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이키가이 いき-がい (生甲斐) by 켄 모기 (茂木 健一郞)

2018.08.19 08:52
이키가이
국내도서
저자 : 켄 모기(모기 겐이치로)(Ken Mogi) / 허지은역
출판 : 밝은세상 2018.02.08
상세보기


MTA 워크샵에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다루고 있는 주제


호세가 워크샵에 사용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산 책인데,

막상 책에서는 호세가 워크샵에서 사용했던 툴에 대해서는 다루지는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너무나 쉽게 호세가 쓴 툴을 찾을 수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관련 내용이 나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좋은 툴이다.

이키가이는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살아가는 보람'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저자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처럼 설명하지만, 어느 나라에 가든 존재하는 개념이긴하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일본인들은 이에 대해서 좀 더 충실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장인정신'은 이키가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한 스키바야시 지로, 센비키야, 메이지신궁, 스모 등의 사례들은 일본 특유의 이런 문화들을 잘 보여준다.


일본이 제조업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이키가이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워크 & 라이프 밸런스가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자신의 일이 아닌 취미활동을 통해서 삶의 보람을 찾는 직장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직장에서 일을 너무나 열심히하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국가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위기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을 하고, 삶의 즐거움은 다른 활동에서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기에 타협을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어느 정도 보완이 될 수도 있을 듯하기도 하고... ^^)


+


생각해보면 일에서 찾든, 다른 요소에서 찾든 이키가이가 없다는 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뜰 이유가 없다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날 하루가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기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으면서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만약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잠시만 삶에 쉼표를 갖고, 이키가이를 위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 나에게 가장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건 무엇인가?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작은 일은 무엇인가?


이키가이는 대단한 성취가 아니다.

돈이나, 명예 같은 가시적인 요인도 아니다.


'내가 아침마다 가장 신선한 참치를 고를 수 있다면?'

'내가 매년 가장 신선한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키가이는 어떻게 보면,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의 모습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하다.


그래서 이키가이는 철저히 작은 일에서 출발한다.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은 보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정원에 물을 주는 것이나 신선한 우유를 제 시간에 배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식당에서 요리를 못하고 설거지만 하더라도 내가 즐거우면 이키가이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나의 삶에서 다른 사람과 화합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활동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이키가이가 될 수 있다.


이키가이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이키가이를 가질 경우 우리는 몰입할 수 있고, 어떤 시련이 와도 회복할 수 있다.

이키가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멀리서 찾아왔지만,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파랑새일 수도 있다.


그게 이키가이가 가지는 매력이다.


위에 있는 툴을 보다보면, 뭔가 세상을 구할 거창할 것을 해야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체인지메이커가 되어 뭔가를 해보고 싶다면 나만을 위한 이키가이를 넘어서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나 혼자 하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고민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팀프로뉴어십과 이어지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을 고민한다면 세상이 원하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나만을 위한 이키가이를 넘어서 함께 살기 위한 이키가이를 고민한다면

위에 나온 모형은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


당장 위에 있는 모형을 채우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기업을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반드시 충족시켜야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키가이를 꾸준히 찾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5가지 요소를 꾸준히 지켜나가야 한다.


1)시작하기 : 작은일부터 시작하기
2)내려놓기 : 자아를 내려놓기
3)화합하기 : 화합과 지속가능성
4)발견하기 : 작은 일에서 발견하는 기쁨
5)충실하기 : 현재에 충실하기

말은 쉽지만 일상에서 이런 부분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도 고려한다면 머리가 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한 이키가이를 넘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한, 세상을 위한 이키가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체인지메이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이키가이일 것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いき-がい, 生甲斐, 삶의 보람, 위라밸, 이키가이, 장인정신, 체인지메이커, 켄 모기, 팀프로뉴어십

2015 The end of Jobs by Taylor Pearson (직업의 종말, 2017)

2018.01.20 01:40

결국 우리의 미래, 우리의 이야기는 스스로 써 나가야만 한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책의 이 마지막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불확실성의 시대, 남들이 그려놓은 '직업'이라는 길을 따라가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창업가(Entrepreneur)의 시대가 도래했다.



어쩌면 이미 뻔히 아는 이야기일 수 있다.

직장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여기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 금방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간다.

남들도 다 그렇게 걸어왔고,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대로 걷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 역시 외부 환경에 의해 시작된 구조조정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길을 아직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마음에 안든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직업을 찾아 다른 분야로 떠나봤다.

뭔가 다르기는 했지만, 그 곳 역시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나의 구상에 가장 잘 맞는 조직이 협동조합이라 생각했다.

협동조합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갔고 그렇게 석사와 박사를 거쳐서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학원에서도 나는 정해질 길을 그래도 걷지 않았고, 박사에 진학했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어쩌면 나는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로 들어섰고 MTA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창업이라고 하기에는 인프라가 좋은 편이지만 A부터 Z까지 혼자해야하기에 창업이 아닌 것은 아니다.

