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ker 1]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isode 05 - K-pop 한류 (2013.10.24)

2014.06.08 04:26


강헌선생~~

음악을 사회적인 안목으로 볼 줄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해주는 강의였다.

그는 문화를 산업의 측면에서도 분석할 줄 아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다섯번째 강의는 나름 신선한 충격이였다.

(하지만 강의 제목은 아주 맘에 안든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철지난 부제를 달다니...)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EP.05-1 <K-pop 한류 글로벌 스탠더드를 꿈꾸다> - 방송듣기 (클릭)


이번 주제는 K-pop과 한류 현상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산업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좌파 문화평론가인줄만 알았는데, 

산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문화 컨텐츠를 볼 줄 아는 감각이 남달랐다.


실제 산업에도 몸을 담궜던 사람이기에,

문화를 잘 알고, 사회를 보는 눈도 있고 사업도 직접 해본 이쪽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물건이다~


근데, 솔직히 강연 내용 굉장히 풍부한데

재미적인 측면에서는 사실 예전 강의만은 못한 것 같기는 하다.

(결론도 약간은 실망스러운 느낌이다...)


+


역시나 이번 강의도

역사적인 맥락을 먼저 집고 시작한다.

이제는 기본적인 강의 패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가수의 최초 해외진출은

<김씨스터즈>(이난영의 두 딸과 조카로 구성)이다.


이남영은 '목포의 눈물'로 국민 여가수가 된 인물로

1939년에는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당대 최고의 솔로 여가수 4명(이난영, 박향림, 장세정, 이화자)은 

정식 그룹은 아니지만 같이 활동을 하면서 194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한국전쟁에서 이난영의 남편인

오케이레코드 음악감독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이난영은 <저고리 시스터즈>를 복제한 <김씨스터즈>를 데뷔시킨다.


최초의 데뷔는 1953년 피난가는 열차 안이였고,

미8군을 방문한 미국의 프로듀서에게 스타우트되어

라스베가스 호텔에서 하루 8시간씩 노래를 부르는 강행군을 수행한다.

(성공하기 전 비틀즈도 하루 8시간씩 노래를 불렀다니, 원래 무명은 다들 그렇게 생활했었나보다.)


1959년 한국인 최초 미국에 진출한 걸그룹이 되었고,

1962년 한국인 최초 빌보드차트(알앤비 부문)에 진입하며,

당대 최고의 쇼였던 <애드 설리번쇼>에 무려 22번이나 초청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다.

(애드 설리번쇼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가 데뷔해서 큰 호응을 얻은 그 쇼이다.)



<애드 설리번 쇼>에는 이난영도 초청받아서 같이 무대에 서는데,

당시 미국 비자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서 애드 설리번이 직접 도와줬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다.


1967년 대한민국의 GDP가 2,067달러였는데,

이들 한달 출연료가 10,700달러였고,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받은 주급은 무려 15,000달러였다고 한다


김시스터즈에 이어서 걸그룹이 국내에 쏟아져나오는데,
이시스터즈, 정시스터즈, 김치캣 등이 있었으나, 1968년 펄시스터즈가 걸그룹을 평정한다.


+


하지만, 빌보드 차트가 여러종류가 있는데,

장르별 차트말고 가장 메인이 되는 차트는 HOT100이다.


동양인 최초로 빌보드 HOT100에 1위를 차지한 것은

1963년 일본인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가 3주간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조선계라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근데, 이 노래를 왜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검토를 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강헌 선생의 설명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일본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급증하던 시기이다.


메이지 유신시절부터 교류가 많았던 영국과는 달리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는 문화적 교류가 많지 않았는데,


영국에는 상당수의 일본노래가 번안되어서 전파되었지만,

미국에는 일본노래가 번역도 없이 그냥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원래 이 노래는 <하늘을 보면서 걸어가자>라는

의미의 제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에 넘어갈 때는 <스끼야키>라는 이름으로 넘어간다.


당시 일본 문화가 퍼져나가면서

<스끼야키>라는 음식은 일본 음식을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원곡 가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냥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작명인 것이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윤종신같은 가수의 노래가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진출한 것이다.)


1963년이라는 시기는 미국에서 문화적 공백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라져버렸고, 비틀즈는 등장하기 바로 직전이였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분위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상황)


여기에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나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을 경험한 사람들의 추억 등이 겹치면서 가져온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1979년 일본의 걸그룹 핑크레이디가

<Kiss in the dark> 라는 영어 노래로 HOT100 37위까지 기록한다.

