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행복의 가치,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터스 칼리지 대학장

열린 공동체 사회 2015. 6. 22. 10:23

사람이 살아가는데 목표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2차세계대전 이후,
서양철학에서는 인간의 역사에는 목적이 있다는 관점을 버리기 시작했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사조들의 움직임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온 당시 젊은 학자들을 통해서 한국에서 전파되었다.

특히나 목적론적 사고를 가졌던 공산주의나 나치즘의 실패는
목적을 향한 발전이 가져온 일생생활들의 폐해를 통해 우리의 피부에도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목적이란 것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점차 더 어려워진다.

국가주의가 팽배한 국가에서는 아직도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설정’하는 목표는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렇기에 밖에서 강제로 동원되는 목적론적 접근은 위험하지만, 
스스로 설정하는 삶의 목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삶의 목적을 설정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고, 
삶에 대한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기에 방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꿈과 이상적인 꿈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이로울 것인가?

현실 사회는 불평등 사회이고, 험난한 사회이다.
이에 비해서 이상은 일종의 지키고 싶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을 갈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물론, 현실과 이상을 갈라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분리는 현실과 타협하기 위한 핑계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현실주의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압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상이 실현불가능하더라도 이상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상과 허무 맹랑한 공상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상은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목표와 의미의 관계처럼, 이상이라는 것이 있어야 삶의 방향성이 존재할 수 있다.

이상이 없는 사회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시장지향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은 돈을 버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삶의 화살표로써 이상이 없다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이상으로 삼는 태도가 있어야 삶에 의미가 생길 수 있다.
삶에 돈이 필요한 것이 알기에, 돈 이외의 이상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더욱 느껴져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양이란 것이 더욱더 필요해진다.

한국 사회는 교양이 없는 사회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교양이라는 것은 이상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다.

+


도정일 대학장의 짧은 강의는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왜 이상이라는 것을 추구해야하는지...

그것이 설사 허무맹랑하고, 실현 불가능해보일지라도
우리는 이상이라는 것을 추구하고, 이에 집착하는 기본적인 교양을 갖춰야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며, 
우리의 삶이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정일 교수의 식견은 놀라웠고,
짧은 시간에 왜 교양이라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일목요연한 강의를 들려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도정일 대학장이 생각보다 나이가 굉장히 많으셨고,
굉장히 노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목요연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점이였다.

물론 뒤에서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체력을 한계를 보여주듯 강의 시간의 명철함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강의 내용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경희대 후마니터스 칼리지가
처음의 야심찬 계획보다는 다소 과목도 줄고 규모도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서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든다.

강의 내용에 비하면 흡입력이 좀 떨어졌지만,
좋은 삶과 행복한 삶에 대한 질의응답도 기억해줄만 내용들이 많이 있어서 정리해두려고 한다.

+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은 같은 의미인가?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은 같은 의미여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을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치관을 물어보면,
행복한 삶의 기준으로 돈, 사랑, 건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삶의 기준일 뿐이다.

모두가 길을 잃었을 때는
남보다 앞선다는 것과 뒤쳐진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좋은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인가?
좋은 삶이 아닐 때 행복한 삶이 될 수는 없다.

좋은 삶이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의미한다.
일단 내가 그렇게 평가해야하고, 타인들도 그렇게 평가해주면 금상첨화이다.
여기에는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가치가 들어오게 된다.

행복한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인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먼저 정리할 수 있어야한다.
좋은 삶을 추구하면, 행복한 삶은 따라오게 된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호기심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호기심은 우리에게 상상력과 창조력을 자극해준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면 호기심을 죽이는 과정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답을 맞추는 교육을 받은 머리에서는 호기심이 나올 수가 없다.

반면에,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행복을 줄 수는 없다.

인문학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있다.
인문학은 끝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3대 화두는 의미, 가치, 목적이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기 마련인데,
쓰잘 때 없이 고귀한 것들이 바로, 의미와 가치, 목적이다.
인간이 쓸데 없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유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버릴 수 없는 일이 있다.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세우는 일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주입하는 일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세우는 일

좋은 삶을 위해서는
민주적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적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의미를 세우고, 희망을 주입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없지만,
좋은 삶을 위한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좋은 삶은 행복한 삶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다.



* 본 내용은 오마이스쿨에서의 도정일 대학장의 강의내용을

  개인적인 견해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