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강헌 선생은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던 재즈라는 흑인 음악이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강헌의 마이너리티의 예술선언 1부 (Jazz) < 관련 포스트 보기
그러면서 2부에서는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던 10대가 어떻게
세계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번 포스팅 역시 강의 내용이 너무나 주옥같아서,
강헌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미약하나마 가지고 있던 지식을 첨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다시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진짜 강헌 선생님의 강의 내용은 대박인 듯 ~~
Blues에 Soul이 있고,
Jazz에 Swing이 있고,
Hiphop에 Groove가 있다면,
Rock에는 바로 Spirit이 있다.
왜 Rock'n'Roll Revolution이라는 표현이 나왔는지,
강헌 선생의 강의를 듣게 되면 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는 1부에 이어서 다시 재즈에서부터 시작된다.
+
불과 30년만에 세계를 정복한 재즈는
흑인들이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게되면서 점차 복잡한 음악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즉흥적인 댄스 음악이 아니라 모던 재즈의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재즈 음악의 천재들이 등장하면서,
Bebob, Cool Jazz, West Coast Jazz, Hard Bop, Free Jazz등으로 발전해나가지만,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재즈에 대해서 대중들은 점차 외면하기 시작한다.
흑인들 사이에서도 엘리트의 음악이 되어버린 Jazz
그리고 흑인영가에 경쾌한 재즈 리듬을 활용했지만 너무나 전도의 목적이 강한 Gospel
이들은 일반 흑인들이 가볍게 즐기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따분했던 것이다.
마침 엠프의 개발로 기타/베이스/드럼으로 단순한 연주가 가능해지자
재즈적인 리듬과 블루스적인 감각과 창법이 어울어진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유행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갑자기 많은 돈을 가지고 돌아온 흑인들은
그 돈을 음반을 사는데 쓰기 시작했고 갑자기 흑인 음반 시장은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음반 판매 집계를 담당하던 빌보드는 판매가 급증한 흑인 양아치들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주면서 리듬앤블루스(Rhythm & Blues)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1940년대 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던 이 새로운 흑인 음악의 흐름은
Little Richard 같은 스타들을 거치면서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가게 된다.
+
강헌 선생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흑인 음악이였던 리듬앤블루스가 장사가 되니까,
백인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빼끼면서 로큰롤로 넘어갔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틀린 설명은 아니며, 재즈에서 스윙으로 넘어간 것과 유사한 패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모르면 왜 리듬앤블루스가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가 없다.
강헌 선생은 로큰롤은 하나의 혁명이였다고 이야기한다.
1955년 영화 <Blackboard Jungle>의 엔딩곡
Bill Haley & His Comets 의 Rock Around The Clock 은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음악이 워낙 경쾌하고 좋기도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 부터 느껴지듯이 그 당시 10대의 저항의식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 것처럼
미국에서도 10대들의 첫 번째 저항의 장소는 바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학교였던 것이다.
20세기초 두 차례의 세계적인 전쟁과 세 차례의 경제적 공항을 거쳐서
풍요로운 골든 에이지가 시작되었고 역사상 유래없는 호황이 이어지게 된다.
이제는 부모의 도움 없이도 열심히 노력해서 일을 하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교외주택가에 살 수 있는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도 등장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10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생각만 강조하고 기존 질서와 경쟁만 강조하는 기성 세대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 삶이 평화로워져 보였지만,
사실상 10대들의 삶에서는 성적이라는 전쟁이 일어나 있었고,
상대평가와 계량화된 교육은 양극화라는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이러한 10대들의 독립선언이
백인 중산층들이 싫어하는 흑인들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맴피스에서
썬레코드라는 음반사를 운영하던 샘 필립스는
10대들이 리듬앤블루스를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1950년대 중반부터 백인 음악 음반 매출이 급감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샘 필립스는 흑인 음악이 가진 시장성을 알면서도,
존 하몬드가 했던 것처럼 직접 흑인 아티스트를 발굴하지는 않았다.
대신, 4달러를 내고 흔하디 흔한 오디션을 보러온
흑인 목소리를 내는 키 180의 백인 트럭 운전사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린다.
그가 너무 가난해서 흑인 거주지역 인근에서 자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교회에 다니며
흑인의 가스펠과 댄스에 익숙해있었던 그는
첫번째 백인 리듬앤블루스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차트를 점령해버렸다.
데뷔 초기 에드 설리번 쇼에 처음 출연한 엘비스는
엉덩이를 너무 흔들어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편집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바스트샷만 나가자는 매니저의 제안으로
궁여지책으로 방송이 되면서, 오히려 그의 독특한 움직임이 화제를 일으키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
데뷔한지 한 달 반만에
막 시작된 TV시대 최고의 스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1956년 빌보드차트 52주 중 무려 34주 동안 1위를 점령해 버린다.
미국 전역을 휩쓸지만 이에 대한 기성 세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로큰롤(Rock'n'Roll)이라는 용어 자체가
원래 남여간의 성교를 의미하는 용어였고 노래의 가사 또한 만만치 않았다.
흑인 음악에서 시작된 것을 제외하더라도 기독교 사회가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 최대 시민단체인 PTA(학부모 교사 연합회)가 앞장서서
로큰롤은 사탄의 음악이라 선언하고 모든 로큰롤 음반을 불 태워버리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한다.