HBM과 아쇼카라는 멋진 네트워크가 함께하기에 남들보다 수월하지만 맨 바닦에서 시작하기에 창업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광고회사에 있고, 두번째 직장 동료들은 게임회사에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경험했지만 나와 비슷하게 완전 새로운 길은 선택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생계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지나온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위험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재밌어서 일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특히 내가 일했던 광고와 게임이라는 분야는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회사 다니면서 봤던 사람들 중에는 일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직장으로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가족과 나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


직업의 종말
국내도서
저자 : 테일러 피어슨 / 방영호역
출판 : 부키 2017.09.22
상세보기

이 책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하기 위해서 다양한 경영학적 배경 지식들을 활용하고 있다.


제약이론, 안티프랙탈, 롱테일 경제학, 노동경제학, 2요인 이론, 내적 동기 이론 등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을 활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다소 억지스럽게 갖다 붙인 듯한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 위해서 그냥 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기존의 유명한 이론들을 잘 활용했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하지만,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면서 굳이 제약 이론을 써야했는지, 롱테일 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다소 억지스럽게 갔다 쓴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파트5는 앞의 흐름과는 다르게 뭔가 점프해서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별도 쓰여진 원고를 억지로 합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의 초점이 너무 달라서 일 것이다.


앞에서는 거시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다가, 파트 5에서는 갑자기 미시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대적인 흐름이 이러니,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점프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구성상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서술한 대로 

나에게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에 책읽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


에드워드 데시, 칙센트 미하이, 헨즈버그 의 이야기는 조직행동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특히 주인 의식을 강조하는 노동자협동조합에서는 자신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아주 중요한 이론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 노동자들이 이러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주인 의식과 자발적인 업무 실행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보지 못하는 존재와 같다.


모두가 주인이면 열정적으로 즐겁게 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주인이 뭘할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20년 넘게 남들이 그려준 지도를 따라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지도를 따라갈 생각이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도를 그려본 적도 없고 그릴 수 있다는 사실 조차도 부담스러운 것이 오늘날 청년의 현실이다.

그 틀을 깨고 나와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그려나가는 과정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이다.


MTA 체인지메이커랩을 5개월간 진행하면서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사실 나도 아직 남들이 그려놓은 지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에 그려진 길 밖으로 뛰쳐나왔고, 새로운 길에 들어가서도 내 맘대로 가고 있다.

남들이 목표가 뭐냐고 물어볼 때 마다 그 딴 것은 없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살고 있다고 대답하는 요즘이다.


남들은 어이없어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이게 가장 솔직한 대답이지 않을까 싶다.

30년, 50년 후의 미래를 스스로 상상해볼 수도 있지만 그 길이 진짜 있는 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그려놓은 길을 따라 가던 친구들에게 새로운 길을 그려보라고 하는 일이다.

단순 호기심에 합류한 친구들도 있고, 그 길이 마음에 안들어서 뛰쳐나온 친구들도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들이 새로운 길을 그려보고 그 길을 찾아 떠나게 만드는 게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머뭇거리는 친구들에게 일단 가보라고 독려하고, 그 길을 가면서 힘들다고 울면 달래주고 함께하는 친구를 붙여주고...


그 길이 과정 좋은 길인지는 확실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그린 길이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 기대가 있다.

배우르고 뜻뜻한 돼지가 아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길을 선택한 그들이기에...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더욱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계곡에서 뛰어내리라고 등떠밀기 보다는 스스로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내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다.

일단 일이 재미있다는 점에서 제대로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 책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entrepreneur, The end of Jobs, 불확실성의시대, 직업의종말, 창업가의시대, 테일러피터슨

The future of Work (8th Asia future forum)

2017.12.03 23:32



지난 15-16일 진행된 아시아 미래포럼의 주제는 '일의 미래'였다.


첫째날 주로 논의 된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 프레카리아트의 출현, 노동보호, 기본소득 등이였고, 

둘째날은 각 세션마다 지역 혁신, 플랫폼 경제, 직장 민주주의, 사회보장, 휴먼테크놀로지 등에 대해 다루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뻔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 것도 같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주로 어떠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총칭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변화하는 노동조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볼 수 있었다.


첫날 기조연설과 오후에 이어진 특별강연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간이였다.


+


첫번째 연사로 나선 리처드 프리먼은 로봇이 가져올 변화를 three laws of Robo-economy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1)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다.

2) 시간이 흐를수록 로봇의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3) 결국 로봇을 소유한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어찌보면 공상과학소설에서 흔히 나오던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누구나 예측이 가능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이야기이다.


