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⑤ - 묵자와 예수는 쌍둥이였다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5.09.20 15:34


[03/27pm] 묵자와 예수는 쌍둥이였다 < 원문 방송 듣기 (시사통)


오랫만에 김시천 교수의 팟캐스트를 들었다.

너무 내용이 좋아서 집중해서 들어야하기에 한동안 묵혀두고 있었는데, 간만에 기회가 생겼다.


역시나 맛깔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전 편들에 비하면 좀 약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묵자>이다.


<묵자>는 상대적으로 공자/맹자나 노자/장자에 비하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초기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대부로 전쟁에 뛰어든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며,

침략전쟁을 반대했으며, 온갖 방어 전쟁에 참전해서 "겸애"를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나라의 9번 공격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며,

이와 관련된 <묵공>이라는 소설은 만화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맹자는 양주가 군주를 무시한 사상이라고 비난하면서,

묵가에 대해서는 가부장적 권위를 뒤흔든 것이라고 비난을 했다고 한다.

(내 부모와 다른 사람의 부모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냐는 비난인데, 참 지금 보면 어이가 없다.)


양주와 묵적은 당시에 가장 큰 양대 세력으로

유가를 비판했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 실천가들이였으며,

기술을 가진 장인 집단으로 신분상으로는 상위 집단은 아니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시천 교수가 묵가에 주목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가는 중국의 주류 지식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해왔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아주 간단하게만 소개되어있으며,

1920년대 신문화운동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묵가를 주목하지 않았다.


양현국은 "겸애"를 대중을 사랑하자라는 의미로 해석하며,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발견이라고 칭송했지만, 오히려 이상적인 사랑일 뿐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겸애는 다같이 구분하지 않고 아끼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사회주의 사상과 묵가는 굉장히 잘어울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위치에서 완전히 무시되었다.


만민 평등이 아니라 계급적인 타협의 냄사가 나며,

공자를 어떻게든 부정하지 않았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시천 교수는 이 또한 실천적 관점에 대한 지식인들의 무시로 보았다.

사마천을 비롯한 후대 지식인들이 묵가를 무시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묵가에 대해서 비교적 많이 다루어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기세춘, 문익환, 함석헌 선생이다.


기세춘선생은 묵자에 대한 책을 완역했으며,

문익환선생은 '묵자와 예수는 쌍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함석헌선생도 노자 강의를 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맥락으로 묵자를 자주 언급하셨다.


노동자 출신인 묵자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가 이야기했던 평등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으며,

순자로부터 노동자의 도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과도 잘 이어진다.


천하에는 남이없고, 대동사회와 해당된 평등 공동체를 지향한 사람들


당시 하층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사상은 

대학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아닌 재야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나눔 / 돌봄 / 연대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부각되면서,

그 일환으로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2000년 동안 무시당하며 평등주의를 추구했던 묵자의 "겸애"사상과

100년이 좀 넘는 역사 속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던 협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김시천 교수님이 또 하나의 새로운 묵상꺼리를 던져주셨다~ ^^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생각통] 김시천 김시천, 묵자, 사회적경제, 생각통, 시사통, 협동조합

[Bunker 1]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시즌2 Episode 01 - 해방 후 민족음악

2015.01.31 23:49


오랫만에 들어보는 강헌선생의 강연!!


역시나 명불허전이였지만,

이번 강의는 서론이 좀 너무 길고, 

결론이 조금은 아쉽게 급 마무리된 느낌이 들기는 했다.


1860년대 러시아 5인조와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의 민족음악


다른 듯하지만, 매우 닮은 이 2가지 이야기는

'김순남'이라는 한국이 낳은 천재가 역사의 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시즌2 Episode 01 - 누가 우리를 주변이라고 부르는가

+


러시아의 5인조는 분명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은데, 강헌선생의 강연을 듣기 전까지는 완전히 씨커먼케 잊고 살았던 그냥 암기의 대상이였다. 민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민요를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펼친 흐름이 있었다.


(사진 출처: 알라딘 블로그 http://blog.aladin.co.kr/763908185/6702903)


하지만, 그들이 가진 의미는 대단했다.

(진짜 우리나라의 암기식 교육의 폐해가 심각하다...)


밀리 발라키레프
세자르 큐이

  이 중에서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본 사람은 리더겪인 밀리 발라키레프 뿐이며, 나머지는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진 체 틈이 나는대로 음악활동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이 지은 모든 곡을 합쳐도 당대 라이벌이였던 차이코프스키 혼자 지은 곡에 숫자에서도 안되고, 음악적인 완성도에서도 완전히 밀린다고 한다. (물론 차이코프스키는 이들을 개무시했다.)