(근데, 당대 미국의 반응은 약간은 무시하고, 신기해하는 태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2009년 원더걸스가 <No body>로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HOT100 올라서 76위까지 기록하였고,


2010년 Far East Movement라는 

한국계와 일본계 미국인 그룹이 빌보드 HOT100 1위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미국에서 자란 현지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하지만, 

2011년 빌보드 하위차트에 K-pop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게 되고,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HOT100에서 7주간 2위를 기록하고,

2013년 후속곡인 <젠틀맨>으로 HOT100에서 최고 5위까지 오르는 기록을 세운다.


아시아인이 두 곡이나 HOT100에 오른 것은

1963년 일본인 사카모토 큐(1위 / 58위)와 필리핀의 로키 펠러(16위 / 55위) 이후로

50년만에 최초이기에 싸이의 열풍은 대단한 것으로 K-pop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


도대체 이렇게 긴 역사를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문화컨텐츠로 해외에서 성공한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빌보드 HOT100에서 제대로 상위권에 오른 것은

비영어권 아시아인으로는 사카모토 큐와 싸이밖에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문화적 장벽을 깨는 것이 어려운 것이며,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일본시장 조차도

2002년 보아가 최초로 오리콘 1위를 기록하기 전에는 전무했다고 한다.


이후 동방신기가 12번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카라가 해외가수 최초 발매 첫 주에 1위를 기록하는 등의 기록이 나온 것도

보아가 문을 열어놨기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이라는 설명이다.


암튼 이렇게 긴~~~

해외차트에서의 한국음악의 성과를 설명하고 난 후 이제야 본격적으로 한류를 이야기한다.


+


한류의 시작은 1996년,

중국에 문화적 개방이 시작되던 시기에

한국의 TV드라마가 중국의 방송에 굉장히 헐값에 처음 팔리면서 부터이다.


<사랑이 뭐길래>,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가슴에> 등이

중국 아줌마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국 드라마 사재기가 시작됐다.


일본에 대한 중국인들의 문화적 반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드라마를 수입한 것인데 이게 중국에서 완전 먹혀들어간 것이다.


강헌 선생은 한국드라마 성공요인을 3가지로 뽑는다.


1) 중국의 문화 컨텐츠 부재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를 상징하는 예술 감독만 존재하기에,

한국처럼 트랜드에 맞춰서 그때 그때 컨텐츠를 찍어내는 능력이 부재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그래서 한국의 트랜디한 중급 영화감독들이

중국에서 상당수 캐스팅되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 한국드라마의 현실적이지 않은 막장스토리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비문화가

이제 막 형성되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재벌2세와 신데렐라 스토리
서구드라마와는 다른 개연성있는 욕망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가족이라는 키워드

서구드라마, 일본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아직까지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는 먹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자

중국의 한 기자가 '한류'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1) 한류는 계획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현상

2) 내수용으로 제작된 컨텐츠가 해외에서 우연히 성공한 헤프닝

아줌마들이 드라마에 열광했다면,
청소년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OST에 열광하게 된다.

(한국노래만 소개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만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연기도 하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중국에 진출해서 인기를 끌게되고 그게 바로 안재욱과 장나라였다.


이후 2000년부터는 드라마와 상관없이

베이비복스와 HOT같은 아이돌그룹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는데,


문제는 중국에 공연 인프라가 전혀 없어서, 
한국에서 모든 장비를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돈이 남질 않았다고 한다.

드라마도 당시에는 워낙 헐값에 팔아먹었기에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김남주가 광고모델을 했던,

드봉 화장품이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엎고 완전 대박을 치자,

문화컨텐츠의 상업성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도 삼성이 전지현으로 대박을 치는 등

문화 컨텐츠가 가지는 파괴력으로 한국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컨텐츠 자체만으로는

중국은 별로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이다.


일단 외화 유출이 철저히 불가능하며,

실질적으로 저작권 보호도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미국의 메이저 배급사와 음반사가 모두 철수한 시장이다.


+


진짜 돈이 되는 시장은 일본 시장이였다.


1996년 강헌선생이 직접 참여한 <넘버3>만 해도,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며 관객 30만을 기록했는데도 실제 이익은 2억 밖에 없었다.

해외수출할 때 국가당 800만원이였고 실비를 제와하면 겨우 국가당 300만원밖에 안남았다.