리처드 프리먼은 굳이 이러한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정책과 제도를 고칠지 고민하라고 이야기한다.


멜서스의 인구론과 사이먼의 예측이 틀렸음을 지적하며, 고전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길 요구한다. 결국 누가 로봇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분배의 문제가 결정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로봇을 소유하는 시대가 된다면 오히려 기존 자본주의가 가지가 있던 배분의 불평등 문제까지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면서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접근이다. AI기술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만듬으로써 결핍의 문제를 벗어나 과도한 풍요의 시대를 어떻게 잘 살아갈지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고령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자유주의적 시각이 굉장히 흥미진지하게 다가왔다.

미래를 낙관적인 시각에서 진취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괜히 대가라 불리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별다른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더 위대하기 만들기 위해서 로봇 기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적 장비를 발빠르게 준비해야한다는 그의 견해는 어떻게 보면 정도를 가는 학자의 모습이다.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서 인기를 끌기보다는 그냥 어쩌면 당연하지만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


이에 반해서  폴리 토인비는 노동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경험한 영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에 대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계약 (Social contract)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먼저 향상되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노동권을 주고, 노동조합이 더 힘을 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굉장히 전통적인 진보의 관점이지만 현장의 이야기는 늘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영국의 노동 현실은 한국 사회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


3번째 기조연설은 기업이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지멘스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다가올 변화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한다. 제조 공장의 블로칼라보다는 오히려 화이트칼라 직종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더 클 것으로 예측을 하고 있으며, 사회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서 사람들을 재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지멘스는 제조 공장뿐만 아니라 사무직의 운영 방식도 바꾸고 있으며, 협업을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역시 기업이라서 그런지 가장 빠르게 사회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미 대응을 해오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가장 늦게 바뀌는 것이 정책이나 제도이고, 이보다 더 늦게 바뀌는 것이 기존 체제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토론 시간에 프리먼은 미국의 노조는 아직도 중세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로 이를 비꽂은 듯하다.


+


(사진출처: 한겨레)


오후에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3가지 서로 다른 견해를 만나볼 수 있었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공동대표는 현재의 분배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세상에 던져놨다. 이미 인도, 핀랜드, 네덜랜드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이 새로운 접근은 굉장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화두이다. 심지어 기본 소득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진보와 보수라는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하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떡밥(?)을 던져주고 있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도 최근 프레카리아트에 해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새로운 갈등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더욱더 화두가 되면서 정규직을 뽑지 않으려는 회사와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야만 하는 청년들간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서울시와 성남시에서는 청년수당이라는 형태로 이러한 이슈들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 또한 새로운 논쟁꺼리이다. 한편 보수층에서는 기존 복지제도를 완전히 대체하자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샌드라 폴라스키 전 국제노동기구(ILO)부총재는 기본소득같은 획기적인 접근보다는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전통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법제도의 개선과 노동조합의 강화를 통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 수준까지 올리고, 단체교섭권을 강화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으로 인해서 기존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함께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민형배 구청장은 기존의 '자본 대 노동'이라는 대립구조를 넘어서 사회적 경제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역사적으로 소수이지만 최근 나름 부각되고 있는 견해를 지지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기업과 노동이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광주에서의 성공사례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지지하는 방법이지만, 굉장히 시간이 오래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방안이기에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접근이다. (확실히 기본소득에 비해 임펙트가 너무 약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본소득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에 비해서 정부가 할 일이 많지 않다. 오히려 팔짱끼고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에 정치인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접근이다. 나와 같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공감하고 지지해줄뿐 이런 컨퍼런스에서는 그냥 좋은 미담으로 보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길로써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보일 수 있던 화두가 어느 새 제3의 길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


결론적으로는 3가지 모두 현재의 일자리 문제와 앞으로 더욱더 부각될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중요한 화두들이 될 수 있다. 노동 조건의 개선은 어찌보면 필수적인 접근일 수 있으며, 사회적 경제 방식의 새로운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기본소득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당장 나만하더라도 기본소득만 보장된다면 좀 더 똘아이짓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사진출처 : 한겨레)



기본소득 논의는 둘째날 세션에서도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발제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가 더 강했기에 찬성론자들의 열띤 공방이 장외투쟁처럼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논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찬성론의 입장은 철저히 분배의 정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반대론의 입장은 사회보험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복지를 강화하느냐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느냐의 논쟁은 사실 우파 기본소득론에 기반하고 있지만, 좌파의 주장 역시 예산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기에 복지를 더 강화하자는 복지론자들과는 각을 세울 수 밖에 없다. 첫날 전통적인 노동조건 강화로 해결하자는 견해와 복지론자의 관점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며,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기본소득은 이틀간 하나의 강력한 축을 이루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전통적 관점 외 새로운 관점으로는 기본소득이 가장 강력해보였고, 사회적경제는 어쩌면 기본소득과는 연대가 충분히 가능해보이기도 했다. 찬성론자들은 수혜적 관점이 아니라 분배의 정의 차원으로 논의를 끌어가려고 했지만, 반대론자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면서 약자를 보호해주는 사회보장의 강화를 측면을 강조하고 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둘 다 좋은 맞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어디서간 합의점을 찾아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사회적경제라는 관점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복지국가론과는 약간 견해가 다르기에 기본소득으로 마음이 더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역시 뭔가 정책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는 찬성론자들의 견해를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것같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기에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논의해보고 필요하다면 실험도 해볼 필요는 있어보인다.


