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ing Innovation/Work & Life

강신주의 다상담 03 - '일' 편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29. 09:08


직장 생활 3년차에 접어들 때,


갑자기 불연듯 떠오른 생각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였다.


물론 그 때 나는

나름 괜찮다고 소문난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업무 강도는 높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지 않냐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렇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야할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못해 일했고, 돈만 있으면 당장 때려치고 싶어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하는 이야기는

나중에 돈벌어서 뭐하고 싶다는 이야기였고,

직장을 취미처럼 다니는 부자집 자녀들을 부러워했다.

(광고회사는 일이 재미있어 보여서 그런지 그런 분들이 꽤 존재하신다.)


월급의 노예...


이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카드값이 나를 일하게 부른다.

때려칠까 싶다가도 월급이 들어오면 에너지 충전이 된다.


솔직히 나는 당시

Life Balance는 맞지 않았지만,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나름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물론 일도 일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뭔가 이상했다.

즐겁게 살기도 부족한 인생인데

다들 월급의 노예처럼 일만 하는게 안타까웠다.


먹고 살려면 일은 해야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왕 일하는 거면 즐겁고 행복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성경의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


불교의 백장 스님(738-817)도

노년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

선인들의 사상을 통해서 보면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 취미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일하지 않았는데,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하지 않았는데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부모님, 남편, 아내, 동료, 친구가 아니면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한 일의 대가를 빼앗는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의자 하나 못 옮기는 사람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는데,

모두가 먹고 살게 된다면 여기에 권력 관계가 형성되게 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에게 밀붙어 살고 있거나,


전자든 후자든 누가 권력을 가지는지만 다를 뿐,

어찌하든 평등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 관계의 내면에는 돈(자본)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


성경과 불교에서

신성시 했던 거룩한 의무가

부정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것은 자본의 권력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좋은 직장이라 보고,

돈벌이만 되는 것을 일이라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사고

어느 새 돈 없이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가 팽배하기 전에는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지
일을 해서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근데, 누군가는 돈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먹고 살수 있게 되었고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능력없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돈만 있으면 당장 일을 때려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아하고, 돈이 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

나는 직장인들이 월급의 노예가 되는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왜 그런지 철학적인 사고는 존재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철학박사 강신주는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지 주인이고,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노예라 부른다.

일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노예의 근성이다.
주인이 감시를 소홀히 하면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노예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일은 안하지만 먹을 것은 얻는 것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근무시간에 딴 짓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직장인은 최고급 노예이다.
최고급 노예가 되어서 일하다보면, 돈은 들어왔는데 찝찝한 거다.
이 것이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고급 교육을 받은 사회의 엘리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급 노예의 길을 선택한다.


이러한 최고급 노예들은

우수한 능력을 바탕으로 돈많은 사람들이 일을 안하게 도와준다.

(아니면 일한 것에 비해서 훨씬 많은 댓가를 얻을 수 있도록)


이런 어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패러다임의 부재이다.


일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사고없이

돈벌이와 일을 동일시하는 물질만능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부모님들은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한다.


"그거한다고,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책을 읽을 때, 음악 들을 때, 놀 때 마다

내가 즐겁게 했던 일들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원하지 않는 것들을 잘하게 만드는 훈련을 받게 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대놓고 비판한다.


"명문대에 간 애들은 독한 놈들이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가장 잘하는 애들이 명문대에 몰려있다.


돈을 냈으면 즐겁게 수업을 들어야하는데,

비싼 등록금을 내고서 자본이 원하는 것만 배우고 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노예 훈련소로 전락하고 있다."


+


과연 그렇다면 월급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거나,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노예처럼 하지 않으면 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직장인들에 어이없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월급은 버티면 나온다.

회사에서 부지런하면 부지런할수록 손해이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쓸 에너지가 없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에너지가 없다.


퇴근 후 가족이나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놀 수가 없고,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할 여력이 전혀 없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노예로 살 때 에너지를 세이브 해놔야지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직장인들에게 태업을 종용하다니...

사장이 들으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왜 사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정확한 답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경영자들이 사내 복지나 인센티브 등을 만드는 이유는

사실은 동기부여를 통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경영자들이 진심으로 종업원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들을 노예가 아닌 동료로 보는 관점에서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함께 나누자는 훌륭한 철학을 가진 경영자도 가끔 있다.)


하지만, 강신주의 말처럼 태업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논리적으로만 보면 강신주의 말이 맞기는 하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만 일하라는 것이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삶의 균형을 맞추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준비하고 때가 되면 떠나라는 것이다.


+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미안해 한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근데, 그렇게 할수록 일은 더 밀려오고,

점점 내 시간과 에너지는 회사에 몰입하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이 진정으로 재미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근데, 진짜 월급 때문에 일하고 있다면,

이는 진정 노예의 삶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노예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들은 진짜 너무 착하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면 난 매정한 부분이 존재한다.


내가 선택한 길은

회사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는 것이었다.


강신주의 강의는

내가 직장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의 4년간의 삶을 말하고 있었다.


+


4년차가 되면서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좋았지만,

뭔가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삶의 밸런스가 맞지 못했으며,

기업의 광고와 마케팅이라는 일이

사회에 가치있는 삶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마케팅이고,

마케팅 업무가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부서로 옮기기로 했다.


외부 환경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일도 재미없어지고, 사람들도 나가버렸다.

그리고,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다.


첫 직장을 다니던 나에게는 충격이였다.

그렇게 좋았던 나의 직장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그러면서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창업을 위한 도움일 될 수 있으면서도,

자기 개발을 위한 삶의 여유가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새로운 회사가 필요했다.


이러한 모든 조건에

벤쳐로 성공해 상승세를 타고 있던 네오위즈는 최선의 선택이였다.


난 강신주박사가 말한대로,

적당히 일했으며 절대로 일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능력에 비해서 욕심을 내지 않는 나에 대해서

팀장님은 대놓고 나에게 서운해 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붙는다면,

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딱, 나에게 주어진 일까지만 최선을 다했고 절대 욕심 내지 않았다.

(물론,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는 충분히 좋은 성과를 냈다.)


당연히, 팀장님과 회사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의 인생에 중요한 타이밍을 회사에 올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

그리고 그 것을 위한 방향과 방법을 알았을 때

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 도전에 무모하다, 용기있다 말하지만,

난 4년을 망설이며, 준비했고, 기회가 왔을 때 움직였을 뿐이다.


+


남이 시키지 않는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벌이가 되어 먹고 사는 걱정 안해도 되는 사람


어떻게 보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근데,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떠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막상 나도 내가 원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돈벌이가 되어 먹고 사는 걱정을 안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계속 더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했지만,

공부를 더 하면서 돈벌이가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행복한 일터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모두 같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주인이기 때문에 힘든 일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그런 곳


그리고 각자의 즐거운 삶도 알아서 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곳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성공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일터의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아주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꿈을 꾸고 차분히 준비해나가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기에 실패가 두렵지 않다.


어찌보면, 이 고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현재,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느냐가

일에 대한 고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