,
어떻게 보면 이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상황이지만,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이들은 이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잘 갔다 붙이고 있다~
이제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는 정치적 수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려워져 버렸다.
(결국 손해보는 것은 서민이요, 이 땅의 억울한 노동자들이다...)
자본주의의 폐해...
그 실질적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이 부분은 내가 직장인 시절 가장 고민한
'행복한 회사란 어떤 회사인가?' 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
이 부분에 있어서 김상봉 교수와 나는 견해를 달리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와 나는 동일하게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상봉 교수는 현재 경제 체재를 주도하고 있는
기존의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한다면,
나는 주식회사에게 영역은 기존 그대로 내어주고,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김상봉 교수는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을 어떻게 바꿀까를 고민한다면,
나는 협동조합 형태의 새로운 회사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나의 접근이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쉬운 접근이다.
하지만, 나의 접근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상봉 교수는
협동조합이 아닌 노동자 경영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교수님이 존경스럽다.)
김상봉 교수 역시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협동조합이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 주된 기업형태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소유와 경영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식회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협동조합의 모델을 가지고서 주식회사를 혁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협동조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오직 주식회사에만 집중한 까닭이다. (p.324)
하지만, 김상봉 교수의 관심은 기존 주식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에 있었던 것이다.
+
이 책은 주식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경영에 관련된 서적이 아니라 엄연히 철학 관련 서적이다.
기업과 주식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철학적 접근...
기존 경영학자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그 근본에 대한 탐구이며,
아무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주식회사의 문제점에 대해서 철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김상봉 교수의 이성적인 고찰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기업을 한 번도 안다녀봤을텐데...
기업과 주식회사의 본질을 이렇게 꽤 뚫어볼 수 있을까?
물론 긴 시간은 아니지만,
7년이란 기간동안 주식회사를 경험하면서 가졌던
수 많은 고민들을 김상봉 교수는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독재', '월급의 노예'라는 단어 는
내가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주 썼던 표현이다.
기업이야말로 어차피 사장을 선거로 뽑는 단체가 아니므로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독재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p.26)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자들이다.
다른 한편에서 기업의 노동자로서 우리는 일종의 임금 노예이다. (p.29)
신을 팔아먹는 성직자들이 가장 신을 믿지 않듯이,
시장을 팔아먹는 경제학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시장을 믿지 않는 것은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하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다. (p.63)
기업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1장을 읽는 내내
나는 김상봉 교수의 문제 제기와 논리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리되지 않았던 나의 생각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듯한
그의 주장들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고, 대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
2장은 본질적인 철학의 장이다
자유, 소유 그리고 권력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통해서,
왜 주식회사에서 경영권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놀라운 접근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주관적인 철학이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을 소유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기업에 부속된 사물로서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며,
노동자는 결과적으로 노예의 자리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참된 의미에서 기업의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권을 자본가의 손에서 국가의 손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소유권과 기업의 지배권, 즉 경영권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본의 소유권과 당연하게 동일시 되어온 경영권을
그와 분리시켜 도리어 노동권과 동일한 것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를테면 주식회사에서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경영권은 오로지 그 기업의 노동자에게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p.131)
그리고 나서 3장에서 바로 이어서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주식회사는 한편으로는 자본의 결합체로서 인간적 요소를 배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주인 없는 자본이란 없으므로
반드시 자본의 뒤에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주식회사는 한편으로는 어떤 인격적 단체의 모습을 띠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적 단체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p.167)
이러한 김상봉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기존의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의 출발 자체가
식민지 개척 시절 대뮤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유한책임이라는 편법적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실리를 위한 편법이었으니,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모순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책을 심도 있게 읽어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철학적인 접근이 많기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하며 이 책의 핵심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어려운 접근인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4장을 읽어보면
뭐가 잘못되고 있기는 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상봉 교수는 독일과 미국, 일본의 주식회사 구조를 설명하면서
왜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가 소유하는 주식회사가 말이 안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이슈이기 때문이다...