영화판 자체가 돈벌이가 안된다고 판단되었고,

가장 큰 투자자인 삼성영상사업단도 이 시장에서 철수한다.


하지만, 1997년 멀티플렉스가 도입되기 시작하고,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일본에서 완전히 히트를 치면서 200억을 벌어들인다.


당시 음반산업 시장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한다.


IMF이후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무료 다운로드로 음반산업은 일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당시 1위였던 지구레코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업체가

온라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아직도 주판과 전표를 만지고 있었고,


결국 대형 음반사 6곳 중에서

발빠르게 대처했던 SM과 DSP(베이비복스 소속)만 살아남게 된다.


여기서 이수만의 비즈니스 감각이 빛을 밝휘하는데,

내수시장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수만은 해외진출을 시도한다.


HOT로 중국에서 성공을 경험하지만,

돈벌이가 안되었기에 SES를 중심으로 일본에 도전한다.

(당시 일본의 음반시장 규모는 한국의 22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벽은 매우 높았고,

음악 대통령 서태지도 2년동안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땅이였다.


이수만은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한 컨텐츠를 기획했고,

SM을 코스닥에 상장시켜서 확보한 자본으로 보아에게 30억을 투자한다.

(진짜 승부사인듯... 만약 보아가 실패했다면.... ㅜ.ㅜ)


이수만은 상당부분 수익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보아를 일본기획사를 통해서 철저히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에 진출시킨다.


이미 어려서부터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교육받은 보아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구사하면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벽은 높았고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일본 시장에서 철수를 고려하던 2002년, 오리콘 차트에서 대망의 1위를 차지한다.



아무로나미에 이후 성공한 여자가수가 전무한 일본시장에서

보아는 아무로나미에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일본을 점령했고,


2005년에 SM은 동방신기를 데리고 일본에 직접 진출한다.


드디어 문화컨텐츠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2007년부터는 유럽진출에도 성공하기 시작했고,

컨텐츠의 종류도 온라인 게임, 뮤지컬 등으로 점차 확대되어 나가게 된다.


여기에 관광산업으로 내수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데,

관광지 방문이 아니라 문화컨텐츠를 소비하러 오다보니 수익성이 높은 관광객인 것이다.


해외진출 기업들도 코리아 브랜드의 후광을 얻게 되고,

박지성, 최경주,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들의 효과도 한 몫을 단단히 하게 된다.


+


하지만, K-pop의 미래가 밝다고만 할 수는 없다.


K-pop은 시작부터

댄스아이돌그룹이라는 니치 시장을 파고들어갔다.


자본주의 논리로 보면 별로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기에

절대 메인 스트림이 될 수 없는 장르라는 것이다.


그룹으로 활동하다보니 관리비가 많이 들어가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


특히 어려서부터 장기간 훈련시키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아동학대에 걸리기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는 육성 프로그램이다.

(사고치고 돌아다닐까봐 어려서부터 숙소에 가둬놓고 합숙을 시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일본처럼 내수시장이 크지 않기에 해외진출을 해야만 했고,


언어도 안되는데, 노래실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지 못하니

군무로 승부하고 비주얼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룹 맴버 한명 한명에게 캐릭터를 부여해서,

각각이 별도의 팬을 보유하게 만들고 만능엔터테이너로 키우게 된다.


근데, 강헌선생이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건 사실 일본에서 아이돌 양성하는 것을 그대로 배겨온 방식이다.

(HOT,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모두 일본에 롤모델이 되는 그룹이 존재한다.)


암튼, 문제는 투자비용이 너무 높다보니,

SM과 YG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영난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JYP도 국민동생 '수지'가 벌어들이는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한다.)


SNS열풍에, 인터넷 강국 코리아의 자발적 애국자들의 활약으로

비주얼 중심의 컨텐츠가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약간 건방지게 쌩까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장르적으로 댄스 아이돌에 편중되다보니,

중국시장에서 한국드라마가 사라진 것처럼 어느 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안정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메인스트림 시장인 락밴드나 R&B에도 진출해야한다는 것이다.


락밴드와 R&B가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최고의 비용효율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번 뜨면, 그냥 10년은 가고 투자비용도 크지않다.

한번 뜨면, 심지어 기존 앨범까지 다시 팔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세계투어 다니면서 돈을 벌면서 마케팅을 진행하고, 
비틀즈는 10년마다 미공개곡을 발표하고 있는데 아직도 50년 정도 분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컨텐츠의 데이터베이스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서,

해외에서 자유롭게 한국의 문화컨텐츠를 감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국가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

온라인을 통한 데이터베이스 제공은 정도는 해줘야한다는 것이 강헌 선생 의견이다.