  당시 러시아 왕실과 귀족들은 일부러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당대 러시아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독일어로 작곡을 했다고 한다. (강헌 선생은 이들을 마치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어로 잘난척하는 것에 비유한다.) 하지만, 1860년대 러시아에서도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슬라브주의라는 우리만의 독창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당시 전세계적으로도 민죽주의 열풍이 일어나고 있었고, 덴마크나 체코에서도 비슷한 민족주의 음악가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의 음악계는 안톤 루빈스타인과 니콜라이루빈스타인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서유럽의 음악이 대세를 이루었고 상트페트로부르크 음악원이나 모스크바음악원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서유럽의 음악을 도입하고 있었다. 이들 세력의 최고 에이스는 차이코프스키였고, 이들은 민족주의 흐름을 철저히 무시하면 '5인조'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역으로 5인조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활용한다. 5인조는 상테페트로부르크에 무료음악원을 개설하는 등 철저히 민중에 다가서는 행보를 보였고, '음악은 기교가 아니라 시대와 민중의 삶이 전달되는 도구'여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표가 직접 말하게 한다는 주장을 하며 러시아의 민요들을 재해석한다. 이는 역으로 차이코프스키에게 영향을 주었고, 차이코프스키라는 뛰어난 테크니션을 이를 통해서 세계적인 음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라이벌이 선의의 경쟁을 펼친것이다.

+

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선의의 라이벌이 형성될 수 없었다.

1945년 해방이 이루어지자,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빈공간을 정리하기 위해서 음악계에서도 자생적인 움직임이 시작된다.
<조선음악건설본부>라는 이름으로 재빨리 만들어지지만,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친일파와 민족주의자가 모두 모이게 된다. 당연히 판은 깨지고 친일파는 현재명을 중심으로 <고려교양학 학회>를 만들게 되고, 비주류의 젊은 음악가들은 <조선프로레타리아 음악연맹>을 만들게 된다. 음악이 아니라 영어가 전공이였던 현재명은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미군정과 손쉽게 연을 닿게 되었고, 경성음악학교라는 교육기관과 한국최초오케스트라를 보유하면서 완벽하게 음악계를 장악하게 된다. 1945년 10월, <고려교양학 학회>가 미군정 환영 음악회를 열 때<조선프로레타리아 음악연맹>은 경성방직 파업음악회를 개최하는 완전 상반된 움직임을 보였지만, 세력은 급격히 현재명파로 기울게 되면서 1945년 12월 <조선프로레타리아 음악동맹>은 <조선음악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1946년 <고려교양학 학회> 역시 <대한음악가협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이제 음악계는 크게 3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현재명을 비롯한 주류 세력은 서양음악을 중시하는 서양음악진영
조선시대의 전통 음악을 다시 살려야한다는 전통음악진영
일제시대 대중들이 즐겨부르게 된 트로트와 엔카를 이어가자는 대중음악진영

하지만, 이들과는 또 다른 제4의 길을 걸은 세력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민족음악진영이였다.
민족음악진영은 일제시대때부터 활약했던 안기영을 제외하면 모두 2세대의 젊은 음악가들이였다.

안기영은 미국 유학파이며, 작곡가이면서도 테너였다.
홍난파가 서양음악듣고 한국것을 버렸다면, 안기영은 서양음악의 틀을 활용해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안기영은 이화여전에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지방을 다니면서 민요를 악보에 옮기는 일을 한다.
서양음악진영은 그의 작업을 무시했고, 전통음악진영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드린다고 경계했다고 한다.

안기영은 한국의 밀리 발라키레프였고, 그의 창작곡들은 대중에 큰 호응을 얻게 된다. 
1929년 발표된 <그리운 강남>의 경우에는 안기영이 월북해서 현재는 교과서에서 사라져버렸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히트곡이였다고 한다. 서양음악의 기본 화성을 썼지만, 서양음악의 틀안에서 한국적 요소를 녺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월북했다고 이북 노래라고도 나오는데, KBS 무대에서도 추억의 노래로 소개도 되기도 했다.)


안기영은 1936년, 라미라 가극단을 만들어서 한국최초 뮤지컬 <견우 직녀>를 만들고 향토가극을 무대에 올렸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반도가극단으로 이름을 바꾼 두 번째 작품 <은하수>에서는 대박을 치며 정점에 오르게 된다.
팀을 3개로 나눠서 만주와 일본으로까지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였고, 이후 이 극단의 출신들이 대중문화를 장악하게 된다.

한국최초의 개그맨 윤복일(윤항기/윤복희의 아버지)을 비롯하여,
황해 / 백설희 / 백성희 / 김희갑 / 장동희 등 이들이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음악가동맹>에서 그의 활약은 미비했으며,
월북한 이후에도 큰 활약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1980년까지 살아서 노래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작품 중에 현재 남한에는 이화여대 교가만 남아서 알려져 있다고 한다.)

+


하지만, 1917년 태어난 윤이상과 동갑내기 김순남은
이 정도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그가 이끈 민족음악진영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안기영의 음악은
화성의 문제 때문에 한국의 음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하지 못했다.
또한, 우리 전통 음악이 가지고 있던 장단과 서양음악의 박자의 차이를 극복하지도 못했다.

