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마을공동체, 공동주거, 귀촌을 고려할 때 생각해야하는 것들...

2014.06.27 12:35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이 이어지면서...

언젠가부터 귀농이 한 때 유행이 되더니,
최근에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사람 냄새 나는 이웃과의 삶을 꿈꾸면서,

땅콩집과 같이 지인들끼리 집성촌을 이루는 모습도 나타난다.


여기에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귀농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1990년대 유행했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귀농에 대한 로망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

지인들과 함께 이웃이 되는 공동주거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귀농...


자연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된 이런 움직임들이,

새로운 주거 형태로써 주목을 받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1990년대 유행했다가 

자소 주춤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물론 그때는 현실 회피적인 성향이 강했고, 

이러한 움직임을 시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한 로망으로만 시도했다.


그에 비해서 요즘의 움직임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많은 것을 고려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오늘날 새로운 주거형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내용들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


첫 번째는 이웃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웃과의 활발한 교류와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면 아주 행복할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모여서 살다보니까 

오히려 불편한 것도 많고 사이도 서먹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함께 모여서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즐겁고 재미있는데 점차 사생활도 없어지고 생활 패턴도 점차 달라지면서...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이 불편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은근히 나이 차이가 존재하면 상하관계도 나타나기도 하고,

서로간의 삶이 너무 노출되면서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차 높아질 수도 있다.


듣고 있자니, 연애와 결혼의 차이 같이 느껴졌다.

쉽게 이야기하면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가끔은 나만의 영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오래 살다보면 주말부부가 최고라는 이야기처럼,

서로간의 자신만의 공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하는데 

너무 밀접하게 살다보면 그게 점차 불가능하기에 점차 불편한 것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날 들었던 아주 인상깊은 표현은


"이웃 간에는 스프가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도울 수 있고,

외로울 때는 함께해줄 수는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영역들은 인정해주는 정도의 거리...


이것은 물리적인 거리일수도 있지만,

심리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공동주거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고려해봐야하는 중요한 원칙인 듯하다.

같이 살면서도 개인들만의 영역이 보장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해야된다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는 분명히 다른데,

이것이 애매하게 혼합되기 시작하면 오히려 불편함들이 먼저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두 번째는 도시와 시골 생활에 대한 충분한 이해이다.



시골생활과 도시생활에 대한 비교가

흔히들 매우 단편적이고 이원론적인 경향이 있다.


도시 생활은 이웃이 없고 시골 생활은 사람 냄새가 난다.

도시 생활은 자연이 없지만 시골 생활은 자연과 함께한다.


도시 생활은 바쁘고 다채롭지만 시골 생활은 매우 단조롭다.

도시 생활은 수입은 많지만 지출이 많고, 시골 생활은 적게 벌어서 적게 쓰게 된다.


하지만, 시골생활에 있어서

사람 관계가 단순하고 편안하다는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영국의 한 사회학자는

도시생활의 사람관계가 복잡하다면(Complex),

시골생활의 사람관계는 혼잡하다고(Complicate)고 설명한다.


도시에서는 매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굉장히 일시적인 만남이 많고 목적 지향적인 관계가 대다수를 이룬다.


그렇다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매우 명확한 경향이 나타난다.

(직장 동료, 교회 사람, 동기동창, 사업 파트너, 공무원과 주민 등)


하지만, 시골생활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보니,

한 사람의 관계가 매우 혼합된 측면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사람이면서 동네 경찰관이고, 이웃 집 사람의 사촌인 사람이 존재하게 됨)


도시에서는 업무로 만난 사람은 업무적으로,

교회에서 만난 사람은 교회 사람으로 대하면 됐지만,


시골에서는 이러한 단면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주 단속에 걸려도 경찰관이 같은 교회 사람이나 이웃집 사람의 친척이기 일수이고,

물건을 팔 때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서 이것저것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만나는 사람의 수는 적어지지만,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게서 고려해야하는 요소들이 매우 많아지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해야하고,

더 많은 것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삶의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한 시민운동가는 부인의 건강이 안좋아져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귀농을 했으나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부인이 우울증에 걸리는 상황도 발생했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현지 적응이 매우 어려워서 다시 도시로 U턴하는 모습들도 많이 나타난다.

시골 생활에 대해서는 환상을 좀 버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국내도서
저자 : 마루야마 겐지 / 고재운역
출판 : 바다출판사 2014.03.20
상세보기



+


세 번째로는 마을 원주민들과의 이질화 현상이다.


최근에 집단 귀촌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독특한 현상중에 하나인데,

도시 사람들이 특정 지역으로 귀촌이 몰리게 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의 저지리 예술 마을이다.


