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 cast/[담론통] 조형근

[시사통] 사회를 보는 시선 ③ - 좌파가 바라보는 불평등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10. 5. 23:36

[2014.03.11] 좌파가 바라보는 불평등 - [시사통] 방송듣기


우파가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봤다면,

좌파는 불평등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근원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장 자크 루소,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피에르 부르디외이다.



장 자크 루소는 그의 명저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평등했는데 사회 상태로 들어오면서 갈등이 생겼다고 보았다.


거주지에 정착해 가족을 만들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겼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불평등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해체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해서

인민들이 평등하게 살수 있게 만들어야한다고 루소는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견해를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 역시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했다고 주장하며,

생산력이 올라가 잉영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계급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1848)>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고 계급적 불평등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시작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모든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르크스의 견해에 대해서

막스 베버는 경제적 불평등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사회적 명예와 지위, 정치적 권력에 의한 불평등도 존재하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막스 베버의 주특기에 걸맞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의 주장은 화두만 던지고 마무리를 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와 베버의 견해를 통합시키는 것이 바로 부르디에이다.


부르디에는 경제적 자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경제적 자본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본만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계급 재생산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본,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라함은 흔히 이야기하는 인맥을 의미하며,

문화적 자본이라고 함은 끼리끼리의 문화를 통해서 계급적 차이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대중이 축구와 권투, 대중 공연을 즐길 때,

상위 계층들은 몸을 직접적으로 붙이치지 않는 테니스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상류사회의 귀족문화를 유지해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고, 최고급 명품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양태가 대표적인 것이다.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뒤따라와야지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고 계급적인 차이는 점차적으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시대를 통한 문화적 단절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계층 이동이 심했기에,

부르디에가 연구했던 프랑스만큼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를 흉내내려는 움직임은 존재하고 있다.


+


흥미로운 점은 루소나 마르크스, 베버, 부르디에 모두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이라는 부분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불평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데,

과연 이 사유재산이라는 것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마르크스는 없애고 싶어했고 없애길 주장했지만 

사실상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이를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자아를 찾기 원하는 인간에게

사유재산은 남과 나를 구별짓는 매우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것이 계층이고 고착화되는 것이 불평등이지만,

남과 나를 구별지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이 있는 한 사유재산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과도해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계급화되는 것을 막고,

한 번 형성된 계층이 고착화되어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불평등을 방지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남과 다르게 구별지어지길 원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눈에 보이는 신분은 사라지고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대중과 구별짓고 싶어하는 욕망이 나타나고 있다.


조형근 교수를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계급 정치은 약화되었지만,

계급 역관계만 바뀌어서 아직도 계급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글로벌 자본가 계급은 의도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계급투쟁을 시작하면서

세계화의 추세에 맞춰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노동자 계층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영업자와 중간 계급을 몰락시켜서 임금 노동자에 합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80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해야 한다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좌파에서 이제 계급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파에서는 새로운 계급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


분명 과거 사회와 비교하면 삶에 있어서 많이 평등해졌고,

특권층만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도 상당부분 개방되어지고 있는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자본에 있어서는 부의 집중현상이 강화되고,

불황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부작용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역사가 되돌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다시 집중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모든 불평등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가장 근본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사회와 많이 평등화되면서 오히려 가장 근원의 부분까지 찾아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이 모든 불평등의 기반이 된다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21세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자칫하다가는 사회 계층구조의 완전한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이러한 위기에서 한 번 크게 양보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얄밉게 잘 사용해왔다.


복지 정책이 그렇고, 근로조건 개선이 대표적인 방법들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러한 위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낼까? 그들의 대응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