이에 김순남과 그의 2년 후배 이건우는 아예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버린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왕성한 작곡활동을 통해서 
한국최초의 교향곡, 한국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만들어냈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여진 시를 가지고 수많은 가곡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중에 월북해서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조수미가 부른 버전도 있는데, 노래는 조수미가 더 잘하기는 하는데, 반주가 너무 기교가 많이 들어가서 이걸로 대체)

그의 연주는 전통적인 장단도 아니고, 서양음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연주였다.
화성은 더욱더 기가막혀서 연주자 입장에서는 마치 악보에 장난을 쳐놓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민족적 정서를 담고 있기에 듣는 이에게는 너무나 쉬고 친숙한 음악이였고,
그가 작곡한 <인민항쟁가>의 경우에는 북한의 국가로 알려질만큼 좌익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가 이끌던 <조선음악가동맹>은 현재명의 견제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좌익 세력이 완전 궁지에 몰리면서 결국 월북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미군정 음악담당 공사 헤이몰츠 대위는
줄이어드 음대에 입학허가까지 받아주었지만 김순남은 이를 거절하고 월북해 러시아로 떠나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천재성을 인정받은 김순남이였지만, 김일성의 남로당계 숙청과정에서 깡촌으로 유배되어 악보를 배껴그리는 일을 하다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 체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적이 사라진 1954년 동갑내기 윤이상이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해이다.
역사적인 비극만 없었다면, 윤이상보다도 더 뛰어난 세계적인 음악가 탄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개인적으로는 역사의 한 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희생된 수 많은 천재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한 역사학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외세의 힘에 독재자의 폭력 때문에 남한과 북한 모두 용기가 없거나, 비겁하거나, 능력이 없거나, 눈치가 빠른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던 시대가 그 때가 아니였나 싶다.

 그런 비극의 시대가 다시는 오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지!!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헌 강헌, 그리운강남, 김순남, 러시아5인조, 민족음악, 벙커1특강, 안기영, 윤이상, 조선음악가동맹, 진달래꽃

[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⑤ - 사람들은 왜 불평등을 받아들이는가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14 21:05


[2014.03.25] 사람들은 왜 불평등을 받아들이는가 - [시사통] 방송듣기


간만에 굉장히 흥미로운 강의였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금의 의미로 형성되었으며,

헤게모니이론과 현대 사회의 냉소주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강의이다.


마르크스, 그람시, 알튀세르, 지젝이라는 등장인물도 훌륭했지만,

지난 강의가 약간 짜집기적인 느낌이 들고 현실과의 이질성이 좀 느껴졌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포괄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강의였다.


+


강의는 일단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된다.


이데아(Idea)라고 불리던 관념적인 것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이데올로기(Ideology)라고 불렀고,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이데올로그(Ideolog)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분명히 학부시절 비판 커뮤니케이션 시간에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 개념같은데, 조형근교수가 설명하면 신기할 정도로 굉장히 쉽게 이해된다.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이데올로그들은 초기 나폴레옹 지지자들였으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나폴레옹에 대한 적극적 비판자가 되면서 나폴레옹은 그들을 부정적으로 조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착시킨 것은
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1833)>에서 부터라고 한다.

칼 마르크스는 의식은 물질적 세계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현실을 거짓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고 표현했고,
사물에 권력이나 신성을 부여하면서 사람은 권력이나 신성이 앖어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상품들이 동일한 노동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교환이 가능한데(노동가치설),
실제세계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하고 상품이 다음으로 중요하고 노동은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왜곡해서 보게 만들고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지배하는 개념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마르크스 이후로 이데올로기는 부정적 의미로 고착되어 버렸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해서 의식화되어 주체로서 투쟁에 나서고 해방을 쟁취해야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80년대 학번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이러한 의식화 교육을 누구나 받았는데,
그들이 현재 50대가 되어서 기득권이 되고 보수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가 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수화되어서 사회적 불평등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

두 번째 등장 인물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이다.



전통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자본주의가 곧 무너질 것이라 기대한 것과 달리
안토니오 그람시는 경쟁적 자본주의가 독점적 자본주의로 변화되면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물질을 강조하며 하부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그람시는 하부구조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토대로 형성된 상부구조에 주목했다.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자율성을 인정하고,
상대적으로 형성된 자율성을 강조했기에 마크르스주의를 보완 확장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의 진실을 안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지배계급이 단순히 수탈과 강압에 의해서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은 강제와 동의라는 두 가지 요소를 포괄하면서 사람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피지배계층은 지배계층의 불합리성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지배계급의 강제라는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대공황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도덕적 지적인 헤게모니가 사회의 모든 곳곳에 퍼져서 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국가의 기능은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정차 성장해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논리로 보면 복지 국가의 접근도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시민사회 영역에도 침투해
사회의 모든 영역의 활동과 의식을 지배하며 헤게모니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 집단과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표출하고 조직화하는 시민사회 영역은
자체로써 자생적인 힘을 가지며, 공적 영역과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한다.

사회적 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람시가 이야기한 국가의 헤게모니가 시민사회 영역을 침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

세번째 등장인물은
프랑스의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이다.



