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서 다음의 글을 공유받았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지만, 글쎄 이사람의 결론에는 공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짓거려 본다.
(밑에 그림을 클릭하면 번역문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In the name of Love)라는 제목으로
영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해서 올려놓은 글이다.
요지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 속에 숨겨져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맨 얼굴을 설명해주고 있다.
1) 해당 언어는 사랑할만한 일을 하지 못하는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심리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며,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들의 나르시즘에 불과한 이야기일뿐, 다른 형태의 노동의 가치를 매력이 없어 보이게 만든다 지적한다.
2) 다른 측면에서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과도한 노동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대우를 해주면서도
그런 것을 합리화시키는 언어라고 지적을 한다.
2가지 측면 모두 합리적인 지적이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글쓴이의 말대로 전문직이 아닌 단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아를 찾지 못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며, 나는 먹고살기 위해 돈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에, 실제로 수많은 예술가와 전문직 종사자들은 노동 착취를 당하면서도
'이 일은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원저자는 여기에 무급 인턴이나 무급 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테재에 숨겨져 있는 젠더(Gender)의 의미까지 분석하여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저자는
'모든 일을 일로서 인정할 수 있을 때, 이 말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하면서
일을 벗어나 진정 사랑하는 것(가족, 여가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일(work)과 행복(happy)의 문제는 내가 오래 전부터 고민하던 이슈이기에,
행복(happy)을 사랑(love)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한 해당 이슈는 나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다면 "모든 일은 일이다!"라고 규정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원저자가 지적한 두가지 내용은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1) 일에 대해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2) 사랑이란 언어로 노동 착취의 매커니즘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의 결론에 대해서는 공감을 해줄 수 없다.
"모든 일은 일이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원저자는 2가지 지적에 대한 해답을 동시에 제시한다.
1) 사랑할 수 없는 노동도 일이다.
2) 일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면 어떨까?
1) 왜 단순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가?
2) 왜 가족과 여가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면서 일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원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발언이 단순 노동자를 무시한 사고의 발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저자는 단순 노동은 사랑할 수 없는 하찮은 일이라는 편견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단순 노동을 간과했다고 지적하면서,
정작 저자의 인식 속에는 단순 노동을 무시하고 있다.
(단순 노동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편의상 단순 노동이라고 줄여서 표현하겠다.)
스스로 일의 성격에 따라서 가치를 평가하고 있으면서,
단순 노동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 노동은 절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성립되야 한다.
이미 저자는 스스로 단순 노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나사를 조인다고 해서, 들판에서 농사를 지은다고 해서
그 일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사랑은 주관적인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땀을 흘리는 일의 가치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두 번째, 일은 사랑할 대상이 못된다고 이야기한다.
가정과 여가 시간은 소중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진짜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과 여가 시간이만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것 또한 사회적으로 형성된 편견이며, 일이 더 행복한 사람도 존재한다.
물론 가정과 여가 시간을 더 사랑하는데,
일을 하냐고 가정과 여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원저자의 주장이 맞다.
그런 사람들은 최대한 근무 시간에 에너지를 비축하고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가정이나 여가 시간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구별짓기했던 단순노동이나 사랑할만한 일을 하나 똑같은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미,
일은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그에게 일은 최대한 안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단순 노동의 가치를 폄하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떠한 일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사람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일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곳에는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짜 일을 사랑한다면 그것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
원문에서 한 가지 사항을 더 지적한다면,
저자는 Labor와 work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와 존 로크는
노동(laobr)와 일(work)는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이야기한다.
노동(labor)은 특별한 목적 없이 수행하는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으로 정의되는 반면,
일(work)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록 에너지를 사용하는 활동으로 정외된다.
산업사회 이후로 일(work)이 분업화되면서 상당부분 노동(labor)로 전환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은 장인적인 면모가 강한 반면, 노동은 생계수단으로써의 의미가 아직까지도 강하다.
저자의 의견을 따르면서
사랑받을 만한 일은 work가 되야하고,
사랑받지 못할 일은 labor가 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일과 노동을 구분해버리는 순간,
저자가 이야기했던 일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합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수단 역시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행복하냐 안하냐의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방글라데시가 굉장히 못사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행복 만족 지수가 세계 1위를 기록했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의 표현대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노동착취를 당하지 않고 퇴근 이후에 가정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여가활동을 충분히 하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단순하면서도 힘들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여가 활동 충분히 못하고,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못보내도
일에서 더 큰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일을 싫어한다고,
남들도 모두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전문직인데 업무 강도가 강한 사람은 모두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편견이 사람들을 획일화된 잣대로 몰아가고 있다.
+
2년 전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직장이라 불리던 곳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려고 급하게 노력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난 전문직이긴 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하면 농담인줄 알지만,
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여러가지 자료를 보는데 시간을 보낸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학생에게 공부는 엄연히 일이다.)
그렇다고 취미활동을 할줄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도 좋아하고, 음악과 예술도 사랑한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난 공부하는 것이 좋기에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고,
뒤늦게 다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 진짜 너무 싫어지면 그 때는 공부를 그만둘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나이먹어서 공부하냐고 불쌍하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참으로 용기있다고 이야기한다.
글쎄...
가끔은 내가 진짜 행복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행복한 것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행한 것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에게는 해당 키워드는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넌 특수한 상황이니까 그런 소리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마다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이 사람의 지적 또한 새로운 편견을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언어가 조장하는 편견을 지적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일에 대한 새로운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저자는 이를 마약같은 달콤한 사탕발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In the name of love)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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