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Room/Qualitative Research

[참여관찰사례] 서울역 거리노숙인 - 경희대 지리학과 김준호

열린 공동체 사회 2014. 1. 25. 14:25


며칠 전, 철학자 강신주가

'노숙자들은 자존심이 없다'라고 언급했던 내용이 SNS에서 몰매를 맞았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진짜 노숙자들은 자존심이 없을까?


이 때 강신주의 발언에 광분했던 지인으로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공유받게 되었다.


경희대 지리학과 석사과정 학생이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서

3개월간 서울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숙인을 보았다. (한겨례21 2010년 9월 10일)



기사내용은 흥미로웠고, 바로 원문인 석사논문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거리노숙인이 생산하는 '차이의 공간'에 대한 연구 < 석사 논문 원문 보기


사회복지학과가 아닌 지리학도의 눈으로 노숙인을 봤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참여관찰을 통해서 스스로 노숙인이 되어 석사 논문을 쓴 사례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나름 감명깊게 읽었던 노숙자에 대한 해외의 참여관찰 논문도

스스로 노숙자의 생활을 경험하지는 않았기에 본 논문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못했다.


Helping Friends and the Homeless Milieu (T Stablein 2011) < 해외 참여 관찰 논문 보기


(해외의 홈리스도 사실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사진은 구글링으로 퍼왔음)


암튼 이 논문은 노숙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참 신선했다.


지리학도이기에 공간을 중심으로 보면서도,

공공성, 지배, 차이, 차별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상을 분석했다는 점도 참 독특한 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공간(space)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공간과 인식론적 공간을 통합한 의미인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연구자는 우선 주류 사회의 노숙인에 대한 시각,

'노숙인이라는 존재는 부정의 대상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기본 전제가

거리노숙인의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기 보다는 이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는 기존의 편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거리 노숙인과 노숙문화 그 자체에 깊이 천착해서 연구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집이 있는 시민들에게 공공공간은 단순히 '휴식과 소비의 공간일 뿐이지만,

거리 노숙인들에게는 먹고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생존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공공공간에 대한 인식이 주거인으로서의 시민을 중심으로 

배타적으로 개념되어 있다는 사실은 노숙인을 공공공간에 있으면 안 될 존재로 만든다.


결국 거리노숙인에게 공공공간은 주류 사회가 생산한

그래서 그들을 배제하고 포섭하며 또한 행동규율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을 통제하는 '지배의 공간'이다.


그러나 지배 공간에는 항상 저항이 존재하며, 

저항은 거리 노숙인의 일상속에서 공간적 실천을 통해 표출됨으로써 '차이의 공간'을 생산한다.


지리학도지만 사회학을 전공한 듯 한 느낌이 드는 이런 표현들은

다소 어려운 개념들로 들릴 수 있는데 일반인의 언어로 쉽게 설명하자면,

 

서울역이라는 공공의 공간에 대해서

주류사회에서는 노숙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그들을 배제, 포섭, 통제하려고 하지만,

거리노숙인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스스로 이 곳을 '차이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카니즘에 대해서 연구자는 설명하고 있는데,

다소 철학적이고 사회학적 개념들이 많이 들어있어 솔직히 읽기 쉬운 글은 아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여기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흥미로웠던 부분들이 발췌해서 내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


우선, 노숙인들에 대한 이슈는

다른 사회복지 분야의 문제에 비해서 '가시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공공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 눈에 잘 뛴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노숙인들 일수록 훨씬 더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일상적인 평범한 노숙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이미 형성된 이미지대로 보이지 않으면 노숙인이여도 노숙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언론에서 노숙인을 경제적 박탈자, 잠재적 진환자,

잠재적 범죄자, 혐오감 유발자, 나태 및 무기력자, 동정의 대상으로 노출시킨 것이 크게 작용한다.

노숙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담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거리노숙인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1) 국가 주요 행사나, 일반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 물청소나 단속을 통해서 공공공간에서 추방하는 방법

2) 실내급식소 설치나 쉼터 등의 인도적인 방법을 통해서 공공공간에서 격리시키거나 수용하려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진짜 비인간적인 방법이지만,

두 번째 방법 역시 국가에서 정한 프로세스에 따라서 자활의 경로를 걸어야만 한다는 폭력성이 존재한다.

(상당수의 거리노숙인들이 이러한 억압과 답답함 때문에 자유로운 거리노숙을 선택한다고 한다.)


노숙인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 정책을 모조건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첫 번째 관점보다는 진일보했다고는 하지만,

노숙인을 부정적으로만 본다는 한계는 벗어나지 못한다.



+


과연 그렇다면 노숙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설문조사 결과(남기철 2009)에 따르면

철학자 강신주 역시 눈에 띄는 소수의 일탈적인 행위를 하는 노숙인들만 생각했던 것같다.