+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이 갔던 세션은 '플랫폼 경제와 노동'이라는 주제였다.


사실상 이 주제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는 새로운 노동 유형이 바로 나를 의미한다. 어느 조직에 명확하게 소속되어있지 않고, 비정규직 신분을 유지하면서 여러 업체와 동시 다발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지식 노동자. 명함만 3개를 가지고 여러학교를 떠돌아다니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내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도 못하고, 프로젝트 베이스로 계약하거나 매년 계약을 다시 해야하는 독특한 상황이다. 물론 나야 자발적 비정규직인 케이스이기에 상대적 박탈감은 없지만, 정규직을 원하는데 이러한 근무형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러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가 바뀌면서 기존 노동법의 핵심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노동 관련 재판 결과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서 판결이 뒤집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하청과 재하청, 인력 아웃소싱 등의 방식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계약 관계가 불투명해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시장의 적폐화 되고 있는 이러한 인력 아웃소싱 업체를 활용한 하청 계약 형태는 근로 조건은 악화되고 기업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노동 시장의 어두운 면이 최근 들어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불합리한 계약 관계 때문이다. 이러한 악습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상상력과 결단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야하는데, 이미 기존의 시스템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괘 많은 것이 문제이다. 기존의 틀을 흔들게 되면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참 어려운 문제이다. 어떠한 선택도 100%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는 딜레마가 한상 이러한 고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애니웨이 이러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클리어하지도 않은 사용자를 찾아내서 부담하길 명령하는 방식보다는 차라리 기업 차원에서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보장을 해주는 방법이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모호해도 국가 차원에서 안전망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아이디어는 좋아 보이는데, 현실가능성은 좀 더 논의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컨퍼런스나 포럼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뭔가 전문적인 지식을 제대로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분야로 들어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에 여기서 다 해결하려는 것은 당연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어떤 논쟁을 하고 있는지 밑그림을 그리기에는 이러한 교류의 장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피상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듯하다. '기본소득'과 '플랫폼 경제', '프레카리아트' 같은 새로운 키워드를 좀 얻었으니 이것을 나의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


세상은 넓고 공부할 것은 왜 이렇게 많은지...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4차산업혁명, Future of work,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 리처드프리먼, 아시아미래포럼, 일의미래, 프레카리아트, 플랫폼경제, 한겨레

심오한 한자의 세계 - 직장 사훈

2014.04.16 18:06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사훈을 공모했다.


여러 사훈 중 
직원 투표 결과 일등을 한 것은......


日職集愛 可高拾多
(일직집애 가고십다) 
☞한자뜻 풀이 
[하루 업무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얻는 것도 많다]


그랬더니 
경영자 측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


溢職加書 母何始愷
(일직가서 모하시개) 
☞한자뜻 풀이 
[일과 서류가 넘치는데 애들 엄마가 좋아 하겠는가]


그래도 직원들이 굽히지 않자, 
결국 사훈을 이렇게 정했다.


河己失音 官頭登可
(하기실음 관두등가) 
☞한자뜻 풀이 
[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일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사훈을 이렇게 정하니 
사원들이 이렇케 댓글을 달았다.


鹽昞下內(염병하내)
세상의 소금이며 빛과 같은 존재이지만 늘 자신을 낮춘다.

--------------------------------------
직장인들여 힘을 내시게......
(출처는 모릅니다~ 그냥 전달받음)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사랑하는 일을 하고! 당신의 일을 사랑하라!!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2014.01.23 00:47

페북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서 다음의 글을 공유받았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지만, 글쎄 이사람의 결론에는 공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짓거려 본다.

(밑에 그림을 클릭하면 번역문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In the name of Love)라는 제목으로

영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해서 올려놓은 글이다.


요지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 속에 숨겨져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맨 얼굴을 설명해주고 있다.


1) 해당 언어는 사랑할만한 일을 하지 못하는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심리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며,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들의 나르시즘에 불과한 이야기일뿐, 다른 형태의 노동의 가치를 매력이 없어 보이게 만든다 지적한다.


2) 다른 측면에서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과도한 노동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대우를 해주면서도

    그런 것을 합리화시키는 언어라고 지적을 한다.