프랑스 공산당의 대표주자이자,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석학으로 이름을 날린 알튀세르는 이데올리기의 재생산에 주목한다.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생산에 주목했다면
알튀세르는 어떻게 계급이 재생산되는지에 주목하였다.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에게
자발적 동의를 받아내는 지도력이라는 기존 견해에 대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의식화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에 무의식적으로 포섭되어 있기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여기서 그 유명한 호명의 개념이 나오는데,
우리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 반응하는 순간 이미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데올로기라고 불러서 반응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순응해야하는 수동적 주체가 된 것이다.

결론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마지막 네번째 주자는 
최근에 핫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다.



대중문화 분석과 라캉 분석가로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패션 업체의 협찬을 받기도 한 걸로 더 유명해졌고 한국에 2013년 방문하기도 했다.

지젝은 <냉소적 이성 비판(1983)>을 저술한
독일의 철학자 페테 슬러터다이크(Peter Sloterdijk)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속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데도 그냥 그렇게 산다고 주장을 한다.

진실에 대해서 냉소하기 때문에
우리 시대는 냉소적 주체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가 이성적 주체를 설정한 이후 굉장히 반항적인 사고였는데,
타자로부터 배신당할까봐 미리 냉소하는 것이 생존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수많은 약속에 속았기 때문에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상품 경제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유일한 진리가 가격이고 시장논리에 순응하면서 그냥 살 수 밖에 없다는 냉소가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덜 불안하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화폐가 종이 쪼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폐물신숭배의 논리에 속고 사는 것이 편하며,
진실을 알게 되면 싸울 줄 알았는데 스스로 오늘날 속물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지젝은 이를 통해서 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아니라 행위라고 보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 아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반응과 일맥 상통한다.

+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안바뀌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놀랍게도, 4명의 설명이 
모두 가능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세대 분열과 미디어의 변화,
민주정권 10년과 보수정권의 재집권,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

너무나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몰라서 속는 사람도 있지고, 무의식적으로 당하는 사람도 있고, 동의된 사람도 있고, 냉소적인 사람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회 변혁을 바라는 사람보다는 더 많다는 것이 2012년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회 변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지지를 못받는 이유는
보수 집권층에 대해서 몰라서, 무의식적으로, 그들에 동의해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년층일 확률이 높다.

50대가 아직도 보수층을 지지하는 결정적 이유는
사회 변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못 믿어워서가 클 것이며 이는 냉소주의와 가장 가까운 듯하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과 이를 실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뢰이다.

과연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세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담론통] 조형근 나폴레옹, 냉소적 이성 비판, 냉소주의, 노동가치설, 독일 이데올로기, 루이 알튀세르, 무의식, 불평등, 상부구조, 슬라보에 지젝, 시사통, 안토니오 그람시, 엥겔스, 이데아, 이데올로그, 이데올로기, 조형근, 칼 마르크스, 피테 슬러터다이크, 하부구조, 허위의식, 헤게모니, 호명이론

[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④ - 엘리트의 사회지배는 불변인가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14 18:38


[2014.03.18] 엘리트의 사회 지배는 불변인가 - [시사통] 방송듣기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생물학에서 시작된 다윈의 진화론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있다.

'적자생존'이라는 논리로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허버트 스펜서와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상부상조론>을 주장한 표트르 크로프트킨이 그 주인공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에 적합한 생물체가 살아남는다고 설명했으나 그 생존의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국의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는
생물들이 생존 경쟁을 통해서 더욱더 환경에 적합한 자만 살아남는자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의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인 표트르 크로프트킨의 경우에는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관찰할 결과 만물은 서로 연대하고 돕는 과정을 통해 살남는다고 보았다.

생명의 진화과정에 대한 전혀 전반대의 설명인 것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우파들의 사상적 기반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었고,
표트르 크로프트킨의 <상부상조론>은 협동조합과 아나키즘의 사상적 뿌리가 되고 있다.

+

하지만, 자연 선택의 원리를 사회학에 적용시켜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한 허버트 스펜서의 주장은 당대의 지배적 사고가 되었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넘어와서 
일본은 물론 안중근과 같은 수많은 민족주의 좌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스펜서는 사회구조의 복합성도 증대하면서 
사회는 단순사회에서 점차 복합사회로 진화되어가는데,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고 통합도 증가하면서 
점점 관리와 규제의 기능이 커지게 되며 엘리트가 이를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이탈리아출신의 
경제학자이면서도 사회학자인 블브레도 파레토와도 상통한다.

파레토는 엘리트를 사자형과 여우형으로 구분하며,
인간에는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두 엘리트 유형이 순환 지배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폐쇄된 사회에서는
실제 능력있는 사람과 현재 엘리트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회 격차가 커져서 피지배 엘리트가 지배 엘리트가 될 수 없을 때 불만이 켜저 폭력적 변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스펜서와 파레토는 사람의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우파적인 주장같지만,

그 역할이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다는 구조기능주의적 견해와 비교한다면,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하고 능력에 따른 역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인 사고였다.

+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건드린 사람이 바로 로베르트 미헬스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미헬스는
사회민주당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당사회학(1911)>라는 책을 쓴다.