노숙인들은 스스로의 삶을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다.(74.6%)

사람들이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잘 인식하고 있다.(83.6%)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74.2%),

아직까지는 자신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다 (54.5% vs 12.5%)


전수조사도 아니고, 설문조사라는 방식의 한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일단, 스스로 개선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정부의 시각 자체에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또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면서 그래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고 있다니 참 다행이였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상당수의 노숙인들은

시민들의 불편을 생각해서 자신들만의 규칙을 정하고 시민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규제 때문이 아니라, 공공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들은 최대한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에서 방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봉사랍시고 대학생 시절부터 서울역에 몇 번 가봤는데,

과연 우리들이 그들의 목소리의 생각을 얼머나 들어주었는지 궁금해졌다.



+


그들의 생활에 대한 내용은 더욱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연구자는 노숙자의 생활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생활에 따라서 수면, 취식, 구걸, 부유의 공간을 연구하였다.


의외로 노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수면 공간'의 확보였다.

의식주 중에서 옷과 음식은 어떻게든 정부나 시민들을 통해서 공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면을 하기 위해서는 공공으로 사용되는 공간이 비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특히 가장 좋은 공간인 대합실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주로 낮에 다른 공간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한다.


날씨가 풀리면 대합실과 지하도 외에도

서울역 광장, 구역사 앞거리, 서부역 앞거리 등의 공간도 활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밤에는 춥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수면 공간은

노숙인들 간의 감성적 유대가 형성되는 장소이며,

노숙인들 간에서도 서로 간의 끊없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인정받는 사람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간의 계급차도 들어나서 잠자는 공간도 분리된다는 것이다. 


흔히 명당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는 이미 사유화가 이루어져서

갑자기 뜨내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내 자리니까 비켜라'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요구가 제기됐을 때는

순순히 비켜주는 것이 서울역 거리노숙인 세계의 암묵적인 룰(rule)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낮에도 주류 그룹이 주로 서울역 앞마당쪽에서 활동하는 것에 비해서

타자화된 그룹의 경우에는 서울역 뒷쪽 서부역 앞거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에 비해서 취식 공간은 많은 종교 및 봉사 단체들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심지어 점심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입맛에 따라서 급식소를 고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훌륭한 음식이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수면의 공간이 감성적 유대가 형성된다면,

취식의 공간은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며, 정보 교환의 장소로 활용된다.


+


구걸의 공간에 대한 분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상당수의 노숙인들은 구걸을 아예하지도 않으며,

구걸을 하는 노숙인들은 생존보다는 '삶 그 이상의 무엇을 위한 선택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주로 담배를 살 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며,

여성에게는 돈을, 남성에게는 담배를 구걸한다. 


낮에는 굉장히 불쌍한 자세로, 밤에는 다소 위협적인 자세로 구걸을 하며,

주말에는 인근 교회와 웨딩홀을 돌면서 활동을 하는 등 경험에 근거해 다소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근데 구걸을 하는 이유에는 단지 돈이 필요해서만도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구걸이라는 활동을 한다.


연구자는 사회 계층적인 부분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살기위해서, 자신이 아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기력하게 그냥 노숙인으로 사람들 시선을 피하면서 주는 것만 얻어먹기 보다는

무엇이라도 능동적으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는 아닐까?


+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삶에 대한 자세이다.


부유의 공간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소비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막상 해야만 하는 일은 없고, 시간은 너무 많고 대부분 처음 노숙 생활을 시작하면 이 시간에 적응을 못한다고 한다.


노숙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갖고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점차 그것이 충족되기 힘들다는 것으로 깨닫거나 아니면 정말 노숙 생활 자체에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거나 흘러간 과거에 대한 미련이 없이

그냥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재'에만 충실하면서 이 여유시간에는 서로간의 그룹을 형성해간다.


이 때 형성된 그룹은 같이 취식을 하거나 수면을 하는 그룹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명절같은 나름 대목(?)에 타지에서 몰려온 그룹들과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한 연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노숙인들도 그 안에서 수많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해당 논문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점은

내가 보던 시각과 노숙인의 시각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왜 탈노숙을 못하는지, 왜 쉼터나 시설를 거부하는지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규칙이나 생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불과 70여일동안의 노숙생활이였지만, 연구자는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주었다.

(참여관찰을 진행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참으로 배울점이 많은 연구이다.)


노숙인들은 과연 무능력하고 의지가 결연된 사람인가?

노숙인들은 관심과 동정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일뿐인가?

과연 그들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만 느끼고 있는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노숙인은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만 노숙인으로 사람들은 인식한다는 점이다.


과연 노숙인들이 이상한 사람들인가? 불쌍한 사람들인가?

그들을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모습으로 구해준다는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가?


그동안 노숙인들을 보는 시각은 잘못되었지만,

그들이 언론이나 봉사활동을 위해서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런 식으로라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끝임없는 소통과 교류를 원하고는 있지만,

그들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면서 강압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할까?


연구자가 논문에 언급한대로,

본 연구는 사실상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다.


그 점이 가장 아쉽지만, 그래도 노숙인에 대해서

그들의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참 귀중한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