2가지 측면 모두 합리적인 지적이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글쓴이의 말대로 전문직이 아닌 단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아를 찾지 못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며, 나는 먹고살기 위해 돈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에, 실제로 수많은 예술가와 전문직 종사자들은 노동 착취를 당하면서도

'이 일은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원저자는 여기에 무급 인턴이나 무급 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테재에 숨겨져 있는 젠더(Gender)의 의미까지 분석하여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저자는

'모든 일을 일로서 인정할 수 있을 때, 이 말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하면서

일을 벗어나 진정 사랑하는 것(가족, 여가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일(work)과 행복(happy)의 문제는 내가 오래 전부터 고민하던 이슈이기에,

행복(happy)을 사랑(love)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한 해당 이슈는 나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다면 "모든 일은 일이다!"라고 규정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원저자가 지적한 두가지 내용은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1) 일에 대해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2) 사랑이란 언어로 노동 착취의 매커니즘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의 결론에 대해서는 공감을 해줄 수 없다.


"모든 일은 일이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원저자는 2가지 지적에 대한 해답을 동시에 제시한다.


1) 사랑할 수 없는 노동도 일이다.

2) 일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면 어떨까?


1) 왜 단순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가?

2) 왜 가족과 여가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면서 일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원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발언이 단순 노동자를 무시한 사고의 발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저자는 단순 노동은 사랑할 수 없는 하찮은 일이라는 편견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단순 노동을 간과했다고 지적하면서,

정작 저자의 인식 속에는 단순 노동을 무시하고 있다.

(단순 노동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편의상 단순 노동이라고 줄여서 표현하겠다.)


스스로 일의 성격에 따라서 가치를 평가하고 있으면서,

단순 노동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 노동은 절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성립되야 한다.


이미 저자는 스스로 단순 노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나사를 조인다고 해서, 들판에서 농사를 지은다고 해서

그 일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사랑은 주관적인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땀을 흘리는 일의 가치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두 번째, 일은 사랑할 대상이 못된다고 이야기한다.

가정과 여가 시간은 소중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진짜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과 여가 시간이만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것 또한 사회적으로 형성된 편견이며, 일이 더 행복한 사람도 존재한다.


물론 가정과 여가 시간을 더 사랑하는데,

일을 하냐고 가정과 여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원저자의 주장이 맞다.

그런 사람들은 최대한 근무 시간에 에너지를 비축하고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가정이나 여가 시간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구별짓기했던 단순노동이나 사랑할만한 일을 하나 똑같은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미,

일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그에게 일은 최대한 안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단순 노동의 가치를 폄하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떠한 일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사람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일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곳에는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짜 일을 사랑한다면 그것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


원문에서 한 가지 사항을 더 지적한다면,

저자는 Labor와 work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와 존 로크는 

노동(laobr)와 일(work)는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이야기한다.


노동(labor)은 특별한 목적 없이 수행하는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으로 정의되는 반면,

일(work)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록 에너지를 사용하는 활동으로 정외된다.


산업사회 이후로 일(work)이 분업화되면서 상당부분 노동(labor)로 전환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은 장인적인 면모가 강한 반면, 노동은 생계수단으로써의 의미가 아직까지도 강하다.


저자의 의견을 따르면서

사랑받을 만한 일은 work가 되야하고,

사랑받지 못할 일은 labor가 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일과 노동을 구분해버리는 순간,

저자가 이야기했던 일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합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수단 역시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행복하냐 안하냐의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방글라데시가 굉장히 못사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행복 만족 지수가 세계 1위를 기록했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의 표현대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노동착취를 당하지 않고 퇴근 이후에 가정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여가활동을 충분히 하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단순하면서도 힘들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여가 활동 충분히 못하고,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못보내도

일에서 더 큰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일을 싫어한다고,

남들도 모두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전문직인데 업무 강도가 강한 사람은 모두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편견이 사람들을 획일화된 잣대로 몰아가고 있다.


+


2년 전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직장이라 불리던 곳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려고 급하게 노력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난 전문직이긴 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하면 농담인줄 알지만,

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여러가지 자료를 보는데 시간을 보낸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학생에게 공부는 엄연히 일이다.)


그렇다고 취미활동을 할줄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도 좋아하고, 음악과 예술도 사랑한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난 공부하는 것이 좋기에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고,

뒤늦게 다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 진짜 너무 싫어지면 그 때는 공부를 그만둘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나이먹어서 공부하냐고 불쌍하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참으로 용기있다고 이야기한다.


글쎄...