1900년대 유럽 사회주의의 간판격이였던 사민당이
1차 세계대전에 동의하는 등 왜 개량주의, 수정주의적 노선을 갔는지 그 원인을 자세히 분석했는데,

당시 외부에는 당의 창설자인 페르디난트 라샬의 이념적 후유증으로 알려져있었으나,
미헬스는 막스베버의 제자답게 조직적 차원에서 관료제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분석해서 설명해주었다.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연구는 관료제라는 조직에서 과두제가 나타나고, 
과두제에서 보수적인 신엘리트를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과정을 사민당의 성공과 격변이라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미헬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굉장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커져서 관료제가 되면 과두제가 나타나고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과두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 않았다.

민주주의 통치는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과두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버지가 숨겨놨다고 이야기했던 보물을 찾는 것처럼 허황된 것이지만,
그 허황된 꿈을 찾기 위해서 땅을 뒤엎어버리는 과정에서 땅은 비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은 배반당하고 결국 새로운 과두제만 나타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동시에 제시한다.

이후의 미헬스의 행보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경력 때문에 수임용에 탈락해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국적을 획득(1914)하고 파쇼당에 입당(1923)한 후 무솔리니의 지지를 받으며 우파로 돌아서게 된다.

미헬스는 대중에게 지도자를 추정하고자 하는 복종 심리가 있고,
대중은 전통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는 했지만 민주주의 희망을 놓치 않았었다.

결국 미헬스가 우파로 돌아서게 된 것은
냉혹한 사회 현실로 인한 대중에 대한 실망이 그를 냉소주의에 빠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

사회진화론의 논리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크로프트킨의 주장처럼 환경에 적합한 자가 남는다는 개념을 경쟁을 통핸 남는 것처럼 과대해석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진화론 자체가 변화의 방향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
스펜서는 사회가 성장한다는 목적론적 관점을 투영해버린 것이다.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라는 것은 
목적과 방향도 없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대응한다는 것이며, 이는 상황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론도 
조직 내부에서의 자생적 움직임을 무시했다는 한계를 가지면서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적인 자생력의 조화로 자기조직화를 이룬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세 사람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스펜서 -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엘리트가 필요하다
2) 파레토 - 인간에게는 능력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이 지배적 엘리트가 되야한다.
3) 미헬스 - 조직이 커지면 엘리트는 출현하게 되고, 대중은 지도자에 대한 복종 심리가 있다.

결국 엘리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사회와 구조의 특성상 엘리트라는 존재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엘리트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근데, 근본적으로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에 어떠한 지배라는 구체적인 방식이 빠진 느낌이다.

분명히 리더와 지배자는 다르다.
근데, 이들의 논리에서는 이 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부족하며,
엘리트가 지배자가 아닌 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과한 측면이 있어보인다.

이는 이들이 생존했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환경 상
오늘날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불평등의 문제를 강하게 인식했던 파레토나
현대적인 네트워크나 홀리그래피적 조직 구조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미헬스에게
오늘날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상상해달라는 것은 너무나 무리이기 때문이다.

고전을 공부한 것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강의였지만,
오늘날 조직학자들이 엘리트를 보는 견해에 대한 설명이 추가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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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③ - 좌파가 바라보는 불평등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05 23:36

[2014.03.11] 좌파가 바라보는 불평등 - [시사통] 방송듣기


우파가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봤다면,

좌파는 불평등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근원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장 자크 루소,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피에르 부르디외이다.



장 자크 루소는 그의 명저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평등했는데 사회 상태로 들어오면서 갈등이 생겼다고 보았다.


거주지에 정착해 가족을 만들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겼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불평등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해체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해서

인민들이 평등하게 살수 있게 만들어야한다고 루소는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견해를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 역시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했다고 주장하며,

생산력이 올라가 잉영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계급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1848)>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고 계급적 불평등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시작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모든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르크스의 견해에 대해서

막스 베버는 경제적 불평등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사회적 명예와 지위, 정치적 권력에 의한 불평등도 존재하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막스 베버의 주특기에 걸맞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의 주장은 화두만 던지고 마무리를 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와 베버의 견해를 통합시키는 것이 바로 부르디에이다.


부르디에는 경제적 자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경제적 자본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본만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계급 재생산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본,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라함은 흔히 이야기하는 인맥을 의미하며,

문화적 자본이라고 함은 끼리끼리의 문화를 통해서 계급적 차이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대중이 축구와 권투, 대중 공연을 즐길 때,

상위 계층들은 몸을 직접적으로 붙이치지 않는 테니스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상류사회의 귀족문화를 유지해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고, 최고급 명품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양태가 대표적인 것이다.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뒤따라와야지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고 계급적인 차이는 점차적으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시대를 통한 문화적 단절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계층 이동이 심했기에,

부르디에가 연구했던 프랑스만큼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를 흉내내려는 움직임은 존재하고 있다.


+


흥미로운 점은 루소나 마르크스, 베버, 부르디에 모두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이라는 부분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불평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데,

과연 이 사유재산이라는 것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마르크스는 없애고 싶어했고 없애길 주장했지만 

사실상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이를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자아를 찾기 원하는 인간에게

사유재산은 남과 나를 구별짓는 매우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것이 계층이고 고착화되는 것이 불평등이지만,

남과 나를 구별지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이 있는 한 사유재산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과도해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계급화되는 것을 막고,

한 번 형성된 계층이 고착화되어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불평등을 방지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남과 다르게 구별지어지길 원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눈에 보이는 신분은 사라지고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대중과 구별짓고 싶어하는 욕망이 나타나고 있다.


