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소설/시/문학

불모지대 - 야마사키 도요코 (1978)

열린 공동체 사회 2013. 12. 13. 20:46

불모지대 세트
국내도서
저자 : 야마사키 도요코 / 김욱역
출판 : 중원문화 2012.05.18
상세보기


야마사키 도요코는 국내에는

드라마 '하얀 거탑'의 원작자로 더 유명하지만,

'불모지대' 역시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이외에 몇 편의 소설이 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노련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죠.


불모지대 역시,

세지마 류조라는 정제계 거물을 배경으로 했기에~

세지마 류조를 미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우경화의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야마사키 도요코는

방대한 취재에 기반한 디테일이 강한 작가로 평가받는데,


불모지대를 쓸 때는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키로부터 모스크바까지 횡단취재를 하고,

중동의 산유국(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를 3차에 걸친 현장 취재 여행과

대재벌 등 각계 인사 377명을 상대로 밀착취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


불모지대는

일본군 최고의 엘리트 장교였던 이키 다카시가

전후 시베리아에서 11년간 수감생활을 한 후 돌아오면서 시작합니다.



소설 내내 흐르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는

전후 일본의 분위기와 그 상처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

이키 다카시가 기업인으로 성공한 이후에도 이 분위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느낌은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에서도 느껴지지만 그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다.)


이카 다카시는 최고의 엘리트 장교였지만,

11년이라는 사회적 공백은 그를 변하게 만들었고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패전 포로였던 엘리트 장교가

어떻게 다시 전후 일본 사회에 적응해나가는지와

일본종합상사라는 조직이 정관계 로비를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입니다.



디테일한 세부 데이터와 언론/정치/경제의 관계 묘사가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소설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생세합니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하고 원칙주의적이던 이키 다카시가

뛰어난 정보력과 분석력을 기반으로 서서히 상사맨으로 성장해나가면서,

원하든 원치않든 끝없는 경쟁 속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뚝 서게 됩니다.


그 과정은 절대로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때로는 비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매일매일 해야만 했던 것이죠.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같은 것은 뭐 거의 기대를 하면 안됩니다.)


이 부분에서 전쟁에 대한

일본의 견해를 읽을 수 있어서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아직도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서 분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일본 경제의 성장과정과 발전 방향을 그대로 읽을 수 있으며,

특히 마지막 부분에 1인 경영 체재에서 시스템 경영체재로 넘어서는 과정을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그 치열한 고민을 같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저만 재미있게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떠나야할 때를 알고, 포스트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

일본 기업이 왜 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잘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상사를 철저히 배낀 우리나라 기업들은 절대 이 부분은 따라하지 않죠)


+


소설의 배경 인물이 된

세지마 류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안되는 일이 있으면 세지마에게 가보라' 라는 말 있을 정도로

세지마 류조는 일본 내에서도 뛰어난 전략가로 유명했습니다.


한국에서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정제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이며 그 영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만주괴뢰군 근무 당시 상사였으며,

군인시절부터 워낙 신화적인 인물이라서 박정희가 존경했다고 하네요.

(워낙 천성적인 군인이였던 박정희 입장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우상같은 존재였던 거죠)


1970년대부터 한국과의 정계로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종합상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세지마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국의 종합상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특히 전두환, 노태우에 끼친 영향력은 굉장합니다.

전두환의 88 서울 올림픽 개최와 노태우의 보수대연합이 모두 세지마의 아이디어라고 하네요.


한국와 일본의 정제계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굉장히 많은 이권을 가져가게 되죠.


하지만, 그의 놀라운 지혜와 조언들 때문에

정제계의 인사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고 하네요.



세지마 류조가 유능하다고 평가받은 이유는

뛰어난 정보 수집력도 있었지만, 이를 분석해내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결정적으로 이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방향을 도출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같은 정보를 보고도 남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고,

단지 분석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액션을 할 방법을

항상 3가지 정도로 제시했다고 하니, 대단한 능력인 거죠.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느껴지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그에게 목을 맨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요.


+




이 책은 중앙대 학부시절

경영전략 수업시간에 박찬희 교수님이

기말고사 과제로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잘몰랐지만,

삼성물산에서는 상사맨의 필독서라 불렸다고 하네요.

(이병철 회장이 직원들에게 적극 추천했다고 하네요.)


대우상사 출신의 박찬희 교수님께서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학부생들에게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과제로 냈을 듯합니다.


수업 시간 내내 학부생들에게

현실감각을 위해서 대놓고 막말로 강하게 트레이닝 시키셨죠.

(수업 첫 시간에 동의하는 학생말고는 모두 나가라고 했던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현실에 대한 접근이 저와는 정반대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쏟아붓는 세상의 모든 지식도 모두 뼈가되고 살이 되더군요~ ^^)


총 5권이라는 엄청난 분량이 무섭기도 했지만,

광고회사 인턴이 끝난 직후라서 완전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종합상사같은 복잡하고 치열한 로비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정신 바싹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회 생활의 쓴 맛을 깨달은 직후였죠.


그 당시에는 이 책에 대한 느낌은 감동 그 자체였으며,

역시 독하게 살아야돼~ 난 할 수 있다~ 정신 바싹 차리자! 였습니다.


+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본 현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잊혀지지 않고 있던 것 중 하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이였습니다.


'성공 = 행복'이라는 성장위주의 사회에서는

실존인물 세지마 류조는 이상적인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닮고 싶지는 않았죠.


그리고 7년간의 직장생활을 한 이후 느낀 점은

세상이 참으로 만만치는 않다는 것과 동시에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동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세지마처럼 유명해지는 것을

포기해야할 수도 있지만요~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서,

즐겁게 살고 싶은 저의 생각이

한낮 꿈이 아니라는 것을 꼭 증명해보고 싶습니다.