(10대들의 저항에서부터, 보수적인 종교계의 탄압 등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역시 이들의 힘은 대단했던 것 같다.
로큰롤의 저항정신을 도덕적 해이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고,
1956-1957년에 걸쳐서 급격히 성장한 로크롤은
1958-1960년에 걸쳐치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로큰롤의 열풍을 주도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에 입대했고,
로큰롤의 교본을 만들었다던 '척 베리'는 석연치 않게 매춘 협의로 감옥에 가고,
로큰롤을 실질적으로 탄생시켰다고 불리는 '리틀 리차드'는 갑자기 목사가 된다.
피아노 로큰롤의 개척자라 불린 '제이 리 루이스'는
14살짜리 사촌과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영국 순회 공연이 취소된 후 사회적으로 매장됐고,
(이후 루이스는 컨트리 음악으로 전향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재기한다.)
당시 방송국 DJ들 사이에 만연했던 금품 수수 관행에 대해 열린
페이올라(Payola) 청문회를 통해서 로큰롤에 호의적이였던 DJ들은 방송국에서 모두 축출된다.
(로큰롤의 아버지라 불리던 앨런 프리드는 이 때 모든 것을 다 잃고 1965년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심지어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은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나버리면서 세간에는 음모설까지 제기되었다.
+
시들해지던 로큰롤 열풍은 이제 정치권으로 넘어간다.
전후 처음으로 선거권을 획득하기 시작한 이들은 JFK라는 새로운 스타를 만난다.
기존 정치권과는 너무나 다른 젊고 잘생긴 대통령
그의 개혁적인 정신과 행동들은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하지만, 1963년 그 역시 정체 불명의 기성세대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다름 아닌 영국에서 넘어온 비틀즈였다.
미국은 영국에 대한 동경도 존재하지만,
또한 영국에 대한 적대감과 열등감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도 승리하고 재즈로 전 세계 음악을 평정했던 미국의 자존심에
비틀즈의 성공은 사실 반갑지 않았기에 이를 British Invasion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번에도 사건은 애드 셜리번 쇼에서 터지게 된다.
노동자 출신에 락커족에 가까웠던 비틀즈는
미국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모드족으로 연출을 한다.
50년대 후반 미국 시장에서 로큰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반면교사 삼았고,
또한, 미국인들이 영국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매니저는 기가막히게 알았던 것이다.
영국의 엘리트 모범생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비틀즈는
종전의 히트를 치게 되면서 에드 설리번 쇼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미국 기성세대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했던 비틀즈와는 다르게,
롤링스톤즈는 흑인 음악을 전면으로 추구하며 온몸으로 그 공격을 받아낸다.
(사실은 비틀즈가 노동자 출신의 히피들이였던 반면, 롤링스톤즈는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였다.)
최고의 성공은 비틀즈가 했지만,
Spirit의 측면에서는 역시 롤링스톤즈가 최고인듯~~
(이런 면에서 롤링스톤즈를 더 선호하는 음악 전문가들도 많다고 한다.)
1965년 이후부터는
비틀즈 역시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미 그들은 넘사벽이 되었기에 기성세대의 공격쯤은 가뿐하게 넘겨버렸다.
암튼 비틀즈는 시들어가던 로큰롤의 열기를
완전히 되살려버렸고 아니 이제는 광풍의 경지에 올려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비틀즈의 British Invasion은
단순히 영국 음악이 미국 시장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에 무릎꿇었던 10대들이 다시 한 번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된 사건인 것이다.
이후, 대중문화는 10대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크게 변화하지는 않고 있다.
+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중 문화의 중심에는 항상 10대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중간세대라 볼 수 있는 30대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물론 세시봉 열풍처럼 기성세대의 열풍도 있었지만,
건축학 개론, 응칠, 응사로 대변되는 30대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문화계에 영향이 커지면서
대형 뮤지컬이나 콘서트, 미술관 같은 시장이 많이 커진 느낌이다.
(사실 어린 애들은 돈이 없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시장)
예전 같으면 결혼해서 애키우고 일하냐고 정신 없었던 세대인데,
결혼도 늦어지고, 애도 적게 낳고, 일을 하더라도 자신을 찾기 시작한 이들...
특히나 10대와 20대가 구매력이 약한 반면, 이들은 경제력도 강하다.
사실 가진 것은 50대 이상이 더 많지만 이들은 자식들에게 쏟아부어서 실제적인 가용 금액은 얼마 안된다.
내가 대학생 시절만 해도 대학생이 모든 문화의 중심이였는데,
지금 대학생은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불쌍한 청춘으로 전락해버렸기에
어떻게 보면 돈이 돌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바로 30대 시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화의 중심자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30대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적당히 기성세대에 저항하면서도,
적당히 예전에 대한 추억팔이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기존 질서에 저항할 여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뒤집어 놓을 정도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보수화되고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
10대와 20대에 비해서 싸워본 경험도 있고 싸울만한 체력이 있는 세대이다.
'30대의 정치학'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영향력과 잠재력을 가진 세대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치와 문화라는 것의 상관관계가 참으로 묘하게 연결되는 맥락이 존재한다.
새롭게 문화적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는 30대
이들이 과연 어떤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가져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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