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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면서 갈등적인 이해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질서와 방향을 찾기 위한 방도가 찾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조직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사실 '정치'란 단어는 굉장히 지저분한 단어로 간주된다.
그래서,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정치적인 조직에 대해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의 기본 기능 중에는
통치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이 반드시 존재하며, 이것을 어떻게 구연할까의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적 경영이라는 요소 때문에 화두가 되는 협동조합도
어찌보면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특성이 좀 다른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말하면 형태만 다르지 어짜피 정치라는 측면은 동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치적 측면에서 조직을 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좀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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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는 연구는
이해관계 분석, 조직 내 갈등 구조, 권력의 문제 등과 관련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왔다.
정치적 관점은 조직을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통합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느슨한 네트워크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파벌과 경쟁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것과 같이
공동 관심사를 추구하는 연합에 집중해서 분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렇기에 조직 내에서는 개인적 갈등도 있지만,
이러한 이해관계집단간의 경쟁적인 쟁투가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며,
이것이 제도화되고 사회화되기 시작하면 그 갈등을 깨뜨리는 것은 고사하고 규명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게 된다.
표면화되고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은 어쩌면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제도화되고 고착화되어버려서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갈등 구조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권력(power)에 대한 탐구는
정치적 관점에서 가장 흥미롭고 연구도 가장 활발한 주제이다.
조직 내의 권력의 원천은 매우 다양한데,
공식적인 권한(authority)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며 가시적인 권력의 원천이다.
반면에 공식적인 권한은 없지만 희소한 자원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이는 숨겨진 실세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대부분에 회사에서는 자금의 흐름을 쥐고 있으면 최고의 권력을 누린다는 속설이 있다)
한편, 조직 내 권력은
조직의 구조와 규칙, 규제와 절차를 행사할 수 있는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도 보여진다.
또한, 의사결정 과정이나 지식과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 능력과 비공식 조직에 대한 통제 능력,
기술에 대한 통제, 대항 조직에 대한 통제, 남녀 성별 관계에 대한 관리, 상징적인 의미 등도 권력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의 원천이 많다는 이야기는
조직 내 권력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이 개인적 관계나 구조적 요인때문에 올 수도 있고 견력이 여러 개일 수도 있고 한 쪽에 몰릴 수도 있고,
실제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사실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참으로 문화만큼이나 모호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권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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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권력에 대한 논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 투쟁의 이슈라든지,
조직 내의 지배구조 형태와 이해관계자간의 갈등에 대한 부분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는 항상 억압받고 착취되는 대상으로써 묘사되었지만,
막상 노동조합은 하나의 이익집단화되어서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된다.
정치로써 조직을 볼 때 한가지 흥미로운 발견점은 노동조합에서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독일식으로 바뀌는 것을 좋아할까?
가레쓰 모간은 이부분에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노측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공동의사결정제도처럼 경영과정에
일부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노동자들이 기존의 지배시스템 속에 흡수되고
회손 되어서 결국 전정한 견제 세력의 힘이 점차 감소되는 상황이 창출될까를 우려하게 된다" (p.223)
노동조합에서는 단지 경영진을 견제하는 입장에 만족할 뿐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냥 싸우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이면 막상 의사결정하라고 하면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측에서는 뻐아픈 지적이지만,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계에서 일부러 집권당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 야당의 국회의원들과 동일한 심보인 것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공동의사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관리 원칙에 의해서 운영되도록 종원원이 소유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기에 노동조합은 항상 소수의 운동이 되어버렸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노동자와 경영자의 불만을 잠식시키는 역할밖에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을 대한민국에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은 그렇게 나이스하지 않기에 노동조합을 하나의 이익집단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70~80년대에 그랬지만, 아직도 노동조합의 주장이나 태도를
이익집단화되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노동조합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잃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들은 그냥 용기있거나 아니면 무모한 사람들에 불과하며
노동의 기본권을 위한 투쟁의 일선에서 총알을 맞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퇴직의 위협과 압박은 고사하고, 최근에는 엄청난 벌금폭탄까지 맞으면서 구속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과 경영진의 갈등은
권력이나 정치가 아니라 어찌보면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로 봐야할 것같다.
그래서 정치적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볼 때,
노동조합에 대한 가레쓰 모건의 견해는 대한민국에서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가레쓰 모건이 한국의 노동조합의 투쟁현장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정치적 관점이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는데,
정치적 관점에서는 항상 갈등과 권력의 경쟁을 중심으로 조직을 이해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기 보다는 냉소주의와 불신을 조장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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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치적 은유로 조직을 바라볼 경우 가장 큰 장점은
조직 내 행위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은 이러한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변화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소 느슨하게 짜여질 필요가 있으며, 상황에 맞게 그 구조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원론적 접근은
조직 정치의 필연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갈등과 권력 게임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모두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갈등은 과연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갈등은 조직이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지속적인 혁신이 발생하게 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또한, 경쟁적인 견해와 상이한 목적 및 목표들의 존재는 대개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켜준다.
갈등은 어떨 때는 변화를 자극하지만, 어떨 때는 조직의 현상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갈등은 관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조직을 읽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모든 갈등이 다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라는 녀석...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