조형근 교수를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계급 정치은 약화되었지만,

계급 역관계만 바뀌어서 아직도 계급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글로벌 자본가 계급은 의도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계급투쟁을 시작하면서

세계화의 추세에 맞춰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노동자 계층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영업자와 중간 계급을 몰락시켜서 임금 노동자에 합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80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해야 한다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좌파에서 이제 계급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파에서는 새로운 계급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


분명 과거 사회와 비교하면 삶에 있어서 많이 평등해졌고,

특권층만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도 상당부분 개방되어지고 있는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자본에 있어서는 부의 집중현상이 강화되고,

불황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부작용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역사가 되돌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다시 집중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모든 불평등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가장 근본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사회와 많이 평등화되면서 오히려 가장 근원의 부분까지 찾아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이 모든 불평등의 기반이 된다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21세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자칫하다가는 사회 계층구조의 완전한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이러한 위기에서 한 번 크게 양보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얄밉게 잘 사용해왔다.


복지 정책이 그렇고, 근로조건 개선이 대표적인 방법들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러한 위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낼까? 그들의 대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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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② - 우파 불평등론은 파산했지만...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10.05 22:14

[2014.03.04] 우파 불평등론은 파산했지만 - [시사통] 방송듣기


불평등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끝이 없다.


좌파에서는 불평등을 사회악으로 간주하지만,

우파에서는 불평등을 필요악으로 간주한다.


물론 우파의 불평등론은 이제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지만,

조형근 교수는 우파 불평등론의 핵심을 구조기능주의에서 찾아보았다.


+


구조기능주의는

전설적인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에 의해서 

주장된 것으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1970년대 이후로 비판에 직면하게 되면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의 구조기능주의는

킹슬리 데이비스, 윌버트 무어, 니콜라스 루만 등에 영감을 주었고,

현대 조직 이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상적 근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비판적으로...)


영국에서 최초로 이주해온 전통적인 교수&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파슨스는

아이비 리그가 아닌 리버럴 아트 스쿨 중에서도 유명한 애머스트 대학교 생물학과 입학한다.

(그의 배경만 봐도 얼마나 전통적인 우파일지 상상이 간다.)


대학교 3학년 때 사회과학으로 전과하게 되면서 사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는 생물학적 유기체론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기체와 같이 각자 필수적인 역할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의존적인 존재이기에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필요한 존재이지만 중요도는 각기 다르다고 보았다.


파슨스는 왜 사람들이 직업, 기능적인 수평적인 분화뿐만 아니라 

계층적인 수직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뒤르켐의 문제의식을 수용한다.


공화주의 좌파였던 뒤르켐은 혁명시기의 프랑스가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서 갈등이 증폭되면서 오히려 상호의존성이 증가되고,

이로 인해서 분화와 통합이 반복되면서 각자 지위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불평등이 용인되었다고 보았다.


파슨스가 보기에 사회의 유기적인 연대를 위해서 불평등은 필요악이였던 것이다.


불평등의 필요성을 주장한 또 다른 견해를 주장한 것은

바로 파슨스의 제자였던 킹슬리 데이비스와 윌버트 무어이다.


이들은 불평등이 사회의 기능적 존속을 위해서

중요한 위치에 적합한 사람을 충원하기 위해서 발달하게 되며,

사람을 차등화시키면서 제도화된 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이 것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았다.


사회적 기능이 작동할 때 어떤 기능들은 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뛰어난 능력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일을 수행해야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역할일수록 많은 보상을 해줘야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매우 낮은 보상을 해줘야 사람들은 노력하고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


강력했던 이들의 주장이 무너지게 된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순환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조형근 교수는 설명한다.


'어떤 기능이 다른 기능보다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구조 기능주의는 제대로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


청소부보다 의사가 뛰어나다고 말한다면 과연 기준은 무엇인가?

높은 보상을 받으니까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중요한 역할이기에 높은 보상을 주는가?


청소부가 없다면?

처음에는 별문제 없지만, 장기간 방치되면 사회적 큰 혼란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청소부도 사회에 중요한 역할인 것 아닌가?

그럼 청소부도 높은 보상을 주어야하는 것은 아닌가?


구조기능주의는 이론적으로 치명적 오류가 있어서 폐기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하류층에 있는 것은 내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불평등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


조형근 교수의 강의해서 인상깊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불평등이라는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지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은 부정확한 사고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우파의 불평등론은 이미 논리적 오류를 드러냈지만,

사람들에게는 불평등한 현실을 수용하는 자연스런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사회란 그런 것이니까...'


원래 사회는 불평등한 것이라는 생각은 

논리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영향에 가까운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강력하다.


사회에 만연한 이 지배적 논리를 벗어나서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문제의 근원을 고민하는 좌파의 사상들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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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11 - '종교와 죽음' 편

2014.09.26 22:43


사랑하면 무조건 아프다. 