제주도의 저지리 예술 마을은 

많은 예술인들이 제주도의 저지리에 모여들면서,

성공적인 새로운 마을 형성의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저지리 예술 마을에 대한 관련 기사 보기 < 클릭


하지만, 마을의 정체성이 완전히 변화하면서
기존의 거주자들과의 삶이 이원화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예술인들의 성향상
혼자서 유유자적하면 예술활동에 몰입하기 마련이고,

시골 사람들의 성향상
먼저 다가가서 그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그냥 지켜보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융화되기보다는 별개의 삶을 살게 되었고,
저지리 자체는 예술 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각종 문화 행사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착 원래 살던 마을 주민들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들이 되고만 것이다.
뭐 그렇다고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예술인들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고...

원래 마을과는 전혀 다른 마을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농사를 짓던 원주민과 새로운 예술인들 사이의
삶의 방식과 사고가 너무 다르다보니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이와 매우 대조되는 경우가 충남 홍성 홍동면의 사례이다.


충남 홍성 홍동면의 경우에는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상당 수의 사람들이 귀농을 했다.

원래 주민들도 농사를 짓고 있었고
새로 내려온 사람들도 농사를 지으려고 내려간 것이다.

풀무학교라는 시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교류할 수가 있었고,
마을 자체가 오랫동안 협동조합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활한 교류가 가능했다.

귀농자들이 높은 학력 수준과 다양한 재능을 마을 주민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도 새로운 귀농자들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면서 새로운 문화들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귀농자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귀농을 받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에 달했다고 한다.)

시골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서로의 의미를 찾으면서 서로서로 잘 융화를 이루면서 지내고 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도 귀농을 한 지인이 청년공동농장협동조합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직접 방문도 해보고 지금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물론 홍성의 경우에는

풀무학교와 협동조합에 대한 오랜 전통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하지만, 마을 원주민들이 소외되지 않고 귀농자들과 함께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삶에 있어서의 필요성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점이 너무 인상적이였다.

(물론 내가 본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그곳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이는 마을 공동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성미산이나 수락산의 마을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관심이 가는 곳이다.



공동체가 많이 파괴된 현대 사회에서는

마을을 만들고 이웃과 잘 지내려는 움직임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자체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해주고,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모델들을 제시해주면서 자발적인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지만,

아직까지 참여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시는 분들이라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는 고민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열린 공동체 사회 Social Innovation/Social Economy 공동주거, 귀농, 귀촌, 도시생활, 마을 만들기, 마을공동체, 삶의 스트레스, 성미산, 수락산, 시골생활, 이웃, 저지리마을, 지자체, 집성촌, 풀무학교, 홍동면

왜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화두인가?

2013.12.11 20:50


작년부터 협동조합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획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관련 서적도 시중에 굉장히 많이 나와있는 상황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기업에 열광하더니,

이번에는 협동조합이라...


이 번에도 사회적 기업처럼 잠깐 부는 열풍일까요?


사회적 기업 육성해야한다고 하더니...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만 들리는데...


'이번에도 실패한 사회적 기업의 재탕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서

맞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


일단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재탕이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일자리 창출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2가지 였습니다.


해외 인턴과 창업


여기에서 창업을 위한 도구로

노무현 정부때부터 시작했던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죠~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멋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도구로써

사회적 기업이 고용을 늘릴 경우 인건비를 지원해주기 시작합니다.


10명 이상 고용할 경우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형태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인건비를 지원을 해주죠~


지원금액의 70%이상이 인건비에 집중하며,

인건비를 지원받기 위해서 비정상적으로 고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비 정상적인 운영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5년 넘게 8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영업이익을 내는 사회적 기업은 14.1%에 불과해 생존률은 20% 수준으로 봅니다.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게 되죠...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됩니다.

마침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협동조합을 만나게 되죠~


협동조합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관점은 기존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야권에서 협동조합을 보는 시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의 흐름 속에서

협동조합이라는 구체적인 조직의 형태에 주목한 것이죠~


암튼, 동상이몽의 상황에서

서로의 각기 다른 니즈에 따라서,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이 되고 국회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2012년 12월부터는 신고제로

5명 이상만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융 제외)


+


하지만, 사회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협동조합 열풍은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 관심을 받게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 부터입니다.


유럽에서 사회적 경제가 부상한 것이

1980년대임을 생각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협동조합 기본법이 통과됐다는 사실은 굉장히 빠른 페이스입니다.


생활협동조합이 매우 활발하게 발달되어 있는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협동조합에 대한 법률이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기에 우리를 매우 부러워 하죠~


제가 협동조합에 맨 처음 관심을 가졌던 

2011년에만 해도 제대로 된 관련 서적이 하나도 없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어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하지만, 유엔이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정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관련 서적도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나, FC바르셀로나, 썬키스트, 제스프리 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회사들이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죠.