회장이라는 직함은 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
이건희 회장은 싸인도 안하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질 일도 없다는 사실,
삼성의 핵심 조직이라는 구조본은 법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조직이라는 사실,
구조본 사람들은 모두 계열사 소속이며, 월급은 계열사에서 받고 있다는 사실...
말도 안되는 이런 지배구조가 대한민국 최고 기업 삼성의 지배구조라니...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해서 너무나 모두가
당연히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소유이고,
경영권 역시 이건희 회장이 갖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에 아무도 시원스럽게 답을 못한 체,
이건희 회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냥 이병철이 설립자니까...
이건희는 그의 아들이니까...
이런, 전근대적 사고에 잡혀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이다.
'원래 그 집안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냥 가지게 내비두어~'
이런 반응들을 보면 참~ 대한민국 국민들은 착해도 너무 착하다.
주식회사가 된 이상,
수 많은 계열사를 가진 그룹사가 된 이상
물리적으로 이건희 회장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지분 뿐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삼성의 계열사 전체를 자신의 소유물인양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
김상봉 교수의 최후의 결론은
노동자에게 경영권을 주자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아무도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법적인 인격체이고,
경영권은 기업이라는 공동체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주는 자신의 자본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이익을 취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상봉 교수이 핵심 주장은 아래와 같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p.308)
주식회사의 감사는 주주 총회에서 선임한다. (p.309)
그리고, 그 모델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운영 방식을 예로 든다.
지분은 주식회사 형태로 배분되지만, 지휘자는 반드시 단원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운영방식일 수 있는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을 주장한다.
하루 아침에 법률을 뜯어고치면 좋겠지만,
기득권층의 사회적 반발을 고려하여 실행 가능한 곳부터 도입하자는 것이다.
공기업 - 법인 단체(학교, 비영리 단체) - 공익성을 가진 언론사 (KBS, MBC)
아직까지 제왕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전근대적인 사고 역시 많이 잔존해 있기에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대한민국이 개선되어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하다.
+
역시나, 김상봉 교수의 접근 역시
협동조합운동과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이듯,
노동자 경영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의식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구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
노동자 경영권을 실현한다는 것은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에
명실상부하게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노동자가 생산을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p.320)
노동자가 이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되었느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운동이 한 때 힘을 받다가도
스스로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이 내부의 부패와 조직력 문제였다.
(물론 시민사회 진영과의 연대하지 못한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스스로 노예 근성을 벗어던지지 않는다면
실제로 권한이 주어졌을 때 이에 대해서 책임질 수 없고
다시금 권한을 되돌려 줄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이 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왕정이 되살아났던 이유이며,
진보진영이 정권을 다시 빼앗기게 되는 주된 원인이다.
이에 대해서 김상봉 교수의 마지막 맺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노예로서 지배자와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쉬워도
긍지 높은 자유인으로서 책임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참~ 어려운 부분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그 사람들은 노예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온다고 하면 쉽게 기득권에 붙어버리기도 한다.
남들이 고통당할 때 외면하다가,
자신이 피해의 당사자가 되고 나서야~
내가 속았다면 뒤늦은 후회를 하기 일 수이다...
그래서, 역사는 아주 더디게 발전되어왔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아직도 성장통을 겪고 있다.
정치도 아직 멀었지만, 경제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그 험난할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
이런 분들이 앞장 서서 나가시는 것이 참으로 힘이 된다.
'Books > 경제/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 지승호 (2007) (0) | 2013.12.29 |
---|---|
젊은 지성을 위한 [자본론] - 김수행 (2012) (0) | 2013.12.29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2010) (0) | 2013.12.29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Owning our Future) - Marjorie Kelly (2012) (0) | 2013.12.19 |
경제학의 향연 (Peddling prosperity) - 폴 크루그먼 (1997) (2) | 2013.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