부재의 고통이 없으면 사랑이 사라진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받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떠나는 건 죄악이다. 
고통으로 느껴지지않는 죽음은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다. 

종교는 미래의 공포를 먹고 산다

여하한 자유라도 사랑이 있다면 방종일 수 없다 - 김수영 


+


개인적으로 다상담이 끝나서 다행이다...

계속 더 했으면 그냥 안 들었을 것 같다...


점점 지루해지고 패턴이 반복되면서...

좀 더 자극적인 사연을 기대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강신주, 다상담, 종교와 죽음

강신주의 다상담 10 - '꿈' 편

2014.09.26 22:24


꿈을 가지면 안된다.


우리는 꿈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꿈은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살게 만든다.


꿈을 생각할수록 현재를 살기 어려워진다.

내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즐겁게 놀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러 산에 가고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산을 가는게 좋은 것이다.

여행은 그냥 가는 것이다...
항상 가는 여행지는 확인 하러가는 것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목적없이 돌아다니고~ 그냥 편히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 것은 
목적지를 정하고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정한 순간 과정은 무시될 수도 있다.
삶은 과정이지만, 결과만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꿈은 2종류로 나뉜다. 

1) 현실을 못보게 만드는 꿈
- 개꿈, 그저 바라는 허상, 꿈에서 허덕이며 불행하게 만듬
- 현실을 은폐하는 꿈

2) 현실을 보여주는 꿈
- 꿈을 알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게 만듬
- 건강하지만, 현실은 아직 불행한 상황


꿈 자체가 없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꿈을 포기해버린다.

풍경과 현실은 다르다
산을 구경하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의 감정은 다르다.

꿈이 강할수록 현실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강하면... 
삶은 고난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일제시대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있다.
1940년대 독립에 대한 꿈을 접은 사람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정주이다.

우리 시대의 꿈과 당나라 시대의 꿈은 다르다.
우리 시대의 꿈은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꿈일 확률이 높다. 

막상 해보지 않으면 내것인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한다. 
해보고 신나면 내것이고, 했는데 욕이 나오면 내 꿈이 아니다. 

내 꿈인지 남의 꿈인지 알려면 이루어봐야 알 수 있다. 
꿈의 수준에서는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여행갈 때 땅끝마을에서 달마산은 가봐야한다.
산에 올라가봐야지, 산을 갈지 말지 버릴 수 있다. 

꿈을 얻는 순간, 앞이 보인다. 

죽을 때 우는 건 현재가 좋은거다
천국간다고 생각하면 죽는 것은 기쁜거다

연애를 하면 좋은것이 현재가 즐거워진다.
예술도 좋은것은 현재를 즐겁게 해준다.

여행이 매력적인 것은 매너리즘을 벗어나게 해준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신주 강신주, , 다상담, 벙커1

[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① - 사회를 보는 좌우파의 시각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2014.08.08 01:31

강의 제목은 <사회를 보는 좌우파의 시각>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기획의도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를 비교하려고 한 듯한데,
사실상 하이에크 이야기만 하다가 시간이 다가버려서 그냥 끝낸 듯한 느낌이다.

암튼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하이에크는
오늘날 경제 문제의 원흉처럼 취급을 받으며 천하의 못쓸 인간 취급을 받지만,
어찌보면 칼 마르크스와 대적할만한 유일한 우파 경제철학가라고 할만한 거물 중에 거물이다.

조형근 교수는 이러한 하이에크에 대해서
"개인의 근원적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고민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학자가 내리는 평가치고는
굉장히 호의적인 평가이지만 하이에크의 주장을 살펴보면 사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평가이다.

+

조형근 교수가 하이에크를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이에크는 다른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자본주의 모순'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은 불완전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장 이외에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질서가 없기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끝없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했고,
그러한 개인적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공간은 자생적 질서를 가진 '시장'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만든
국가나 기업 같은 존재들은 인위적 질서이기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밖에 없는데,

시장은 스스로 누가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정보 전달의 매커니즘이 가격이라는 것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불완전한 이유는
완벽한 정보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정보가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제한되고 분산되어 있기에
구조적으로 인지적 무지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무시한 체 완전한 질서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치명적 자만이라 비판한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소유의 문제와 연결되는데,
능력으로서 자유를 정의하면 소유가 없는 사람은 자유를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소유물을 재분배하려고 개인적인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하지만 자유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기에,
어떤 것으로부터 억압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서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모순된 상황일 뿐이며,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강한 국가와 법의 지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마르크스 역시 인간을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을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라
이성, 의지, 감정을 공유하는 유적 존재로 보았고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았다.

그래서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은 관계에 의해서만 규정되며,
개인적인 자유가 인간의 본질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자생적 질서라고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시장을 인위적 질서라고 보았고, 국가와 자본가의 수탈이 일어나는 곳이라 보았다.