         


그러면서 점점 협동조합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고,

협동조합보다 더 큰 그림인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서서히 도입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 경제라는 큰 경제에 대한 철학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조직 중에 하나가 바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입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이해도 없이,

다른 나라에서 하니까, 왠지 좋아보이니까~

사회적 기업이니, 협동조합이니 시스템만 도입하려고 했으니...


사회적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협동조합이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의 개념도 점차적으로 같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


사회적 경제는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는 경제 체계입니다.


19세기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하고 시장을 뒤엎으려고 했다면,

21세기에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 안에서 대안을 찾으려 합니다.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주의 경제와 공산주의의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19세기 생산 자본주의 시대에서 산업 자본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자본주의의 폐해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공장 노동자의 착취는 더욱더 심해지고,

빈부의 격차는 날이갈수록 더욱더 심해지죠~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급격하게 퍼져나가고

20세기 초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공산주의 혁명을 겪게 됩니다



이에 반해 서구 유럽의 국가들과 영미권의 국가들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게 됩니다.

(국가 내의 빈부의 격차 문제를 국가 간의 빈부의 격차로 해결해버리게 됩니다.)


자유 시장주의 경제는 잘 돌아가는 듯했으나...

독점 자본주의 형태에 의해서 속으로는 썩어들어가고 있었죠,

(실업문제, 노동자의 노동 착취, 빈부의 격차 등...)



질주하던 자본주의는 공급 과잉이라는 현상을 맞이하면서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폭탄을 만들어내면서 한계를 들어내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시장에 맞기면 안된다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게 되고,

영국의 케인즈가 주장한 계획 경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세계 전쟁이 맞물리면서

과잉 생산된 물품을 소진하게 되고

경제 위기는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되죠~


이후 호황을 맞은 세계 경제는 1960년대까지 급격하게 발전합니다.

이 시기는 사회적 합의(완전 고용, 복지국가, 혼합경제)가 잘 이루어진 시기였죠~



그러다가, 1970년대 오일쇼크를 맞으면서 또 한 번 난리가 납니다.

원가가 상승하니, 생산 비용 때문에 생산을 줄이니 실업이 발생하고, 

물가는 상승하고 소비는 위축되고, 이렇게 되는 생산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죠.

(스테그플레이션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생산을 늘리는 수 밖에 없게 되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온갖 규제란 규제는 모두 풀어버리게 됩니다.

<정부의 실패>로 인해서 무너진 경제를 자유 무역주의를 통해서 해결해나갑니다.



+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킵니다.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주면 등장하는 빈부의 격차, 노동 착취의 문제가 다시 생기게 되죠~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 3섹터의 개념이 세계적으로 대두되게 됩니다.


시장에 맡겼더니 실패했고,

정부에 맡겼더니 실패했으니,

이제는 제 3섹터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개념이죠~


이러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영미권과 유럽은 다른 대안을 찾습니다.


영미권에서는 빈곤 구제, 안전 보장 같은 눈에 보이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러한 경제적 접근은 NGO나 NPO같은 단체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시장과 정부를 대신할 제 3섹터는 바로 이러한 비영리 단체들이였습니다.



반면, 유럽권에서는 지속 가능성, 인간 소외 극복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했고,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접근은 사회적 경제라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시장과 정부의 대안이 아닌 시민이 함께 협력하는 모델로 제 3의 영역을 구축해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경제의 방식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접근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빈곤층의 구제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 환경 보전, 인간성의 소외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보완을 생각하는 것이죠.


자본을 단순히 돈과 숫자로만 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공동체성 회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에서도

영미권의 접근과 유로존의 대응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영미권에서는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저히 숫자에 의존합니다.




복지자본주의의 개념과 자본주의 4.0의 개념 역시,

현재의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비용 지출 정책이 필요하고,

비용 지출에 대한 대상을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복지분야를 선정한 것입니다.


또한 제 3섹터라는 불리던 NGO와 NPO 등이 자금 확보의 문제에 있어서,

기부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되자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도입해 

수익 산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지속 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합니다.


이에 반해서 유럽식 사회적 경제의 모델은

연대의 경제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합니다.


NGO나 NPO 같은 특정 단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축이 된 시민 단체들과 정부 기관, 그리고 기업체와 개인이 손을 잡고,

함께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입니다.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데 이게 가능하냐구요?


+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가정을 하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이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것을 '인간미'라고 부르지요~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을 모두 고려합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고 신뢰를 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도,

언제든지 이기적인 면모를 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있죠.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장치들은 굉장히 자율적인 협력관계를 유도하면서도,

프리 라이더의 문제와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게 접근합니다.