가끔은 내가 진짜 행복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행복한 것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행한 것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에게는 해당 키워드는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넌 특수한 상황이니까 그런 소리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마다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이 사람의 지적 또한 새로운 편견을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언어가 조장하는 편견을 지적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일에 대한 새로운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저자는 이를 마약같은 달콤한 사탕발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In the name of love)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Do what you love, IN THE NAME OF LOVE, Love what you do, 노동, , 존 로크, 파랑새, 한나 아렌트, 행복

강신주의 다상담 03 - '일' 편

2013.12.29 09:08


직장 생활 3년차에 접어들 때,


갑자기 불연듯 떠오른 생각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였다.


물론 그 때 나는

나름 괜찮다고 소문난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업무 강도는 높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지 않냐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렇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야할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못해 일했고, 돈만 있으면 당장 때려치고 싶어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하는 이야기는

나중에 돈벌어서 뭐하고 싶다는 이야기였고,

직장을 취미처럼 다니는 부자집 자녀들을 부러워했다.

(광고회사는 일이 재미있어 보여서 그런지 그런 분들이 꽤 존재하신다.)


월급의 노예...


이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카드값이 나를 일하게 부른다.

때려칠까 싶다가도 월급이 들어오면 에너지 충전이 된다.


솔직히 나는 당시

Life Balance는 맞지 않았지만,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나름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물론 일도 일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뭔가 이상했다.

즐겁게 살기도 부족한 인생인데

다들 월급의 노예처럼 일만 하는게 안타까웠다.


먹고 살려면 일은 해야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왕 일하는 거면 즐겁고 행복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성경의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


불교의 백장 스님(738-817)도

노년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

선인들의 사상을 통해서 보면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 취미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일하지 않았는데,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하지 않았는데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부모님, 남편, 아내, 동료, 친구가 아니면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한 일의 대가를 빼앗는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의자 하나 못 옮기는 사람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는데,

모두가 먹고 살게 된다면 여기에 권력 관계가 형성되게 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에게 밀붙어 살고 있거나,


전자든 후자든 누가 권력을 가지는지만 다를 뿐,

어찌하든 평등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 관계의 내면에는 돈(자본)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


성경과 불교에서

신성시 했던 거룩한 의무가

부정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것은 자본의 권력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좋은 직장이라 보고,

돈벌이만 되는 것을 일이라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사고

어느 새 돈 없이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가 팽배하기 전에는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지
일을 해서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근데, 누군가는 돈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먹고 살수 있게 되었고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능력없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돈만 있으면 당장 일을 때려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아하고, 돈이 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

나는 직장인들이 월급의 노예가 되는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왜 그런지 철학적인 사고는 존재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철학박사 강신주는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지 주인이고,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노예라 부른다.

일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노예의 근성이다.
주인이 감시를 소홀히 하면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노예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일은 안하지만 먹을 것은 얻는 것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근무시간에 딴 짓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직장인은 최고급 노예이다.
최고급 노예가 되어서 일하다보면, 돈은 들어왔는데 찝찝한 거다.
이 것이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고급 교육을 받은 사회의 엘리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급 노예의 길을 선택한다.


이러한 최고급 노예들은

우수한 능력을 바탕으로 돈많은 사람들이 일을 안하게 도와준다.

(아니면 일한 것에 비해서 훨씬 많은 댓가를 얻을 수 있도록)


이런 어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패러다임의 부재이다.


일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사고없이

돈벌이와 일을 동일시하는 물질만능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부모님들은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한다.


"그거한다고,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책을 읽을 때, 음악 들을 때, 놀 때 마다

내가 즐겁게 했던 일들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원하지 않는 것들을 잘하게 만드는 훈련을 받게 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대놓고 비판한다.


"명문대에 간 애들은 독한 놈들이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가장 잘하는 애들이 명문대에 몰려있다.


돈을 냈으면 즐겁게 수업을 들어야하는데,

비싼 등록금을 내고서 자본이 원하는 것만 배우고 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노예 훈련소로 전락하고 있다."


+


과연 그렇다면 월급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거나,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노예처럼 하지 않으면 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직장인들에 어이없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월급은 버티면 나온다.

회사에서 부지런하면 부지런할수록 손해이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쓸 에너지가 없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에너지가 없다.


퇴근 후 가족이나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놀 수가 없고,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할 여력이 전혀 없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노예로 살 때 에너지를 세이브 해놔야지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직장인들에게 태업을 종용하다니...

사장이 들으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왜 사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정확한 답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경영자들이 사내 복지나 인센티브 등을 만드는 이유는

사실은 동기부여를 통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경영자들이 진심으로 종업원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들을 노예가 아닌 동료로 보는 관점에서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함께 나누자는 훌륭한 철학을 가진 경영자도 가끔 있다.)


하지만, 강신주의 말처럼 태업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논리적으로만 보면 강신주의 말이 맞기는 하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만 일하라는 것이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삶의 균형을 맞추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준비하고 때가 되면 떠나라는 것이다.