마르크스는 전통적인 시장은 자생적 질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시장은 인위적 질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중요시 여겼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사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에 대한 관점과 자유에 대한 관점이 차이가 나면서
마르크스와 하이에크는 같은 의도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전혀 다른 반대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개인적 자유가 없으면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서 자유를 추구해야하고 국가가 이를 보장해줘야한다는 것이다.

우파들은 사회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이런 주장을 보면 하이에크는 이상주의자 중에서도 최고봉에 도달한 듯하다.

+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한 하이에크
그는 시장이 정보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기에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정보가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그저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 듯하다.

뭔가 좀 아쉽다...
완벽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에 시장이 자생적으로 움직이게 두어야한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자유를 위해서 강력한 국가의 통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강의실에 있었다면 교수님한테 추가질문을 하고 싶었을 듯하다...
나만 이해를 못하는 것인가? 뭔가 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려는 순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하이에크의 대표저서인
<노예의 길>을 직접 한 번 읽어보는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담론통] 조형근 공산주의, 마르크스, 시사통, 시장, 이상주의, 인위적 질서, 자본주의, 자생적 질서, 자유, 조형근, 하이에크

[시사통] 동양철학으로 세상을 보다 ④ - '성선설'은 정치 구호였다 (김시천 경희대 연구교수)

2014.06.18 00:12

성선설과 성악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이론적으로 대조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차이로써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루소와 홉스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좀...)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주장을 끌어와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평가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속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둘 다 너무 표면적인 부분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시천 교수의 지적은 너무나 신선한 접근이였다.

[03/20pm] 성선설은 정치 구호였다 < 원문 방송 듣기 (시사통)

김시천 교수의 주장은 맹자가 왜 성선설을 이야기했는지...
그 맥락을 중심으로 그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자왈 맹자왈 암기식의 접근에서...
이렇게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니 동양철학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진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암기식 교육의 전형적이 폐해일뿐만 아니라...
지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강의 내용이였다.

+


맹자가 주로 이야기한 것에는
왕도 정치, 4단, 성선설, 민본사상 등이 있다.

공자보다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났던 맹자 역시
현실적으로는 군주의 부르심을 받아서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였다.

특이한 점은 맹자는 잘 나가는 나라의 왕들만 만났다는 사실이다.

맹자가 주로 만났던 위나라의 양혜왕과 
제나라의 선왕은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제왕들이였고,
맹자는 이들을 만나서 덕을 중시하는 왕도정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왕도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맹자가 이야기한 왕도정치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라는 것이였다.

맹자는 할 수 없는 것(불능)과 하지 않는 것(불이)를 구분했는데,
인간의 마음인 4단을 따라서 선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왕도정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출중하여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했고,
맹자는 작은 국가의 왕을 만나봤자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남을 돕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4단의 감정으로 설명하였다.

  •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 수오지심(羞惡之心) : 나쁜것을 멀리 하려는 마음
  • 사양지심(辭讓之心) :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
  •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맹자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착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군주가 착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정책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성선설이라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책을 입안하는 근본적인 원리였으며 4단의 감정을 따르는 행동의 원칙이였던 것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이다.
성선설이라는 개념이 철학이기 보다는 굉장히 실천을 강조하는 원리였다는 설명이다.

이미 인간이라면 4단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서구적인 관점이다.)

맹자는 오히려 4단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발현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집안과 국가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마음이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본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제공되느냐 아니냐가 달려있는 것이다.

+

맹자라는 인물 또한 매우 흥미롭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이 항상 들고 다녔던 책이 바로 <맹자>였으며,
정도전은 맹자를 통해 역성혁명을 꿈꾸게 되는데 이 맹자를 건내준 사람이 바로 고려의 충신 정몽주이다.

그 만큼 <맹자>라는 책은 매우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왕도정치, 민본사상, 성선설 등의 내용 자체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내용이였던 것이다.

왕도 잘못하면 갈아 치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백성을 착취하는 왕과 관료들은 도둑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날렸던 사람이 바로 맹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군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공자의 후손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정작 맹자 본인은 혼자서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공자와 맹자를 세트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질적으로 학통으로 보면 정통적으로 공자를 계승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군주들만을 상대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맹자는
공자가 살아 생전에 아무도 안불러줘서 우울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출세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인기가 있어서 불러주었던 맹자지만,
정작 맹자가 주장한 인치에 대해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으며 왕도정치는 실행되지 못했다.
(심지어 후대 사람들은 맹자의 주장들을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이야기했다.)

맹자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듯하다.

그냥 할 수 있는 데 안하고 있는 것을 하라는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화가 날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를 보면 또한 그렇지도 않다.

김시천 교수는 4대강 사업을 예로 들면서,
몇 백 조씩 낭비하고 있으면서 비관해서 굶어죽는 사람들은 방치하고 있는 것을
맹자가 보았으면 뭐라고 했을지 반문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너무나 시급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왜 쓸데없이 엉뚱한 것에 눈이 멀어서 모든 예산과 에너지를 쏟아붇는지...

하지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맹자가 이야기한대로 측은지심을 가지고 정책 예산을 편성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분명히 전략적이지 못하고, 이상적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근데, 결과로 보면 차라리 이상적인 것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어찌보면 이상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는 것'을 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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