구분

시장 경제

사회적 경제

공공 경제

핵심 주체

개인

공동체

국가 (정부)

인간의 본성

Homo economicus

이기성

Homo reciprocan

상호성

Homo publicus

공공성

상호 작용의

기제

경쟁

신뢰와 협동

합의

목표

효율성

연대

평등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경제 (정태인, 2012)]


그러면서도 자본주의의 논리처럼 효율성과 경쟁을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경제에서는 공존과 협력, 호혜성의 원리가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죠~


이러다 보니 사회적 경제의 가장 큰 단점은

경제 성장기에는 자본주의적 접근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경제가 불황이나 침체기에 들어설 경우에는,

서로 협력해서 고통을 분담하다보니 고통이 적을 수 밖에 없게 되는거죠.


오일 쇼크 이후 1980년부터 사회적 경제가 다시 주목받은 것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적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에 익숙한 유럽에서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경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보다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서로 돕고, 협력하고, 신뢰하고 픈 인간의 욕구가

그동안 지나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에 의해서 억눌려왔었다고...


+


협동조합이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란 용어가

사회 전반에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하더니, 마을 공동체 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사회적 경제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오랜 시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오고 정통한 편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사회적 경제 센터를 구축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분야에 대해서 정치인 중에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박원순 시장일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2012년에 사회적 경제 분야를 추진할 때만 해도

서울시 공무원들은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 내에 절대 못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놀라운 업무 추진 능력으로 서서히 준비해왔고,

2013년에는 서울시에 사회적 경제의 뿌리를 내리는 원년이 될 예정입니다.

(이제는 서울시 공무원들도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의 추세라면, 2014년 6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뭔가 새로운 성과가 날 수도 있겠다는 작은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


오히려 지금 서울시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경제의 큰 축이 되어줄 시민 사회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의 개념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스스로 나서서 세상을 바꾼 경험도 부족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을 듯한 독재자에 대해서

4.19혁명과 6월 항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도

그 어떤 나라의 국민들보다도 빨리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2012년 대선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바뀔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우후죽순 협동조합들이 형성되고 있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들이 점차적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특정 지도자의 역량이나,

정치권의 힘에 의해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시민들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시장과 정부와 함께 협력하고 공존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할 때입니다.




[참고 문헌]

           

Defourny, J. and P. Develtere (1999). "The social economy: the worldwide making of a third sector." Social economy North and South: 17-47.

           

Defourny, J. and M. Nyssens (2008). "Social enterprise in Europe: recent trends and developments." Social enterprise journal 4(3): 202-228.

           

Demoustier, D., D. Rousselière, et al. (2006). "Social economy as social science and practice." J. Clary, W. Dolfsma and D. Figart Ethics and the market-insights from social economics. Advances in Social Economics Series. London: Routledge: 112-125.

           

Evers, A. and J. L. Laville (2004). The third sector in Europe, Edward Elgar Publishing.

           

Gide, C. (1903). "Principles of Political Ecnonomy." D. C. Heath.

                  

Gueslin, A. (1998). "L'Invention De L'Économie Sociale." Economica.

                      

Moulaert, F. and O. Ailenei (2005). "Social economy, third sector and solidarity relations: a conceptual synthesis from history to present." Urban Studies 42(11): 2037-2053.

           

Neamtan, N. (2002).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Towards an ‘alternative’globalisation. Background paper prepared for the symposium Citizenship and Globalization: Exploring Participation and Democracy in a Global Context.

           

Salamon, L. M. and H. K. Anheier (1998). "Social origins of civil society: Explaining the nonprofit sector cross-nationally." Voluntas: International Journal of Voluntary and Nonprofit Organizations 9(3): 213-248.

           

Spear, R. and E. Bidet (2005). "Social enterprise for work integration in 12 european countries: a descriptive analysis*." Annals of Public and Cooperative Economics 76(2): 195-231.

           

Walras, L. (1896). "Études D'Économie Sociale." Edizioni Bizzarri.

           

장원봉 (2007). "특집 논문: 사회적 경제와 한국시민사회의 과제; 사회적 경제 (Social Economy) 의 대안적 개념화: 쟁점과 과제." 시민사회와 NGO 5(2): 11-43.

           

정태인 (2012). 새사연학습모임_협동조합모델.


열린 공동체 사회 Social Innovation/Social Economy 계획경제, 글로벌 금융 위기, 마을 공동체, 박원순, 복지자본주의,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주의, 성공회대, 시장의 실패, 신 자유주의, 신뢰, 연대의 경제, 자본주의, 자본주의4.0, 자유 시장주의 경제, 정부의 실패, 제 3섹터, 커뮤니티 비즈니스, 협동조합, 협동조합경영학과, 협력, 호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