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0장에는
도피성(cities of refug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40년의 광야 생활이 끝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민족은 정복한 땅을 지파별로 나누게 된다.
지파별로 땅을 나눈 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은 도피성을 지으라는 것이다.
도피성에 대한 이야기는 모세가 살아있던 시절부터,
출애굽기 21장,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에 이미 언급하셨던 개념이다.
도피성이라고 하면 뭔가 좀 어려워보이는데,
영문을 그대로 번역한 '피난처'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을 듯하다.
당시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에도 등장하는 보복법이 존재했던 시절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 됐던 사람을 죽인자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도 있지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
이에, '도피성'이라는 공간을 마련해서 사람을 죽인자는
일단 이곳으로 피난을 가서 회중 앞에 재판을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도피성이라는 공간은 이스라엘 지역에 총 6곳이 존재했는데,
어디에서든 하룻 밤만 이동하면 피난을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일단, 보복을 당하기 전에 재판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였다.
하지만, 사고가 아니라 고의로 사람을 죽인자는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실수를 저질렀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에게 해명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간이였던 것이다.
+
이 도피성이라는 공간은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지파에서 담당을 했으며,
도피성에 들어온 사람은 재판을 통해서 그 죄를 밝히게 된다.
이를 통해서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되고,
만약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도피성에서 유배생활을 해야했다.
이는 보복에서 보호해주는 것도 있지만,
고의가 아닌 실수나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서라도
사람을 죽인 경우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처벌을 받게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고,
지금 존재하는 무죄 추정의 법칙이랑도 이어지는 것같고,
과실치사 같은 항목들하고 이어지는 합리적인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위험이나 억울함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다.
도피성에서 유배를 하던 사람들은 들어온 시기와 상관없이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유배생활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30년 동안 도피성에 있던 사람도 있고,
단지 며칠만에 도피성에서 나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대제사장이 죽는 순간 도피성에 유배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사면을 받게 된다.
그들은 자유를 누리게 되기에 오히려 대제사장이 죽는 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당시 대제사장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아야한다.
영적인 지도자이면서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던 사람이였다.
죄지은 사람의 해방은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제사장의 희생이라는 커다란 슬픔을 가져야만이 속죄함을 받을 수 있던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라인이다.
누군가의 희생 그리고 그를 대가로 얻게 되는 속죄함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도피성에 해방이 왔다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류에게 해방이 온 것이다.
도피성은 처음에는 안식처가 되어주었지만,
도피성에서의 유배생활이 계속되면서 그들은 해방의 날만 기다렸을 것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그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주었고,
그들은 그 자유를 만낏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제사장의 희생을 가슴에 기억해야만 했다.
이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크리스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무겁고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 짐을 덜어주고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도피성이였으며,
동시에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희생을 하는 대제사장이였던 것이다.
내가 오늘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거져 받은 것이 아니기에... 너무나 소중히 그 희생을 기억하면서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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