+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미안해 한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근데, 그렇게 할수록 일은 더 밀려오고,

점점 내 시간과 에너지는 회사에 몰입하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이 진정으로 재미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근데, 진짜 월급 때문에 일하고 있다면,

이는 진정 노예의 삶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노예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들은 진짜 너무 착하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면 난 매정한 부분이 존재한다.


내가 선택한 길은

회사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는 것이었다.


강신주의 강의는

내가 직장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의 4년간의 삶을 말하고 있었다.


+


4년차가 되면서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좋았지만,

뭔가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삶의 밸런스가 맞지 못했으며,

기업의 광고와 마케팅이라는 일이

사회에 가치있는 삶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마케팅이고,

마케팅 업무가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부서로 옮기기로 했다.


외부 환경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일도 재미없어지고, 사람들도 나가버렸다.

그리고,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다.


첫 직장을 다니던 나에게는 충격이였다.

그렇게 좋았던 나의 직장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그러면서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창업을 위한 도움일 될 수 있으면서도,

자기 개발을 위한 삶의 여유가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새로운 회사가 필요했다.


이러한 모든 조건에

벤쳐로 성공해 상승세를 타고 있던 네오위즈는 최선의 선택이였다.


난 강신주박사가 말한대로,

적당히 일했으며 절대로 일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능력에 비해서 욕심을 내지 않는 나에 대해서

팀장님은 대놓고 나에게 서운해 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붙는다면,

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딱, 나에게 주어진 일까지만 최선을 다했고 절대 욕심 내지 않았다.

(물론,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는 충분히 좋은 성과를 냈다.)


당연히, 팀장님과 회사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의 인생에 중요한 타이밍을 회사에 올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

그리고 그 것을 위한 방향과 방법을 알았을 때

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 도전에 무모하다, 용기있다 말하지만,

난 4년을 망설이며, 준비했고, 기회가 왔을 때 움직였을 뿐이다.


+


남이 시키지 않는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벌이가 되어 먹고 사는 걱정 안해도 되는 사람


어떻게 보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근데,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떠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막상 나도 내가 원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돈벌이가 되어 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계속 더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했지만,

공부를 더 하면서 돈벌이가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행복한 일터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모두 같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주인이기 때문에 힘든 일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그런 곳


그리고 각자의 즐거운 삶도 알아서 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곳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성공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일터의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아주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꿈을 꾸고 차분히 준비해나가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기에 실패가 두렵지 않다.


어찌보면, 이 고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현재,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느냐가

일에 대한 고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Work, 강신주, 노예, 다상담, 동기부여, 백장 스님, 월급의 노예, , 일터, 자본주의, 주인, 즐거움, 철학박사, 최고급 노예, 행복, 행복한 일터, 회사

  1. Blog Icon

    비밀댓글입니다

  2. 굉장히 공감되네요

  3. Blog Icon

    비밀댓글입니다

  4. 저는 성공회대에서
    협동조합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셔도
    아마 후회와 미련이 남으실 텐데,
    어쩔 수 없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

  5. Blog Icon

    비밀댓글입니다

꿈과 직업에 대해서 - 백희성

2013.12.29 09:07

백희성이라는 인물은 사실 처음들었다. 
강의를 보고 나서야 검색을 통해서 독특한 이력을 찾을 수 있었다.

명지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제 건축공모전에서 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자,
무작정 프랑스 유학을 떠나버린 열혈 청년

그리고 그는 프랑스 전역의 건축학교 졸업생들 중 최우수 작품에 수여되는
 '폴 메이몽 건축가 상'을 동양인 최초로 받게 되었다.

그런 후 그는 현재 프랑스의 장 누벨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

는 어찌보면 꽤 잘나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보다는 그의 메세지가 확실히 더 강렬했다.

메시지의 핵심은 꿈이 직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Dream은 명사이면서도 동사이다.

꿈이 직업과 동일한 단어가 되어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많은 경쟁을 통해서 달성해야할 목표만 존재하며,
왜 꿈을 꾸는지,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고민은 사치에 불과해진다.

내가 꿈꾸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직업을 가지는 것은 얼마든 가능하다.

그리고, 반드시 최고가 될 필요도 없으며,
얼마든지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난 누구나 함께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는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학생 때는 광고를 통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었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착한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난 방법은 모르지만 꿈을 항상 꾸었고,
주어진 환경과 경험에 따라서 그 방법과 형태를 계속 바뀌왔지만,
아직도 꿈꾸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꿈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뒤늦게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있지만,
막상 이곳에 들어와서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를 배우면서 또 다른 생각들이 복잡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맨날 꿈만 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이 과정들이 너무나 행복하기에 아직 열매는 없지만,

언젠가 이루게 될 열매들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내가 만들고 싶은 행복한 회사와 착한 사회
그 꿈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실패에 도전한다!! ^^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광고, , 백희성, 사회적 경제, 성공회대, 직업, 착한 사회, 폴 메이몽 건축가 상, 행복한 일터, 행복한 회사, 협동조합, 협동조합경영학과

부유한 노예 (The future of success) - Robert Reich (2001)

2013.12.20 23:54
부유한 노예
국내도서
저자 :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 / 오성호역
출판 : 김영사 2001.10.31
상세보기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랬던 점은

이 책이 2001년에 저술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거품이 한창 형성되어 정점을 지나던...