결론은 국가차원에서 문화산업에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피터드럭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강연을 마친다.


"21세기는 문화컨텐츠가 국가권력을 좌우할 것이다"


+


약간은 다른 문화컨텐츠 산업인

게임업계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바에 의하면,

문화컨텐츠 산업이라는 것이 참 쉬운 산업이 아니다.


물론 제조업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 컨텐츠는 어디서 대박이 터질지 잘 모른다.


아무리 기획을 잘해도 시장에서 반응이 안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다작을 내놓기 마련이고, 이중에 대박을 친 몇 개로 전체를 먹여살리는 구조이다.

(영화, 게임, 음원 모두 마찬가지인데, 아이돌은 그래서 안전장치로 다수의 맴버를 활용한다.)


K-pop의 성공요인도 이제와서야 쭉~~ 분석할 수 있지,

처음부터 이렇게 잘 기획되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한국 드라마의 성공이 우연적인 것처럼...)


한국의 아이돌은 철저히 일본의 시스템을 그대로 배낀 것이고,

일본애들이 중국에 진출하지 못하니까 한국이 중국을 비교적 쉽게 점령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일본 아이돌이 하지 못한 것을 한국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워낙 혹독한 육성프로그램과 인터넷 강국이라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며,

강헌 선생이 설명한대로, 해외진출의 절실함이 여기에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과연 K-pop의 열풍이 어디까지 갈까?


일단 이미 가전시장에서 일본을 뛰어넘은 것처럼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일본을 뛰어넘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어찌보면 현재 삼성전자가 처한 고민을 SM이 동일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고,

철저하게 원조를 배껴서 더 우수하게 만들어 청출어람이 뭔지를 보여줘왔다.


하지만, 가장 창의성이 필요한 문화컨텐츠 산업에서

과연 얼마나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해낼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강헌선생의 설명처럼 메인스트림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로 보면 너무 뻔한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아무리 있다고 한들,

언어의 장벽이라는 거대한 핸디캡이 있는데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는데,

굉장히 진부한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댄스아이돌이라는 장르가 별로 상품성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그럼 상품성이 높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 더 창조적인 솔루션일 듯한데...


재팬애니메이션도 어떻게 보면,

메인스트림에 도전하기보다는 니치 시장을 치고 들어간 전략이였다.


강헌선생이 강연중에도 언급한 것처럼

문화는 감정의 상품인데, 그들의 자존심에서 아시아의 락밴드를 실력이 있어도 쉽게 인정하진 않을 듯하다.


그런 면에서 싸이의 성공은

꼭 댄스 아이돌이 아니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새로운 측면이 있다.


문제는 후속곡 <잰틀맨>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작의 성공포인트를 억지로 살리려고 하다보면 아류작만 양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잰틀맨 뮤비를 보는 내내 억지로 쥐어짜낸 것이 너무나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싸이의 성공요인은 참신성과 자연스러움이였는데,

지난번처럼 성공을 위한 요인들만 울어먹기만 하면 아마도 서서히 내리막을 달릴 것 같다.


기존의 것은 살리더라도,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메인스트림에 진출하더라도, 천재적으로 뛰어나지 않으면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할 것이다.


박지성은 두개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다녔고,

최경주도 탱크라 불리면서 강철 체력을 과시했으며,

김연아도 최고의 점프라는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참... 결국은 나도 뭐 별다른 결론은 없네...

그냥 뭐 자신의 특색에 맞게 하고 싶은거 잘하는 수밖에... ^^


오히려 강의 내용만 보면, 전략적으로 성공한 것은 보아밖에 없는데...

너무 위험한 전략이여서 개인적으로는 사업적 선택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역시 대박은... 우연에서 나온다...


싸이가 그냥 마음 비우고, 

지가 하고 싶은대로 한 것이 <강남스타일>이였던 것처럼... ^^

열린 공동체 사회 Pot cast/[Bunker1] 강헌 , , , , , , , , , , , , , , , , , , , , ,

  1. 싸이 행오버 뮤직비디오봤더니...
    역시나 또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강남스타일때처럼 어깨 힘 좀 빼고...
    음악을 즐기면 좋겠구만... 점점 추해지는 느낌이다...

    싼마이 느낌과 추해지는 것은 분명히 다른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