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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더럽다.정치가 그러하듯이, 학문 지배의 글로벌 구조에서열등한 위치에 있는 한국 지식인은 이 궁극적인 리얼리티에 직면하게 된다.학문의 제도적 담지자인 대학은 진리의 전당일 뿐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등급을 분류하는 기계다.
지식인들 사이에 불신만 팽배한 가운데,
학문보다는 학연이 더 가까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김종영 교수는 15년이라는 세월에 거쳐서 한국의 유학파 엘리트 집단을 추적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의 학자/직장인이 되거나 미국에서 학자/직장인으로 남은 사람들
김종영 교수는 이 사람들에게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지배자 위치는 미국 대학이 제공한 학위와 지식 속에서만 가능한 사람들
미국 대학의 지식인들보다 열등한 위치를 점하지만 국내 학위자들보다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
신라시대 당나라로 유학했던 불교 지식인들
조선시대 유학과 실학을 배우러 명나라와 청나라로 떠났던 지식인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했던 근대 지식인들
오늘날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처음있는 일도 아니다.
이미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부터 이러한 전통은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유학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고 보다는
글로벌 문화자본을 위한 엘리층 계층의 생존 방식이자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대학원에서 조금만 공부했거나 주변에 유학생들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미국 유학만 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에서 오는 압박감은 기본이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소외감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졸업하고 학위증만 받아서 한국에 돌아오면 인정받는다는 희망으로 버틴다.
물론 최근들어서 워낙 유학생이 많다보니,
이제는 아무 학위나 받아와서는 국내에서도 쉽지 않다.
최근 들어 교수 자리를 잡는다해도 예전처럼 자리 유지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닦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은 김종영 교수의 글에 상당부분 수긍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어려워 쉬쉬했던 측면도 존재한다.
자신들의 이야기인데 굳이 치부를 드러낼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미국 유학파가 아닌 사람이 괜히 이야기했다가는 열등의식이라는 비난만 받으니 가만히 있어야지~
그런 면에서는 미국 주류 유학파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주니 감사할뿐이다.
교수님의 연구 경력을 살펴보니, 이미 학계에서는 주류의 길을 포기한 나름 소신있는 분인듯 하다.
나같은 국내 연구자에게는 참으로 속 시원하기는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니 앞 길이 암담한 것이 참 씁쓸하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분야는 국내 전문가도 없고 미국의 전문가도 별로 없다.
오히려 유학을 가려면 유럽으로 떠나야하는데 책에 나온 것처럼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캐나다, 영국, 북유럽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나름 국내에서는 신선한 사람이 되어있을 수는 있지만 굳이 지식의 수입상으로 살아야 할까?
안그래도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바닦에서도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북유럽에서 정보를 흡수하는 것이 유행이다.
근 10년 사이에 벌써 왠만한 곳은 다 투어를 했고,
이제 몇 군데만 더 돌면 월드투어가 완성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새로운 것은 없으며, 한국에 제대로 적용된 것도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해외를 방문하고 오고나서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
미국 유학파들은 사회적 경제 바닦보다는 훨씬 엘리트 계층이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빠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소수자요 언어와 문화의 위력 앞에 약자가 되어버린다.
안타까운 점은 그들이 한국에 와서 특히 대학에 와서 소모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열심히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왔는데,
현실적인 외부 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체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지식 수입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실력이 아닌 학벌과 인맥에 의해 평가받고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인 연구만 하는...
논문을 읽어보면 그렇다고 퀄리티가 낮다고 할 수는 없다.
이론 리뷰나 글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 다들 한 가닥하는 사람임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내용에 알맹이가 별로 없고 그냥 남들 하던 연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계량적인 연구에만 너무 치우쳐서 논문 숫자 늘리기가 주 목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론이나 방법론이 유행하면 급물살처럼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또 미국에서 뭐가 뜬다고 하면 그쪽으로 훅~~ 흘러버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지식 수입상이다.
과연 나는 그들과 다를 수 있는가?
일단 물리적으로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난 미국의 주류 유학파도 아니고, 앞으로도 유학을 갈 의지도 없다.
현장 연구를 하고 싶은데, 미국이나 해외에 나가면 내가 하고 싶어도 끼워주지도 않는다.
내 스타일은 해외에 맞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받아주지도 않는다.
다행히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신생분야이고 워낙 비주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동네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나의 선택은 탁월하다할 수 있으나,
학문분과로 접근한다면 역시나 비주류이기에 그냥 비주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연구자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는 아니긴 하지만,
선택권마져 주어지지 않고 바로 현장으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괜히 기분 나쁘다.
최근에 졸업하는 석사생들이 진로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이 바닦에 안정적으로 갈만한 곳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원래 필드가 있던 분들이야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고 공부만 하던 친구들은 과연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뭐 솔직히 내가 남의 걱정한 상황도 아닌 것이
내 연구 결과가 과연 쓸만한가에 스스로 회의적이다.
나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봤고, 비주류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논문을 쓰기는 했으나...
막상 학회지에 게재하려니 내 수준이 형편없어서 완전 짜증나는 상황이다.
아직 박사 1년차가 욕심도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무 경력 7년을 포함하면 10년차는 되는 건데 아직도 제대로 된 결과물도 못내놓다니...
이런 입장에서 미국 유학파들을 욕할 자격은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김종영 교수의 지적대로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을 뒤집어 엎으려면
제대로 연구해서 제대로된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아서 미국의 식민지화를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한국 사회에 내에 만연한 학벌과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진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어진다.
과연 내가 해야하는 일인가? 그리고 진짜 내가 할 수는 있을까?
어짜피 연구자로써 위대한 연구를 통해 업적을 남길 욕심은 없었지만,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를 보니 그냥 이런 상황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짜증났다.
이대로 과연 흘러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사실 대한민국 교육의 왜곡 현상은 지식인 양성 체제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문제의 근본 원인 중에 하나이기에 쉽게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없다.
이번 학기 마치면서 써본 논문을 수준을 보니 암담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공부가 더하고 싶고,
내가 너무 무식한 것같다고 생각해서 박사를 시작했으나...
과연 잘 한 일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5년후 박사가 마칠 때쯤 난 무엇을 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당장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과제부터 처리하고 고민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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