대한민국에는 김대중대통령이 아직 집권하던...


그 시기에 쓰여진 책이지만,

2013년의 대한민국이 가진 온갖 사회문제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0년 뒤를 내다보았던 저자의 혜안도 대단하지만,

이미 예견된 이 길을 그대로 따라 온 대한민국도 놀랍다.


책의 원제는 무슨 자기 개발서 같은 느낌의 'The future of success'이지만,

번역본의 제목은 계급투쟁의 느낌이 나는 '부유한 노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둘 다 좀 뭔가 내용과 안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1년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제는 그래도 의미는 좀 살린듯....)


+


노동 문제에 대한 자료를 얻고 싶어서 읽은 나에게...

처음 100페이지까지는 도대체 이 책의 정체가 뭔가 싶었다.


물론 미래 경제 발전을 2001년에 예견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기는 하지만,

2013년에 사는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나열되기 때문이다.


구매자의 천국, 혁신의 시대, 브랜드 파워, 지식 사회...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책은 한 지식인의 미래 사회 예측에 관련된 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경제 발전이 양상해내고 있는 그림자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생산직의 감소, 경쟁의 압박, 사라져버린 신의, 고용 개념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이어지는 개인의 삶에서의 변화는 더욱 역동적이다.


증가하는 근무시간, 개인 브랜딩 시대, 줄어든 가족, 분류되는 계층...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정보, 통신, 교통,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회의 역동성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더욱더 치열해지는 경쟁 구조로 설명될 수 있다.


긍극적으로 역동적인 경제활동이

사회의 전체적인 부는 증가시켰지만, 오히려 사회적 안정성은 감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개인 차원의 행복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말았다.


그로 인해서,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수 많은 가치들...

이 부분이 바로 노동부 장관을 사임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저자의 고민이였던 것이다.


+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저자가 신 경제(New economy)라는 표현을 사용한

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매카니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다.


경제학적인 설명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써

왜 신 자유주의가 보편화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흔히 우리가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금융자본가와 부유층이 만들어낸 결과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라이시는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적 경제적 역동성이 이 모든 것의 주된 출발점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혜택으로만 여기도 이러한 요소들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믿었던 요소들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한 부를 창출해냈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빠른 변화가 사회를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낙오되지 않도록

더욱더 경쟁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이는, 다른 수 많은 가치들을 포기하게 만들다.


노동 시간 증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 개인주의화, 핵가족화, 양극화의 증대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지나친 이기심의 결과가 아닌

사회 변화에 낙오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은 주장이다.


+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인사이트에 비해서

라이시의 결말은 너무나 아쉽고 싱겁다는 느낌이 든다.


라이시는 일단 개인의 차원에서는 자기개발서와 같은 결론을 내려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라이시가 보기에 이 것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 차원의 대안은 무엇인가?


라이시는 경제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성과를 절대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신, 잃어버린 가치들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산업화 시대의 대응에서 찾는다.


산업화 시대도 경제적 발전과 동시에

아동노동, 빈부격차, 탈 공동체화, 대도시화의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났다.

이 때의 해법은 노동법, 사회보장제도, 의무 교육, 누진세 등의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이였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여기까지의 논리에는 너무나 공감하지만,

이 후에 라이시가 내놓은 대안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너무나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그냥, 이대로 가면 사회가 붕괴될 수 있으니...

정책을 좀 바꾸어서 적당한 선에서 잘 막아보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아쉬운 수준의 대안들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그 안에서 세부적인 수정방안들을 제시한 듯하여 실무자의 리포트 같다.


물론 그 정도도 굉장히 획기적인 내용들이지만,

앞에서 보여준 뛰어난 인사이트에 비하면 너무나 '용두사미' 같은 느낌이다.


글쎄...

책을 쓴 시기가 미국 경기가 호황이였던 클린턴 정부 시절이니,

이 정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도 충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이제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라이시의 보다 면밀한 견해를 보려면,

슈퍼자본주의를 비롯한 더 최신의 저술들을 읽어봐야만 할 듯하다.






열린 공동체 사회 Working Innovation/Work & Life New economy, Robert Reich, The future of success, 로버트 라이시, 부유한 노예,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

  1. Blog Icon
    ㄱㅈㅎ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